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빚에 쫓겨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물건을 들고 다른 사람과 싸워야 했던 게 떠올라서 그랬어.”"…”그때 그녀는 나이가 어린 데다 신지연 모녀와 그렇게 여러 해 동안 싸우고 있었고 신진하가 자신의 명의로 수억의 돈을 빌린 것을 알고 나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생각으로 목숨을 걸고 그 무리와 싸웠다.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박태준은 마음이 아팠다."이제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자.”“충동적으로 행동한 것도 아니야.”강압적으로 버티려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녀는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 웅크리고 앉아 이성적으로 계산해 보았었다. 경인 시의 평균 수입을 보면 그녀는 몇 년 동안 먹지 않아도 그 돈을 벌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그때는 밤이었고 그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말이다.“널 찾으러 갔다가 마침 그 광경을 봤어. 원래는 도와주려고 했는데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네가 그 무리를 쫓아버렸지 뭐야.”"…”그녀는 당시 자신의 힘으로 사람을 쫓아냈지만 호되게 맞아 코와 얼굴이 돼지머리처럼 부은 데다가 일주일 동안 다리를 절었다.하지만 그녀의 머리에 떠오른 건 자신이 얼마나 비참했는지가 아니라 다음날 갑자기 집 앞에 나타난 약이었다.신은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누가 약을 사다 줬나 했었는데.”그녀는 당시 정말 박태준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었다.옆방.진유라는 들어오자마자 도마뱀처럼 벽에 붙어서 약간의 인기척이라도 들으려고 애썼다.곽동건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벽에 붙어 있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뭐 하는 거예요?”"박태준이 은지를 때리진 않겠지? 무서운 표정으로 은지를 끌고 들어갔는데.”“그렇게 빨리 데리고 들어갔는데 어떻게 봤어요?”"안색은 못 봤지만 문을 닫는 소리가 너무 커서 하마터면 제 얼굴을 칠 뻔했어요."진유라는 무서웠다는 듯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다행히 나는 그때 빨리 물러섰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예쁜 얼
공예지가 그를 구한 일이 사진에 찍혀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요 며칠 동안 엄청 떠들썩했다.현재 사회는 점점 온기가 사라지고 있었고 정부는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기사에 대한 보도를 많이 했다.공예지는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천사’라는 칭호를 얻었고,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병원을 방문했다."신은지 씨."기자는 감히 박태준을 건드릴 수 없어서 신은지만 골라서 물었다."공예지 씨가 박 대표님을 구한 일을 알고 계십니까? 박 대표님의 현재 행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은지 씨, 박 대표님에게 생명의 은인을 버리고 병원에 가라고 하셨나요?”"신은지 씨.”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무수한 각박한 질문들이 쏟아졌다.박태준은 신은지를 등 뒤에 숨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항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로비를 빠져나갔다.이럴 때는 침묵이 최선의 대응이었다. 질문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답을 다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한번 입을 열면 흥분이 더해져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마구 날조해서 올리기도 했기 때문이었다.“신은지 씨.”박태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끈질기게 따라오는 기자를 노려보았다.기자들은 순식간에 그 자리에 굳어버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차 안에서.박태준은 신은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은지야, 내가 먼저 신당동으로 데려다줄게.”"너는?”그녀는 이 한 달 동안 너무 많이 걸어 다녔다. 걸어온 길을 다 합치면 그 전 해에 걸었던 길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리가 시큰거리고 무거워서 방금 일이 아니었다면 지금 분명 먼저 집에 가서 누워있었을 것이었다.박태준은 불편한 듯 한쪽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병원 한번 들르려고.”"같이 가자.”그녀는 중간에 쇼핑몰에 들러 환자가 먹기에 적합한 영양제를 샀다. 막 공예지의 병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남자가 소리를 지르는 걸 들었다.“네가 그 사람의 생명을 구했는데 돈을 좀 요
