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뒤.안열의 말에 반응한 안지영이 화를 내며 펄쩍 뛰었다.“나태웅, 이 개자식.”‘이 나쁜 놈이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동지운 손에 있던 주식을 사서 도대체 뭘 하려는 건데? 설마 아직도 하늘그룹을 꿀꺽하고 싶은 거야?’요 며칠 동안 그녀가 마음속으로 가장 두려워한 것은 배준우가 고은영 때문에 자기에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하지만 요 며칠 소리 소문 없던 나태웅이 그녀를 붙잡으려고 이런 짓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장선명은 어두운 얼굴로 안열을 바라보았다.안열은 질겁하며 고개를 숙이고서는 불안한 마음으로 말했다.“이 전에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어요. 동지운이 나 대표님과 만난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고요.”단지 그들의 통제하에 동지운의 두 사돈이 이미 동씨 가문에서 꽤 오랫동안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동지운이 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반드시 주식을 나눠 두 며느리의 손에 쥐여줄 것이라고 그들은 예측했다. 그렇게 되면 안지영은 두 며느리의 손에서 아주 간단하게 주식을 다시 회수할 수 있었다.하지만 동지운 이 늙은 여우가 주식을 바로 천락그룹에 팔았다.그 지분을 한 그룹에 판 사실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하늘그룹에 아주 심각한 위기가 될 것이다이 순간 안지영은 너무 화가 나서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이 쓰레기 같은 놈.”‘감히 나의 좋은 일을 망치다니.’화가 난 안지영은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장선명의 옆을 지날 때 그가 안지영의 손목을 잡았다.“어디가?”“그 개자식한테 가서 따져야죠.”피그스에서 있었던 일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녀의 아버지가 아직 병원에 누워계시는데 나태웅이 또 이런 짓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도대체 내가 나태웅 그 개자식하고 무슨 원수를 졌다고 나한테 이렇게 복수하는 거야?’여기까지 생각한 안지영은 더 이상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장선명이 안열에게 눈짓을 하자 안열은 회의를 하러 내려갔다.사무실에 두 사람이 남았을 때 장선명은 미
결국 안지영은 장선명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다.“일주일 안에 나태웅은 분명 또 다른 액션을 취할 거야.”안지영은 전에 동지운을 따랐던 사람들을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만약 그 사람들의 손에 흩어져 있던 주식이 나태웅의 손에 들어가면 결과는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고은영을 걱정하던 안지영은 이제 나태웅에게 휘둘려 남을 돌볼 틈이 없었다.고은지의 삶도 쉽지 않았다.그녀는 고은영의 전화를 지금까지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했다.조희주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다. 하지만 새로운 학교에도 조씨 가문 집 주위에 사는 아이들이 다니고 있을 것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조희주가 등교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고은지와 조영수 사이의 일이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다.조희주의 성격도 이 때문에 엄청나게 변했다.매일 집에 오면 조희주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비서, 고 비서?”“네 나 대표님. 절 부르셨나요?”고은지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서는 나태현의 차 앞으로 달려갔다.나태현은 심란해 보이는 고은지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차에 타. 데려다줄게.”“아닙니다. 예약한 택시가 곧 올 거예요.”고은지는 나태현 옆에서 하루종일 일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와 함께 있으면 계속 숨이 막혔다.마침내 퇴근했으니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차 안에 있던 남자의 분위기가 바로 가라앉았다.차 밖에 서 있는 고은지도 아주 분명하게 갑자기 가라앉은 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나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지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결국 그녀는 무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차에 탔다.“그럼 감사합니다, 나 대표님.”‘아니 차에 안 타려는 게 그렇게 잘못한 거야? 왜 아직도 화가 난 것 같지?’이에 고은지는 너무 억울했다.그린빌로 가는 길에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가 멈춘 뒤 고은지는 나태현에게 정중하게 말했다.“나 대표님 데려
