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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주승아는 이미 한참이나 오래전부터 거의 세뇌하듯 외삼촌 자랑을 했었다.

미남인 데다 키도 크고 집안도 좋으며 게다가 성격도 다정다감하다는 등 할 수 있는 칭찬은 전부 다 갖다 붙였다.

“나은아, 너 알지. 내가 네 앞에서 우리 삼촌 자랑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그런데 정말 그만큼 사람이 좋아. 게다가 계속 솔로였고.”

주승아는 전혀 동요가 없는 그녀를 보더니 다시 한번 어필했다.

“비록 나한테 삼촌뻘이기는 한데. 나이는 아직 30세도 안 됐어. 정말 연애하면 후회 없을 그럴 남자라니까.”

유나은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녀는 아직 선을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주승아는 그녀의 난감한 기색을 알아채고 말했다.

“나은아, 갑작스럽게 선을 보라고 해서 당황한 거 알아. 하지만 우리 삼촌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그리고 나도 평소에는 삼촌을 잘 못 봐. 그래서 이번이 어쩌면 기회라고 생각했어.”

유나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제 나한테 이 얘기를 했었어야 했어.”

그러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난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주승아는 그녀의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나은아, 이번 한 번만 봐주라, 응? 딱 한 번만 맞선 보러 가자.”

“이제 무를 수도 없는 거 아니야?”

“그럼 오케이 한 거야?”

주승아는 활짝 웃었다.

유나은은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친구 사귄다고 생각하지 뭐. 그러다 마음이 맞으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거고 안 되면 그냥 친구로 남는 거고. 친구와 인맥은 많은 게 좋다고 네가 항상 그랬지 아마?”

사실 그녀는 이연준의 태도에 마음이 계속 복잡한 상태였다.

그녀를 놓아준 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으니까.

3년간, 유나은은 그가 아닌 다른 남자는 만나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면 맞선 보는 것으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지도 몰랐다.

“역시 나은이 너밖에 없어!”

주승아는 잔뜩 신난 얼굴로 시동을 걸었다.

“자, 그럼 이제 출발.”

레스토랑은 상대방 쪽에서 예약을 해두었기에 장소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양쪽 모두 시간에 맞춰 오기로 했지만 주승아는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괜히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 같아 보이고는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에 도착하고 주승아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두었다. 그러고는 차에서 내려 유나은의 손을 잡았다.

“손이 왜 이렇게 차?”

주승아는 유나은의 손을 꼭 감싸 쥐며 열기를 나눠주었다.

“혹시 떨려서 그래? 너 온다는 거 아직 외삼촌한테는 얘기 아니했어. 너는 이따 하던 대로 하면 돼. 그리고 마음에 들면 나한테 꼭 사인을 줘. 그럼 내가 그 사인을 외삼촌한테 전달할게.”

유나은은 정작 본인의 맞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듯한 그녀를 보며 못 말린다는 듯 씩 웃었다.

두 사람이 테이블에 도착해보니 맞선남만 와 있었고 외삼촌이라는 사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혹시 주승아 씨?”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현태 씨예요?”

외할머니가 보내준 사진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없었다. 깔끔하고 훈훈한 것이 인상이 꽤 좋았다.

남자는 조금 쑥스럽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안녕하세요. 조현태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주승아는 그와 인사를 나눈 다음 바로 유나은의 팔짱을 꼈다.

“여기는 내 친구인 유나은이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유나은도 그와 인사를 나눴다.

“우리 외삼촌 아직 안 왔어요?”

주승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교수님은...”

조현태가 막 말을 꺼내려고 할 때 뒤편에서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내가 늦었지.”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유나은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눈가에 놀라움이 스쳤다.

‘이 사람이 승아 외삼촌이라고?’

“나은아, 정식으로 소개할게. 이쪽이 바로 내가 계속 얘기했던 손지태 삼촌이야. 현재 A 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고.”

주승아는 맞선남과 인사했을 때보다 더 열정적이었다. 게다가 얼굴에는 흥미로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승아 외삼촌이셨군요.”

유나은이 먼저 말을 걸었다.

주승아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나은아, 너 우리 삼촌 알아? 어떻게?”

“우연히 알게 됐어. 하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건 오늘이 처음이야.”

손지태가 입을 열었다.

“그럼 두 사람 다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거야? 대체 언제부터 알았는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주승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사실은 나도 지금 꽤 놀랐어. 이분이 네 삼촌이라는 것에.”

유나은은 손지태를 바라보았다.

큰 키에 적당한 몸매 그리고 단정하고 선한 얼굴이 전에 봤을 때와 다를 거 하나 없었다.

그녀는 그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손 교수님이 얘기하실래요, 아니면 제가 할까요?”

손지태는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은 씨가 얘기하시는 게 좋겠네요.”

두 사람의 대화에 어색함은 없었다.

주승아는 궁금해 죽을 것 같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답답한 마음에 먼저 물으려는데 손지태가 유나은에게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

“다들 서 있지만 말고 앉아서 얘기 나눌까요?”

유나은은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던 조현태가 서둘러 주승아 뒤로 다가와 의자를 빼주려고 했다.

“아니요. 나는 괜찮아요.”

단호한 거절에 손지태가 웃었다.

“승아야, 현태가 너한테 잘 보일 기회는 줘야지.”

그러자 주승아는 개의치 않고 가방을 옆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난 이런 거 안 받아도 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현태 씨.”

“성격이 엄청 좋으시네요.”

조현태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 볼 줄 아시네.”

조승아는 꽃받침을 하며 새침하게 웃었다.

이에 조현태는 조금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현태 씨, 우리 그냥 말 놓을까요?”

“너는 첫 만남인데 갑자기 대뜸 말을 놓자고 하면 어떡해.”

손지태가 그녀에게 눈치를 주었다.

“저는 좋을 것 같아요.”

조현태는 정말 괜찮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 놓는다, 현태야?”

“응, 승아야.”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을 보며 손지태는 피식 웃더니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유나은도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에 있던 물컵을 들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 선생님?”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양수경이 서 있었다.

그녀를 본 유나은은 손에 쥔 물컵을 더욱더 꽉 쥐었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손지태는 그 미세한 움직임을 전부 다 보고 있었다.

“혹시 나은 씨 환자분이에요?”

“아니에요.”

유나은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고개를 돌렸을 때 표정이 안 좋아 보이길래.”

그녀는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유 선생님 맞네요. 아니지, 지금은 병원이 아니니까 나은 씨라고 불러도 되죠?”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양수경은 유나은과는 달리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유나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양수경 씨도 식사하러 오셨어요?”

“네, 오늘 투자자와의 미팅이 있거든요.”

양수경은 그녀와 얘기할 때면 최대한 친절하고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유나은은 그녀의 말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양수경은 항상 이연준의 곁에 붙어 있기에 투자자를 만나는 자리라면 이연준과 함께 만날 가능성이 컸다.

유나은은 그녀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삼촌은 안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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