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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방패막이

민효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또 한참 쳐다보더니 결국 아무 말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사진에 관한 일은 모두가 약속한 듯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송재이는 그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주현아나 민효연이나 다들 그녀를 문란하고 천박한 년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한편 그들은 설영준에 대해 이런 편견이 없다.

남자는 당연히 풍류가 넘치고 기개가 있지만 여자는 음탕하고 천박하다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한다!

이 사회가 원래 여자에 대한 편견이 많고 많은 법이다.

송재이는 이런 불공평함을 바꿀 수 없으니 그저 묵묵히 참고 살아야 했다.

그녀는 참 운이 안 따라주는 사람이다.

분명 설영준을 피하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또다시 이 악순환에 휘말려 들었다.

민효연이 제 딸의 약혼자와 불분명한 관계를 이어가는 과외교사를 바로 해고할 줄 알았는데 송재이는 의외로 그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연우의 생일이 지난 후 송재이는 더 이상 민효연의 집에서 주현아를 보지 못했다.

그때 눈치챘다. 민효연과 주현아는 모녀 사이지만 둘은 썩 친해 보이지 않았다.

...

송재이는 설영준의 집에서 3년 동안 설도영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떠나 그녀는 이 아이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고 설영준의 집을 떠난 이후로 이 아이와 따로 더 연락한 적도 없었다.

문득 걸려온 설도영의 전화에 송재이는 마냥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결국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저 친구랑 싸워서 지금 병원에 있어요...”

설도영이 말을 더듬거렸다.

전화기 너머로 아이는 가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족들한테 감히 알릴 용기가 없어요. 선생님이 이리로 와주실 수 없나요? 감사의 뜻으로 제가 나중에 밥 한 끼 사드릴게요.”

“...”

송재이는 말문이 막혔다.

거절하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설도영이 말한 ‘싸움’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이건 다툰 게 아니라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설도영에게 맞은 격이다.

인상 속 설도영은 점잖은 중학생이라 전혀 사고 칠 아이가 아니었는데 사람을 이 지경으로 패놓다니.

시퍼렇게 멍든 외상 외에도 손목이 탈골되어 상대방 학부모가 펄펄 뛰는 중이었다.

송재이는 먼저 치료비를 내고 입원실로 올라갔다.

설도영은 복도에 서서 머리를 푹 숙인 채 연신 벽을 내리쳤다.

이번 일은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고 송재이도 감당이 안 됐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미처 말을 꺼내지도 못했는데 설도영이 대뜸 가로챘다.

“엄마한테는 절대 비밀이에요. 엄마 성격 잘 알잖아요. 저 때문에 체면 깎였다고 생각할 거예요. 이 일로 평생 잔소리 듣고 싶진 않아요.”

송재이는 속절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어떡하려고?”

아이는 눈을 데굴거리더니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형한테 전화해요! 선생님 말이면 효과가 있을 거예요. 형이 날 욕하려 하면 쌤이 대신 사정해줘요!”

송재이는 흠칫 놀라더니 설도영을 다시 한번 쳐다보다가 그제야 알아챘다. 이 아이는 일부러 그녀를 앞세우려고 일찌감치 계획을 세운 듯싶다.

다만 이 뜻은 설도영마저 그녀와 설영준의 관계를 알아챘다는 건데?

송재이는 선생님으로서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심란했다. 한때 제자 앞에서 차마 머리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전화해 그럼.”

그녀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너희 형보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 마침 나도 오후에 볼일 있어.”

“선생님...”

이때 바로 앞에 있는 병실에서 다친 학생의 학부모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안에서 걸어 나오더니 두 사람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송재이는 입술을 앙다물고 설도영을 뒤에 숨긴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찌 됐든 도영이가 잘못했으니 일단 상대방에게 사과는 해야 할 듯싶다.

송재이가 병실에서 나오며 이제 막 문을 닫을 때 설도영이 복도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형, 오늘 일 다 내 잘못만은 아니야. 재이 쌤도 말했어, 전부 내 탓인 건 아니라고...”

설도영은 전화기 너머로 설영준에게 몇 번이고 ‘재이 쌤’을 강조했다.

송재이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대체 왜 이 일에 참견했지?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했더니 결국 설도영에게 낚인 기분이 드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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