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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유나은의 동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넘어가야 하지?

“너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왜 그래?”

주승아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불어. 너랑 네 삼촌 사이에 뭔가 비밀이 있는 거지?”

유나은은 침을 꼴깍 삼켰다.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 사이이기에 주승아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평소에는 덤벙거리며 믿음직한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녀지만 중요한 일에서는 수사관보다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 원하는 것을 꼭 알아내고야 마는 그녀였다.

어쩌면 이연준과의 사이를 알아채는 것도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유나은은 아주 잠깐 차라리 이대로 다 털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연준에게 했던 약속했던 말이 떠올라 결국 거짓말을 택했다.

“비밀은 무슨.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하지만 주승아는 절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그럼 이연준이 왜 너를 보러 여기까지 왔는지 납득이 가게 설명해 봐. 나는 네가 그 집안에서 어떤 처지인지 다 알고 있는 거 알지? 잘 생각하고 대답해야 할 거야.”

“근처에 볼일 보러 왔다가 들렸대.”

유나은은 그새 핑계를 생각해두었다.

“그게 이씨 집안의 다른 사람이었다면 백 보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방금 여기로 온 건 이연준이야. 그 이연준이라고!”

그렇다.

그는 이연준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절로 뒷걸음질 치게 된다는 그 이연준이었다.

주승아는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유나은이 말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더 추궁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 비서 말이야. 나를 병실 쪽으로는 한 걸음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어.”

주승아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얘기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지. 그러다 문이 열리고 네 삼촌이 나오는데 내가 그 얼굴을 보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나는 너희 삼촌이 널 죽이기라도 한 줄 알았어.”

“...”

주승아는 말을 하다가 유나은의 턱에 남겨진 빨간색 자국을 발견하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정말 너한테 손댄 거야?”

유나은은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고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얼굴을 때렸어?”

주승아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어떻게 얼굴을...!”

“그런 거 아니야.”

유나은은 다급하게 외쳤다.

이대로 가만히 있었다가는 크나큰 오해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이건 내가 손으로 긁어서 생긴 거야.”

주승아는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믿어야 해. 사실이니까. 생각해봐, 삼촌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너도 알잖아. 그런데 독대까지 했는데 내가 태연할 수 있겠어? 너무 무섭고, 긴장돼서 손으로 턱을 긁었어. 아마 조금만 더 늦게 나가셨으면 피가 났을지도 몰라.”

그럴듯한 핑계에 주승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이연준이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고생했어...”

주승아는 안쓰러운 얼굴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 다시 품에서 그녀를 밀어냈다.

“이제 말해. 네가 임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쓰레기 자식이 누군지.”

“...”

“설마 아까 봤던 그 서민호 선생님은 아니겠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의 상상력에 유나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그 말, 병실 밖에서는 절대 하지 마. 우리 병원에는 서 선생 노리는 여자들이 줄을 섰으니까.”

“그 목각인형 같은 얼굴로? 야, 됐다 그래.”

주승아가 다시 한번 그 쓰레기에 대해 캐물으려는 그때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표정이 보기 좋게 찌그러졌다.

“외할머니야. 맞선 보는 것 때문에 나한테 전화한 게 분명해.”

“너 또 맞선 봐?”

지난번 유나은이 본가로 갔을 때 다른 날로 미뤄졌다고 했던 그 맞선은 그 뒤로 결국 무산이 되어 버렸다.

이에 당분간은 맞선은 없을 것 같다며 주승아는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새 또 새로운 약속이 잡힌듯하다.

“그게... 할머니가 놓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내일로 갑작스럽게 선 자리를 주선해주셨어. 그 남자랑 선보겠다고 하는 여자들이 줄을 섰대. 그래서 먼저 빨리 봐야 한다고 급하게 정해주셨어.”

주승아는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너는 맞선 보고 싶지 않은 거지?”

“응,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할머니 몸이...”

그녀는 차마 뒷말을 뱉어내지 못했지만 유나은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2개월 전 주승아의 외할머니인 김혜옥은 의사로부터 암 말기를 선고받았다. 그녀는 다른 소원은 없고 사랑하는 손녀가 하루빨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를 잘 따랐던 주승아는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그렇게 싫어하던 맞선도 보기 시작했다.

“일단 전화부터 받아봐.”

유나은은 그녀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응.”

주승아는 창문 가까이 다가가 전화를 받았다.

“응, 할머니.”

“내일 맞선 보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늦지 말... 잠깐만, 나 1고야.”

전화기 너머에는 김혜옥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패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할머니 있잖아요. 나 아무래도...”

“거기까지. 약속한 건 지켜야지 우리 손녀? 괜히 불쌍한 척 목소리 깔지 말고 내일 늦지 않게 가. 무슨 일이 있어도 가. 알았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꼭 갈게요. 그럼 고스톱 잘 치시고 이만 끊을게요.”

“잠깐.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네가 선보기로 한 조현태는 네 외삼촌의 제자야. 그래서 내가 특별히 지태한테 부탁해서 너 감시하라고 했으니까 네 외삼촌도 내일 동행할 거다. 그렇게 알아둬.”

주승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삼촌이요?”

“2고야, 다들 긴장해.”

“할머니? 할머니?!”

주승아가 외쳤다.

뚜뚜뚜.

“...”

그녀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다시 병상 옆으로 다가왔다.

유나은은 표정이 묘하게 바뀐 그녀에게 맞선은 갈 거냐고 물었다.

“내 맞선남이 외삼촌 제자래.”

주승아는 말을 하면서 그녀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힐끔힐끔 쳐다봐?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나은아, 내일 나랑 같이 가줘.”

주승아의 말에 유나은은 잠시 고민했다.

“오늘도 쉰 거나 다름없으니까 내일은 아마...”

“제발!”

두 손을 꼭 맞잡고 부탁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나은은 결국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그래. 건강도 챙길 겸 내일 하루도 휴가 쓰지 뭐.”

최근 그녀는 김준희와 이동건을 상대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였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마음 놓고 푹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주승아는 생각에 잠긴 그녀 몰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유나은이 한창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주승아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은아, 너 오늘 예쁘게 꾸며야 해, 알겠지?”

“...?”

유나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맞선은 네가 보는데 내가 왜 꾸며? 그러다 나한테 시선이 쏠리면 어쩌려고.”

“응, 괜찮으니까 예쁘게 꾸며, 알겠지?”

“?”

무슨 생각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녀의 부탁대로 예쁘게 꾸몄다.

지금이 한창 날씨가 풀리는 중이라고는 해도 어릴 때부터 추위를 잘 탔던 유나은은 얇은 옷을 입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 꾸미고 밖으로 나와보니 차에 기대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주승아가 보였다.

주승아는 그녀의 모습을 보더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은아,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너 지금이라도 배우 해 보지 않을래? 아무리 봐도 연예인을 해야 하는 얼굴이란 말이야.”

유나은은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네가 내 스폰서라도 돼줄 거야?”

“스폰서가 왜 필요해. 너는 미모로 충분히 먹고살 거야.”

주승아는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공주님, 안으로 드시지요.”

유나은은 그녀의 에스코트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오늘 왜 이렇게 아부하지?”

주승아는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배시시 웃었다.

“사실은 어제 미처 얘기 못한 게 하나 있는데...”

유나은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뭔데?”

“그게 사실... 오늘 우리 외삼촌도 와.”

“그래서?”

주승아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너 그 쓰레기 자식은 이제 그만 잊어. 내가 너한테 우리 외삼촌 소개해줄게.”

유나은은 바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네 맞선뿐만 아니라 내 맞선도 있다는 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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