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돌린 설우현은 마침 넋을 잃은 성혜인과 눈이 마주쳤다.성혜인은 이제 방금 자신의 신분을 알았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반승제를 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비록 손이 꽉 조여 아픈 느낌이 들었지만 반승제는 시종일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에 안고선 가볍게 등을 토닥여주었다.성혜인의 머릿속은 마치 온 세상이 뒤집어진 듯 뒤죽박죽이 되었다.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설우현은 잔뜩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혜인아, 이제야 말해줘서 미안해.”성혜인은 사실을 부정하며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섰고 그 모습을 본 설우현은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아버지랑 몇 마디 얘기해. 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하룻밤 새에 백발이 되셨거든. 그리고 인아 일로 충격을 받아서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성혜인의 발은 마치 무언가에 의해 바닥에 못 박힌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동안 설의종의 얼굴도 본 적이 없었기에 더군다나 ‘아버지’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백발이 가득한 설의종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혈연관계는 참 묘한 것이다. 순간 가슴에 불을 지른 듯 뜨거워진 성혜인은 다른 걸 고민할 겨를도 없이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설의종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놀랍게도 설의종은 이때 다시 눈을 떴다.설우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랴부랴 눈물을 닦고선 입을 열었다.“아버지, 임수아는 가짜였어요. 혜인이가 진짜 딸이에요. 진실을 밝혀냈고 드디어 여동생을 찾았어요.”설의종은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성혜인의 얼굴을 보려고 있는 힘껏 눈동자를 움직였다.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의 의식이 남아있어 설우현이 하는 말을 똑똑히 듣기에 충분했다.딸, 그의 딸이 돌아왔다.설의종은 감격에 겨운지 안면근육이 덜덜 떨렸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한마디를 할 수 없었다.한때 수백 명을 휘두르던 사람이 오랫동안 찾고 있던 딸아이 앞에서 이렇게 무력하다니.설우현은 그
성혜인은 두 장의 서류를 보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심지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고 무의식적으로 반승제에게 고개를 돌렸다.그러나 설우현의 말을 듣는 순간 또다시 온몸이 얼어붙었다.“아버지가 곧 할아버지가 된다는 걸 알면 얼마나 기쁘실까? 손자를 위해 준비한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줘. 그래도 싫다면 우리도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네.”혼란스러워하며 말하는 설우현의 모습을 보고 성혜인이 따라서 입을 열었다.“죄송해요. 너무 부담스럽네요.”설우현은 입술을 깨문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끝내 서류 두 장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지금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 갖고 있어. 이제부터 넌 설씨 가문의 가장이야. 형을 어떻게 처벌하든 가족들이 다 적극적으로 도와줄 거야.”불과 어젯밤에도 다시는 설기웅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며 반승제한테 얘기했는데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설기웅은 목소리를 잃게 만들었고 뺨을 때린 것도 모자라 목까지 졸랐다. 성혜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다.그녀는 서류를 한쪽에 놓고선 차분하게 말했다.“승제 씨, 우리 이만 가요.”보아하니 성혜인은 돈과 권력에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반승제는 급히 그녀를 안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감정 기복이 심하면 안 돼. 너 임신했잖아.”그는 마치 일부러 설기웅에게 들려주는 것처럼 말했다.“혜인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거 알지? 어젯밤처럼 잔인한 상황은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하게 내가 지켜줄게.”설기웅은 넋을 잃었다. 입안은 피비린내로 가득했고 마치 누군가 칼로 살을 베는듯한 고통이 밀려와 두 눈마저 빨갛게 충혈되었다.그는 차마 시선을 들어 성혜인을 바라볼 수 없었다. 혐오의 눈빛과 마주치는 게 겁나는지 비겁하게 고개를 숙인 채 사인을 하고선 병풍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성혜인과 반승제가 마침 곁을 지났고 설기웅은 쳐다보기는커녕 되레 뒷걸음질 치며 물러섰다.성혜인은 반승제의 품
