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파닥거리는 힘은 점점 작아졌고 물보라너머로 공예지는 수영장 밖에 서 있는 신은지를 보았다. 신은지는 정교한 드레스를 입고 공예지가 평생 일해도 살 수 없는 값비싼 장신구를 착용하고 그녀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차갑게 바라보았다.처음 느끼는 수치였다.‘만약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무조건...'‘무조건?'그녀의 생각은 이미 혼돈에 빠지기 시작했고 정신이 혼미하고 손발이 허약해졌다.펑.공예지는 무언가에 맞았다. 아프지 않았고 약간 부드러웠다. 애써 눈을 떠보니 앞에 있는 건 분홍색 튜브였다. 누가 던진 건지 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는 필사적으로 튜브를 붙잡고 가라앉지 않으려고 했다.죽음의 위협이 사라진 후에야 공예지는 정신을 차리고 발로 땅을 밟았다. 고개를 돌려 신은지가 방금 서 있던 곳을 보았는데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홀에 있는 박태준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신은지가 나간 지 2분이 지났다.신은지가 떠났을 때, 박태준도 따라서 나가려고 했지만 발을 떼기도 전에 사람들이 술잔을 들고 와서 그와 친분을 쌓으려고 했다. 그들을 따돌렸을 때 그녀는 이미 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그녀가 떠난 방향을 보고 그는 그녀가 화장실에 간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홀을 둘러보니 공예지도 사라져 있었다.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신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 소리가 두 번 정도 울렸고 그는 사람들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진유라가 가방에서 익숙한 휴대전화를 꺼내는 걸 보았다.전화를 끊은 박태준이 성큼성큼 걸어갔다."은지가 화장실 간 지 2분이나 지났는데 아직 안 나왔어요. 한 번 확인해 주세요."그를 변태 보듯 쳐다보는 진유라가 입을 열었다."여자가 화장실에 가면 오래 걸리는 게 정상 아닌가요? 박태준 씨, 변태세요?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관리하세요?"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박태준도 너무 자세히 말하기는 어려웠다."사람을 데려왔으면 잘 돌봐야죠. 은지가 방금 술을 너무 많이 마
문을 닫은 그 사람이 더 힘을 주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자 끼인 곳에서 붉은 피가 새어 나와 점차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가 1대10으로 싸운다고 한들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니 유인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신은지는 차 문을 쳐다보았다. 조금만 빨랐으면 그녀는 문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다."태준아, 빨리 손 놔."피가 문을 타고 뚝뚝 떨어졌고 이대로 가다가는 그의 손이 정말 부러질 것 같았다.그녀는 박태준이 그녀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말을 마친 신은지는 완전히 기절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차를 몰던 그 사람은 틈틈이 뒤를 돌아보면서 악을 쓰며 말했다."그냥 얘도 기절시켜서 차에 올려."그들은 박태준의 이름을 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 임무를 받았을 때 인터넷에 찾아보았었다. 만약 정말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면, 누가 감히 그를 건드렸겠는가. 원래는 이 여자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데려 가려고 했는데 재수 없게 박태준에게 걸릴 줄은 몰랐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어쨌든 그들의 임무는 단지 사람을 납치하는 것이니 뒷일은 상관할 필요가 없었다. 박태준을 함께 묶었으니 도망갈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감히 박태준을 죽일 수 없었다. 많은 돈을 가지고도 안절부절못하면서 쓰고 싶지 않았다."기절시킨다고?"팔도 내밀지 못하는 문틈을 보고 뒷줄 사람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보스, 이거 어떻게 해요? 아니면 제가 문을 좀 열고 칼로 찔러버릴까요? 고통을 계속 참을 리 없어요."그는 감히 직접 문을 열지 못했다.박태준은 차에 탄 사람들의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 보스라는 사람이 대꾸하기도 전에 그가 입을 열었다."약 같은 거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차 안이 조용해지자 모두가 의아해하며 그를 쳐다보다가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쯧쯧, 소문으로는 살아있는 염라대왕처럼 무섭다던 박태준이 여친 바보라니."
