조민이 차 트렁크에 짐을 실은 후 고개를 돌려 매니저를 바라보았다.“고마워요. 하지만 더 이상 필요할 것 같지는 않네요.”“손님…”“혹시 무슨 일 생겼나요?”바로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에 조민이 고개를 돌렸다. 데니스가 차에서 내리더니 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매니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데니스 씨.”조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두 분 아는 사이세요?”데니스가 웃으며 설명했다.“이 호텔 제 명의 하에 있는 호텔이거든요. 죄송해요. 조민 씨가 여기 머무르시는 줄 몰랐어요.”조민이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랬군요…”“무슨 일 있었나요?”데니스가 매니저한테 묻자 매니저가 솔직하게 사건을 털어놓자 데니스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일이 있었다니. 문제가 된 그 직원은 해고하는 게 좋겠네요.”“하지만 현재 호텔에는 일손이 많이 달리는 상황입니다. 해고하고 나면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고요.”매니저가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했다.데니스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손님한테 그런 불쾌한 기억을 남겨주고도 해고하지 않다니요. 그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그리고 오래된 경력직이었다면 과연 그런 잘못을 했을까요?”순간 할 말을 잃은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지금 가서 말을 전할게요.”매니저가 다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조민은 말없이 멀어져 가는 매니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때 데니스가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이런 일을 겪게 해서 죄송하네요. 이러면 어떨까요? 지난 며칠간 호텔에 머무르신 비용은 전액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사죄의 의미라고 생각해 주세요.”조민이 그를 바라보더니 마주 미소 지었다.“괜찮습니다. 호텔 영업도 쉽지 않죠. 데니스 씨가 이미 범인도 해고했으니 저도 더 이상 따지지 않겠습니다.”그녀가 차 트렁크를 닫으며 인사를 건넸다.“저 먼저 가볼게요. 점심에 회의가 있어서요.”데니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러세요.”조민이 탄 차가 멀어져 가
고개를 돌린 조민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휴게실에서 나오던 데니스가 조민을 발견하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조민 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요. 두 분은…”데니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아, 여긴 제 여자친구입니다. 방금 좀 싸웠거든요.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는데 그것 때문에 제가 화가 많이 나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조민이 당황하더니 잠시 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저 연인 사이의 일이니 제가 오해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그럼 저는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혹시 지낼 곳은 찾으셨나요?”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조민이 걸음을 멈추고는 그를 돌아보았다.“그걸 어떻게 아시죠?”“최근 계속 호텔에서 냈잖아요. 그래서 아직 마땅한 집을 못 찾았겠다 생각했죠.”데니스가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제가 안 쓰고 비워둔 아파트가 하나 있거든요. 거기서 지내는 건 어떤가요? 집세도 절반만 받을게요.”조민이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제가 머물 집은 스스로 찾을 수 있어요.”그녀가 다시 몸을 돌려 가던 길을 재촉했다.데니스가 볼에 바람을 넣으며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한편, 헬스장에 도착한 다민은 소찬이 온몸에 땀을 뒤집어쓴 채 턱걸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가 웃으며 생수병을 땄다.“웬일로 오늘은 이렇게 부지런해?”그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기분이 안 좋아서.”턱걸이를 백 개 가까이 한 그가 지쳐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땀에 젖은 민소매가 울룩불룩 튀어나온 그의 근육에 철썩 달라붙었다.다민이 그에게 수건을 건넸다.“듣기로 요즘 어떤 여자와 가깝게 지낸다고 하던데. 연애라도 하는 거야?”그러자 소찬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그 여자 말은 꺼내지도 마! 생각만 해도 짜증 나려 하니까 말이야. 그런 여자와 연애? 나 진짜 그
