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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 말에 고위층 인사들은 구아람을 볼 면목이 없었다.

“말도 안 돼요. 사장님은 구씨 가문의 유일한 딸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그게 무슨 소리죠?”

조수석에 앉은 비서 임수해는 화난 얼굴을 했다.

“괜찮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걸 신경 써. 난 전혀 개의치 않아.”

구아람은 말하면서 임수해의 볼을 어루만졌다. 임서해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아람아, 너는 미래의 KS 그룹 대표야. 그러면 권력자의 면모를 보여야 해. 사람들한테 너무 가볍게 보여선 안 돼.”

구윤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왜? 남자들은 여자 비서를 희롱해도 되고, 내가 내 비서 얼굴을 만져도 안 된다는 거야?”

구아람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구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고위층 간부들은 두 사람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 부사장은 그들을 VIP 엘리베이터 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때, 구아람이 입을 열었다.

“먼저 식당에 가보고 싶어요.”

“네.”

막 호텔에 들어서자, 인사치레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호텔을 둘러보았다.

부사장은 두 사람을 뷔페로 안내했다.

구윤은 구아람 뒤에 서서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투명 인간’이 되어 그녀를 조용히 수행했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 그런지 식당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미 차례차례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구아람은 요리를 스윽 훑어보더니 갑자기 해산물 코너에 멈춰 섰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손을 유리 상자 안에 넣고 수백 마리의 새우 중에서 죽은 새우 한 마리를 정확하게 집어 들었다.

“어떻게 된 거죠? 누가 설명 좀 해줄래요?”

“아, 이건 아직 죽지 않았어요.”

부사장은 말을 더듬었다.

“그럼, 제가 이 새우로 오늘 부사장님 점심 대접할까요?”

구아람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사장님, 보시다시피 새우가 아주 많잖아요. 하나 정도 죽어있는 건 정상적인 일입니다.”

“새우가 죽는 건 정상인데, 죽은 새우를 손님한테 줘서 손님이 식중독에 걸려도 그게 정상이라고 할 건가요?”

그 순간, 구아람은 얼굴에 미소를 거두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유리 상자에는 356마리의 새우가 있는데 제가 대충 살펴보니 죽은 새우가 5마리, 거의 죽을 듯한 새우는 30마리 정도예요. 6만 원의 돈으로 이런 음식을 사드신 손님들은 우리 호텔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저 같으면 한 번 오고 다신 오고 싶지 않을 것 같네요. 모든 생선 코너의 식재료를 즉시 전부 폐기하고 새로운 공급처로 교체하세요. 내일 점심에 죽은 새우가 한 마리라도 더 나오면, 그땐 저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말에 부사장은 깜짝 놀라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른 고위층 간부들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구윤과 임수해는 잘 알고 있다. 구아람의 기억력과 눈썰미가 얼마나 대단한지. 어렸을 때 이 혜안으로 경찰을 도와 중대 형사사건도 해결한 적이 있었다.

그녀에 고작 새우 몇 마리 정도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객실 층에 도착한 구아람은 직접 가져온 하얀 손수건으로 벽과 액자에 가볍게 닦았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군요. 먼지가 이렇게 많은데요?”

고위층 간부들은 안절부절못했다.

“당신들은 분명 저를 욕하고, 제가 쓸데없는 짓을 하고,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하겠죠?”

구아람은 여유로운 표정과 상반되는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100년 전통의 호텔도 작은 디테일 때문에 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은 문제가 하나씩 쌓여 우리 호텔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요.”

그녀가 임수해에게 눈짓하자, 임수해는 고개를 돌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객실 문 여세요.”

그러자 객실 담당자는 바들바들 떨면서 문을 열었다. 이전에는 상사가 오면, 모두 대충 정리하고 나와서 보여주는 척 식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구아람은 성격이 괴팍해서,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구아람은 객실로 들어가 먼저 욕실에 들어가 보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순간, 그녀의 얼굴엔 냉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답사를 마친 뒤, 오빠와 함께 사장실로 왔다.

“한 바퀴 둘러보니 소감이 어때?”

구윤이 웃으며 물었다.

