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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손 까딱하면 넘어올까

식사를 이어가던 중 송재이가 아침에 설영준이 택배로 보내온 선물을 식탁에 올려놨다.

“도영아, 이거 대신 너희 형한테 전해줘.”

“이게 뭔데요?”

“상관 말고 넌 그냥 전해주면 돼.”

설도영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송재이는 의리 넘치게 바로 가주었다.

지금 이건 고작 물건 하나 전해주라는 부탁이니 설도영도 흔쾌히 허락할 줄 알았는데 아이가 잠시 고민하더니 수저를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거 혹시 쌤이 우리 형한테 돌려주는 이별 선물이에요? 그런 거라면 나 못 줘요. 괜히 나중에 나한테만 화풀이할 거라고요...”

송재이는 가슴이 꽉 막혔다.

요 녀석의 말투를 들으니 그녀와 설영준 사이를 진작 알아챈 듯싶다!

어쩌면 사진 스캔들보다 더 빨리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한 송재이는 더 껄끄러워졌다!

“너희 형 그렇게까지 시비 못 가리는 사람 아니야. 이 일로 너랑 화내지도 않을 거고, 그리고 또...”

송재이는 설영준과 좋게 끝낸 사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만약 좋게 끝낸 사이라면 설영준이 그녀를 차단할 필요가 있을까.

차단당한 일만 떠올리면 울화가 저절로 치밀었다.

“쌤은 우리 형에 대해 제법 잘 아시네요. 형이 어떤 성품인지도 잘 알고요.”

설도영은 그녀의 말에서 흠을 잡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송재이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역시 그 형에 그 동생이라니까. 아주 쌍으로 그녀를 속 썩이는 재주가 있다!

“난 잘 몰라. 그 사람은 한때 나의 고용주였을 뿐이야.”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담담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고용주면 쌤이 직접 주시지 뭣 하러 나보고 전해주래요? 거짓말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마음 찔려서 감히 우리 형 못 만나는 거예요?”

설도영이 맑은 두 눈을 깜빡이며 더없이 순수한 척했다.

“...”

송재이는 말을 잇지 못한 채 하마터면 사레들릴 뻔했다.

인제 보니 설영준만 잘 알지 못한 게 아니라 설도영을 가르친 보람도 없었다.

결국 그녀 스스로 마주해야 한다.

헤어질 때 설도영이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몸을 돌려 그녀에게 쪼르르 달려오며 신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쌤, 저는 현아 누나보다 쌤이 더 좋아요. 저뿐만 아니라 유심히 관찰해봤는데 우리 형도 아마 같은 생각일 거예요. 우리 집안과 현아 누나네 집안은 대대로 친하게 지냈어요.”

“현아 누나가 그 집 둘째예요. 그 누나랑 약혼하기 전에 우리 형은 원래 그 집 큰딸 승아 누나랑 혼약을 맺었는데 약혼식 전에 일이 생겨서... 승아 누나는 우리 형이랑 결혼하지 못하고 얼마 후에 다른 남자한테 시집갔어요. 그런데 가인박명이란 말이 무색하게 참 애석하게도 몇 년이 안 지나서 사고를 당했어요...”

“나중에 우리 할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현아 누나랑 영준 형이 혼약을 맺은 거예요. 까놓고 말해서 형이랑 현아 누나는 할머니가 억지로 붙여준 거죠 뭐... 장담컨대 우리 형은 현아 누나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 그러니까 쌤도 진짜 신경 안 써도 돼요...”

송재이는 멍하니 넋 놓고 설도영의 얘기를 들었다.

연우에게 엄마가 없다는 건 알지만 그 속에 이런 우여곡절이 담겨 있을 줄이야...

설도영의 반듯한 얼굴과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는 설영준과 아주 많이 닮았다.

지금 눈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 얼핏 볼 때 설영준이란 착각이 들 지경이다.

송재이는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15살의 나이에 키가 벌써 180이 된 소년을 마주하고 있으니 송재이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설도영은 계속 음침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어제 영준 형이 떨어트린 휴대폰을 주웠는데 뭘 봤게요? 갤러리에 쌤 사진 저장해서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더라니까요. 우리 형은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도 아니고 사람이 워낙 답답해서 쌤과 헤어지고 분명 후회했을 거예요... 이럴 땐 쌤이 먼저 다가와 주세요. 손 한 번 까딱해봐요, 넘어올지 말지?”

“...”

송재이는 이젠 설도영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더는 그녀가 알던 얌전한 학생이 아니다.

요 녀석은 참 사람 마음을 들쑤시는 재주가 있다.

돌아가는 길에서 설도영의 몇 마디 말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홀로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연우 어머니가 떠오르다가 또다시 주현아가 떠오르다가 곧이어 민효연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중에는 피할 수 없이 설영준이 떠오른다.

그녀는 지금 대체 뭣 때문에 심란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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