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리가 떠난 병실에서는 릴리가 또 한바탕 했는데, 홀로 어른 세 명을 상대하며 완승을 거뒀다.릴리의 표현이 더 직관적이었기 때문이다.화는 내지 않았고 질책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근히 비꼬는 듯한 어투로 속을 후벼판 것이다."대단하시네요. 진짜 대단하세요. 저랑 우리 언니 바보처럼 보호하셨더라고요. 이번 권력 싸움에서 졌으면 저랑 우리 언니 죽어도 모르셨겠죠?""어려서 권력에 대해 몰랐을 때는 그렇다 쳐도 지금은 다 컸는데도 여전하시네요?""그쪽들이야말로 진짜 가족이죠. 공동의 적을 향해 정신이 팔려 있으니 저랑 언니는 그냥 보릿자루죠. 발언권이 없는 것도 모자라 인권도 없네요.""..."강미영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방금 한 명 끝냈더니 한 명이 또 온 것이다.하지만 이 말은 중점이 확실했다.강유리처럼 자기가 화난 이유가 뭔지 모르는 것보다는 나았다.그에 이성적으로 천천히 바로잡았다."왜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가 잘 보호해야 너희들이 걱정을 안 할 거 아니야."지금 통제불능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뒷처리는 정확할 테니.절대 연루시키지 않을 것이다.바론 공작이 중독됐을 때도 바로 육시준이게 연락해 강유리 자매를 잘 보호해 달라 했을 정도였다.딱 하나 예상 못 한 건 그가 티 내지 않고 완벽한 케미로 뒷처리를 해 준 것이다."그럼 저희가 지는 걸 무서워할까 봐, 저희는 배짱이 작으니까 안 알려 주신 거예요?""당연히 아니지. 그냥 니가 엄마를 좀 믿어야...""엄마는 저희를 믿으세요?"릴리는 기세등등하게 냉정하지만 직설적으로 말했다."믿음은 상호적인 거예요. 베풂도 그렇고요. 그렇게 이기적으로 저희한테 잘해 주시면 그대로 받을 줄 아셨어요? 큰이모는 그 완벽한 계획 때문에 목숨까지 바치셨어요. 언니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요?"바론 공작도 관건을 눈치 챈 것 같았다.“그러니까 네 말은 네 언니는 내 냉정함이나 모녀를 버린 걸 탓하는 게 아니라 솔직하지 못했던 걸 탓한다는 건가?“릴리가 노려봤다.
강유리의 입꼬리가 살짝 움찔하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옆의 남자를 봤다.육시준도 입꼬리를 말더니 고개를 돌려 뒤에 앉은 여자를 멈추게 했다."네 언니가 앞서갔나 보네. 보아하니 위로는 필요 없는 것 같은데.""네?"릴리가 되물었다."차 가져왔어? 알아서 가. 우린 볼 일이 있어서.""..."릴리의 얼굴 주변에 물음표가 가득 떠다니는 것 같았다.방금 연맹했으면서 내쫓다니, 이게 말이 되나 생각했다.좌석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릴리가 강유리의 팔을 붙잡고 애교를 부렸다."안 돼. 언니랑 같이 갈 거야! 우리 같은 처지인데 절대 떨어지면 안 되잖아."여기까지 말하고 내친김에 배은망덕으로 육시준도 공범이라 공격하고 싶었다.자기 엄마랑 몰래 연락했으니. 게다가 방금 그 두 마디로도 사건의 전말을 충분히 이해했다.육시준이 뭔가 알고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한 것이다.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뒤통수가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결국 몸은 다시 좌석으로 물렀지만 강유리를 붙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그리고 조수석 좌석까지 꽉 안은 채로 육시준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봤다."저희 셋, 같은 처지인 셋은 떨어지지 않는 게 좋겠어요.""누구 마음대로 셋이지. 얼른 내려."육시준은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인정미가 없었다.차가운 두 눈을 마주하고는 한 마디도 더 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내리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잠깐 침묵하더니 강유리를 안고 통곡했다."언니... 아까는 그냥 날 위로하려던 것뿐이야? 나 싫어하는 거 아니야? 나 안 싫어하면 제부가 왜 날 쫓아내? 엉엉.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래... 난 그냥 단순한 미소녀일 뿐인데!""..."강유리는 고막이 아파지는 기분까지 느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예의 그 눈빛으로 육시준을 슬쩍 봤다.어이없다는 것 외에도 타협의 뜻이 조금 있었다.그 눈빛을 느낀 육시준이 우는 척하는 여자를 주시했다."우리랑 같이 가려고? 진심으로?"순식간에 멈춘 릴리가 기계 같은 속도로 끄덕였다."그럼요.
