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민시영의 방 창가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굵은 팔이 창턱을 잡으며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하지만 민시영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매니큐어를 바르는 데 열중했다.“늦었네.”“저택의 경비가 너무 삼엄했습니다.”남자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꿇어.”이 시각 민시영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셋째 아가씨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상대를 모욕하는 듯 명령했다.케빈은 그녀의 명령에 아무 주저 없이 무릎을 꿇자 곧이어 그녀의 발이 케빈의 가슴을 밟았다.“예쁘게 발라.”케빈은 민시영 손에 들고 있던 매니큐어를 받아들고 그녀의 발톱을 칠했다.그의 능숙한 솜씨로 보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그 사이 민시영은 몸을 뒤로 젖혀 침대에 누웠다. 마치 치마 아래의 광경이 훤히 드러난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그때 그녀는 천장의 등불을 가는 눈으로 바라보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아무리 봐도 권하윤 왠지 낯익단 말이야.”“주의하지 못했습니다.”케빈의 짧은 대답이 불만이었는지 민시영은 옆에 놓여 있던 다른 한쪽 발로 케빈의 가슴을 차버렸다.그 힘은 결코 작지 않았지만 케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탄탄한 가슴 근육은 간단한 운동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실전과 연습을 통해 단련되어 강철 벽과도 같았다.때문에 민시영의 발길질은 그에게 그 어떠한 충격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찼던 민시영의 발만 아플 뿐이었다.이에 화가 난 민시영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케빈의 얼굴을 세게 내리쳤다.“그럼 네가 주의 깊게 본 게 뭔데?”바닥에 꿇어앉아 있던 케빈은 빨갛게 된 민시영의 손바닥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쳐들어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아가씨요.”그의 말에 민시영은 멈칫하더니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 케빈의 가슴을 밟고 있던 발이 점차 아래로 내려가다가 멈추더니 힘을 주었다.낮은 신음 소리가 케빈의 입술을 뚫고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는 고통이 섞여 있었지만 약간의 쾌락도 섞여 있었다. 고개를 든 채 뜨
잠시 후.권하윤은 조수석을 바라봤다.“그러니까 나더러 네 형의 주의를 돌리라고? 네가 서류 훔칠 수 있게?”“훔치다니! 나 민씨 집안 다섯째야. 그런 내가 뭘 훔치는 그런 일을 할 것 같아?”버럭 화를 내던 민승현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할아버지가 형이 적절한 파트너를 선택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셔. 이건 형을 관심해 주는 거라고.”할아버지 앞에서 어필할 기회가 많지 않은 민승현에게는 이번이 절호의 기회였다. 게다가 이건 할아버지가 그에게 내려준 임무였기에 그는 반드시 멋지게 완수할 생각이었다.문제는 1차 입찰 명단은 민도준의 금고에 있기 때문에 그는 사람을 시켜 민도준의 주의를 돌리고 그 사이 훔쳐볼 계획을 세운 거다.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권하윤이 된 거고.권하윤은 그의 계획을 들은 순간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자신만만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말문이 막혔다.“네 형이 무슨 내가 손가락 까닥거리면 나한테 올 줄 알아?”“당연히 아니지. 그러니까 할 말 있다고 불러내거나……”민승현은 스스로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아니면, 음, 아! 아니면 형한테 물이라도 뿌려.”그 말을 들은 순간 권하윤은 화가 나서 웃음이 나왔다.“민승현, 너 정말 경영학과 졸업한 거 맞아?”그녀의 비아냥거림에 민승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왜 나만 이런 거에 신경 써야 하는데? 너도 생각 좀 하면 안 돼? 남들은 아내가 있으면 내조해 준다는데 내가 이제 너하고 결혼하면 뭔 소용 있겠나 싶다!”권하윤은 더 이상 민승현과 말도 섞기 싫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하지만…….‘민도준이 물론 민승현의 이 유치한 속임수에 넘어갈 리 없겠지만 내가 옆에서 도왔다는 걸 안다면…….’여기까지 생각한 권하윤은 바로 핸드폰을 찾았다. 이 상황은 반드시 민도준한테 미리 말해야 했다. 적어도 강요당한 거라는 말이라도.민승현을 배신한 건 솔직히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다.첫째는 이 일 자체가 원래 민승현이