신은지는 드레스가 불편하고 핸드백을 들기 귀찮아서 오기 전에 휴대전화를 진유라의 가방에 넣어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들고올 걸이라고 후회했다.하지만 납치를 한 이상 휴대전화를 그들에게 남겨주지 않을 것이 뻔했지만 말이다. 그녀도 희망을 가지진 않았다. 그저 물어봤을 뿐이었다."없어."박태준이 입은 양복은 몸에 살짝 달라붙어서 휴대전화가 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주변이 조용해졌다. 신은지는 폐소공포증도 없었고 어두운 것도 두렵지 않지만 귀신을 무서워했다. TV에서는 이런 어둡고 음침하며 습하고 낡은 곳이 가장 음흉하다고 했다.그녀는 의자를 힘들게 옮겨 박태준 옆으로 기대어 그와 붙어 있었다. 그랬더니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윽."박태준이 끙끙거렸다.신은지가 뒤늦게 자신이 그가 다친 팔을 건드렸다는 걸 알아채고 자리를 조금 옮겼다."미안해. 손에 상처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어."잠시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헷갈렸을 뿐 그녀는 그가 다쳤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박태준은 신은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녀가 당황해서 자책하는 소리만 들렸다."팔이 아픈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묶여 있은 탓에 다리가 저려서 그래."신은지는 걸상을 그의 등 뒤로 옮기고 손목의 매듭을 풀기 위해 애썼다."내가 먼저 매듭을 풀어줄 수 있는지 없는지 해 볼게.”그는 이미 시도해 보았는데 매듭 묶는 방법이 매우 전문적인 데다가 의자 등받이가 구부러져서 더더욱 풀기 어려웠다. 적어도 이런 어두운 상황에서는 풀 수 없었다.그러나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신은지가 좀 바빠져야 쓸모없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왜 약혼식에 간다고 말하지 않았어?"그는 그날 차 안에서 그녀가 특별히 자신에게 수요일에 시간이 있냐고 물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때 아마 공예지로부터 문자를 받았을 것이었다. 오늘 밤 성씨 가문에 가기 전에 박태준은 이미 준비를 해두었다. 하지만 저녁 파티에 신은지가 갑자기 나타날 줄은 몰랐고 그 사람이 목표를 그에서 신은지로 바꿀 줄은 더더욱 생
이곳은 황폐해진 지 얼마나 되었는지 먼지가 가득했다.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일렁이는 먼지가 그녀의 얼굴을 덮쳤다. 넘어질 때 그녀의 팔꿈치가 바닥에 세게 부딪혔고 지독한 통증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갔다.넘어지는 신은지를 본 박태준은 순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하고 화가 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이 누굴 건드려."그의 목에 핏줄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묶여서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신은지는 그의 계획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파티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납치까지 당했다.게다가 이 무리의 상대는 뜻밖에도 외부인인 신은지였다.박태준은 손으로 손목 위쪽을 애써 만졌다. 딱지가 앉은 지 얼마 안 된 흉터 한 군데를 말이다.분노에 휩싸인 남자의 가슴 아픈 외침에 신은지는 마음이 아려오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가렸고 머리카락 사이로 가려진 시선이 그 둘 중 한 사람을 향했다.그는 휴대전화를 들고 그녀를 마주 보고 있는데 보아하니 동영상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뒤어금니를 꽉 물고 있는 박태준의 입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했다."아저씨를 만나야겠어."들어온 두 사람 중 한 명은 영상을 찍었고 다른 한 명은 말을 걸었다. 그중 한 명은 박태준의 말을 듣고 돌아섰다."박 대표님의 뼈가 얼마나 굵은지 다 알죠.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쓸 생각입니다.""신은지 씨 양손은 문화재 복원을 하는 데 쓰이고 상도 받았다죠? 소중히 다뤄야겠네요."신은지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손이 무슨 대수라고. 손이 망가지면 사업 하지 뭐.'펑.박태준이 혼신의 힘을 다해 걸상까지 든 채로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관심은 온통 신은지의 손에 쏠려 있었고 박태준이라는 사람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는 밧줄을 매우 단단하게 묶었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었다. 사람은 고사하고 소 한 마리라도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국 방심하다가 달려드는 박태준에게 그대로 깔렸다