강유리는 뭔가 더 묻고 싶었지만 이끄는 육시준의 손을 얌전히 따랐다.사무실 내부에 간단하게 배치가 되어 있었다. 문에서부터 촛불 두 줄로 길을 만들어 내고 바닥에는 장미잎을 뿌려 놨다.길은 소파를 지나 산뜻한 꽃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선물 상자에 다다랐다.옆에 서 있던 강유리가 물었다.“이건... 내가 놓친 건가?”어제 집에서 종일 선물을 뜯고 나서야 선물을 조금 정리할 수 있었다. 선물은 전부 각자 지인이나 어른들이 보낸 거라 직접 뜯었다.다른 사람이 보낸 건 JL빌라로 보내 오씨 아주머니에게 맡겼다.그렇다면 여기에 왜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인가?“생일 선물.”육시준의 말과 함께 임강준이 책상에서 스탠드를 가져와 선물 옆에 세우자 세 쌍의 시선이 임강준을 향했다.침착한 얼굴에 차마 숨기지 못한 민망함이 서렸다.“이거, 깜빡할 뻔했습니다.”강유리는 숨길 생각도 없이 소리 내어 웃었다.육시준도 딱히 뭐라 하지는 않아 임강준은 서둘러 옆으로 비켰다.다 웃은 강유리가 예쁜 눈으로 기쁨을 한가득 안고 선물 더미를 쳐다봤다.결혼하던 당일은 강유리의 24번째 생일이었다.다들 결혼만 생각해 그날이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건 까맣게 잊었다.그러나 육시준은 기억했던 것이다...그렇긴 하지만.“생일 선물이라기에는 좀 과하지 않나?”“딱 좋지. 24년 치 선물이니까.”눈빛이 살짝 흔들린 강유리가 육시준을 주시하자 아무거나 집어든 육시준이 태그를 읽었다.“이건 여섯 살 거네. 그때 초등학생이었지? 안에 분홍색 공주 원피스 들었는데, 마음에 들걸.”선물을 강유리의 품에 안겨 주고 다른 선물을 집었다.“이건 열여덟 살. 막 성인 됐을 때네. 그때 주얼리 디자인이랑 Fay 디자이너 스타일 좋아했다길래. 이 목걸이 그 디자이너 같은 해 새 작품.”강유리는 시선을 내리고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육시준이 또 다른 선물을 집으려 하자 결국 릴리가 입을 열었다.“아니, 진짜 언니의 한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의 선물을 준비하셨다고요?”“맞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강유리의 감정은 전부 육시준이 파악하고 좋아하는 방법으로 플어 줄 수 있었다.아까 병실에서도 진실을 알게 된 강유리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사실 한 번도 유강그룹을 신경 쓴 적 없지 않았냐 물었다.강유리가 손에 넣고 지키고 싶었던 건 그들이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그 순간 강유리는 자기가 트루먼쇼에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했다.하지만 이 감정마저도 눈치 채고 이런 식으로 위로해 줄 줄은 몰랐다...가슴이 따뜻해지는 게 뭔가 따뜻한 물로 감싸진 것 같았다. 눈가도 뜨거워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습기가 가득 차 눈앞의 모든 게 흐릿해졌다.코를 훌쩍인 강유리가 웃음으로 보답하려는 순간 눈물이 주체 못하고 흘러내렸다.다급히 손등으로 닦은 강유리가 일부러 귀여운 목소리로 질책했다.“아 진짜. 또 유리 울게 하네! 오후에만 두 번 창피한 모습 보였잖아.”앞으로 도도한 이미지 어떻게 지켜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왜 울어.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육시준이 웃으며 손을 뻗어 눈물 자국을 닦아 주자 강유리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너무 좋고 기뻐서.”웃음기 가득한 육시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유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울보였지. 억울해도 울고, 기뻐도 울고?”그에 강유리가 째려보며 위협했다.“어디 말하기만 해!”육시준의 깊은 눈이 강유리에게 고정된 채 답했다.“그건 우리 강 대표님이 입을 어떻게 막는지에 달렸지.”눈빛에 의아함이 깃든 강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육시준이 일렁이는 눈동자와 함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그 결과 강유리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고 말았다.동그란 눈으로 힘껏 노려보며 주먹으로는 가슴팍을 내리쳤다.“장난해? 여긴 내 사무실이고 아직 야근 중인 사람도 있는데!”그 주먹을 받아내며 육시준이 억울한 목소리를 냈다.“난 그냥 네가 잘 운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디까지 생각한 거야?”“...”남을 이상하게 생각하게 유도했으
