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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너무 낯선 이 남자

너무 가까이 붙어 가면 몰래 사진 찍히거나 지인에게 들킬 수 있으니까...

설영준은 자꾸만 움츠려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에 함께 있을 땐 단 한 번도 단둘이 나와서 쇼핑한 적이 없었고 그 또한 송재이를 데리고 나올 생각조차 없었다!

어느덧 헤어지고 나니 함께 백화점에 오게 될 줄이야.

진열대 앞에 서서 송재이는 설영준에게 상대방의 취향이나 품위를 물으며 어떤 스타일의 쥬얼리를 맞춰줄지 고민했다.

설영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딱 세 단어만 말했다.

“겸손하고 소탈하고 단아한 거로 해.”

매장 직원이 열성적으로 다가와 두 사람에게 몇 가지 매우 고급스러운 목걸이와 액세서리를 보여줬다.

이탈리아 브랜드인 이 제품들은 디자인이나 퀄리티 모두 일품이었다.

송재이가 하나 고르자 매장 직원이 꺼내서 그녀에게 착용해 주었는데 너무 잘 어울렸다.

새하얀 피부가 광택이 나는 진주와 아주 잘 어울렸고 한결 청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설영준은 거울 앞에 서서 실내의 밝은 조명을 받으며 묵묵히 그녀를 쳐다봤다.

3억2천만 원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송재이도 그의 소비 수준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고개 들어 한마디 물었다.

“이건 어때?”

설영준은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리더니 매장 직원에게 카드를 건넸다.

매장 직원들은 이렇게 통쾌한 부자 고객들을 제일 좋아한다. 직원은 신나서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지금 바로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기다리는 동안 설영준의 시선은 여전히 진열대의 액세서리에 꽂혀 있었다.

그는 무심코 송재이에게 말했다.

“너도 하나 골라봐. 사줄게 내가.”

자그마치 그의 곁에 3년이나 있었으니.

진열대의 물건은 아무거나 대충 하나 골라도 몇천만 원대부터 몇억 원대에 달한다. 이 금액은 설영준에게 껌값에 불과하지만 송재이에겐 1, 2년 연봉 수준이다.

그녀는 잠시 넋 놓고 있다가 웃으며 답했다.

“그새 잊었네. 말했잖아, 난 전 남친 물건 같은 건 남기지 않아.”

말을 마치니 또다시 가슴이 찔렸다.

그에게 있어 송재이는 전 애인에도 속하지 않을 테니까.

그저 잠시 갖고 놀던... 여자일 뿐이다!

게다가 지금 그녀의 뱃속에 설영준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이 아이가 바로 두 사람의 추억을 기념할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

적어도 송재이의 마음속에서 설영준은 단지 돈 많고 의지할만한 남자인 건 아니다.

감정적인 요소가 아주 많이 섞여서 심장을 쿡쿡 찌르듯 아프고 살을 엘 듯 고통스러우며 그 덫에서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다.

아이는 물건이 아니다. 아이는 그녀를 행복하게 하지만 물건은 온도가 없어 마냥 가슴 시리게 할 뿐이다.

한편 설영준 이 남자는 태생이 반골 기질이라 그녀가 거절할수록 기어코 사주려고 한다.

다음날 송재이는 택배를 한 개 받았는데 어제 샀던 목걸이와 똑같은 제품이었다.

3억2천 원짜리 목걸이라니, 송재이는 들고만 있어도 뜨거워서 손이 데일 것만 같았다!

현재 두 사람의 관계로 그녀는 이렇게 비싼 선물을 받을 명분이 없다.

카톡을 보내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고 싶었는데 정작 휴대폰을 꺼내 들자 설영준에게 차단당한 일이 생각났다.

오후에 설도영이 송재이에게 전화했다.

“선생님, 어제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오늘 밤에 시간 돼요? 제가 크게 한턱 쏠게요.”

지난번 차에서 송재이는 설영준더러 도영에게 말을 전하라고 했다. 앞으로 최대한 연락하지 말라고 말이다. 아쉽게도 설영준에게 단호하게 거절을 당했는데 역시 설도영에게 전하지 않았구나.

마침 이 목걸이도 설영준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카톡이 없으니 이참에 도영에게 대신 전해주라고 하면 될 듯싶었다.

송재이는 바로 대답하며 설도영 학교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밥 먹기로 했다.

설영준이 카드를 끊은 바람에 설도영은 지금 빈털터리가 되었다. 다행히 구정 때 모아둔 세뱃돈이 남아 있어 사치는 못 부려도 밥 한 끼쯤은 사줄 수 있었다.

“그래서 다툰 일은 어떻게 해결됐어?”

자리에 앉은 후 송재이가 먼저 물었다.

어제 그녀가 먼저 병원에 불려 갔으니 예의상이라도 관심을 보내야 한다.

“정신적 손해배상으로 1600만 원 주고 합의 봤어요.”

이 일을 언급하니 아이는 또다시 풀이 죽어 묵묵히 물컵을 내려놓았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어젯밤 잠들기 전에 또다시 설영준에게 불려 가 서재에서 한 시간이나 질책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원래 자존심이 강한데 어릴 때부터 우러러봤던 형 앞에서 체면이 구겨졌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설도영은 맞은편에 앉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무언가 생각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쌤, 제가 귀찮게 군 거 알아요. 형이 그러더라고요. 남자는 스스로 일을 잘 해결해야 한다고요. 사람을 패서 병원에 눕히는 게 무슨 재주냐고, 진짜 본때가 있으면 깔끔하게, 아무 흔적 없이 처리해버려야 한대요.”

한창 밥을 먹던 송재이가 동작을 멈추고 미간을 구기며 되물었다.

“진짜 너희 형이 그렇게 말했어?”

설도영이 머리를 끄덕였다.

“어릴 때부터 나보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 필요할 땐 바로 공격하라고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천하게 구는 거라 모질게 패버리지 않으면 계속 설쳐댄대요...”

이게 대체 다 무슨 소리지? 송재이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영준과 함께하고 함께 잔 이 3년 동안 그녀는 역시 이 남자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

침대 위에서 벌어진 일들 말고 둘은 확실히 대화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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