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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엄마가 다치다

“조금 따끔할 거예요. 잠시만 참아줘요.”

두 번째 바늘도 들어갔다.

“베개를 등 쪽에 받쳐주세요. 반시간 내로 폐 쪽에 고여있던 피들이 빠져나갈 거예요.”

이선우가 베개를 최은영에게 건넸다. 반시간 후, 최은영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원래도 아름답도 그녀의 미모가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신경 쪽에 치명상을 입었어요. 치료하려면 16종류의 진귀한 약재가 필요해요. 지금은 없지만 이틀 내로 제가 구해올게요.”

“정말 이것도 치료할 수 있는 거예요?”

최은영이 물었다. 이런 치료방식은 생소했기에 궁금한 점이 굉장히 많았다.

“네,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이선우는 손을 멈추지 않았고 수많은 침들이 최은영의 몸에 놓였다. 최은영은 내내 조용히 누워서 이선우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전쟁터의 피비린내와 비명소리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지워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요함과 편안함이었다. 그녀는 서서히 눈을 감고 이 편안함에 몸을 맡겼다. 어느덧 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 침을 빼볼게요. 지금 상태가 어떤 것 같아요?”

최은영의 혈색이 많이 좋아졌다. 숨도 더 이상 가빠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은영은 기쁘지 않았다. 왠지 이선우라면 자신의 병을 빠른 시일 내에 고칠 수 있을것 같았고 그때가 되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선우는 최은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다급히 물었다.

“왜 그래요, 어디가 불편해요?”

“아니요, 많이 나아졌어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제 약혼녀라고 하셨잖아요. 일단 기본적인 치료는 마쳤어요. 하지만 격렬한 운동은 하지 마시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세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마저 치료하죠.”

“아, 그리고 제가 식단과 먹어야 할 약들을 좀 정리해서 적어봤어요. 이따가 제가 보내드릴 테니까 상처가 다 낫기 전까지는 제가 적어드린 대로 드시고 약도 꼭 챙겨먹어야 돼요.”

최은영은 세심하게 챙겨주는 이선우의 모습에 감동받았다. 이런 따뜻함은 오랜만이었다. 사람에게 챙김을 받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그냥 지금 적어서 주세요. 이설에게 부탁하면 돼요. 몸이 많이 나아지면 같이 어머님 뵈러 가요.”

“네, 푹 쉬어요.”

이선우는 식단과 약 처방을 적은 종이를 최은영에게 건넸다. 그리고 일어나서 나가려는데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민자 씨 가족 되시나요?”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전민자 씨 아들 이선우라고 합니다. 저희 엄마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병원주소 보내드릴테니까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선우가 구체적인 상황을 물을 새도 없이 전화가 끊겨버리고 말았다.

“엄마가 크게 다치셨나 봐요. 가봐야겠어요.”

이선우는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설이 최은영의 방으로 들어왔다.

“장군님, 혈색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근데 어제 정말 이선우 씨랑 잔 거예요? 왜 제 말을 그렇게 안 들으세요. 만약 진짜 잔 거면 다 망했어요 이제.”

이설은 엉엉 울기까지 했다. 이설은 계속 방밖에 있었다. 하지만 최은영이 들어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놨기에 이선우가 최은영을 치료해 준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울지 말고 이 종이나 받아. 앞으로 여기에 쓰여있는 대로 식사랑 약 준비해 주면돼. 그리고 차 준비해. 어머님이 많이 다치셨다니까 나도 가 봐야 돼.”

최은영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 시각 이선우는 이미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의 위치를 알아낸 후 그는 부리나케 달려 순식간에 병실 앞에 도착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병실을 둘러싸고 있다가 이선우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네가 전민자 아들이야? 너 마침 잘 왔다, 돈이나 빨리 내놔.”

“무슨 돈이요? 누구신데요/ 저희 엄마는 어떻게 된 거고요.”

“무슨돈? 당연히 보호 비지. 너네 엄마가 하도 보호비를 안내서 할 수 없이 다리 한쪽 부러뜨렸어.”

다리를 부러뜨렸다고? 순간 이선우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그는 물불 가리지 않고 모두를 밀어내고 병실의 문을 열었다.

전민자는 피범벅이 되여서 땅에 쓰러져 있었다. 칼로 가슴을 도려내는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어젯밤에 왜 집에 바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 너무 괴로웠다.

“엄마, 죄송해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선우는 최대한 이성을 지키며 일단 상처부터 확인했다. 왼쪽 다리가 잘린 걸 제외하고는 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신속히 치료도구들을 꺼내 들려고 할 때였다. 방금 이선우의 일격에 쓰러졌었던 사람들이 병실로 쳐들어왔다.

“돈을 안 낸 것도 모자라 감히 우리를 쳐? 너 내가 누군지 알아? 흑곰이라고 들어는 봤어? 나 주현호 도련님이 보낸 사람이야. 너네 엄마가 보호비를 안 냈는데 다리 한쪽 부러뜨린 거 가지고 무슨 유세야.”

“다 꺼져!”

이선우가 고함을 지르며 발을 뻗었다. 몇 번의 발차기에 모두가 맥없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여긴 병원이었기에 이선우는 당장에라도 그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는 중이었다.

“주현호, 그래. 우리 끝까지 한번 가보자. 넌 내 손에 죽는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몇 년 동안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았고 이선우는 엄마에게 의지하며 지금까지 커왔다. 이선우에게는 엄마가 전부였기에 그런 가족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선우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복수할 것이다. 그는 꼭 주현호의 숨통을 천천히 조이리라 다짐했다.

“야, 빨리 도련님 불러서 저 새끼 잡아.”

흑곰과 그 부하들은 치명상을 입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최은영과 이설도 병원에 도착했다.

“여긴 어떻게…”

“어머니 상태는요?”

“다리가 부러지셨어요. 하지만 제가 치료해 드릴 수 있어요. 은영 씨도 아직 몸이 다 나은건 아니니까 일찍 들어가서 쉬세요. 죄송하지만 은영 씨 치료는 며칠 미뤄야할 것 같아요. 엄마가 심하게 다치셨어요.”

최은영은 그 말이 달갑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 당신 약혼녀고 그럼 이 분은 제 시어머니나 다름이 없어요. 이런 일이 벌어진 걸 알게 됐는데 제가 어떻게 안 와요.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요. 나머지는 제가 처리할게요. 저 밖에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죠?”

이선우는 확신을 주는 최은영의 말에 감동받았다.

“저희 엄마한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이에요. 근데 정말 돌아가서 쉬지 않아도 괜찮겠어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치료에나 집중해요. 전 이설이랑 밖에서 지키고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불러요.”

최은영이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서자마자 주현호와 양지은이 보디가드를 몇 명 달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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