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 선생님!”김민재가 서둘러 뛰어와서 물었다.“괜찮아요?”맹승준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건방지게 날뛰던 모습은 이제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큰일 났어요. 이 자식이 무인으로서 기본 매너도 없이 보물의 도움으로 실력이 급상승한 것 같아요.”그는 체면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마지못해 말했다.“예상외의 상황이라 얼른 뜹시다. 당신 보트를 준비해서 유람선을 미행하라고 했잖아요. 속력을 내라고 해서 당장 철수해요.”김민재는 납득이 안 가는 듯 두 눈을 부라렸다.“이대로 저놈을 보내준다고? 영수 황금기도 포기할 거예요? 안 돼, 절대 불가능해요. 원래 내 보물인데 어떻게 순순히 줄 수 있겠어요?”맹승준이 눈을 부릅뜨더니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젠장! 당신 바보야?! 상대가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런데도 도망가지 않고 남아 있을 거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네?”김민재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오로지 도망칠 생각뿐인 맹승준은 구구절절 변명하는 대신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바닥에서 기어 일어나 제자인 여도혁의 곁으로 갔다.“사부님!”얼굴에 분노로 가득한 여도혁도 억울함 때문에 씩씩거렸다.그는 제자를 부축하고는 염무현을 향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자식, 오늘 운이 좋은 줄 알아. 이번 한 번만 봐준다. 하지만 까불지 마. 다음에 만날 때 반드시 네 목숨을 앗아갈 테니까.”말을 마치고 나서 여도혁을 데리고 떠나려고 했다.비록 김민재는 속으로 못마땅했지만, 맹승준마저 상대가 안 된다고 했으니 뾰족한 수가 없었다.오늘의 작전은 완전히 무산된 셈이다.본때를 보여주고 경종을 울리는 효과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계획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많은 심혈과 인력, 자원을 소비하기도 했다.그러나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기 직전 고작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때문에 물거품이 될 줄은 몰랐다.완벽한 작전을 망치게 된 이유는 전부 빌어먹을 염무현 탓이었다.‘딱 기다려,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내
쿵!주먹 대 주먹이 공중에서 부딪쳤다.우지끈!김민재의 오른손은 형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팔까지 쭉 이어졌고, 새하얀 뼈가 근육과 혈관 그리고 피부조직이 뒤섞여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결국 어깨뼈가 훤히 드러났다.거대한 반작용에 김민재는 뒤로 연신 밀려났고, 중심을 잃은 나머지 벌러덩 자빠지고 말았다.극심한 통증이 엄습하자 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맹승준과 여도혁 사제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염무현이 외부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도 실력이 이렇게 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제 당신들 차례야.”이내 싸늘한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둘은 몸서리를 치며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었다.“사부님?”여도혁은 목소리마저 떨렸다.맹승준은 이를 악물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한번 해보자고! 우리 둘이 힘을 합쳐 필살기를 사용한다면 이런 애송이 따위는 껌이야.”스승의 호언장담에 감명받은 제자는 순식간에 자신감을 되찾았다.“네! 해봅시다.”여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동시에 공격을 개시했다.“애송이야, 죽어!”상대의 공격이 얼마나 현란하든 염무현은 시종일관 가벼운 펀치만 날렸다.비록 겉보기에는 특별한 점이 없지만 진리는 항상 단순한 법이다.주먹의 파워는 곧이어 바람을 형성했다.“무력을 실체화하다니?!”목숨을 건 맹승준의 투혼은 이내 절망으로 변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제자를 밀었고, 나란히 뛰어가던 상황에서 여도혁이 한 발 앞에 나서 더 많은 데미지를 받는 꼴이 되었다.쿵!그런데도 맹승준은 10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가 세 개의 스크린에 연속 부딪치고 나서야 겨우 바닥에 떨어졌다.가슴과 복부 사이를 마구 헤집는 기운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걷잡을 수 없었다.“쿨럭!”맹승준은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은 채 입에서 피를 계속 토해냈다.여도혁의 상황은 더욱 처참했다. 그는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사부에게 인간 쿠션으로 쓰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주먹 바람에 강타한 순간 여도혁은