소찬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나 날 믿어요?”조민이 물건을 거실에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그를 돌아보았다.“어차피 당신도 내가 눈에 차지 않잖아요.”“…”보디워시를 꺼내들던 조민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이리스 향이라니. 이런 건 젊은 아가씨들이나 좋아하는 향이 아닌가?“왜 이 향을 고른 거예요?”그러자 그가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당신이 뭘 쓰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아무거나 산 것 뿐이예요.”그는 절대 사실대로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사 온 물건들은 전부 그가 직접 매장 직원한테 물어 일일이 소개받은 것들이라고.칫솔뿐만 아니라 양치컵 심지어 수건까지 전부 소녀스러운 디자인이었기에 조민은 갑자기 웃음이 새어 나왔다.‘됐어. 굳이 날 위해 수고스럽게 심부름까지 해준 건데.’“뭐 마실래요?”소찬이 곧은 자세로 소파에 앉아서는 대답했다.“아무거나요.”냉장고를 뒤적이던 조민은 다행히 미리 넣어두었던 커피 캔 두 개를 찾아낼 수 있었다.그녀가 캔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커피를 건네받은 소찬이 어쩐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나 정말 여기 들어와도 괜찮은 건가? 아무리 그래도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남자가 들어온다면!’그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알아차린 그녀가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왜 긴장하고 그래요?”그는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긴… 긴장은 무슨..! 내가 언제요.”당황한 모습에 조민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설마 내가 흑심이라도 품었을 까봐 겁먹었어요?”“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요. 겁먹기는 누가 겁먹었다고. 그리고 막상 일이 벌어지면 진짜 손해 볼 사람이 누군데요?”소찬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다 서둘러 시선을 옮겼다.‘이 여자 역시 너무 경계심이 없어!’그녀가 소파에 등을 기대더니 손에 들고 있던 캔 커피를 꽉 쥐었다.“어젯밤에 호텔 직원이 마스터키로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했었어요.”소찬이 곧바로 그녀를 돌아보았고 계속하여 말을 이어 나갔다.“다
명승희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 이 애들이 앞으로 네 막내 조카들이 될 거야.”그러자 여설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막내 조카가 뭐예요? 먹는 거예요?”멍승희가 소리 내어 웃었다.“하하. 얘는 어쩜 먹는 생각밖에 할 줄 몰라! 조카들은 당연히 먹으면 안 되지.”강유이는 천진난만한 꼬마 아가씨를 바라보며 부러운 듯이 말했다.“저한테도 딸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하지만 아들도 귀엽죠. 앞으로 이 애들이 공주님을 지켜줄 훌륭한 기사가 될 텐데요. 남편과 세 자식들의 보호를 받는 공주님이라. 정말 꿈에 그리는 모습이네요.”그때 여준우와 한테군도 정원 쪽으로 걸어왔다.아버지를 발견한 여설희가 활짝 웃음을 지었다.“아빠! 저 동생들이랑 놀고 있었어요!”여준우가 아이의 곁에 멈춰 서더니 커다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동생들 좋아?”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명승희가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그럼 앞으로 설희가 자주 와서 동생들이랑 놀면 되겠다.”여설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정말 그래도 돼요?”“물론이지. 네 사촌 언니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렇지?”강유이도 곧바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공감했다. 연회가 시작되자 한태군이 유모차를 끌고 연회장에 나타났다. 강유이는 그의 팔짱을 끼고 나란히 서 있었다.여설희도 자기 부모의 손을 꼭 붙잡고 입장했다.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정연과 한희운은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까지 모두 도착하자 서둘러 술잔을 내려놓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우리 아가들 왔구나.”아이들은 유모차 차 안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회장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첫째와 둘째는 낯가림이 없어 괜찮았지만 유독 작고 연약한 막내만이 안아든 순간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정연과 한희운은 아이의 세찬 울음소리에 결국 웃고 말았다. 셋째가 울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두 집중되었다.강유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울음이