권하윤은 살아생전 자기가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두 남자의 지켜보는 가운데 권하윤은 할 수 없이 뻣뻣한 자세로 정수기 옆으로 걸어갔다.하지만 허리를 숙이는 순간 그중 한 줄기 시선이 뜨거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물 흐르는 소리가 멎자 권하윤은 물을 받은 컵을 들고 조심스럽게 민도준의 앞으로 다가갔다.“물드세요.”하지만 민도준은 의자에 느긋하게 기댄 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권하윤은 할 수 없이 허리를 숙여 물을 그의 앞까지 대령했다.민승현의 시선은 권하윤에게 가려져 두 사람의 상황을 볼 수 없어 그저 초조해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머릿속에는 온통 권하윤이 넘어졌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권하윤은 그를 도울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때문에 컵을 받쳐 들고 물이 쏟아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그녀의 몸이 민도준 위에 엎드릴 정도로 숙여졌을 때에야 민도준은 손을 뻗었다. 하지만 물컵에 거의 닿으려던 순간 손을 다시 뒤로 뺐다.“아!”권하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놀라 몸을 흠칫 떨었고 그 바람에 컵이 기울더니 민도준 몸에 물이 쏟아졌다.남자의 가슴팍을 흥건히 적신 물자국을 보자 권하윤은 순간 얼어붙었다.엄연히 말하면 이 상황은 그녀를 탓할 수도 없었다. 만약 민도준이 갑자기 손을 뒤로 빼지만 않았다면 그녀가 놀라 물을 쏟는 일도 없었으니까.하지만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민승현은 기뻐서 하마터면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그는 다급히 앞으로 달려가 권하윤에게 화내는 듯 그녀를 꾸짖었다.“권하윤! 넌 어쩜 할 줄 아는 게 없어? 형 옷 다 젖었잖아. 얼른 화장실 가서 건조기로 말려 줘.”그는 마침 전에 미리 연습이라도 해놓은 듯 자연스럽게 대사를 쳤다.민도준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재밌는 듯 상황을 지켜봤다.그리고 권하윤이 속으로 민도준이 당연히 거절할 거라고 확신하던 그때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입을 열었다.“뭐, 그러면 부탁해 제수씨.”민도준의 승낙을 받자 민승현은 흥분을 주체할 수
온기가 느껴지는 민도준의 옷을 받아 든 권하윤은 상반신을 노출한 그를 보는 순간 분위기가 점차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갑자기 분위기가 닳아 오르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민도준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내내 고개를 숙인 채 건조기로 그의 옷을 말렸다.“웅웅”거리는 바람 소리는 마침 그녀를 도와 어느 정도 민도준을 속일 수 있었다.현학적인 설이 있는데 사람은 제3의 눈이 있어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자기장 같은 걸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미치 지금처럼. 권하윤은 분명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등 뒤의 남자가 자기한테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등 뒤에 전해지더니 천천히 그녀를 감싸안았다.권하윤은 살짝 버둥거리며 낮게 경고했다.“그만해요. 저 옷 말리고 있잖아요.”하지만 그녀의 허리를 감싼 팔은 더욱 힘 있어졌고 웅웅 거리는 건조기 소리를 뚫고 남자의 가벼운 웃음소리가 정확히 그녀의 귀에 꽂혔다.“말릴 거 계속 말려. 나는 내가 할 거 할 테니까.”“…….”그 시각, 화장실 밖.민승현은 부들부들 떨며 금고의 문을 햔해 손을 뻗었다.전에 민도준이 금고를 열 때 훔쳐본 적 있어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너무 김장한 탓인지 여러 번 실패 후 겨우 정확한 숫자를 입력했다.민승현은 문을 열면서도 계속 화장실 방향을 주시했다.블랙썬의 화장실은 방음이 너무 잘되어 안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저 계속 들려오는 건조기 바람 소리로 두 사람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걸 판단했다.손을 뻗어 입찰서를 가지려는 순간 그의 손은 이미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입찰서가 더러워져 민도준이 나중에 발견하기라도 할까 봐 그는 바지에 손을 몇 번 문지른 후에야 서류에 손을 댔다.하지만 안에 놓인 입찰서는 고작 하나뿐이었다.그 사실이 민승현은 믿기지 않았다. 입찰을 한 번만 진행하는데 고작 입찰서가 한 장 장뿐이라니 말이 안 됐다.보통 소규모 프로젝트도 약 2, 3 차 심사
