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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또각또각.

익숙한 하이힐 소리가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와 함께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지음!

강이한의 첫사랑이자 그녀의 망막을 가져간 여자.

유영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용인 부를 필요 없어. 내가 이미 불렀으니까.”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한 말투.

“여긴 왜 왔어?”

유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모든 걸 잃은 그녀에게 또 뭘 바라고 온 것일까?

한지음은 그녀의 싸늘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전해줄 말이 있어서 왔어.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들을래?”

유영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너 임신했더라.”

유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지음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이한 씨는 이 아이를 낳으라고 하지 않을 거야. 나도 임신했거든.”

쿵!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유영의 얼굴에 금이 갔다.

‘강이한, 이런 거였어?’

혈색을 잃은 그녀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렸고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유영은 치미는 분노를 꾹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여자는 자랑하러 온 것이다. 이미 모든 걸 잃었는데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내고 싶었다.

그녀는 길게 심호흡하고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어제 그 사람한테 내가 이혼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은 한지음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유영도 그녀의 기분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망막까지 빼앗아 가고 임신까지 했는데 그래서 뭐? 그이는 네가 이 집의 안주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나 봐.”

강이한을 좋아해서 한지음을 미워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이 여자에게 더 이상 짓밟히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었다.

강이한과는 이미 끝내기로 했지만 집까지 찾아와서 자신을 도발하는 여자에게 가만히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 그래서 이한 씨가 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이가 그렇게 널 사랑하면 네 망막을 떼서 나한테 이식해 줬을까?”

한지음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유영의 표정이 무너졌다.

반박하고 싶지만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만약 강이한이 그녀를 사랑했다면 그녀가 지금 이런 처지로 살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10년의 사랑의 끝은 잔혹했다.

유영은 한지음이 언제 돌아갔는지조차 모르고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그녀의 눈을 자극했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휠체어를 돌렸다.

하지만 닿는 곳마다 장애물에 부딪히며 그대로 휠체어에서 굴러떨어져 버렸다.

“하….”

유영은 바닥에 앉아 공허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점점 심해지고 기침이 쉴 새 없이 나왔다.

하얀 얼굴에는 세상에 대한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바깥에서 들려온 대화는 그녀를 철저히 절망에 빠뜨렸다.

“도련님도 너무하시지. 어떻게 3년이나 같이 산 사모님을 불태워 죽일 생각을 다 하셨을까? 119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입 다물어. 우린 아무것도 못 본 거야.”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강이한이 날 죽이려 한다고?

그녀는 도망칠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죽어서 이 지옥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연기가 더 자옥해지고 있었다.

점점 숨이 가빠지고 의식이 흐릿해졌다. 처음 남편과 비서가 서로 눈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울지 않았다.

시력을 잃고 마취에서 깼을 때도 울지 않았다.

하지만 한지음이 임신했다는 소식과, 강이한이 10년의 정을 배신하고 자신과 뱃속의 아이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눈물이 나왔다.

뜨거운 불길이 서서히 그녀를 덮쳤다.

“악!”

절망에 가까운 비명이 저택 안에서 울려퍼졌다.

불길이 자신을 집어삼키던 순간, 유영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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