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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2화

족장은 처참히 찢긴 폴의 시신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바라보다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가져가 꽃 키우는 비료로 써.”

그러자 긴 원피스를 입은 한 여인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더니 폴의 시체를 수거해 어딘가로 떠났다.

그리고 5분 뒤, 다시 깔끔한 모습으로 족장에게 돌아왔다.

“족장님.”

여인이 허리를 굽히며 청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엔 알 수 없는 냉기가 묻어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가서 짐과 폴을 위해 복수할까요?”

복수? 짐과 폴에게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

“멍청한 개 두 마리쯤, 죽어도 그만이다. 봉황국 지부는….”

족장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버려 둬. 일단 염구준이라는 작자가 지리를 지키고 있으니… 당분간은 그냥 두자. 우리에겐 아직 다른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잖아.”

“하지만….”

“하지만은 없다!”

족장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그 사람이 오기 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해, 이 고성을 철옹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사람은… 정말로 너무나도 강했다.

지난번 그 사람과의 싸움 후로 그녀는 심한 부상을 입어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완벽한 치유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염구준보다는 그 사람과의 전투를 대비하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그 사람이라… 날 말하는 건가?”

어디선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나지막한 목소리.

“엘로자. 내 일격을 맞고도 죽지 않다니, 운이 좋구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엘로자는 얼굴이 딱딱하게 경직되며 반사적으로 문 쪽을 바라봤다.

검은 망토에 인피 가면을 쓴, 가슴에 칠흑 단풍이 수놓아져 있는 사람… 흑풍 존주!

엘로자가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긴 원피스 여인도 긴장한 채 소매에서 차가운 빛을 뿜는 단도를 꺼냈다.

“겨우 너희들만으로 내 상대가 될 것 같아?”

흑풍 존주가 전혀 두려움이 없는 눈빛으로 전투태세에 들어간 두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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