“희주야 뭐 먹고 싶어? 엄마가 금방 해줄게.”고은지는 아픈 마음을 억누르며 물었다.조희주는 냉정하게 한마디를 뱉어냈다.“아무거나.”예전에는 고은지가 밥을 할 때 조희주는 해맑게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얘기했었다. 그런데 지금은...고은지는 먹먹한 마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그럼 국수 먹을까? 아니면 밥?”“내가 말했잖아. 아무거나라고.”고은지는 조희주의 무거운 말투에 할 말을 잃었다. 조희주는 어린 나이였지만 사람을 압박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예전에 조씨 가문에서 살 때 조희주의 성격은 항상 부드러웠다.환경이 변해서일까? 인생에서 하늘과 땅이 뒤집힐 만한 일을 겪었으니 고은지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어린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까?고은지는 더 이상 아픈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몸으로 조희주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희주야 학교에서 또 무슨 일 있었어?”“없었어.”‘왜 없다고 하는 거지. 내가 다 들었는데.’조희주의 말에 조은지의 마음은 더 아파졌다. 이 순간 조희주에게서 왜 깊은 무력감이 느껴지는 걸까?곧 울 것 같은 고은지의 모습에 조희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가서 밥 해줘. 나 배고파.”“그래, 엄마가 금방 해줄게.”고은지는 아픈 마음을 참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방문을 나가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다시 숙제하고 있는 조희주를 바라보았다.딸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사람을 거부하는 듯한 분위기에 고은지는 상황의 심각성을 더욱 깊게 깨닫게 되었다.그녀가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조영수뿐만이 아니었다.그리고 그 사람은...조희주의 상태를 보고 고은지는 갑자기 그 사람을 찾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그 사람을 찾는다면 희주의 인생을 보상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이런 생각이 들자 고은지는 그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접었다.이 순간 만하고성에서 피곤한 몸으로 고은영을 찾고 있던 배준우는 고은지의 전화를 받고 조금 놀랐다.“누나?”고은지는
하지만 그녀는 그 남자가 나타나면 딸인 희주가 더 큰 고통을 겪게 될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그 일은 은영이 찾으면 다시 얘기해요. 오늘은 이만 끊겠습니다.”배준우는 고은지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더 묻지 않았다.“그래.”고은지도 더 말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고서는 서둘러 조희주에게 국수를 끓여줬다.천락그룹에 출근하면서 이 시간에 퇴근하면 겨우 두 사람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식사를 차릴 수 있었다.식탁 위에서 두 모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희주는 더 이상 예전처럼 밥을 먹으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지 않았고 이제는 말없이 국수만 먹었다.고은지는 몇 번이나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아빠’라는 두 글자는 현재 두 사람 사이에서 선명하게 금기시되어 있었다.“희주야.”“응?”“학교에서 무슨 일 생기면 꼭 엄마한테 얘기해야 해. 엄마가 다 처리해 줄게.”그 말에 조희주는 드디어 고개를 들고서는 엄마를 바라보았다.“나 학교 안 가면 안 돼?”고은지는 그 말을 듣고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학교를 가지 않겠다고?’“그럼 너...”“학교는 반드시 가야 하는 거지?”고은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희주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이 순간 고은지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숨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그녀는 딸이 다시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다시 한마디를 뱉었다.“왜 아빠 없는 아이는 비웃음을 받아야 하는 거야?”고은지는 말문이 막혔다.‘아빠가 없어서 비웃음을 받았다고?’그러나 지금 고은지가 마주한 것은 단지 딸이 조롱당하는 일만이 아니었다.이전에 고은영이 강성에 있을 때는 고은지가 어느 정도 고은영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 고은영이 갑자기 떠났고 고은지는 갑자기 이전보다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딸인 조희주의 일에 관해서는 더 어려웠다.비록 그녀는 변호사였지만 소송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그 긴 시간 동안 그녀와 딸 희주가 얼마나 많