”아버지가 원래 그런 걸 좋아하셔. 마음에 들어서 정말 다행이야.”…며칠 뒤 S 국.이날은 외교부 직원들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들은 조민도 회식에 초대했고, 조민은 원래 참석할 생각이 없었지만 동료들의 열정적인 초대에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퇴근 후 그녀는 직장 동료와 함께 회식 장소로 향했다.식당에 막 들어선 순간, 그녀의 눈에 데니스가 보였다. 데니스는 블루 계역의 캐주얼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확실히 눈에 띄는 외모였다.그녀는 두 여직원의 뒤를 따르며 테이블에 합석했다.옆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던 데니스가 술잔을 흔들며 조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조민 씨는 우리 회식에 처음 참석하시는 거죠?”곁에 있던 여자 통역사가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데니스 조민 씨한테만 너무 신경을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혹시 두 사람 뭔가 있는 거 아니에요?”데니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전 기쁠 것 같은데요?”그의 말은 충분히 노골적이였다.데니스는 자기 마음을 전혀 감출 생각이 없었다.조민이 미간을 찌푸리다가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미소 지었다.“데니스 씨는 참 말을 직설적으로 하시네요.”“제가 좀 원래 직설적이긴 합니다.”곁에 있던 여자 통역사가 조민의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어때요? 데니스와 잘 해볼 생각 있으신가요?”주변 사람들이 열렬하게 호응하며 그녀를 주시했다.조민은 그저 예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분간 업무 외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요.”“조민 씨는 일에는 엄청 진지한 타입이시네요.”“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사실 저는 자연스럽게 만나는 걸 더 추구하는 편이라서요. 저희 Z 국에서는 보통 자연스럽게 만나 점점 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만나는 걸 더 선호해서요.”데니스가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그는 더 이상 방금 전과 같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드디어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문뜩 조민은 맨 구석에 어떤 여자가 멍하니 홀로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시끌벅적한
조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데니스가 집요한 시선으로 쫓고 있었다.화장실 문을 연 조민은 아까 그 여자가 안에 있는 걸 발견했다. 깜짝 놀란 여자가 서둘러 세면대로 다가갔다.직장 동료로서 걱정되었던 조민이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술 많이 마셨어요?”여자가 고개를 저었다.“다행이네요. 아무래도 이런 장소에서는 적게 마시는 게 좋죠.”조민이 티슈 몇 장을 뽑아 립스틱을 지웠다. 잠시 후 문뜩 그녀의 눈에 여자의 옷소매가 살짝 올라간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손목에 울긋불긋한 흔적이 선명했다. 놀란 조민이 물었다.“손목은 왜 그래요?”당황한 여자가 서둘러 옷소매를 끌어내리며 대답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그녀가 서둘러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막 문을 나서려던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조민을 돌아보았다.“데니스를 믿지 마세요.”그녀는 그 말만 하고 곧바로 나가버렸다.조민이 미간을 찌푸렸다.데니스를 믿지 말아라…?혹시나 저 여자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녀의 손목에 남은 흔적은 분명히 뭔가에 묶였던 흔적처럼 보였다.볼일을 마친 조민이 화장실을 나서다가 데니스와 마주쳤다. 방금 전 여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조민은 갑자기 그와 마주치게 되자 무척 당황해했다.그녀의 이상을 알아차린 데니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혹시 애나가 뭐라고 했나요?”애나는 아까 그 여자의 이름인가?조민이 오히려 그를 돌아보며 되물었다.“그녀는 당신 여자친구 아니었나요? 왜 저한테 그런 걸 묻죠?”데니스가 잠시 멈칫거리더니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사실 이제는 전 여자친구거든요.”“헤어졌나요?”“네.”데니스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 기복이 느껴지지 않았다.“바람피우고 날 배신했는데 헤어지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조민은 그녀의 손목 상처에 대해 끝까지 묻지 않았다. 이번 일은 결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것 같았다.“그랬군요. 그래서 두 사람 관계가 그렇게
