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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유나은은 맞선을 볼 배짱은 있어도 이 사실을 이연준에게 들킬 배짱은 없는 듯했다.

지금 그녀가 얼마나 떨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연준 씨가 원래 오려고 했는데 급하게 중요한 회의가 잡히는 바람에 저 혼자 오게 된 거예요.”

양수경은 친절하게 유나은의 손을 잡아당겼고 그녀는 유나은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이연준이 안 온다는 양수경 말에 그녀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안 와서 정말 다행이다.

밖에서 맞선을 보는 걸 그한테 들켰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한편, 양수경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연준 씨가 내 능력을 믿는다고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삼촌이 이런 중요한 일을 양수경 씨한테 맡긴 걸 보면 양수경 씨의 능력을 인정한다는 뜻 아니겠어요?”

“글쎄요.”

양수경은 칭찬에 마음이 한껏 들떴다.

입술을 가리고 웃던 양수경은 그제야 옆에 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은 씨 친구분들이에요?”

유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수경 씨, 말씀 많이 들었어요.”

주승아가 거침없이 인사를 건넸다.

“절 알아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농담이 아니라 정말 양수경이라는 이 여자를 알고 있었다. 이연준 옆에 있는 그 여자를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꽤 유명한 사람인데 이곳에 와서 유나은과 친한 척할 줄은 몰랐다.

양수경은 옆에 있는 유나은을 쳐다보았다.

“나은 씨가 알려준 거예요?”

주승아는 유나은을 한번 쳐다보고는 양수경을 향해 웃었다.

이어 양수경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두 남자를 다시 쳐다보았다.

“친구 모임이에요? 아니면...”

주승아는 당당하게 사실대로 말했다.

“맞선 자리예요.”

양수경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유나은을 쳐다보았다.

“나은 씨도...”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저만 맞선을 보는 거고 나은이는 그저 저랑 같이 나온 것뿐이에요.”

그러나 양수경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럼 천천히 얘기해요. 난 이만 가볼게요.”

떠나기 전 양수경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나은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은 씨, 두 남자 모두 훌륭한 것 같아요. 잘해봐요.”

“아니. 저기...”

그녀는 뭐라 설명하고 싶었지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던 양수경은 바로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보고 유나은은 그냥 쿨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양수경이 오해하더라도 그녀에게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승아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언제 양수경 씨랑 친분이 생긴 거야?”

“말하자면 길어.”

생각해 보니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여자 얘기는 그만하자.”

“그래.”

한편, 유나은과 헤어지고 나서 양수경은 방금 예약한 룸으로 돌아갔다. 투자자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녀는 기다리는 것이 지루했다.

방금 마주친 장면이 떠오른 양수경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남자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연준 씨.”

애교 섞인 그녀의 이런 말투에 마음이 설레지 않을 남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화기 맞은 편의 남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만났어?”

“박 대표는 아직이야.”

그녀가 말길을 돌렸다.

“연준 씨, 나 방금 누구 만났는지 알아?”

남자는 인내심이 없는 듯했다.

“곧 회의 시작해.”

“알았어.”

그녀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회의 끝나고 나서 말해줄게. 박 대표와 얘기 잘 마무리하고 나가면 나은 씨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됐는지 꼭 물어봐야지.”

말을 마친 그녀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맞은편에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 끝까지 해.”

그의 말에 흠칫하던 양수경은 이내 말을 이어갔다.

“방금 레스토랑에서 나은 씨를 봤어. 맞선 보는 중인 것 같던데. 상대가 나쁘지 않더라. 나은 씨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었어.”

“연준 씨, 내 생각에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녀는 핸드폰을 확인했고 통화는 이미 끊긴 상태였다.

“유나은, 너 아직 말 안 했어. 우리 삼촌이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유나은은 아까 양수경을 만났던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컵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공교롭게도 손 교수님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어. 그날 입주민들 사이에 말다툼이 조금 있었는데 손 교수님이 나서서 그 사람들을 말렸어. 마침 나도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지.”

“그런 일이 있었어?”

주승아는 바로 손지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삼촌이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인 줄은 몰랐네.”

“뭔 소리야?”

“직설적으로 칭찬한 거야. 돌려서 말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손지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잠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주승아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조현태도 덩달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했는데 주승아는 그저 그게 궁금했던 것이다.

“삼촌은 언제 나은이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간 거야? 서화 아파트에 그렇게 여러 번 갔었어도 삼촌을 만난 적이 없는데.”

조현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하는 얘기가 아니었구나...

유나은도 손지태가 언제 서화 아파트로 들어왔는지 궁금했다. 고개를 드니 마침 손지태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없었지만 눈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반년 전에.”

“그럼 매일 그곳에서 지내?”

“아직은 아니야.”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계약기한이 반년 정도 남아서 친구한테 집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었어. 마침 서화 아파트에 매물이 있었고 층수도 괜찮고 구조도 괜찮은 것 같아서. 그리고 앞으로 몇 년 동안 직장을 옮길 생각이 없어서 그냥 그 집으로 계약한 거야.”

“그럼 앞으로 삼촌이랑 나은이가 이웃사촌이 되는 건가?”

주승아가 갑자기 유나은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그래. 근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계약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난 계약을 연장하고 싶은데 집주인한테 다른 생각이 있는지는 모르겠어.”

주승아가 손뼉을 탁 치자 모두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이렇게 해. 유나은, 너 그냥 우리 삼촌이랑 같이 사는 건 어때?”

깜짝 놀란 유나은은 헛기침을 했다.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유나은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얘기들 나눠.”

주승아가 급히 되물었다.

“같이 가줘?”

“아니. 넌 현태 씨랑 얘기 나누고 있어.”

그녀는 이내 자리를 떴다.

손지태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주승아를 쳐다보았다.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뭔 말이야?”

“미안해.”

주승아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한편, 유나은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손을 씻으며 어색한 마음을 달랬다.

한참 후, 손을 닦고 있던 그녀는 진명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명수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셋째 도련님 오셨습니다.”

“삼촌이 왔다고요?”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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