설우현은 성혜인을 바라봤다.“이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설씨 가문의 권력으로 플로리아에서 내쫓아도 돼. 다른 나라로 보내서 몇 년간 고생하게 만들어도 상관없어.”성혜인은 자리에 서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설우현이 설기웅에게 이렇게 잔인할 줄 몰랐다.설씨 가문에서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모든 일자리를 막아버리다니. 그 말인즉 설기웅은 앞으로 일자리를 찾고 싶어도 남들 보기 떳떳한 그런 직업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설우현은 비로소 명문가 도련님다운 행동을 했다.입만 벙끗할 뿐 여전히 아무 말도 못 한 성혜인은 반승제의 옷깃을 잡고선 한숨을 내쉬었다.“승제 씨, 가요.”반승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널찍한 복도에 오직 설우현 혼자 남았다.그는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예전의 이곳을 떠올리며 잠시 슬픔을 느꼈다.현실을 부정하는 여동생과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형. 설씨 가문은 과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분명히 그는 모든 사람을 되돌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잃었다. 이게 바로 욕심을 부린 대가인 걸까?설우현은 눈을 비비고 심호흡을 한 후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어머니, 하시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나미선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침묵을 지켰다.설우현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몸과 마음 전부 지친 것 같았다.그 시각 반승제에 이끌려 차에 올라탄 성혜인은 자신의 두 다리가 땅에 떠 있는듯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임수아가 설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닐 수도 있고, 이 모든 것이 음모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음에도 결코 자신이 그 당사자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동안 설인아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나 진실은 설인아가 그녀의 자리에 앉아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참으로 아이러니하다.피곤함이 밀려온 성혜인은 차에 오른 후 천천히 반승제의 품에 안겼다.반승제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미안해. 어젯밤에 얘기 못 해서. 우현 씨가
순간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설인아는 두 볼이 빨개졌다.‘설마 오빠가 나한테 설씨 가문의 주식을 주는 건가?’주식을 넘겨받는다면 설씨 가문에서 설인아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니와 그런 걱정은 아예 안 해도 된다.“인아야, 옷 갈아입고 올게. 일단 경호원들이랑 같이 가.”“알겠어. 오빠도 빨리 와.”설인아는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밖으로 향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몰랐고 그저 배에 올라 편안한 의자에 앉는듯한 느낌을 받았다.이어 무언가가 다리를 묶이고서야 설인아는 순간적으로 불안함이 밀려왔다.“왜 발에 수갑을 채우는거죠?”“아가씨, 이건 수갑이 아니라 팔찌예요. 도련님이 준비한 선물인데 수십억이 넘어요. 아직은 보여드리지 말라고 하셨거든요.”설인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꼬리를 올렸다.“역시 날 예뻐하는 건 우리 오빠밖에 없다니까.”이 배는 어젯밤의 배보다 훨씬 컸다. 의자는 케이지 안에 고정되어 있었고 주위에는 꽃으로 꾸며졌다.이건 어젯밤 성혜인을 위해 준비했던 것들인데 지금은 설인아가 그 자리에 앉았다.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설인아는 아직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두 다리가 의자에 묶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끝으로 풍겨오는 꽃향기에 설기웅이 준비한 서프라이즈라며 확신했다.별장의 2층에선 설기웅이 손에 위스키를 든 채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설인아는 아마 아예 모르고 있을 것이다.그는 몇 모금 벌컥벌컥 마시고선 큰 배가 천천히 강 가운데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콜록.”어찌나 독한 술인지 절로 기침이 나왔다.설씨 가문의 후계자로서 늘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줄 알아야 하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나 비즈니스를 하는 만큼 칼 같은 결단력이 생명인데 항상 설인아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그는 저도 모르게 여동생을 아끼려는 마음이 밀려오는 사람이었다.