‘설마 이번 생에 그 여자를 찾지 못하면 평생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계획인가?’이런 집념과 생각을 플레이보이들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한편 정가마을.고은영이 이불 정리를 끝내자 정원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도 옆집 할머니인 것 같았다.방금 고은영은 할머니의 초대를 거절할 수 없어서 결국 저녁을 차리지 않았다.그녀는 정원을 지나 문을 열었다.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인영이 나타났다. 작은 키가 아닌 고은영도 그의 가슴밖에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입꼬리를 휘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자 앞에 서 있던 남자의 따뜻한 눈빛과 마주쳤다. 그제야 남자의 생김새가 또렷이 보였다.고은영은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그녀는 옆집 할머니의 손자가 시골에 사는 청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보니...“왜 그쪽이 여기 있어요?”그가 입을 열었다. 듣기 좋은 목소리에 의문이 가득 담겨 있었다.이 혼란과 충격에서 그가 고은영과 아는 사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은영은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키며 눈앞에 남자를 알아보았다.“진, 진 도련님. 안녕하세요.”‘세상에 제발 누가 나 좀 살려줘.’진 아주머니의 외손자가 강성 4대 명문 가문 중 하나인 진씨 가문의 손자라니. 그는 량천옥이 계속 배지영과 결혼을 시키려고 했던 상대였다.지금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이미 진씨 그룹의 모든 것을 물려받기 시작한 진정훈이었다.배씨 가문에서 예쁘게 보고 있는 진유경이 바로 진정훈의 여동생이었다.고은영의 몸은 머리보다 훨씬 더 반응이 빨랐다. 그녀는 쾅 하고 문을 닫았다.문밖에 서 있던 진정훈이 빠르게 물러나지 않았다면 문은 바로 그의 얼굴에 부딪혔을 것이다. 순간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도 당연히 고은영을 알아봤다.그녀는 량천옥을 굴복하게 만들고 엄격하고 가혹한 염라대왕 같은 배준우의 옆에서 몇 년 동안 평화롭게 살아온 비서였다.진유경도 고은영을 사라지게 하려고 비밀리에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진정훈은 이런 상황에서 고은영을 만날
정설호가 특별히 부탁했기에 그녀는 몇 가지 요리를 더 준비했다.“은영아 이 물고기는 정훈이가 금방 잡아 온 자연산이라 영양가가 아주 높아. 지금 너한테 아주 좋을 거다.”“감사합니다, 할머니.”입맛을 다시던 고은영은 진정훈이 잡아 온 물고기라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진씨 그룹의 후계자로서 일이 엄청 바쁠 텐데 이곳에 와서 낚시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 참 놀라운 일이었다.지금 눈앞에 있는 진정훈은 강성에서 봤던 것처럼 엄숙해 보이지 않았다. 야구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캐주얼하면서도 조금은 청량한 느낌을 주었다.“그리고 이 오이는 내가 심은 거야. 생긴 건 못생겨도 농약을 치지 않았으니 안심하고 먹어.”“네 감사합니다 할머니.”진씨 할머니가 뭐라고 하든지 고은영은 바로 대답했다.진정훈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을 마주치자 고은영은 마치 바늘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진씨 할머니는 그녀를 어떻게 보아도 모두 예뻐 보이고 마음에 쏙 들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친밀감이 느껴졌다.만약 진정훈이 없었다면 고은영도 똑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아주 복잡했다.밥을 한 끼 먹는 동안 그녀의 마음속은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했다.고은영은 요리들이 무슨 맛인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진씨 할머니의 보살핌 덕분에 많이 먹었다.식사가 끝나자 진씨 할머니는 진정훈에게 말했다.“날이 어두워졌네. 네가 은영이 좀 데려다줘.”“할머니 괜찮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고은영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감히 진정훈을 귀찮게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서둘러 이 남자에게서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전에 량천옥이 배준우와 진씨 가문의 딸 진유경을 결혼시키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고은영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진씨 가문이 어떤 태도였는지도 알고 있었다. 배준우가 싫다고 하는데도 진씨 가문에서는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그 모습에 진씨 가문도 배씨 가문과 혼인으로 이어지기