대회에서 우승한 신은지는 귀국한 후 며칠간 임 관장과 함께 여러 전시관을 돌아다니느라 인터넷 여론을 살펴볼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났을 때는 ‘물건 투척 사건’이 다른 실시간 검색어에 묻혀버렸다.공예지는 병원에 10일 동안 누워있었는데, 간병인의 세심한 보살핌은 물론 하루 세 끼도 보양 위주의 산해진미였다.그녀는 밥상에 음식을 차리는 왕준서를 보며 말했다.“준서 씨, 박 대표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두 사람은 그동안 자주 만나면서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해졌다.“…”왕준서는 순간적으로 이 말뜻을 알아들었다.대부분 경우에 고마움이 남녀 간 사랑의 시작이다.“이건 작은 사모님이 보내신 거예요. 박 대표님은 마음이 온통 작은 사모님께 가 있어서 이런 걸 생각하지 못해요. 박 대표님의 눈에 다른 사람은 소나 말처럼 어떻게 부려먹을지 차이밖에 없어요.”“...”그녀는 확실히 며칠 전까지 병원 식당 밥을 먹었다.“박 대표님 같은 신분의 남자가 아내를 그렇게 아낄 줄은 몰랐네요.”“물론이죠. 얼마나 어렵게 잡으셨는데요. 제가 대표님의 그 피나는 노력을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드린 산증인이에요.”공예지는 밥을 먹으면서 왕준서와 잡담을 했고, 회사와 관련된 것도 몇 가지 물었다.“회사에 취직하고 싶어요?”“좀 생각이 있어요. 직장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볼 때마다 오피스룩에 하이힐을 신은 직장인이 무척 부러웠어요. 재경그룹에서는 직원을 모집 안 해요?”“하죠. 1년 내내 모집해요. 학력은 어떻게 돼요?”“석사요.”“그럼 안 돼요. 관련 전공이 아니면 박사 이상 학력이어야 해요.”왕준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근데 왜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해요? 의사가 얼마나 좋은 직업이에요? 기업계는 자본가가 판치는 세상이라 착취가 끝도 없어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자지 않을 수 있다면 기업들은 바로 24시간 근무제로 바꿀 거예요.”“저는 마사지 기술이 있었다면 회사 다니기 싫었을 것 같아요. 가게를 차려 출근하고 싶으면 하고 출근하기 싫으면 문 닫고 쉬
신은지의 반응을 보니 박태준이 아프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의 사랑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견고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공예지는 당황한 척하며 설명했다.“요 며칠 왕 비서님이 저의 식사를 챙겨주셨는데, 제가 퇴원했으니 헛걸음할까 봐 걱정돼서요.”이 어설픈 설명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신은지는 억지웃음을 지었다.“네, 그렇게 전할게요.”파티 장소는 청문동이었고, 강혜정이 직접 준비했다. 신은지는 원래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한 줄 알았는데, 파티가 시작되고 보니 지인 중 절반이 초대되어 왔다.규모가 너무 성대해서 약혼식이라고 해도 의심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신은지는 강혜정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어머니, 너무 성대하게 하는 거 아니에요?”“네가 세계적인 대회에서 1등을 했잖아. 대학입시 때 전국 수석을 한 거나 다름없지.”강혜정은 당사자인 그녀보다 더 흥분된 상태였다.“이 정도로 뭘 성대하다고 그러냐? 구닥다리 같은 네 아버님이 막지만 않았으면 나는 뷔폐식으로 하루 종일 손님을 맞았을 거야. 심지어 기자도 초대해 특별 인터뷰를 하고, 각 동영상 사이트에 올려 모든 사람에게 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리고 싶었어.”“오늘 파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늘은 그냥 예행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내일 규모를 몇 배 늘려서 다시 하자.”신은지는 급히 그녀를 말렸다. 흥분해서 정말 기자를 부를까 봐 걱정됐다.“어머니, 이것으로 충분하고 대만족입니다. 감사합니다.”귀국 후에 몇 차례 인터뷰를 받긴 했지만 그건 박물관에서 마련한 절차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강혜정의 말대로 기자를 불러 인터뷰한 후 각 동영상 앱에 올리는 것은 순전히 개인 행위이고, 일부러 생색을 내는 것이니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이다.그녀가 거절하자 강혜정도 강요하지 않았다. 이 계획을 듣고 박용선이 찬물을 대차게 끼얹는 바람에 열정이 많이 식은 뒤였기 때문이다.그녀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신은지의 손등을 토닥였다.“너