지금껏 연애조차 한번 해본 적 없었던 설기웅은 여동생이 늘 일 순위였고 절대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지만 경호원들은 그 말에 흔들릴 리가 없었고 설인아는 손이 빨개진 정도로 케이지를 내리쳤다.“그만해! 다치지 말라고! 오빠, 제발 나 좀 살려줘.”그러나 설인아가 아무리 소리질러도 설기웅은 이 배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케이지가 정말 물에 빠지려는 걸 본 그녀는 마침내 큰소리로 외쳤다.“설기웅한테 얘기해. 날 죽이면 설의종은 평생 깨어나지 못할 거라고. 아직도 화병으로 쓰러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은 내가 독을 먹여서 그렇게 된 거야. 풉, 그러게 누가 날 설의종 옆으로 데려가래? 맞아, 나 그 사람 죽이려고 일부러 다가갔어. 물론 설우현 때문에 안타깝게도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 독약은 한 방울도 치명적이어서 평생 혼수상태로 살아갈 거야.”그 말을 들은 몇몇 경호원들은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속 설기웅과 통화를 하고 있었고 스피커폰으로 돌린 덕분에 설인아가 한 말들은 설기웅도 고스란히 듣게 되었다.한편 핸드폰 너머에 있던 설기웅은 취하고 싶은 마음에 독한 술 반병이나 마셨지만 그럴수록 정신이 더욱 또렷해졌다.독약을 어떻게 성혜인의 목에 부었는지, 어떻게 그녀의 뺨을 때렸는지 잊으려고 할수록 생생하게 기억났다.기억의 파편들은 뇌리에 아른거려 점점 더 그의 숨을 조여왔다.게다가 설인아가 한 말을 듣자 마지막 연민의 감정까지 철저하게 사려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핸드폰을 움켜쥔 채 스산함을 내뿜었다.“뭐라고?”경호원은 서둘러 핸드폰을 설인아 앞에 놓았다.설인아는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어차피 설기웅이 죽이려고 작정한 마당에 무슨 짓을 하든 혐오할 게 분명하니 그저 자신의 생명이라도 지키고 싶을 뿐이다.“설기웅, 내 말 못 들었냐? 사실대로 말할게. 내가 미스터리한 조직에서 독약을 받았어. 아마 설의종은 평생 깨어나지 못할 거야. 머리가 있다면 생각 좀 해봐. 갑작스런 충격으로 쓰러진 거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있겠냐? 해독제가 어디에 있는지 나만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날 죽이는 순간 설의종은 평생 식물인간
설기웅은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설우현에게 설인아가 했던 말들은 전했다.아니나 다를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설우현은 당장이라도 총을 들고 설인아를 찾아가 죽이고 싶었다.그와 달리 설기웅은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어떠한 조직이라고 했어. 반 대표가 알 수도 있으니까 네가 직접 물어봐봐.”설기웅은 이제 성혜인뿐만 아니라 반승제도 볼 자신이 없었다.그저 쥐구멍이라도 숨어들고 싶었지만 혼수상태의 아버지를 떠올린 순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장남으로서 이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다.하지만 그날 밤 봤던 사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사진 속의 여자가 나미선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 어딘가 불안했다.만약 그 여자가 나미선이 아니라면 나하늘일 수밖에 없다.설의종은 의식을 찾지 못했을 때도 줄곧 ‘하늘’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어머니를 사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걸까? 이때까지 나하늘이라는 분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는 거네...’설기웅은 공허했다. 나미선의 아이로서 그는 이것이 좋은 소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나미선은 자격을 갖춘 어머니라고 할 수 없었다. 비록 설의종의 앞에서는 굽신거리며 존재감이 강하지 않았지만 덕분에 집안 내부는 늘 질서정연하게 관리되었다.설기웅은 한숨을 내쉬며 설우현에게 계속 설명했다.“해독제 있는지도 알아봐 줘. 약을 탄 게 맞는지도 확인해 보고.”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설우현은 곧장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반승제는 주방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성혜인에 입에 맞는 임산부 특식을 준비하기 위해 친히 셰프를 집으로 초대했다.그는 셰프가 어떻게 요리하는지 지켜보면서 입으로 임산부들이 금기시하는 음식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때마침 핸드폰이 울렸고 반승제는 둘만의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은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하지만 성혜인과 함께 떠날 날이 점점 다가오니 반드시 설씨 가문의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핸드폰 너머로 설우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설
