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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그녀는 너무 진지해

이 남자가 그녀에게 미련이 남아 있다면 그건 아마도 육체적인 욕구겠지.

섹스는 할 수 있어도 미래는 줄 수 없는, 늘 그래왔던 남자니까.

다만 송재이는 더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작별한 후 설도영도 차에 앉아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서 설도영은 방금 편의점에서 산 군것질거리를 먹으며 설영준에게 전화했다.

“형, 나 금방이면 집 도착해요.”

전화기 너머로 설영준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살인데 아직도 이런 걸 얘기해?”

“방금 재이 쌤이랑 같이 저녁 먹었어요. 내가 지금 돈 없는 걸 알고 쌤이 사주셨어요.”

설도영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잠시 후 설영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 송재이 선생님이랑 같이 밥 먹었다고?”

“네.”

설도영은 일부러 3초간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재이 쌤 혹시 형 짝사랑해요?”

순간 설영준은 미간을 구겼지만 동생의 말을 끊지는 않았다.

설도영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쌤 화장실 갈 때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닌데 휴대폰이 식탁 위에 있길래 우연히 봤거든요. 휴대폰 잠금 화면이 글쎄 형 사진이더라고요. 뭐 물론 형이 워낙 잘생겼으니까 쌤이 짝사랑하는 것도 아주 당연한 일이죠...”

“나중에 돌아오고 나서 왜 형 사진을 잠금 화면으로 해두었냐고 물었더니 쌤이 엄청 수줍어하면서 절대 형한테 말하지 말랬어요. 역시 짝사랑하는 여자들은 수줍음이 많다니까요. 형도 쌤 좋아하면 좀 먼저 나서봐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영준이 전화를 툭 꺼버렸다.

송재이는 설도영을 잘 몰라도 설영준은 제 동생을 너무 잘 안다.

이 아이가 했던 말이 헛소리일 가능성이 매우 클지 몰라도 일단 그 점을 제쳐두고 동생의 말이 의외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3년 동안 송재이는 티 날 정도로 설영준을 줄곧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그녀처럼 어리고 단순한 여자는 설영준에게 육체적인 이끌림 이외에 다른 방면으론 딱히 매력이 없다.

목걸이를 선물한 것도 그날 진열대에서 착용해봤을 때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대뜸 카드를 긁었을 뿐이다.

설영준은 여자에게 항상 큰손이라 그녀에게도 사던 바에 하나 더 선물했다.

한편 그의 이런 행동이 또다시 송재이가 단념했던 마음을 불태울지는 잘 모르겠고 관심도 없다.

송재이는 기회를 봐가며 설영준이 선물한 3억2천 원짜리 목걸이를 돌려주려 했다.

설영준도 참 무심하지, 이렇게 값비싼 물건을 택배로 보내다니, 그녀였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오케스트라에서 마침 부성에 3일 동안 공연이 잡혔다. 송재이는 공연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설영준의 회사로 찾아가 목걸이를 돌려주려고 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연지수가 마침 그녀 옆에 앉아서 심심한 듯 방금 가져온 잡지를 뒤적거렸다.

[더 이코노미] 매거진이었고 이번 호에 실린 인터뷰 인물은 설영준이었다!

“우와, 설영준 대표님이다! 완전 잘생겼네! 언제면 나도 알아 가볼 기회가 생길까?”

연지수는 잡지에 얼굴을 들이밀 지경이었다. 그녀는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라붙어 웬만한 남자는 성에 안 차는데 어쩌다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감탄을 연발했다.

송재이는 옆에서 흥분을 금치 못하는 연지수를 보고 나서야 머리를 돌렸다.

힐긋 쳐다보다가 시선이 저도 몰래 잡지에 꽂혔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주인공 아우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포스가 남다르다.

그의 기품과 외모, 모든 걸 휘어잡는 엘리트적인 매력에 경주의 수많은 여자들이 푹 빠져버린다.

“알고 지내면 또 뭐가 달라져요? 도화살이 낀 저 긴 눈매 좀 봐요. 이런 남자랑 같이 있으면 혹독한 감정의 늪에 빠지게 될걸요. 일단 빠져들기만 하면 죽거나 상처투성이거나 둘 중 하나에요.”

연지수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죽어도 이런 남자의 품에서 죽는다면 평생 여한이 없겠어요. 이 남자의 마지막 여자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하룻밤만 함께 보낸다 해도 이번 생은 만족이에요!”

송재이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녀는 연지수처럼 쿨하지 못했다.

쿨했다면 왜 아직도 가끔 그가 떠오를 때마다 심장이 요동칠까.

어쩌면 송재이 같은 여자는 남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타입일지도 모른다.

남녀간의 감정에 너무 진지하다 보니 장난으로 대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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