권하윤의 눈동자는 심하게 움츠러들더니 민도준을 마치 미친놈 보듯 바라봤다.역시나 말이 너무 지나쳤는지 민승현도 이상한 낌새를 차렸다.그는 권하윤과 민도준을 번갈아 보면서 의심을 키웠고 그가 의심하고 있다는 걸 권하윤은 바로 눈치챘다.하지만 이런 상황을 뭐라 설명할 수도 없었다. 설명할수록 오히려 사실이 되어 버리니까.권하윤은 오히려 담담한 태도로 여상스럽게 말했다.“고마워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그리고 자연스럽게 민승현의 팔짱을 꼈다.민승현도 그제야 지금 떠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녀와 함께 민도준에게 작별을 고했다.하지만 블랙썬을 나오는 순간 그는 권하윤의 손을 뿌리쳤다.“씨발, 너 아까 형이랑 화장실에서 뭐 했어?”“네가 계획한 일이잖아. 그런데 그걸 나한테 물어?”권하윤은 눈썹을 살짝 치켜뜨며 되물었다.그 말에 순간 말문이 막힌 민승현은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난 너더러 형 시선을 딴 데로 돌리게 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네가 그 안에서 형이랑 무슨 짓을 했는지 누가 알아! 그런 적 없다고 하지 마! 그런 짓 안 했으면 형이 왜 그런 말 했겠어!”“응?”권하윤의 맑은 두 눈은 서늘함을 띠고 있었다.“네 말은 지금 내가 너를 도와 도둑질을 도운 것도 모자라 네 형 꼬시기까지 했다는 거야? 내가 뭐 죽고 싶어 환장한 줄 알아?”“어…….”민승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어불성설이었다.민도준의 눈에 뵈는 게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를 꼬시려고 한다면 절벽에서 줄타기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민승현의 화는 곧바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권하윤에게 따져 물었다.“정말 아니야?”“네 형한테 물 쏟고 일부러 시간 끄느라 나 이미 충분히 힘들어. 더 이상 성명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네 마음대로 생각해.”권하윤은 민승현에게 의심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떠나갔다.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속으로 안도
순간 차 안은 조용해졌다.놀라서 말문이 막힌 민상철과 마찬가지로 옆에서 듣고 있던 권하윤도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공씨 가문…… 민도준이 공씨 가문과 손잡으려 한다니.’이렇게 큰 사업건을 추진하려면 반드시 실권을 가진 자들끼리 서로 얘기를 나워야 했다. 그렇다는 건 그 사람이 경성에 올 거라는 뜻이었다.권하윤은 목구멍에서 전해지는 떫음을 간신히 삼키고 숨을 죽인 채 민상철의 답을 기다렸다.처음에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한참을 소리 없던 전화기에서 갑자기 낮은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이 못된 놈!”만약 경성에서 입찰 상대를 찾는다면 그가 되돌릴 여지가 있지만 상대는 하필 공씨 가문이었다.공씨 가문의 본거지는 해원이 있기에 그의 영향력으로는 해원까지 닿기 역부족이었다.게다가 공씨 가문이 해원에서의 지위는 민씨 가문이 경성에서의 지위와 맞먹기에 가장 어려운 상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민도준이 공씨 가문을 선택한 순간 그에게는 되돌릴 기회조차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이 은혜도 모르는 자식! 가족도 나 몰라라 하다니!’민승현은 할아버지의 욕지거리가 들릴 때부터 겁을 먹고 전전긍긍하다가 겨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저 다음에 뭘 할까요?”“네가? 네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네?”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민승현의 물음에 민상철은 차갑게 웃었다.“네가 정말 네 둘째 형을 속였다고 생각해?”“그런데 형이 아무 말도 안 했어요.”“그 자식은 무서울 게 없는데 당연히 아무 말도 안 하지!”민승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리고 여기까지 들은 권하윤은 그제야 민도준이 아까 전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왜 민승현이 민상철의 명령으로 입찰 소식을 캐고 다닌다는 걸 듣고도 그가 신경 쓰지 않았는지 말이다.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알든 말든 그한테는 상관없는 일이니까.공씨 가문과 파트너 관계를 맺는다는 걸 민상철이 안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어쩌면 그는 일부러 이 소식