설의종의 흐릿한 두 눈은 그제야 의식을 찾은 듯 또렷해졌으나 그것도 잠깐일 뿐 여전히 말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답답함에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선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성혜인의 말투는 한결 더 단호해졌다.“제가 반드시 해독제를 구해올게요. 설기웅 씨가 없으니 설씨 가문의 물건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거예요. 오빠는 설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믿을만한 사람이니까 여기를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아요.”맞는 말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곳을 누군가는 지켜야만 한다.설우현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벙끗했으나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주춤했고 곧이어 경호원 한 명이 급히 올라와서 보고했다. “도련님, 그분들이 찾아왔습니다.”설우현이 혐오로 가득 찬 눈빛으로 돌변한 순간 누군가 무례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 사람은 설의종과 매우 닮아있었는데 설의종만큼의 아우라는 전혀 없었다.그는 설의종의 사촌 동생이다. 엄격한 가문 전통을 갖고 있는 설씨 가문은 가문 내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일찌감치 모든 후계자를 정해놓는다.그 말인즉 설의종은 후계자로 선정된 행운아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탈락했다.당시 사촌 동생 설태진은 여러 번 사고를 치는 바람에 설씨 가문에서 소외되었다. 그런데 설의종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나타나다니.정장 차림의 설태진은 침대에 누워있는 백발의 설의종을 보고선 깜짝 놀라더니 괴로운 듯 표정이 일그러졌다.“형님 왜 이래? 너희들은 이렇게 큰일이 있으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연락 한번 안하는 거니?”설태진의 시선은 설의종에게 향했고, 곧이어 얼굴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웃음이 가득했다.“우현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설마 기웅이 그 자식이랑 싸웠어? 너희 형제 때문에 형님이 쓰러진 거야?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알고 있니? 네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이제 수련이 끝났으니까, 네가 오늘 밤에 직접 찾아뵙고 얘기해. 자초지종은 내가 얘기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어떻
설태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다가 앞을 가로막는 그 여자가 뛰어난 미모를 갖고 있는 걸 보고선 순간 흥미를 느꼈다.“우현아, 새로 사귄 여자 친구니? 얼른 꺼지라고 해. 설씨 가문이 제멋대로 드나들어도 되는 곳인 줄 아나 봐?”성혜인은 설씨 가문이 결코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태진이라는 인간이 이렇게 역겨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싸늘한 표정으로 서류 두 장을 꺼냈다.“이번에 새로 임명된 대표입니다. 그말은 제가 다시 돌려주죠. 여긴 그쪽이 제멋대로 행패를 부려도 되는 곳이 아닙니다.”웃음기를 띄고 있던 설태진은 서류에 적힌 글자가 무엇인지 똑똑히 확인하고선 표정이 싸늘하게 돌변했다. 기분이 오락가락하며 심장이 마구 날뛰었다.“형제 쌍으로 미쳤구나? 설씨 가문의 주식을 감히 외부인에게 넘겨? 네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넌 끝장이야.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설마 기웅이를 부추겨서 주식 전부를 양도하게 만든 거야? 그것도 외부인에게? 미쳐도 정도껏 미쳐야지!”성혜인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옆에 있던 경호원을 보며 말했다.“밖으로 끌어내요.”경호원들은 무의식적으로 설우현을 바라봤으나 설씨 가문에서 수년간 일한 노하우로 단번에 상황을 판단한 후 눈치 있게 행동했다.설우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들은 설태진을 양쪽에서 잡고 밖으로 끌고 갔다.설태진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은 듯 한참 동안 멍을 때렸고 정신을 차렸을 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어딜 감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설의종도 나한테 굽신거리는데 네 까짓게 뭔데 이렇게 나대는 거지?”성혜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꺼져요.”분명히 말투는 심각하지 않았지만, 설태진은 그녀의 눈에서 살기를 보았다.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동시에 경호원들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밀려났다.‘뭐 하는 X이지? 포스와 분위기는 설의종이랑 너무 닮았는데?’방안은 다시 조용해졌고 설우현은 한숨을 돌린 뒤 눈시울을 붉히며 설의종의 곁으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