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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지유는 바로 옆에 있는 민우가 들었다가 상황이 난처해질까 봐 지희에게 그만하라고 했다.

지희는 하는 수 없이 지유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민우는 다른 사람과 인사치레로 몇 마디 나누고는 다시 지유 곁으로 돌아왔다.

지희가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 귀한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우가 대답했다.

“지희 씨, 이번 전시가 아주 성공적으로 잘 된 것 같네요. 영향력이 날로 올라가는 거 같아요.”

“문인들의 일개 취미일 뿐 대표님과는 비길 수 없죠.”

지희가 지유를 밀며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이 옛 친구라고 들었는데 혹시 지희 좀 바래다주시면 안 될까요? 오후에 회사로 들어간대요.”

지희에게 밀쳐진 지유는 순간 당황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데 나민우가 이렇게 말했다.

“마침 저도 다른 일정이 없어서 데려다줄 수 있겠네요.”

지희가 지유를 향해 눈을 찡긋거리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대표님 부탁드릴게요.”

지희는 지유를 민우 곁으로 가까이 데려갔다

“옛 친구끼리 할 얘기도 많을 텐데 천천히 얘기 나누세요. 저는 멀리 안 나갑니다.”

지희는 두 사람에게 단둘이 있을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지유는 그런 지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민우가 있어 입 밖에 꺼내지는 못했다.

자신의 임무를 완성한 지희는 바로 자리를 떴다.

지유는 민우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동창이긴 했지만 너무 오랜만이었다.

“지희 말 들을 필요 없어. 바쁘면 가서 일 봐. 나 데려다줄 필요 없어.”

지유는 이현과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민우가 이렇게 말했다.

“데려다주는 게 뭐 어때서? 나도 너랑 수다 좀 떨고 싶어.”

지유가 넋을 잃었다.

“뭐?”

민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해는 하지 말고. 외국에 너무 오래 있어서 국내에서는 친구가 별로 없거든. 너를 만나니까 반가워서 그래.”

지유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그와 보폭을 맞췄다.

“아까 너를 쓴 기사를 봤는데 M국에서 완전 잘나가던데? 너 이렇게 출세했을 줄은 몰랐다.”

“운이 좋았을 뿐이지 나도 그냥 일반인일 뿐이야.”

민우가 대답했다.

“너무 겸손한 거 아니야?”

민우가 고개를 돌려 지유를 바라봤다.

“운이 좋았던 것도 있고 노력도 있고. 근데 지유야, 넌 정말 그대로다. 하나도 안 변했어.”

지유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 네가 한눈에 알아보지.”

지희는 그동안 자신에게 변화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내 있다고 생각했다.

키도 크고 사람도 성숙해졌다. 생김새도 예전처럼 그렇게 풋풋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유를 바라보는 민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억속의 지유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긴 생머리에 조용한 성격을 가진 그녀는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늘 성적이 좋았다. 손에 책을 안고 걸으면서 고개를 숙이기 좋아했다.

그러다 누군가와 부딪치면 매우 당황해하며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머리를 넘기기 좋아하는 지유는 이마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면 어김없이 하얀 목이 밖으로 드러났다.

그 옆모습이 참으로 예뻤다.

지유는 다가가기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늘 덤덤했지만 민우는 그녀가 착한 사람인 걸 알고 있었다. 지나가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먹을 것을 줬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끔 슬픈 일이 있을 때면 혼자 구석에 숨어 울기도 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그녀의 제일 좋은 보호색이었다.

그런 지유를 보고 있노라니 민우는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민우는 늘 맨 뒷자리에 앉아 자신과는 거리가 먼 지유를 바라봤었다.

민우는 혼자만의 사색에서 나와 이렇게 물었다.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

지유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민우가 출국한 걸 기억해 냈다.

그해 지유는 죽을 고비에 부딪쳤다.

다행히 그 고비를 넘기긴 했다.

원하던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도 가게 되었다.

뭐 크게 볼 건 없어도 안정적이었고 기복이 별로 없었다.

“잘 지낸 거 같아...”

지유는 자세히 돌이켜봤다. 자신의 인생에서 격정적인 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하 주차장.

차 한 대가 그들을 향해 질주해 왔다. 민우는 생각에 잠겨 이를 발견하지 못한 지유의 손목을 잡더니 부딪칠 뻔한 지유를 구해줬다.

“조심해. 지유야.”

그 힘에 지유는 민우의 품에 안겼고 코로 민우의 가슴을 박았다.

두 손으로 지유를 보호하는 민우는 퍽 젠틀했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곳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바깥에 선 채 그녀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고 있었다.

마침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온 이현은 ‘지유’라는 이름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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