당황한 조민이 되물었다.“외교부 애나 씨는 여자친구 아니었나요?”그럼 데니스는 대체 왜 그런 말을!‘잠깐만, 부서 여직원은 데니스가 솔로에 여자친구가 없고 아직 결혼도 안 했다고 했었는데, 만약 데니스의 여자친구가 애나 씨라면 왜 공개하지 않았던 거지?’한 부서에서 일하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고?소찬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그 남자가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손가락으로 다 헤지 못할 정도인걸요. 당신이 말한 여자가 몇 번째인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그 남자는 지금 다음 상대로 당신을 노리고 있어요.”조민의 몸이 굳어졌다. 그녀가 굳은 표정의 소찬을 바라보았다.“그 사람에 대해 잘 아나 봐요?”“파라다이스가 움직이면 그 어떤 비밀도 캐낼 수 있죠. 이 세상에는 절대 비밀이란 게 없거든요.”차가 빠르게 움직이며 줄지어 선 가로등 불빛이 어두웠다 밝아졌다 하며 차 안으로 비춰들어왔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조민이 입을 열었다.“애나 씨의 손목에서 묶인 흔적을 발견했거든요. 그리고 애나 씨는 데니스를 엄청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저한테 데니스를 믿지 말라는 말까지 해줬고요!”물론 그 말을 듣지 않았어도 데니스를 믿을 생각은 없었다.데니스는 그녀에게 애나가 바람을 피워서 자신을 배신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애나가 조민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까 경계하고 있었다.그가 걱정하는 건 정말로 단순히 ‘전 여자친구’로서의 험담 뿐이였을까?만약 정말로 그녀가 바람을 피워 배신했다면 왜 그 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나쁜 말을 하고 다닐까 걱정하고 있을까?소찬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렇게 다른 사람 일에 신경 쓰기를 좋아하는 거예요?”“하지만 제 눈으로 직접 본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는걸요. 난 데니스가 애나 씨한테 무조건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해요.”소찬이 말했다.“아무 사람이나 쉽게 믿지 말아요.”조민이 멈칫거리더니 더 이상은 대답하지 않았다.아파트에 도착한 후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그녀
”그 사람이 보고 싶어.”소찬은 그녀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진짜 혼나고 싶어서 이래요? 그놈 말고 다른 사람 생각해요!”조민은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 당장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누구를요? 설마 당신을?”소찬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잠시 후 그녀를 마주 보며 자세를 바로 했다.“안 취한 거 정말 확실해요?”“제가 취한 것처럼 보여요?”“그렇게 보이긴 하네요.”조민이 시선을 내려뜨렸다. 사실 방금 그 말은 충동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보다 세 살이나 더 많았으니 가능할 리가 없었다. 십 년 동안의 긴 짝사랑으로 그녀는 민서율한테 모든 공력을 다 써버린 것만 같았다. 이제는 더 많은 걸 바랄 엄두마저 안 났다.잠시 후 그녀가 피식 웃었다.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속마음을 감췄다.“농담이었어요.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그녀는 자신이 벌여놓은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자 이제 됐어요. 배도 부르고 저 먼저 들어가 자야겠어요. 갈 때 잊지 말고 문 잘 닫아줘요.”소찬은 기가 막혔다. 그녀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가 그녀를 잡아당겼다.“아무리 취했어도 자기가 뱉은 말에 책임은 져야죠!”조민이 흠칫 놀랐다. 그녀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했다.잠시 후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무슨 책임을…?”소찬이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며 말했다.“내가 아무렇게나 건드려도 되는 사람인 줄 알아요? 한번 꼬셨으면 책임을 져야죠.”그녀가 눈을 깜빡거리더니 갑자기 그의 입에 쪽하고 입을 맞추었다.잠자리가 수면을 건드리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목적을 이룬 조민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이렇게요?”소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커다란 손을 뻗어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며 끌어당겼다. 그와 그녀의 입술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조민의 상반신이 이미 그의 품에 기대어진 상태였다.한참이 지나서야 소찬이 그녀의 입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