마 전만 하더라도 내가 돈 빌려달라고 할 때 두말 없이 빌려줬잖아. 그거 네가 한 일 맞잖아.”민승현은 팔짱을 끼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권하윤을 바라봤다.하지만 권하윤의 웃음기는 이내 얼굴에서 사라졌다.그때 그녀가 돈을 쉽게 내어준 원인은 얼마를 주든 결국 그 돈이 다시 자기 주머니로 돌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기에 권하윤은 입을 꾹 다문 채로 득의양양해하는 민승현의 표정을 볼 수밖에 없었다.그러자 그는 곧이어 또 말을 이었다.“그리고 오늘도 그래. 둘째 형 건드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 형한테 물을 끼얹었잖아. 그거 나 때문 아니야?”‘분명 민도준 때문에 실수로 쏟은 건데 이건 또 왜 내가 위험을 무릎 쓰고 너 도와준 게 되는데?’이번에도 권하윤은 침묵을 유지했다.하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자 민승현은 더욱 자신만만해서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민정 때문에 나한테 삐진 거 알아. 그런데 내가 말했잖아. 민정은 그냥 가족이야, 그러니 네가 받아들여야 해.”그리고 마치 은혜를 베풀기라도 하는 듯 입을 열었다.“네가 말 잘 듣고 민정이 괴롭히지 않으면 내가 잘해줄게.”권하윤은 어안이 버벙하여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게다가 민승현이 이렇게 정상적인 말투로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인다는 게 그녀로써는 이해되지 않았다.하지만 더 이상 그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다 말했지? 그럼 나 갈게.”“거기 서!”실랑이를 벌이던 중 가뜩이나 짜증이 난 권하윤은 참지 못하고 버럭 화냈다.“너 그만 좀 해! 병 있으면 병원 가고 발정 났으면 강민정 찾아가. 내 앞에서 얼쩡대지 말고!”점차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지거리가 나왔지만 민승현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하기라도 한 듯 대꾸하지도 않더니 그녀 목덜미에 나 있는 붉은 자국을 가리키며 버럭 소리쳤다.“이건 뭐야!”‘헉, 이걸 까먹고 있었다니.’아뿔싸라는 생각이 들자 권하윤의 몸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가슴이 차가워지자 권하윤은 2초간 멍하니 있다가 자신의 앞자락을 확 잡아당겼다.“민승현, 정도껏 해.”하지만 민승현은 마치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붉게 충혈된 눈으로 권하윤을 노려봤다.그도 그럴 것이 풀어헤쳐진 앞자락 때문에 핑크색 속옷 주위에 나있는 빨간 손자국이 고스란이 공기 속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순간 민승현의 이성은 불에 활활 타버렸다.손자국의 색깔만 보더라도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격렬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심지어 민승현의 눈앞에는 권하윤이 다른 남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환영이 나타났다.이 모든 건 남자의 존엄과 자존심에 대한 도전이었다.버금 거리는 권하윤의 입술이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민승현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탐스러운 입술을 보는 순간 민승현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오늘 반드시 이 주제도 모르는 년을 제대로 혼내줘야겠다는 생각.그는 거의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권하윤에게 달려들었고 그녀가 버둥대며 거절하는 데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그녀를 자기 아래에 눌렀다.“내가 오늘 너 꼭 죽여버릴 거야!”“민승현! 이거 놔!”차 앞줄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어 발로 걷어차지 않으면 몸으로 부딛힐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몇 번 거치고 나니 민승현도 경계심이 생겼는지 쉽게 당하지 않았다. 민승현이 자신의 옷을 찢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 권하윤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점차 나타났다.민승현이 물론 명목상으로는 그녀의 약혼남이긴 하지만 그가 강민정과 바람을 피운 뒤로 그녀는 민승현과 스킨십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남녀 사이의 힘의 차이 때문에 권하윤의 몸부림은 점점 무기력해졌다.그리고 그녀가 오늘은 도망칠 수 없나라고 생각할 때 마침 차창 밖에서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렸다.“똑똑-”“승현아, 안에 있어?”차창밖에는 민지훈이 미소를 지은 채 서있었다. 그의 표정에 약간의 어색함이 섞여 있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