“뭐라고?”김민재의 눈빛이 싸늘해졌다.이런 굴욕을 당한 적 없는 맹승준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무술을 연마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자고. 굳이 궁지에 몰아넣을 필요가 있나? 젊은이, 아직 경험이 없어서 한 마디 조언하자면 모든 일을 다 끝장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염무현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방금도 여기는 공해니까 사람 몇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 있던데. 다른 사람의 존엄을 함부로 짓밟고 내쫓으려 할 때는 자기들이 너무하다는 생각은 안 했어? 그리고 이제 자기들이 당하니까 못 받아들이겠다는 거야? 이런 내로남불 어디 있어?”그와 김씨 가문의 원한은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염무현이 자비를 베풀어 김민재를 봐준다고 하더라도 김씨 가문은 감지덕지의 마음을 가지기는커녕, 오히려 염무현을 김씨 가문을 무서워하는 나약한 놈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염무현에 대해 더 큰 보복을 펼칠 수 있다.그러니 김민재는 반드시 죽어야 할 목숨이다.맹승준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제자도 염무현의 손에 죽었으니 그도 당연히 염무현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돈 때문에 양심도 팔 수 있는 걸 보니 맹승준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오늘 자비를 베풀어 맹승준을 봐준다면 그는 내일 사람 데리고 와서 보복할지도 모른다.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아예 싹을 잘라 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염무현이 생각했다.맹승준은 차가운 그의 표정을 보더니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다급하게 말했다.“염무현, 넌 날 죽이면 안 돼! 난 무림 연맹의 멤버야. 거기에 있는 타주와 대장로는 모두 내 벗이거든. 늘 같이 식사도 하고 음주를 즐겨 네가 날 죽인다면 무림 연맹에서 널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무림 연맹!염무현이 이 이름을 들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첫 번째는 옥의 신 사부님께서 남기신 쪽지에서 봤었다.[둘째 사모님, 무림 연맹의 허미영.]“무림 연맹이 그렇게 대단한가?”염무현은 이 조직과 접촉한 적이 없
“그것도 안 된다면 돈 드릴게요. 가격 마음대로 부르세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모두 드릴게요. 서예 작품이며 골동품이며, 주얼리며 모두 드릴 수 있다고요!”김씨 가문의 이인자인 그가 언제 이렇게 굽신거린 적이 있었겠는가?강한 적들이 둘러싸고 있는 외국에서도 김민재는 항상 정상에 서서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었다.아무리 강력한 상대라고 해도 하나둘씩 허리를 굽혀 그에게 복종했다.이게 바로 김씨 가문의 파워였다!외국에서도 .김씨 가문의 힘을 믿고 모든 게 순조로웠는데, 국내로 들어오게 되니 더 무서워할 것 없었다.김민재는 자신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줄 알았다.유씨 가문을 발밑에 꾹 짓눌러 밟았을 때 누가 감히 김씨 가문에 대항하려고 하겠는가?하지만 그의 예상 밖으로 염무현 한 사람 때문에 이 완벽한 계획이 모두 엉망이 되었다.생사가 달린 문제였으니 김민재는 더는 예전처럼 오만하거나 거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지금의 그는 오로지 목숨을 지킬 생각뿐이었다.체면이고 존엄이고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사람이 죽으면 이 모든 걸 누릴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때로는 융통성이 필요한 법이다. 끝까지 자존심만 세워서 좋을 것도 없었다.염무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말, 못 믿겠는데?”말을 마친 후 그는 손을 놓았다.“악!”김민재는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떨어졌다.“풍덩!”물에 빠지는 소리가 나자 구경꾼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김민재는 금원 그룹의 이인자였으니 말이다!그는 유셰인프의 많은 나라를 주름잡는 인물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결정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그런 김민재를 바다에 내던지다니, 염무현 이 자식, 너무 겁이 없는 거 아니야?“자기는 외국 사람이라고 하더니, 용국의 조직을 내세워 나를 협박해? 정말 어리석군.”김씨 가문은 일찍이 외국에서 발을 붙였다. 자리를 잡기 위해 한 첫 번째 일이 바로 모든 관계를 이용해 현지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었다.염
