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닐 리가의 모든 챕터: 챕터 31 - 챕터 35
35 챕터
제31화
망설이고 있는데 실수로 휴대전화 잠금을 풀었다. 유신우의 목소리가 전화 건너편에서 선명히 들려왔다.“나수진, 문 열어.”그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었다. 약간의 오만함이 담겨 있고 지시하는 듯한 어투였다.난 예전에 그를 우러러보았기에 날 대하는 유신우의 태도가 좋지 못하다는 걸 몰랐다. 오히려 유신우가 차갑고 도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내게 신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불편해졌다.“왜?”난 그의 말투에 짜증이 나서 퉁명스럽게 말했다.“너 보려고. 걱정돼서. 나 몇 번이나 왔었는데 아줌마가 널 못 만나게 했어. 나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고. 아줌마 방금 나간 거 봤어. 그러니까 문 열어.”“나 아파서 일어나지 못해.”사실 난 바로 문 앞에 서서 현관문 렌즈로 그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 있었다. 유신우는 꽤 짜증 난 표정이었다.‘짜증 나면 가면 되지, 내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천천히 일어나며 되지. 안 급해. 문 앞에서 기다릴게. 너 문 열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고집스럽긴.’고집스러운 그의 태도를 보니 내가 문을 열지 않는 것도 좋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문을 열어줄 생각이었다.난 천천히 다가가서 문을 열었고, 그 순간 곧바로 후회했다.난 유신우 혼자인 줄 알았다.그런데 유신우가 문 앞에 서 있고 김현주가 유신우의 허리를 안고 그의 뒤에 숨어서 눈을 끔벅이며 날 바라보는 게 보였다.연약해 보이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빛은 날 불편하게 했다.그녀의 눈빛은 순수하지 않았고, 강한 질투심이 보이지도 않았다. 아주 아리송한 눈빛이었다.난 아주 단순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어차피 그녀와 친구가 될 리가 없으니 그녀를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두 사람의 맞잡은 손을 보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비록 후회되긴 했지만 문까지 연 마당에 그들을 쫓아낼 수는 없었다. 내 점잖은 성격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들어와.”나는 짧게 말했다.유신우는 나를 힐끔 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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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유신우는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았다. 난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과일도 맛이 없어졌다.“뭘 봐, 기분 나쁘게.”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내 건? 나수진, 너 오빠한테 이럴 거야?”난 어이가 없었다.손이 있으면 알아서 챙겨야지, 내가 예전처럼 먹여주기를 바랐던 걸까? ‘미안하지만 네가 내 마음을 사정없이 짓밟았던 그때부터 많은 게 달라졌어.’“네가 알아서 해. 우리 집 통장이 어디 있는지도 알면서 왜 갑자기 손님인 척 구는 거야?”난 별 뜻 없이 한 말이었다. 그저 단순히 대화한 것뿐이지, 다른 의도는 절대 없었다.그러나 김현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녀는 조금 화가 난 것 같기도, 내키지 않는 것 같기도, 또 질투하는 것 같기도 했다.“수진아, 너희 집 돈 많아? 남에게 통장이 어디 있는지도 알려주다니. 누가 훔치면 어쩌려고?”난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난 그저 유신우가 그만큼 우리 집에 익숙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예를 든 것뿐이다. 우리 집 통장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몰랐으니 유신우는 더욱더 모를 것이다.그러나 김현주의 말은 아주 의미심장했다. 그녀는 우리 집에 돈이 많은지 아닌지를 신경 쓰고 있었고, 동시에 유신우의 인성을 의심하고 있었다.김현주의 사고방식은 정말 이상했다.“우리 아빠는 중학교 교사고 엄마는 디자이너라서 수입이 나쁘지 않아. 우리 집은 부자는 아니지만 뭐 그럭저럭 사는 편이야.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상태지.”내 말은 사실이었다. 과장은 전혀 없었다. 그냥 수다를 떠는 것뿐이니 솔직히 얘기했다.김현주의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 그녀는 유신우의 팔을 꽉 쥐면서 여전히 유약한 모습으로 낮게 중얼댔다.“사실 돈이 없는 것도 괜찮아. 집이 잘살면 다들 행복하지 않다고 하더라고. 형제자매끼리 재산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언젠가는 이혼한다고 하더라고.”‘우리 아빠와 엄마가 언젠가는 이혼할 거라고 암시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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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난 절대 먼저 남을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물렁물렁한 사람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날 괴롭히려 했으니 참아 줄 이유가 없었다.“네가 뭘 모르는 것 같은데 나랑 신우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면서 십여 년을 함께 했어.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지. 난 우리 집에서 가끔 소외당하는 기분을 느껴. 우리 엄마, 아빠가 금슬이 아주 좋거든. 절대 한쪽이 어려움에 부닥쳐서 다른 한쪽이 그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상대를 버리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우리 집에는 자식이 나 한 명뿐이라 엄마, 아빠는 모든 좋은 걸 다 내게 주려 해. 내걸 누군가에게 빼앗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얄밉게 구는 걸 누가 못해?’“수진아, 네가 오해한 거야. 난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었어. 난 단지 신우가 널 걱정해서 신우와 함께 널 보러온 것뿐이야. 다른 뜻은 없었어. 네가 오해한 거야.”내 말에 아픈 곳을 찔린 건지 김현주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억울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난 집에서 편하게 몸조리하고 있었을 뿐이다. 날 보고 싶지 않다면 안 오면 그만 아닌가?