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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장소월은 의자에 앉아 책상에 놓여 있는 백윤서가 준 선물을 뜯지 않은 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뜯어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머리핀일 것이다.

2000년, 평균 월급이 고작 몇만 원이던 시대에서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녀는 액세서리를 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액세서리를 하면 꼭 목줄에 얽매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심리작용이겠지만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별로 펼쳐보지 않아 새 책 같아 보이는 고등학교 삼 학년 문제집을 펼쳐 보니 그녀가 풀기에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 예전에 장소월의 성적은 반에서 거의 꼴찌였다. 대학에 가기 위해 그녀는 전연우가 퇴근하고 나면 그에게서 과외받았다.

전연우는 중졸이지만 5개 외국어에 능통했고 다양한 지식을 오직 자기 힘으로 공부했다. 그의 학습 능력으로 그녀의 학교에 있었다면 아마 전교 일 등은 물론이고 수능 만점도 가능했을 것이다. 전연우처럼 똑똑하면서도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나 기적을 만든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장해진의 눈에 들 수 있었을까.

장해진은 그녀의 성적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학업보다 장해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흥미를 느끼는 것들이었다.

장해진은 그녀를 명문가의 규수처럼 키우려고 무용, 피아노, 골프, 요리 그리고 자수 등 다양한 것들을 배우게 했고 더 엄격하게 개인레슨을 받도록 했다.

그는 이미 다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가 20살이 되면 비슷한 조건의 집안과 정략결혼으로 가장 가치 있는 사업 파트너를 얻어 두 집안의 기업을 더욱 강대하게 하는 것이다.

장해진는 여자가 재능이 없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여자는 결국 결혼해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공연히 밖에 나돌지 않고 집안일에 신경 쓰고 남편을 잘 섬기며 자녀를 양육하는 현모양처면 충분할 뿐이었다.

장소월은 창밖으로 검은색 차량이 대문을 나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떠났나 보다.

장해진은 아마도 한 삼 일 뒤에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어렵게 얻은 짧은 자유시간이었다.

손에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장가 집안의 규칙과 규정에 속박당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서둘러 뒷마당에 있는 정원으로 갔다. 거기에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아줌마가 얘기하길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임신했을 때 심은 나무라고 했다. 지금은 담장보다 더 높게 자라 나뭇가지는 팔뚝보다 더 두꺼웠고, 구불구불해서 옆집 담장까지 뻗어 나갔다.

이곳의 별장들은 다 붙어 있어 집 주위에 나무 몇 그루를 심어 시야를 분리했다.

요즘이 나무에 대추가 알맞게 익었을 때라 장소월은 빨리 나무 위에 올라가서 풍경을 감상하며 대추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장소월은 자기를 너무 높게 평가한 듯싶다. 맨손으론 나무에 오를 수조차 없었고 사다리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담벼락에 앉으니 무성하게 자란 나뭇잎들이 그녀의 몸을 가려 주었다. 한알 한알 크고 붉게 물든 대추들을 따서 손으로 쓱쓱 닦아 입에 넣었다. 다리를 흔들며 편안하게 눈을 감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그녀는 오늘 처음이로 예전에는 느껴볼 수 없었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이때 옆의 별장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한 소년이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

“나가, 모두 내 앞에서 꺼져...”

소리는 2층에서 났고 장소월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지팡이가 밖으로 던져졌다.

“수야, 엄마는 너를 위해서 그런거야. 우리 잠깐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쐐자.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거야? 엄마 걱정돼.”

“뭐? 날 위한 거리고? 내가 병신이라고 꼴 보기 싫은 거 아니고? 차리라 내가 죽었으면 좋겠지, 그러면 걱정할 필요도 없고 이런 쓰레기한테 시간 쓸 필요도 없겠네. 나가... 전부 다 꺼져!”

“수야...”

“나가라고 했잖아. 내 말 안 들려?”

소년은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

여인은 허탈한 듯 대답했다.

“알았어... 엄마가 나갈게. 대신 자해는 하지 말아줘.”

저기에 누가 사는 것일까? 성질이 아주 고약했다.

장소월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녀가 기억하길 손목을 다치고 보름 후 전연우가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찰받고 돌아올 때 그녀는 옆에 구급차 두 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구급대원들이 흰 천이 덮여 있는 시체를 들고나왔으니, 사람은 이미 죽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손목을 그어서 자살했는데 그 사람은 더 비참했다. 욕실에서 죽은 지 이틀 후에야 발견된 것이다.

아줌마가 말하길 죽은 소년은 서울의 재벌가인 강가네 후계자 강영수라고 했다. 어렸을 때 일어난 차 사고 때문에 두 다리가 마비되어 인생이 암흑 속에 갇혀 버린 채 두문불출하고 정신병에 걸렸다고 한다.

강영수는 자살 경향이 심해 몇 번의 시도에도 구급 조치로 운 좋게 살았었다.

젊디젊은 18살 나이에 죽다니, 안타까웠다.

장소월은 나무에서 대추 한 알을 따서 옆집에 깨진 유리창으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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