고은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엄숙하게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 진정훈의 얼굴에서 부드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그는 코를 훌쩍이는 고은영을 바라보며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아직도 안 자요? 내가 침대까지 데려다줘야 해요?”고은영은 위협적인 진정훈의 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다행히 진정훈이 따라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고 고은영은 조금 안도감을 느꼈다.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아자마자 문을 잠그고 심지어 이동식 캐비닛까지 문 쪽으로 옮겼다.진정훈은 집안에서 방바닥에 가구가 끌리는 소리를 듣고 입가에 경련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저 여자가 지금 날 짐승으로 보는 거야? 뭘 저렇게까지 경계를 해?’안에서 움직임 소리가 사라지고 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한 진정훈은 그제야 몸을 돌려 정원을 떠났다.하지만 그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구석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웅 웅 웅 웅.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유경’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진정훈은 두통을 느끼며 미간을 문질렀다. 전화를 받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변했다.“유경아.”“오빠, 외할머니 뵈러 가는데 왜 난 안 데려가? 흥.”귓가에서 진유경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유경이 배준우에게 푹 빠져 있다는 것을 배씨 가문 전체가 알고 있었다.진씨 가문의 압력이 없었다면 진유경이 본인의 신분을 깎아내리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이전에는 이미월과 고은영을 비롯해 배준우의 옆은 너무나 소란스러웠다.진씨 가문에서도 진유경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들의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비록 진유경은 진씨 가문의 양녀일 뿐이지만 진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이미 오래전 부터 혈육으로 생각했다. “너무 멀잖아. 갔다 왔다 하는 길이 너무 험할까 봐 걱정돼서 같이 오자고 안 했어.”진정훈이 부드럽게 말하지 진유경이 말을 이었다.“나도 외할머니 보고 싶어.”외할
진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 점검했어요.”그의 외할머니 진경희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잘했어.”진정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외할머니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그런 진정훈의 모습에 외할머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래?”“할머니 왜 그 여자한테는 그렇게 잘해줘요?”진정훈의 인상 속에서 외할머니는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었지만 유독 진유경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진정훈의 질문에 외할머니는 바로 ‘어휴’하며 입을 열었다.“그게 왜? 난 저 아이가 불쌍해서 그래. 배가 저렇게 불러서는 정설호의 낡은 집에 와서 지내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야.”“할머니도 저 여자가 정 할아버지의 진짜 손녀가 아니라는 거 아시죠?”“당연히 알지. 정설호 그 노인네한테 손자가 몇인지 내가 어떻게 모르겠어? 그리고 정설호한테 손녀는 없어.”고은영의 앞에서 그렇게 말한 것은 고은영이 불편하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의 보살핌을 받았으면 해서 한 말이었다.그 말에 진정훈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할머니는 남한테는 그렇게 다정하게 잘 챙겨주시면서 왜 그동안 유경이한테는.”진정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외할머니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을 발견했다.하지만 진정훈은 무서워 않고 말을 이었다.“유경이는 계속 할머니를 존경해 왔어요.”“뭘 존경해?”“하지만 할머니 남한테는.”“그래 남에게 중요한 건 예의고 가족에게 중요한 건 사랑이야. 유경이는 남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데 내가 뭘 어떻게 대해야 하니?”할머니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졌다.진정훈은 진경희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더욱더 진지해졌다.“유경이 때문에 너희들 그동안 잃어버린 동생 찾는 일에는 신경도 안 썼지?”진정훈이 말했다.“뭘 신경을 안 써요? 계속 찾고 있어요. 저희가 의심하는 건 그 아이가 그때 이미...”“이미? 허. 진정훈 그 아이가 네 여동생이야. 그렇게 추측만 하면서 그 아이를 찾는 일에 소홀했어?”“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