어둠이 내렸다.은하타운은 고요함에 휩싸였다.강유리의 생일선물은 집으로 옮겨졌다. 저녁을 먹은 후, 강유리는 지체 없이 집으로 돌아가 선물을 뜯어보았다.비록 이 24개의 생일 선물은 낭만적인 형식일 뿐이지만 강유리는 여전히 이 선물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강유리는 한 살 때의 선물부터 뜯기 시작했다.열여섯 살까지 뜯었을 때, 강유리는 점차 느꼈다.이 선물들은 단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정성 들여 고른 것 같았다.그 당시 나이와도 맞고, 강유리 본인의 취향과도 맞았다.열여덟 살의 생일 선물을 안고 있을 때, 강유리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육시준은 이것을 강유리에게 건네주면서 자연스럽게 상자 안의 물건을 말했다.그럼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건가?그럼, 이 선물들은 임강준이 준비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직접 준비한 건가?이런 생각이 들자 강유리의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올라갔다. 마음이 시럽을 끓인 것 같이 달콤하고 따뜻한 거품들로 가득 찼다.다시 한번 봐야지. 24개의 선물을 뜯고 나니 강유리는 다시 24번의 생일을 보낸 것 같았다.앞에 놓인 다양하고도 멋진 선물들을 보며 강유리는 황홀한 생각에 빠졌다.육시준은 강유리의 씁쓸하고 어두운 과거를 채워줬다.육시준은 마치 한 줄기 빛처럼 강유리의 세계에 비춰들어 강유리의 불쾌한 어린 시절을 밝혀 주었다...선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히자 강유리의 시선이 24번째 생일 선물에 닿았다.육시준이 이렇게 성의가 있으니, 강유리도 그에게 보답할 생각이다.그리고 매번 그 사람 때문에 얼굴이 빨개지는 것도 왠지 억울하다.이번에는 반드시 상황을 뒤집어야 한다!서재.육시준이 일을 마치고 일어나 침실로 돌아가려고 할 때 책상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문기준의 전화였다.육시준은 휴대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공손했다. "사장님, 한지철이 고한빈과 거래를 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고한빈이 무술관에서의 세력이 그리 적지 않았습니다."육시준은 일
게다가 일부러 포즈까지 취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육시준은 먹빛 같은 눈동자로 강유리를 쳐다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늦었는데 강 사장님은 아직 할 일이 있으십니까?"강유리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육시준의 뜨거운 시선 속에서 천천히 다가갔다. "할 일이 없으면 서재에 못 오나?"머리 위로 따뜻한 조명이 비쳐내려 강유리의 온몸이 따뜻한 빛으로 뒤덮여 몽롱했다. 원래도 새하얀 피부가 드레스 때문에 더 하얗게 빛났다.강유리의 목소리는 청초했고 눈빛은 찰랑이는 물결처럼 소리 없이 육시준을 끌어당겼다.이제 곧 육시준의 곁에 다다랐을 때 발이 삐끗하여 무게 중심을 잃고 육시준의 몸을 향해 넘어졌다.육시준은 한 손으로 강유리를 가볍게 품에 안았다.강유리는 육시준의 다리에 앉아 연약하게 그의 목에 손을 두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육시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목젖을 지나쳐 셔츠 깃 단추에까지 닿았다."열심히 일하는 남자가 제일 멋있다던데, 서재에 올 때마다 육사장님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네.""..."허리에 둘러져 있던 큰 손이 더 세게 조여왔다.살이 닿아있는 곳이 뜨거워 강유리는 몸이 왠지 나른 해왔다.육시준의 거센 숨결을 느끼며 강유리는 웃음을 지었다. 강유리의 몸짓은 더욱 대담해져 육시준의 옷깃을 어루만지며 손이 두 번째 단추까지 닿았다."하지만 당신이 더 멋있을 때가 있지."강유리의 하얀 손목을 잡은 육시준의 검은 눈동자가 욕망으로 물들었다. "강 사장님, 여기서 하고 싶은 거야?"강유리는 육시준의 이글거리는 눈과 시선이 맛 닫자 눈꺼풀이 떨렸다. 가까스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여기서 뭘 해?"강유리는 무고한 얼굴을 하고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아, 참, 내 스물네 번째 생일 선물, 어때 예뻐?"육시준은 침략적인 눈빛으로 얼굴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주의 깊게 살펴보는 눈빛에 강유리가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침착함이 점차 무너져 내렸다.작은 손으로 저도 모르게 몸을 가렸
