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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발 디딜 틈 없는 방안에서 소년은 휠체어에 앉아 오랫동안 자르지 않아 눈을 가리는 앞머리 아래로 바닥에 뿌려진 유리 조각들 사이 커터칼을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괴로운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뭘 망설이는 거야. 한 번에 그어버려. 한 번의 아픔으로 모든 고통은 사라질 거야! 너희 아빠 엄마 이혼하고 각자 재혼하셔서 아이도 있잖아. 넌 버려졌어.”

‘빨리 죽어버려! 죽으면 벗어날 수 있어!’

‘당신들은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결혼 한 거야! 왜 나를 낳았어!’

‘각자 가족이 생기면 나는 어떡하라고? 난 도대체 뭐냐고.’

강영수의 눈빛이 점점 더 강렬해지고 결의에 차 있었다. 손으로 휠체어를 짚고 일어나자 두 다리로 설 수 없어 바닥에 넘어졌다. 손바닥은 유리 파편들이 박혀 피가 흘렀고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파편 속으로 손을 뻗어 커터칼을 잡고 천천히 위로 올려 날카로운 칼날을 빼냈다. 살짝 손목을 긋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커터칼을 손목에 가져다 댄 바로 그 순간 창밖에서 대추 한 알이 날아 들어와 그의 옆에 떨어졌다.

한 알, 또 한 알...

대추 알들은 하나같이 크고 마치 바닥에 물든 피처럼 붉었다.

강영수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부신 햇빛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조금 있다가 대추 한 알이 그의 머리로 날라왔다.

‘아파!’

머리에 맞은 대추 알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석으로 굴러갔다.

한 소녀의 차분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왔다.

“그거 우리 집 대추야. 먹어봐.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지 말고 그러다 병나. 혹시 대추 더 먹고 싶으면 나 찾아와. 쑥스러워하지 말고. 너도 맛있는 거 있으면 나한테 던져 나눠 먹자. 맞다, 나는 장소월이라고 해. 내가 매일 찾아와서 놀아줄게, 좋지?”

장소월의 목소리가 꽤 컸는지 별장에서 있던 가사도우미가 놀라서 달려 나왔다.

“누구세요? 말소리가 정원에서 들린 것 같았는데?”

장소월은 어깨를 움츠리고 조심조심 벽에 걸쳤던 다리를 나뭇가지 속으로 숨겼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자기가 그의 운명을 바꿔주고 싶었다...

혹시 그도 자신처럼 모든 사람한테 버려졌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소녀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강영수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정말로 날 매일 찾아올까?’

그녀의 한마디에 강윤수는 마음속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희미하게 타던 거의 꺼져 가던 불씨가 다시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가사도우미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은 없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몸을 돌려 정원을 떠났다.

나무에 모기가 많아서 장소월은 양쪽 주머니 가득 대추를 따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아줌마는 마침 3층에서 내려와 그녀를 찾고 있었다. 장소월의 몸에 가득 붙어있는 나뭇잎과 가지들을 가서 털어주었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더러워지셨네. 어서 방으로 가서 옷 바꿔 입으세요. 옷은 제가 빨아 드릴게요.”

장소월은 눈썹을 으쓱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아줌마도 대추 좀 맛보세요. 엄청나게 달아요.”

아줌마는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대추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대추들은 전에 많이 따다 놨는데 드시지도 않으시더니 직접 따셨어요? 직접 나무 우에 올라가서요?”

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사다리 타고 올라갔어요!”

“어쩜 상처가 나았다고 그새 또 아픈 걸 잊어버리셨을까?”

아줌마는 손가락으로 아프지 않게 장소월의 이마에 꿀밤을 놓으며 잔소리했다.

“이제 다시는 올라가지 마세요. 만약 또 다치기라고 하시면 제가 아저씨보고 나무 잘라버리라고 할 거예요.”

장소월은 아줌마가 말만 저렇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줌마, 저 어린애 아니에요. 조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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