날 질투하는 그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유신우가 어떤 사이였는지 전교생들이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김현주가 우리 집이 꽤 여유롭게 사는 걸 못마땅해하는 것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집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남 잘 사는 꼴을 못 보는 것도 정상이었다.하지만 우리 엄마, 아빠를 들먹여서는 안 됐다. 난 절대 날 키워주신 부모님을 헐뜯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어머, 올케, 내가 무슨 얘기를 했다고 그래? 우리 그냥 수다 떨고 있었던 것뿐이잖아. 왜 우는 거야? 울지 마. 내가 휴지 가져다줄게. 다른 사람이 봤으면 내가 올케를 괴롭힌 줄로 알겠다. 어머, 올케 정말 미인이네. 우는 것도 이렇게 예쁘다니.”난 휴지 몇 장을 뽑아 유신우의 손에 쥐여주면서 어서 눈물을 닦아주라고 눈치를 줬다.“신우야, 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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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난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왜 김현주는 이렇게도 날 싫어하는 걸까? 심지어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내 신경을 긁다니.김현주는 유신우가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자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신우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품에 고개를 묻은 채로 처량하게 울었다.“수진아, 이러지 마. 우리 아빠가 감옥에 가서 우리 집안 사정이 너보다 못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난 정말로 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네가 괜찮은지 한 번 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내가 그렇게 밉다면, 지금 당장 갈게. 앞으로는 절대 널 귀찮게 하지 않을게.”내가 뭘 어쨌다고 이렇게 우는 건지. 김현주는 눈물을 너무 잘 흘렸다. 저 정도면 연기를 안 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점점 더 짜증이 치솟았다. 난 김현주의 연기가 너무 싫었다.“유신우, 나 보러 와줘서 고마워. 인제 그만 가 봐. 난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어.”난 덤덤하게 차가운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렸다.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는 법이다.내 오후가 두 사람 때문에 망가진 걸 생각하면 아까웠다.유신우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눈빛은 심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내가 그를 쫓아내는 것에 몹시 화가 난 건지 굳은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유신우는 흐느끼고 있는 김현주를 보더니 마음 아픈 얼굴로 김현주를 품 안에 앉으면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착하지, 울지 마. 자꾸 울면 눈 아파. 수진아, 우리는 네가 걱정돼서 병문안을 온 건데 왜 이러는 거야? 현주가 그렇게 미우면 앞으로 우리 둘 다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그렇지만 이렇게 현주를 모욕할 필요는 없잖아.”앞말은 김현주 들으라고 한 소리였고 뒷말은 내게 하는 소리였다.나는 화가 났다. 나는 이 순간 유신우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었다.유신우가 옛날에 왕으로 태어났더라면 틀림없이 어리석은 왕이었을 것이다. 아끼는 비가 말 몇 마디 하면 나라까지 말아먹었을 것이다.그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부터 지금까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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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난 그의 말에 화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났다. 저 사람이 과연 내가 19년을 알고 온 유신우가 맞을까? 옳고 그름 따위 안중에도 없고 인성까지 쓰레기였다.내가 김현주를 자극했다니? 내가 언제 김현주에게 눈치를 줬길래 나한테 또 누명을 씌운단 말인가?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유신우, 나도 이젠 더 할 말 없다. 너도 머리가 있으니까 돌아가서 잘 되짚어 봐. 됐고 난 너희랑 계속 얘기할 마음 없어. 나 피곤하니까 인제 그만 돌아가. 보러와 준 건 고맙지만 앞으로는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 봐.”유신우는 김현주의 손을 잡고 씩씩대면서 떠났고 나는 혼자 텅 빈 거실에 멍하니 서 있었다.우리 집에서 나가기 전 김현주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우쭐함에 나는 웃음이 났다.유신우가 편애해 주니 김현주는 자꾸만 선을 넘었다.하지만 난 김현주와 싸울 생각도, 그녀에게서 유신우를 빼앗을 생각도 없었다. 굳이 유신우여야만 하는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왜 우쭐해하는 걸까?그들이 떠난 뒤 나는 다시 침대 위에 누웠고, 이불을 끌어당겨서 소리 없이 울었다.유신우는 변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김현주의 편을 들었다.그는 더 이상 내가 좋아하던 소년이 아니었다.나는 유신우를 완전히 잊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맹세했다.이틀 뒤, 장겨울과 이세영이 날 찾아왔고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내보냈다.내가 집에서 나오자마자 엄마는 날 따라 나왔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면서 잔소리를 해댔다. 난 장겨울과 이세영을 데리고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머리 위에는 흰 구름이 떠 있는 새파란 하늘이 있었고 뒤에서는 못 말린다는 듯이 날 나무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있었다.난 저녁쯤에 돌아왔다. 석양이 드리워진 세상은 그림 같았다.우리 두 집은 모두 1층에 있었고 각자 작은 마당이 있었다.마당 면적은 크지 않았다. 엄마와 아줌마는 그곳에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꽃을 심었는데 너무 잘 자라서 무성한 잎이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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