“풍덩!”“풍덩... 풍덩...”수십 명이 차례로 차가운 바다로 뛰어들었다.중형 요트 몇 대가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유람선을 뒤따르고 있었다.모두 김씨 가문의 요트였다. 김민재가 임무를 마친 후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용으로 유람선을 뒤따르고 있었다.김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단호하게 바다에 뛰어내린 것도 조금만 버티면 곧 구조될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염무현은 싸늘한 눈빛으로 구경꾼들을 훑어보더니 그의 시선은 누군가에게 고정되었다.홍태하였다!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난 맹승준과 달라! 난 그냥 보물을 감별하러 왔다고. 사람을 죽이겠다고 야단친 사람도, 정말 손을 쓴 사람은 저들이야.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유시인 씨, 뭐라도 좀 해봐요. 이 재수탱이 날 죽이지 않게 말려달라고요. 들었어요?”홍태하는 건방진 얼굴로 유시인을 명령했다.아직도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다.아직도 업계 거물이자 대선배로서 유람선 경매의 주최자인 유시인이 당연히 그의 편을 들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생각했다.염무현은 살짝 고개를 돌려 반듯하게 서 있던 유시인을 바라봤다.유시인의 의견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녀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홍태하 씨,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전혀 홍태하의 편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유시인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지금 이 배에서는 모두 염무현 씨의 말을 따르는 게 맞죠. 저에게 부탁하는 것부터 이미 틀렸어요. 게다가 왜 저한테 명령조로 말하죠? 참 우습네요. 늙은이가 염치도 없어.”홍태하의 얼굴색이 한껏 어두워졌다.염무현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그녀는 이미 김민재와 맹승준, 여도혁에게 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특히 김민재는 외국에 있는 요 몇 년 동안 악명이 높았다.주도권이 그에게 넘겨졌으면 유시인은 수모를 당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돈과 선물을 바치는 것은 물론, 그동안 지조를 지킨 몸까지 받쳐야 할지도 모른다.여색을 즐기는 건
“아닙니다.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염무현 씨의 은혜에 비하면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아닌데요.”유시인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염무현 씨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고 꼭 갚겠습니다.”유시인이 계속 고집하니 염무현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경매장에 돌아온 후 염무현은 연홍도를 위해 부상 상태를 검사했다.“사부님, 아버지 많이 다치셨나요?”연희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도 맺혀 있었다.염무현이 대답했다.“그렇게 엄중한 건 아니에요. 내상을 입은 것뿐인데, 다행히 오장육부는 다치지 않으셨어요.”이런 부상은 보통 일정 기간 안정을 취하면 기본적으로 완치될 수 있었다.하지만 염무현은 걱정하는 연희주가 안타까워 단약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이거 드시면 곧 나으실 거예요.”직경 2cm인 갈색 단약이었다.연홍도가 입을 벌려 단약을 씹으려고 하는데 단약은 저절로 액체로 녹아 위로 흘러 들어갔다.그 때문에 연홍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다년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이 단약은 분명 효과가 대단할 듯싶었다.아니면 저절로 액으로 녹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무림계와 수집계에서 나름 활동해 경험을 많이 쌓은 그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역시 염라대왕마저 손사래 치게 만드는 신의였다.따뜻해진 액체는 위에서 팔다리로 퍼져 나가면서 손상된 위치를 빠르게 복구했다.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연홍도는 그저 몸이 따스하고 더없이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새하얗게 질렸던 그의 얼굴도 빠르게 혈색을 되찾고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유시인이 그 모습을 보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경매장 책임자인 그녀는 신통한 묘약을 셀 수 없이 많이 봤다. 그녀의 손을 거쳐 팔린 묘약만 300개 넘었다.그중 대부분은 비싼 값에 팔렸는데 이렇게 빠른 효과를 나타내는 약은 유시인마저 처음이었다.나이도 젊은 염무현이 무슨 수로 이런 약을 구했지?막강한 고대 무술 능력자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보적인 안목으로 천성야명주의 비밀을 한눈에 알