“하하, 아주 엉망진창이야.”

구아람은 소파에 힘없이 주저앉아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건 나에게 시련을 주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나를 갖고 노는 걸까? 이 호텔은 정말 엉망진창이야. 이게 정말 우리 우리 호텔 맞아?”

“아람아, 이 호텔은 할아버지께서 창업하셨잖어. 호텔 덕분에 사업을 점차 확장해 나갈 수 있었고, 오늘날의 KS 그룹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거지. 이 호텔은 구씨 가문의 3대째 이어오는 정서가 깃든 곳이야. 그런데 지금 구씨 가문의 산업이 너무 많고…… 호텔업도 2년이나 불경기인 데다, 오빠들도 각자 자기 일하느라 관리가 좀 소홀했 했나 봐.”

그러더니 자책감에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아, 수고해…….”

구아람은 구석진 곳에 검은 피아노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이 피아노는 내가 여기에 둔거야. 예전에 네가 기분이 나쁠 때마다 피아노를 치거나 마당에 가서 신나게 몇 바퀴를 뛰었던 기억이 나서 말이야.”

구윤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두 달 동안은 아마 바쁠 거야. 두 달 동안 쉬지 않고 계속 달린다는 건 무리일 테니까. 피곤할 때면 연주해. 피아노 잘 치잖아.”

“오빠, 고마워. 하지만 피아노 안 친지 너무 오래됐어.”

구아람의 가슴 깊은 곳에서, 그녀의 아물었던 상처가 또다시 벌어지는 듯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의사로 자원봉사 나갔을 때,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구조하다가 새끼손가락 인대가 끊어졌었어.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그 후론 새끼손가락을 쓰지 못하게 되었어. 그래서 피아노를 안 쳐. 아니, 못 쳐…….”

구아람은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구윤은 가슴이 아려왔다.

“신경주 때문에 다친 거야?”

“맞아, 아니…… 아니야.”

구아람은 신경주라는 이름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지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우다가 다친거지. 영광의 상처지…….”

5년 전, 그렇게 짝사랑한 신경주와 만난 곳은 뜻밖에도 전쟁터였다.

그녀는 전쟁터의 의사였고, 그는 위해부대의 군인이었다.

그는 평화를 위해 싸웠고, 그녀는 중상을 입은 그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오기 위해 하마터면 한 손을 잃을 뻔했다.

그녀는 이를 영광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이제 이 무감각한 새끼손가락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하지만 괜찮다. 신경주를 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 임수해가 문을 두드리고 황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분부대로 조사 마쳤습니다. 저희 호텔의 침구와 일부 가구의 공급자는 모두 애리쓰 가구입니다. 고 부사장이 책임지고 연락한 것입니다.”

“하하, 애리쓰 가구였군.”

구아람은 늘씬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두 눈을 치켜떴다.

“재무부에 지난 2년 동안 호텔의 각종 장부를 정리하고, 즉시 새로운 침구 공급업체에 연락해서 애리쓰 가구에서 공급한 침구 및 가구를 전면 교체하라고 전해.”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구윤이 물었다.

“애리쓰 가구는 신경주의 애인인 김은주가 창업한 브랜드야.”

“설마 공적인 원한이야?”

“공적인 원한 때문이에요?”

구윤과 임수해가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말했다.

“아니.”

구아람이 반박했다.

“애리쓰 가구가 저희에게 불량품을 팔았기 때문에 처벌하는 거야.”

그녀는 딱딱하고 끝이 깨진 매트리스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객이 불편하게 묵는 것은 호텔 이미지에 매우 큰 악영향을 미친다. 어쩐지 우리 호텔에 대해 인터넷에 나쁜 평이 그렇게 많더라니…….

“참, 또 한 가지 일이 있어요.”

임수해가 말했다.

“사장님께서 신씨 가문 쪽에 신경 쓰라고 하셔서 조사해 봤는데, 조금 전 신씨 가문 어르신이 뇌졸중 발작을 일으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침 저희 구씨 가문 산하의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입원하셨다고?”

구아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바로 그때, 구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화면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입술을 만졌다.

“아람아, 네 전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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