영상에서 박태준은 침대에 엎드려 있었고 벌거벗은 등이 카메라에 완전히 비쳤다. 등부터 허리까지 온전한 피부 하나 없이 붉은 색을 띠었고 부어오른 채 피를 뿜고 있었다. 흰색이었던 침대 시트 위에 핏자국이 튀어 있었다.신은지는 그의 온몸에 있는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마침내 알게 되었다.침대 위의 박태준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런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지금 여기에 있지 않았다면 신은지는 그가 죽은 줄 알았을 것이다.그 사람은 피 묻은 등나무 가지를 땅바닥에 내던지고 팔을 휘저으며 나갔고 신은지는 줄곧 참아왔던 숨을 천천히 토해냈다. 비록 가슴은 아팠지만 그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장면이 사라지자 그녀는 그래도 정상적으로 숨을 쉴 수 있었다.그녀가 숨을 거두기도 전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침대 위의 박태준은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기절했는지도 모른다.이번에 들어간 사람은 중년 남자였는데 보기만 해도 흉악한 전 사람과 비교하면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온화한 분위기를 풍겼다.그는 약을 꺼내 박태준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알코올을 사용했는데 액체가 몸에 뿌려지자 박태준의 온몸의 근육이 통제하지 못하고 경련을 일으켰고 온몸의 힘줄이 팽팽해졌다.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박태준의 등 전체에 알코올을 바른 후에야 비로소 손을 멈추고 거즈를 집어 들었다."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여자일 뿐이야, 잊으면 그만이지. 만약 정말 인연이 있다면 나중에 신분이 바뀌어도 다시 만나게 될 거야."지금 박태준은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물에서 건져낸 것처럼 말이다. 얼굴은 창백해서 침대 시트와 같은 색깔이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 않은지, 말할 힘이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은지는 아마 두 번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평소에 피부가 조금 찢어져도 알코올에 맞닿으면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픈데 그의 큰 상처는 말할 것도 없었다.그 남자는 약상자에서 메트로놈을
강혜정은 악몽을 꿨다. 지난번에 병원에서 겪었던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그 일 때문에 놀란 이후로 그녀는 정신 상태가 매우 나빠졌다. 불면증, 다몽증, 짜증... 몸 상태도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그녀는 사사건건 조심했다. 박용선은 그녀에게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간호했고 정신과 의사까지 찾아갔지만 악몽에 자극을 받아 심장이 아픈 병은 고쳐지지 않았고 결국 그녀를 개인 병원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의사를 집으로 부르지 않은 건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지극히 정밀한 의료기기를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꿈에서 깬 강혜정은 침대 옆에 마스크와 모자를 쓴 간병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생각이 좀 흐리멍덩했다.간병인은 일어나서 침대 머리맡의 텀블러로 물을 따랐다.강혜정이 팔꿈치를 괴고 막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덩치로 판단하면 이 간병인은 남자였다. 하지만 박용선이 고용한 간병인은 여자였다. 그녀는 대충 훑어보았을 뿐인 데다 그가 또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잠시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일어서자 키가 그의 성별을 단번에 드러냈다.그리고 옷차림도 이상했다. 마스크를 쓰면 됐지, 수술하는 의사도 아닌데 간병인이 모자를 쓸 리 없었다.강혜정은 물컵을 느릿느릿하게 자신에게 건네는 모습을 지켜보며 손가락으로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기도윤."얼마 전에 그녀가 그의 이름을 말한 적이 있었는데 앞에서 부르는 것과 뒤에서 말하는 건 느낌이 달랐다.그의 눈이 약간 휘어졌고 눈가에는 주름이 선명했다."내가 좋아하는 소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기쁘네."그는 강혜정의 앞에서 마스크를 벗었다. 그는 여전히 기억 속의 얼굴이었고 단지 조금 늙었을 뿐이었다."..."그녀는 토하고 싶었다.50 살이나 먹은 사람이 입만 열면 이런 촌스러운 말이라니, 너무 징그러웠다."꺼져."강혜정은 베개를 들고 그에게로 내리