요트 위에서.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김민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어르신, 좀 어떠세요?”“꼭 끝까지 버티셔야 해요. 지금 바로 돌아가서 최고의 의사 선생님을 찾을게요.”사람들이 걱정 어린 얼굴로 말했다.김민재의 한쪽 팔이 사라졌다. 어깨에는 그릇만 한 상처가 남았고, 차가운 바닷물에 30분 동안 담겨 있었으니 숨이 간들간들한 상태였다.사람들은 모두 그가 바다에서 상처를 입은 줄 알고 있지만 사실 이는 염무현의 수법이었다.염무현은 그를 바닥에 내던지기 전 암력을 김민재의 몸에 보냈다.맹승준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맹승준은 워낙 수영을 못했기에 바다에 빠지자마자 바로 죽게 되었다. 그래서 암력이 효력을 채 발휘하지도 못했다.염무현은 싹을 자른다고 했으니 당연히 김민재를 가만히 둘 리가 없다.“푸흡!”김민재는 피를 내뿜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몸을 휘청거렸다.숨이 점점 넘어가고 있으니 사람들은 모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복... 복수해 줘!”김민재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바로 숨져 버렸다.“어르신!”“망했어. 어르신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서 뭐라고 설명하지?”“방금도 멀쩡하셨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야?”유람선 위에서.“나... 다 나은 것 같은데요!”연홍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몇 번 움직였다. 전혀 다친 적 있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자신이 얼마나 많이 다쳤는지 연홍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이전의 경험에 따르면 적어도 열흘이나 보름 정도는 되어야 완쾌할 수 있을 텐데, 그것도 가장 고급 약재를 사용해야 말이다. 보통 약재를 사용하면 회복하는데 시간이 배로 늘어날 것이다.하지만 단약 한 알에 겨우 몇 분만에 완쾌할 수 있다니, 실로 말도 안 되는 경우였다!연홍도 본인마저 방금 자신이 정말 다친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옆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유시인은 무언가 결심했는지 눈을 반짝였다.“사부님, 약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벌써 나으셨다니!”연희주는 감격의 눈물을
이제 다시 그 경매품의 주인이 될 기회가 왔으니 그야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게다가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없어 가격도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구천명이 먼저 유시인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으니 다른 사람도 자연스럽게 따랐다.그제야 유시인은 마음이 놓였다.“시간도 늦었는데 다들 일찍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 아침 이곳에서 다시 경매가 열릴 테니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유시인은 염무현과 연홍도 부녀에게 안부 인사를 전한 후 부하더러 이곳을 다시 정리하라고 했다.방 안.흰 그림자가 창문으로 휙 들어왔다.염무현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상대가 누군지 알았다.흰둥이였다.“아이고 힘들어.”백희연은 기지개를 켜며 투덜거렸다.“그 여자보고 나 좀 그만 안으라고 하면 안 돼?”염무현이 눈살을 찌푸렸다.“안겨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애완동물들은 다 안기는 거 좋아하잖아.”‘지금 누구를 애완동물이라는 거야?’하지만 백희연은 그저 속으로 투덜댈 뿐, 겉으로는 불만을 털어낼 수 없었다.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억울한 눈빛으로 염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다 같은 여자끼리, 내가 안겨도 뭐가 좋겠어? 차라리 주인님 품에 안기면 몰라도.”“그만!”염무현이 바로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이 여자가 지금 자기가 얼마나 고혹적인지 몰라서 저러나? 누가 구미호 아니랄까 봐, 몸짓 하나하나가 나를 유혹하고 있네.’미인은 재앙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백희연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남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염무현은 아무리 다른 남자들보다 유혹에 강하다고 하지만 백희연이 계속 이렇게 매력 방출을 한다면 끝내 견딜 수 없을 것이다.그래서 그는 다급하게 백희연의 말을 잘랐다.자칫하면 눈앞의 고혹적인 여자에게 넘어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여우령 정기를 가지고 싶다면 다른 꿍꿍이는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염무현은 일부러 야속한 척 연기를 했다.백희연은 또 입술을 삐죽였다.“알겠어. 주인님 완전 나쁜 놈, 맨날 나 괴롭히기만 하고.”염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