“공예지 씨가 도착했어.”신은지는 말하면서 입구에 서 있는 공예지를 향해 걸어갔다.흰색의 심플한 드레스를 입고 홀로 서 있는 그녀는 주변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박태준은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초대했어?”“응, 지난번 퇴원하는 공예지 씨를 데리러 가서 초대장을 줬어.”“...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신은지는 팔꿈치로 그를 툭 치며 경고했다.“어쨌든 널 구해준 사람인데, 그렇게 정색하지 마.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말을 마친 그녀는 더 이상 박태준을 상대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공예지한테 다가갔다.“공예지 씨.”공예지는 신은지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치맛자락을 움켜쥔 손을 놓고 직접 만든 과자를 건넸다.“뭘 선물할지 몰라서요. 제가 살 수 있는 물건은 다 있을 거라 생각해서 직접 과자를 만들어 봤어요. 포장은 예쁘지 않지만 맛은 괜찮아요. 꺼리지 말고 받아주시길 바랍니다.”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이렇게 직접 입에 넣는 물건은 선물하지 않는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여자만 아니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공예지는 도박꾼 아버지가 있는 데다 엔조이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으니 더 잘 알 것이다.그런 그녀가 과자를, 그것도 직접 구운 과자를 선물했다. 물론 예외는 있을 것이고, 그녀가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를 수도 있다.신은지는 미소를 지으며 상자를 받았다.“아니에요. 감사해요. 제가 오늘 저녁에 받은 가장 정성스런 선물이에요.”그녀는 과자를 왕씨 아주머니에게 건넸다.“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제 방에 가져다 주세요. 배고플 때 먹을 수 있게.”공예지는 왕씨 아주머니의 손에 들린 과자를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눈길을 돌렸다.“저기 가서 뭘 좀 먹어요.”한편, 나유성이 박태준에게 다가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은지가 너를 구해준 여자와 언제부터 저렇게 친했어?”박태준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준비됐어?”“꼭 이렇게 서둘러야 해? 그쪽에서 와신상담하며 오랫동안 계획했는데, 단시간 내에 뿌리
공예지가 떠나고 2분도 안 돼서 진유라가 왔다. 어깨를 반쯤 드러낸 흰색 스웨터와 땅에 끌리는 긴 바지를 입은 그녀는 산뜻한 분위기를 풍겼다.“은지야, 축하해.”그녀가 와락 끌어안자 신은지는 그녀의 등을 톡톡 치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축하한다는 말을 몇 번 하는 거야?”“자꾸 말하고 싶은 걸 어떡해? 내 절친이 이렇게 대단한데, 하루만 빼먹고 칭찬 안 해도 견딜 수 없어.”“유라야, 고맙다.”그녀는 졸업 전에 직업을 바꿨는데, 이 일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주요 원인은 진유라가 언제 어디서나 잘한다고 칭찬해줬기 때문이다. 취직할 때의 막막함은 한마디 한마디의 주접 멘트에 싹 녹아내려 사라졌다.진유라는 그녀를 놓은 후 곽동건과 이야기하고 있는 박태준을 힐끗 쳐다보더니 아주 과장된 표정으로 나지막이 물었다.“저 사람이 오늘 왜 저래?”“응?”신은지도 박태준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안색이 별로 안 좋은 것 외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안색이 안 좋은 것은 어젯밤 밤새도록 회의를 하고 아침이 돼서야 눈을 잠깐 붙였기 때문이다.“별일 없는데.”“내가 널 안았는데 왜 질투 안 하지? 잘생긴 재벌은 자기 아이까지 질투한다던데? 누가 너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자기 살점 찢기는 것처럼 아파하고.”신은지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건 잘생긴 재벌이 아니라 변태지.”“참, 방금 공예지를 봤는데, 그 여자는 왜 왔어? 박태준이 초대했어?”공예지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은 진유라는 그녀를 언급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절대 간단한 여자가 아니야. 내가 장담하는데, 그 여자가 박태준에게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우연이 그렇게 많겠는가? 내가 너를 구하고, 네가 날 구하고. 스토리가 좀 더 풍부하면 영락없는 소설 남녀 주인공이잖아.“아니, 내가 초대했어.”“네가?”진유라는 ‘너 제 정신이니’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엄마가 딸을 타이르는 표즈를 취했다.“말해봐. 무슨 생각이야? 사는 게 너무
