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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악!”

유영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부에서 아직도 뜨거운 작열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남자의 거친 손이 다가와서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익숙한 향기가 코끝에 전해졌다.

“꿈꿨어? 조금만 더 자자.”

유영은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강이한의 준수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유영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앞이 보여?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눈을 다시 감았다 뜨니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창문이 보였다.

천장, 커튼, 그리고 익숙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찾았다.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화재가 일어나기 몇 개월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회귀… 한 건가?

강이한은 뒤척이는 소리에 불만스럽게 눈을 떴다.

“아침부터 왜 이래?”

그러거나 말거나 유영은 핸드폰에 찍힌 날짜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여자가 납치하기 전 날로 돌아와 있었다.

“당신 왜 그래?”

그녀의 이상한 반응에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재차 물었다.

유영은 남자를 내버려두고 욕실로 들어가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화상 자국이 있어야 할 팔뚝도 말끔했다.

아직도 불길이 자신을 덮친 그날의 느낌이 생생한데 그녀는 그 사고가 있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유영은 바닥에 앉아 양팔로 자신을 껴안고 중얼거렸다.

“유영아, 하늘이 널 불쌍히 여겨 기회를 준 거야.”

욕실을 나선 유영은 침대로 다가가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이혼해.”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싸늘한 목소리에 강이한이 벌떡 일어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어?”

“은지한테 부탁해서 이혼 서류 준비시킬 거야. 못 믿겠으면 당신도 변호사 불러.”

“대체 아침부터 왜 이러는 거야?”

강이한은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분노에도 유영은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둘이 언제부터 바람이 난 거야?”

강이한은 날카로운 눈매가 매력이었다. 화를 낼 때조차도 우아하고 고귀함을 잃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세월은 그의 얼굴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하늘이 내린 외모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일까?

“이유영!”

강이한은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지만 죽음을 겪고 다시 회귀한 이유영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상관없어. 어차피 강 대표 사모님이라는 자리가 질리던 참이었거든. 그 여자한테 양보할게. 우리가 같이 보낸 10년이라는 세월… 그리고 내 청춘 모두 개한테 베푼 셈 치지 뭐.”

“아, 그렇다고 맨몸으로 떠날 생각은 없어. 우린 부부로 3년을 살았지. 내가 가져가야 할 부분은 챙겨갈 거야. 부부 공동 재산은 반반으로 나눠줘. 이상한 수작 부리면 그 여자랑 바람난 증거를 언론에 뿌려버릴 테니까.”

남자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솟았다. 그는 음산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대체 아침부터 뭘 잘못 먹어서 이러는 거지? 어젯밤까지 자신의 몸에 매달려 들뜬 신음을 내뱉던 이유영이 갑자기 변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영은 남자의 뜨거운 시선을 무시하고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등 뒤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남자의 분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가 같이 보낸 세월이 이토록 값어치가 없는 거였어?”

이유영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갈 길을 갔다.

위층으로 올라간 그녀는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래, 유영아.”

“이혼 서류 준비 좀 해줘. 지금 당장.”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여자의 격앙된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들려왔다.

“드디어 결심한 거야? 진작 이랬어야지. 지금 당장 작성해서 보내줄게. 30분만 기다려줘.”

“그래.”

전화를 끊은 이유영은 피곤한듯, 눈을 감았다. 최근 1년 사이 강이한이 바람을 피운다는 각종 소문이 그녀의 귀에 전해졌다.

그녀의 친한 지인들마저 소식을 듣고 이혼하라고 설득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그를 믿었다.

내일이면 그 여자는 납치될 것이다. 과거의 그들 사이에 신뢰가 깨진 발단이었다.

이번에는 다시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바보처럼 남편의 불륜녀에게 시망막을 제공하는 바보 같은 짓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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