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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승아는 바로 입을 닫았다.

아직 행사 참석 중이던 지유는 이현이 걸어온 전화가 퍽 의외였다. 승아와 로맨틱한 데이트라도 즐기느라 자기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지유는 기분을 잘 추스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아직 전시장에 있어요.”

“끝나면 나랑 회사로 돌아가자.”

이현이 이렇게 말했다.

지유는 이 말이 휴가는 더 이상 없고 일하러 가자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도 그녀는 이현의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현은 전화를 끊고 뒤를 돌아봤다. 승아가 아직 옆에 서 있자 이렇게 물었다.

“아까 뭐라고?”

이현가 단둘이 있고 싶었던 승아는 통화 내용을 듣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말을 바꿨다.

“난 그러면 들어가서 쉴게요. 내일 봐요.”

“응.”

이현이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승아는 내키지 않았다.

“내일 저녁에 시간 있어요?”

“상황 봐야 해.”

“내일 저녁에 시간 되면 밥 한번 사고 싶어서요.”

“내일 다시 보자.”

이현이 바로 이렇게 말했다.

이현이 수락했다고 생각한 승아는 기분이 좋아져 매니저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지유는 지희와 함께 있었다.

지희가 물었다.

“여이현이 걸어온 전화야?”

“응.”

“세컨드랑 같이 있을 텐데 너한테 왜 전화했대?”

“이따가 같이 회사로 들어가재.”

지희가 말했다.

“정말 숨을 쉴 틈을 주지 않네. 기회만 되면 너를 뼈까지 발라 먹으려고 난리다 아주. 너는 왜 된다고 했어?”

“오후에는 딱히 볼일이 없거든. 일하면 잡생각이 좀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지희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지유도 대단한 워커홀릭이었다. 있는 집 사모님 중에 일하러 나가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하지만 지유의 생각은 달랐다.

지희는 지유가 맨날 이현의 주위을 맴도는 게 싫어서 이렇게 말했다.

“빨리 결정해. 어차피 여이현과 이혼할 거라면 이혼 전에 잘 봐봐. 혹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아? 그럼 환승도 가능하잖아. 그래야 여이현도 깨닫지, 너를 잃은 게 얼마나 큰 손실인지.”

지유가 물었다.

“왜 꼭 남자를 만나야 하는데.”

지희가 대꾸했다.

“그래야 여이현이 화나지.”

지유가 말했다.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내가 아무리 남자를 많이 만난다 해서 눈 하나 깜짝할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지유도 이현을 화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결혼도 다들 서로의 목적을 가지고 한 것이니 이혼해도 원망할 건 없었다.

지희는 지유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나무 한 그루에 목매달아 죽을 수는 없잖아. 네가 아직 여이현 좋아하는 거 알지만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 옛사람을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대. 그럼 언젠간 여이현 씨 얘기가 나와도 더는 슬프지 않을걸?”

지유가 순간 깨달았다. 지희는 혹시나 그녀가 이현 때문에 너무 속상해할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승아와 이현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이혼하지 않아도 지유는 언젠간 버려질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현을 잊으려면 반드시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지유는 아직도 망설였다.

“다음 주자를 찾는다고 해도 내가 잊을 수 있을까?”

“당연하지.”

지희가 덧붙였다.

“내가 연애 경험이 너보다 풍부하잖아. 나를 믿어. 다음 주자는 무조건 지금보다 만족스러울 거야.:

지유는 지희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지유도 그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유는 아직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희는 전시를 보러온 사람들을 만나러 가며 지유에게 만남의 장을 만들어주었다. 어떤 사람이 잘생기고 어떤 사람의 집안이 깔끔하고 돈이 많은지까지 빠짐없이 알려줬다.

지희는 영향력이 꽤 있었고 인복도 괜찮은 편이었다.

지희가 말한 사람들은 확실히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유는 어떤 남자를 보던 그냥 배추들 같았다.

도망치고 싶었던 지유는 지희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틈을 타 그녀 옆에서 도망치다가 서빙하러 온 웨이터와 부딪치고 말았다.

“아이고.”

웨이터가 든 트레이 위에 올려져 있던 술이 전부 미끄러져 넘어졌다.

지유는 상대의 슈트가 흠뻑 젖자 직업병이 도져 상대의 얼굴을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얼른 이렇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옷을 버렸네요.”

이현의 옷을 자주 정리해 봐서 아는데 이런 옷감은 딱 봐도 가격대가 꽤 나가는 옷일 것이다.

지유는 순간 마음이 착잡했다.

하여 휴지를 꺼내 상대를 닦아줬다.

상대가 그녀의 손을 잡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손목에서 전해지는 따듯한 온도와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우호적인 말투에 지유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갈색 눈동자는 마치 별이라도 숨긴 것처럼 온화하고 매력적이었다.

책에서 말한 옥처럼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만 같았다.

남자가 별다른 원망이 없자 지유는 한시름 놓고 부드럽게 말했다.

“아니면 벗어서 줄래요? 제가 세탁 맡겨줄게요. 잘하는 세탁소를 알고 있는데 비싼 양복에 주름 안 가게 잘 세탁해 줄 수 있거든요.”

지유는 이현의 옷도 그렇게 챙겼기에 경험이 많았다.

남자가 웃었다.

이에 지유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지유 씨,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말투도 꽤 친근했다. 이에 지유가 살짝 놀라며 앞에 서 있는 이 남자를 자세히 스캔했다.

큰 키에 깡마른 체구를 가진 남자는 머리를 단정하게 빗었고 웃을 때 눈이 반달 모양이었다. 빼어난 아우라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와 친해지고 싶게 만들었고 사람들 속에서도 제일 먼저 그에게로 눈길이 갔다.

지유는 언제 이런 인물을 알게 되었는지 몰라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계세요?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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