휴대폰을 보느라 그 시각 두 사람의 어깨는 거의 붙어 있었다. 여인의 얼굴은 복숭아 같았고 노출된 피부는 뽀얀 핑크빛을 띠었는데, 미간에 보일 듯 말 듯한 웃음기를 담고 있어 누가 봐도 오해할 만했다.신은지는 그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박태준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돌아섰다.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급히 쫓아갔다.“은지야, 내 설명 들어 봐.”두 사람이 점차 멀어지자 공예지는 경직되어 있던 허리를 천천히 폈다. 핸드백을 얼마나 꽉 쥐었는지 모양이 변형됐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파티장의 어딘가를 향해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후에야 비로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박태준은 2층 방까지 올라가서야 신은지를 따라잡았다.“은지야...”그가 당기는 힘에 의해 몸을 돌린 신은지의 얼굴에는 화난 기색이 전혀 없었다.“그 여자가 뭐라 해?”공예지, 그리고 연출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의 은혜에 대해 박태준은 이탈리아로 간 그날 밤 그녀에게 전부 털어놓았다.그는 신은지를 끌어안은 후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얹고 방금 공예지와 나눈 대화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그녀는 들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특히 ‘그쪽에서 그녀와 박태준 사이를 이간질하려 한다’는 말은 헛소리 같았다. 목적이 뭔가?‘설마 그 사람이 나나 태준을 좋아해서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못 보는 건가?’신은지는 생각하다가 무심결에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내뱉었다. 박태준은 이유를 알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머리카락에서 나는 익숙한 향기를 맡으며 점차 정신이 다른 데로 갔다.그가 머리를 옆으로 돌리며 키스하려고 할 때 신은지가 사정없이 그를 밀쳐냈다.“진지한 얘기 하고 있는데 좀 점잖게 굴어. 걸핏하면...”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우아한 말로 바꾸었다.“걸핏하면 달라붙지 말고... 넌 그 여자 말을 믿어?”“믿을지 말지는 조사해봐야 알아.”이 얘기가 나오자 박태준의 표정이 엄숙해졌다.“이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마. 그 여자와 너무 가까이 지내
10초... 30초... 1분...방 안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했고, 그녀가 주시하고 있는 곳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공예지가 막 긴장을 풀려고 할 때 갑자기 ‘쾅쾅’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누구야?”그녀는 사진을 넣은 후 문 뒤의 호신용 쇠몽둥이를 집어들고 경계하는 표정으로 문을 노려보았다.“공예지 씨.”이웃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공예지는 급히 쇠몽둥이를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이웃 중년 여인은 짙은 시골 말투가 섞인 표준어를 썼다.“예지 씨, 우리 여기 도둑이 들었어요. 빨리 뭐 잃어버린 것이 없는지 봐요.”“네?”“몇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멍해 있지 말고 빨리 확인해 봐요. 이따 경찰한테 말해야 하니까.”공예지는 집에 귀중품이 없다. 그녀가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은 도둑이 아니라...잠시 후 도착한 경찰은 아무도 잃어버린 물건이 없어 진술만 받고 가버렸다....다음 날 신은지가 잠에서 깨니 방에는 또 그녀 혼자 있었다. 박태준은 얼마 전 출국하는 바람에 일이 잔뜩 쌓여 돌아온 후부터 줄곧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는 바쁜 일상을 보냈다.그녀는 이미 차가워진 침대 옆자리를 만지며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 한참 꾸물거리다가 결국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서 일어나 화장실에 세수하러 갔다.화장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쿵’하고 뭔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태준이니?”그녀는 초조한 나머지 프라이버시고 뭐고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욕실 안의 광경을 본 신은지는 잠시 멍해졌다가 급히 뛰어갔다.“어쩌다 넘어졌어?”그녀는 손을 뻗었지만 2차 피해가 발생할까 봐 감히 부축하지 못했다.박태준의 성격으로 볼 때, 일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면 그녀가 소리쳤을 때 이미 일어났을 것이다.하지만 신은지가 달려와 옆에 웅크리고 앉을 때까지도 그는 미간을 구긴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방금 진영웅에게 문자를 답장하면서 발밑을 보지 않아 부주의로 미끄러졌어.”신은지는 그의 팔을 잡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