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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작가: 차라

제1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장소월, 31세, 암으로 사망.

서울 강남병원,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연우야, 오늘 의사선생님이 투석한다고 주사를 놓아주셨는데 너무 아팠어.」

「나 곧 죽어. 보러 와 줄 거지?」

「제발, 연우야...」

장소월이 힘겹게 머리를 돌려 전화기의 메시지 창을 보고 있다. 메시지를 몇 개나 보냈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전연우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그녀의 손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뼈만 남아 앙상했고 두 눈은 안쪽으로 푹 꺼져 있었다.

사지는 이미 암 후유증으로 인해 썩어가고 있었다.

몸을 까딱할 수 없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책임 간호사도 거의 보름 너머 와보지 않았다.

원인: 더 이상 치료해도 의미 없음.

그녀는 사실 엄살이 많았고 아픈 걸 끔찍이 무서워했다. 암 말기라 그녀는 매일 고통에 시달렸고 전연우에 대한 사랑만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넘쳐나던 사랑이 메말라가자 그녀에게 남은 건 뼈만 남은 몸뚱이였다.

장소월은 전화기를 꺼버리고 조용히 죽기를 기다렸다.

고통으로 그녀는 의식이 흐릿해졌다. 씁쓸하게 느껴졌다. 안 깐 힘을 다해 전연우와 결혼했고 8년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좋은 아내가 되려 했다. 모든 걸 다 바쳐 그 사람 곁을 지켰는데 그녀가 얻은 건 무엇인가?

사람들은 하나 둘 그녀의 곁을 떠났고 가난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녀가 죽으면 제일 기뻐할 사람이 전연우다. 이제 그는 자유의 몸이다. 더 이상 징그러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

전연우, 드디어 소원대로 송시아와 결혼할 수 있다.

8개월 전.

전연우의 생일날,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장소월은 소파에 앉아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테이블 위 그녀가 정성껏 차린 음식들도 이미 차갑게 식어갔다.

기다리던 전연우는 오지 않고 비서가 이혼서류를 가져왔다. 비서가 싱겁게 입을 열었다.

“사모님, 사장님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큰 전 씨 집안 산업을 누군가는 물려받아야 되잖아요.”

장소월이 창백한 얼굴로 웃어 보인다. 그녀도 몇 년 전 아이를 가졌었지만 사고로 잃었고 그 뒤로 자궁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임신을 할 수가 없었다

전연우도 올해 서른이 많이 넘었으니 후계자가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하여 전연우는 그녀와 이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를 찾으려 했다.

장소월은 비서를 돌려보내고 떨리는 손으로 전연우에게 전화했다. 전연우한테 직접 듣고 싶었다.

전화가 연결되긴 했지만 들리는 건 송시아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장소월의 심장이 먹먹해지면서 아파왔다.

장소월은 전화를 끊고 허탈하게 웃었다. 웃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회사를 전연우에게 맡겼고 5년도 안되어 그는 서울재벌그룹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여러 업계를 오가며 쥐락펴락했고 회사 경영이든 어두운 거래든 막힘이 없었다.

잘난 남자 옆에는 항상 여자들이 꼬였고 이쁘고 몸매 좋은 여자도 많았다.

이렇게 많은 여자 중에 제일 오래 간 여자는 송시아 뿐이었다.

송시아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었지만 대학 졸업 후 바로 전연우의 비서가 되었다.

그녀의 실력과 재주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두사람은 참 잘 맞는 솔메이트였고 천생연분이었다.

처음부터 장소월이 없었다면 전연우와 송시아는 진작에 이루어졌을 것이고 이렇게 오랫동안 관계를 숨기면서 애인으로 남지 않아도 되었다.

사랑이 없는 결혼이란 정말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장소월은 이혼 서류에 사인했다. 돈을 조금 받고 영원히 서울에서 쫓겨났다.

전연우의 허락 없이는 영원히 서울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리고 한주 뒤, 그녀는 암 진단을 받았다. 말기였다.

“펑!”

오늘은 밸런타인데이다. 바깥에서는 눈부신 불꽃 세리머니가 펼쳐졌다.

장소월은 기억 속에서 깨어나 힘겹게 눈을 떴다. 바깥을 본 순간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커다란 LED 스크린에 잘빠진 블랙 슈트를 입은 전연우가 보였다. 큰 키에 뛰어난 피지컬, 서있기만 해도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차갑고도 귀티 나는 아우라,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차가움 속에 높은 지위에서 나오는 진중함과 위협감이 있었다.

그는 한 손에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은 송시아를 감싸고 있었다.

아이의 생김새는 전연우를 꼭 빼닮아 있었다.

“전 사장님, 사장님과 송시아님의 아이인가요?”

“이렇게 아름다우신 송시아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셨는데 결혼식은 언제 올리시나요?”

송시아가 전연우의 품에서 고개를 들더니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 가느다란 손에 커다란 다이아 반지가 끼워져 있다.

“지금부터 전 사모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오늘 혼인신고 마쳤습니다.”

장소월은 눈을 질끔 감았다. 끝내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전연우, 이제는 후회해!

널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만약 이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널...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거야...

창밖에는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다. 불꽃이 창문을 통해 장소월의 얼굴을 비추고 눈에는 현란한 불꽃이 그려진다.

장소월은 끝내 죽었다. 전연우와 송시아가 결혼한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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