고연우는 차에서 내려 제자리에 서서 말했다."아저씨."기도윤은 예전에 재경 그룹의 부회장이었고 박용선과 친분이 두터웠다. 어렸을 때 그가 놀러 가면 자주 마주쳤으니 거의 큰아버지라고 할 수 있었다.고연우는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차 안의 사람이 계속 내리지 않아서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위험했기 때문이었다.창문이 내린 채 고개를 내민 기도윤은 뒤에 있던 경찰차 몇 대를 훑어보았다. 궁지에 몰렸음에도 그는 당황하거나 분노하는 기색도 없이 고연우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눴다."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돌아가겠습니다.""혜정이는 나와 함께 출국하기로 했다. 마침 여기서 너를 만났으니 네가 나 대신 용선이에게 전해줘. 오랫동안 혜정이를 돌봐줘서 고맙다고 말이야. 정말 고맙다고."고연우는 시계를 보고 귀찮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쓸데없는 말이 왜 이렇게 많아. 빨리 돌아가서 민아에게 아침 차려줘야 되는데.'그는 손을 흔들며 부하들에게 말했다."어머님을 차에서 데리고 나와."그의 분부를 받은 부하들이 다가가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의자에 엎드려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강혜정을 보았다."대표님, 여사님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심장병이 발작한 것 같습니다."고연우는 안색이 늠름해졌고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빨리 사람을 데리고 내려와.""혜정이는 너희들과 함께 가지 않을 거야."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맞지? 혜정아.""..."그녀는 이미 괴로워서 말할 수 없는 상태였고 입술 색깔마저 옅은 보라색으로 변했다."왜 말이 없어! 태준이 안 만나고 싶어? 신은지라는 며느리를 되게 좋아한다던데.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내가 몇 달 동안 정성껏 골라서 정한 곳이야. 아무도 찾지 못할 거라고."고연우는 휴대전화를 내밀며 말했다."실례합니다."휴대전화를 받은 기도윤은 화면을 훑어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영상통화를 켜고 있었고 화면에 있는 사람은 바로
잠시 후 진선호는 여름 바람막이 재킷을 들고 오더니 신은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의 옷이라 넓고 커서 옷자락이 직접 그녀의 엉덩이까지 덮었다.신은지는 옷깃을 여미었다.“유성이와 둘이 우리가 거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창고 안에 있을 때는 그곳이 낡고 오래전에 버려진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밖에 나와 보니 정말 외진 곳이었다. 인적이 없이 황량한 곳이라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도 절대 들여다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진선호는 턱으로 응급실에 누워 있는 박태준을 가리켰다.“깨어나면 직접 물어봐요. 며칠 입원해야 할 것 같은데 이따 의사한테 1인실이 있는지 물어볼게요.”“...”신은지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둘이 언제 이렇게 친해졌지? 어떤 병실을 쓸지, 이런 것까지 신경을 쓰다니.그러나 그녀는 지금 자세히 물을 정신이 없다. 박태준이 들어간 지 한참 됐는데, 상황이 어떤지, 머리는 계속 아픈지 모르겠다.문이 열리고 의사가 안에서 나왔다.“환자분은 경미한 내출혈에 외상도 좀 있어 며칠 입원해 관찰해야 합니다. 말씀하신 두통은 환자분이 도착했을 때 이미 혼수상태였기 때문에 깨어나신 후에 다시 검사해 봐야겠지만 현재의 검사 결과로는 큰 문제 없어 보입니다. 입원 수속을 하십시오.”진선호가 말했다.“제가 갈게요. 여기서 지키고 있어요.”입원 절차를 밟은 후 박태준은 병실로 옮겨졌다. 진선호는 정말 1인실로 잡았다.박태준이 별문제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신은지는 담소를 나눌 기분이 생겼다.“언제부터 태준과 이렇게 사이가 좋아졌어요?”어느새 아침이 되어 진선호는 다리를 벌린 자세로 걸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신은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들고 병상에 누워 있는 박태준을 힐끗 보았는데, 눈빛에 고소해하는 기색이 가득했다.“다른 사람이 없을 때 은지 씨 마음대로 해요. 두리안을 사다 드릴까요? 과육은 은지씨가 드시고 껍질은 태준이 무릎 꿇게 하면 낭비 없이 딱이겠네.”“...”이 말을 들은 신은지는 어처구니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