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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

김소희는 이선우가 할머니가 말한 대로 그렇게 강할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김홍매도 복잡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양성에서 그 괴물들을 제외하면 김홍매는 두려울 게 없었다. 몇 년 전 괴물과 상대하다가 참패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괴물에게서 느꼈던 기운이 자신보다 훨씬 강했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이선우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가늠도 되지 않았다. 큰 블랙홀처럼 끝을 알 수가 없는 느낌이었다.

“소희야,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거라. 그리고 방금 그 사내를 찾아서 가깝게 지내. 알겠지?”

김홍매의 목소리가 부드러웠지만 태도가 굳건했다. 김소희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이선우는 이미 진료소를 차릴 위치를 다 알아보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주민재의 보디가드인 유현민이었다.

“안녕, 난 유현민이라고 해. 주민재 회장님 보디가드. 회장님이 네 사지를 찢어서 가져오라고 하더라고. 근데 내 손에 피 묻히기 싫어서 그러는데 네가 직접 할래?”

유현민은 말을 마치고 비수를 그의 앞에 던졌다. 유현민은 이선우를 보자마자 굉장히 실망했다. 무술인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데다가 약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전혀 자신의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주현호와 흑곰등 사람들의 다리를 부러뜨린 사람 같지 않았다. 유현민은 그에게 손을 댈 의욕조차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미친놈...”

이선우는 상대하지도 않고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야, 내 말 안 들려?”

이선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똑똑히 얘기했다.

“잘 들리긴 하지만 너 같은 애랑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가라.”

“하하하, 그래. 좋아. 이제야 좀 흥이 돋네. 굳이 내가 먼저 나서는 게 보고 싶다면 그 요구 만족시켜 줄게.”

유현민은 한걸음 한걸음 이선우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선우를 얕잡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선우에게 유현민은 그저 도살장에서 죽기를 기다리는 가축 같은 존재였다. 그는 상대하기도 귀찮아 그냥 유현민을 스쳐 지나갔다.

“저게 감히...”

유현민이 이선우의 어깨를 잡았다. 이선우가 고개를 돌려 유현민의 눈을 마주쳤다. 유현민은 그 차가운 눈빛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너... 너 혹시 무술인이냐? 어느 레벨인데?”

유현민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선우에게서는 전혀 무술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방금 그 눈빛에서 그는 종래로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두려움을 경험했다.

“돌아가서 너네 회장한테 다시 한번 얘기해 줘. 이틀 내로 주현호와 양지은을 우리 엄마 앞에 꿇어앉혀 사과하게 만들라고. 그리고 돈도 잊지 말고. 그럼 이만 꺼져.”

말을 마치고 이선우는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난 지 한참이 되여서야 유현민은 정신을 차렸다. 식은땀을 흘려 옷이 이미 푹 젖어있었다.

“뭐지? 방금 그 살기는? 젠장, 내가 왜 이렇게까지 겁먹은 거지.”

보디가드로 일하면서 유현민은 종래로 이토록 구차하게 두려움에 떤 적이 없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이선우를 다시 쫓기 시작했다. 저 앞에 이선우가 가고 있는 게 보였다.

“잘난 척 그만해, 이제 목숨을 바쳐라.”

유현민도 이제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이선우에게 일격을 날리려던 찰나였다. 이선우의 주먹이 그보다 훨씬 빨리 눈앞으로 다가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유현민이 바닥에 쓰러졌다.

“어... 어떻게...”

“주 회장님 보디가드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형편없네.”

이선우는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집에 도착하자 전민자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선우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고기를 굽고 있던 전민자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껴안았다.

“엄마, 저 왔어요. 아들이 못나서 엄마만 고생시켰네요.”

이선우는 자책감과 미안함이 밀려와 무릎을 꿇었다.

“돌아왔으면 됐어. 엄마가 우리 아들 좋아하는 거 잔뜩 차려놨어.”

전민자는 아들을 일으켰다. 비록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이 고여있었지만 자애로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선우는 엄마의 상처부터 확인했다. 놀랍게도 이미 거의 다 완치된 상황이었다. 이렇게 회복속도가 빠른 건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엄마가 무사한 것만으로 너무 안심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저녁 준비나 도왔다.

이 날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아들, 한잔할까?”

“좋죠, 제가 따라드릴게요 아버지.”

그들은 오랫동안 숙성시켜 놓았던 술들을 다 꺼내 마셨고 이선우는 진료소를 차린일을 부모님과 얘기했다. 최은영에 관한 일도 말하려고 했으니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 이선우는 말을 아꼈다.

“아들, 너도 이제 출소했고 아빠도 이제 떠나지 않을 생각이니 네가 뭘 하던 이 엄마는 지지할게. 근데 양지은이랑은 더 이상 가깝게 지내지 마. 너랑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전민자는 이선우와 양지은 사이의 일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5년 동안 양지은을 찾아간 적도 있으나 매번 주현호와 양지은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고 돌아왔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 5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파악했어요. 그 집은 엄마랑 제가 함께 마련한 거잖아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값은 되찾아올게요. 그리고 주현호와 양지은이 엄마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게 만들 거예요.”

이선우의 말이 끝나자 이한도 입을 열었다.

“그래 여보, 이제 아들도 다 컸고 자기만의 생각이 있겠지. 우린 늙었으니까 가끔 아들이 바쁠 때 가서 가게나 봐주자고.”

전민자는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정이 드디어 완성된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이선우의 전화가 울렸다. 최은영에게서 온 전화였다.

“혹시 지금 만날 수 있어요? 해야 할 얘기가 있어요.”

“네.”

이선우는 전화를 끊고 부모님께 말씀 드린 후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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