밤이 깊어졌다.서울의 밤은 불빛으로 가득했고 번화하며 떠들썩했다.하지만 이 떠들썩함도 모두 다른 사람들의 몫이지 누군가와는 무관했다.적색 술집.20대 초반의 여자가 대담하고 화끈한 옷차림과 디테일하고 완벽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앳되고 작은 얼굴은 화장 때문인지 더 아름답고, 성숙해 보였다.릴리가 고개를 젖히자, 불빛에 비친 길고 가느다란 목덜미가 유혹을 더했다...술 몇 잔을 마시자 릴리의 머리는 오히려 더욱 맑아졌다. 시선은 댄스 플로어를 훑었다. 왠지 따분하고 무미건조함을 느꼈다.릴리는 비틀비틀 일어나 가방을 들고 나가려고 했다.뒤쪽의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알록달록한 머리를 한 남자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씩 웃고는 술잔을 내려놓고 릴리를 따라갔다.릴리는 입구에서 차를 기다렸다.밤바람이 불자 머리가 많이 맑아진 것 같았다.하지만 택시를 타고 어디로 갈지가 큰 문제가 되었다.릴리는 원래 JL빌라에서 살았지만, 요 며칠 동안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그곳에 머물고 있다. 아마도 언니가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 거다.오늘 일이 터져서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계시겠지만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돌아오실 거다.릴리는 그들을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아니면 고정남에게 가서 골칫거리나 안겨줄까?어쨌든 자기가 이렇게 짜증이 나니 누구도 잘 지낼 생각을 말라는 심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택시 한 대가 오고 있었다. 릴리는 손을 뻗어 택시를 불렀다.바로 그때 만취한 남자 몇 명이 릴리를 둘러서서 애매하고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젊은 여자가 이 늦은 시간에 혼자 집에 가면 위험하지 않겠어? 오빠들이 배웅해줄까? 내 차는 바로 옆에 있는데!""..."릴리는 말하는 사람을 위아래 훑어보고는 결론을 내렸다. "혼자 굴러들어 오는 것들은 종종 쓰레기라던데. 이 말 틀린 거 하나 없네!"릴리는 차림새는 성숙했지만, 확실히 나이가 어려 보였다.어수선한 술집에 있으니 더욱 장소를 잘못 들어온
이 거리는 술집으로 가득하다.그래서 인파가 복잡하다.저쪽 골목에는 가로등도 없고 CCTV도 없다.평소에 잡동사니를 쌓는데 사용하는지라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술집의 불빛이 몇 가닥 비춰들어 조금 으스스했다.이곳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 골목은 가끔씩 자극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이 드나든다는 것을...깡패들은 서로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성큼성큼 따라갔다.택시는 잠시 제자리에 멈춰 서서 이 장면을 지켜보다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떠났다.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택시가 간 뒤에 검은색 지프차 한 대가 뒤이어 도착했다.차 안. 신하균은 멀리서부터 익숙한 사람이 남자 몇 명에게 둘러싸인 것을 보았다.그는 무의식적으로 가속페달을 밟고 빠르게 운전했다.도착하자마자 그는 릴리가 활짝 웃고서는 앞장서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신하균은 브레이크를 밟고 택시가 멈췄던 자리에 차를 세운 뒤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신하균은 예리한 눈빛으로 릴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의 두 눈을 의심했다.이 계집은 정말 주리가 말한 것처럼 감정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건가?이건 장난의 정도를 이미 넘어섰는데?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긴 하는 건가?그 순간, 신하균의 마음속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와 깊은 실망으로 가득 찼다.신하균은 자기가 알고 있던 릴리가 그녀의 진짜 모습이 아닌 줄 알았다...릴리가 사라진 골목 어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신하균의 얼굴이 싸늘해졌다.한참이 지나고 신하균은 냉소를 지었다.자기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평판할 자격이야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고 액셀을 밟아 지프차를 몰고 떠났다.술집 입구가 조용해졌다.화려한 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1분도 채 안 되어 지프차는 떠날 때의 속도로 빠르게 후진을 해서 다시 문 앞에 도착했다.문이 열리고 검은 군화를 신은 튼실한 체구의 남자가 차에서 내려 문을 홱 닫고 성큼성큼 골목으로 걸어갔다.남의 행동에는 간섭할 자격이 없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