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1화 함께 있기 싫어

방금 병실에 들어가 아이의 상황을 살펴보았는데 깁스를 한 모습이 마냥 처참할 따름이었다.

송재이가 설도영을 데리고 와서 진심 어린 사과를 했음에도 상대방 부모는 대노하며 모진 욕설을 퍼부었다.

처음 겪는 광경에 송재이도 당황스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나중에 설도영이 듣다못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반박에 나섰다.

“이봐요, 그러게 누가 댁 아드님 할 짓 없이 딴 여자애 나시 끈 잡아당겨서 망가뜨리래요? 본인이 더러운 행패를 부렸으니 얻어맞아도 싸요! 기왕 때리는 김에 확 죽여버릴 걸 그랬어요!!”

사춘기 남자애들은 이성의 끈을 놓으면 걷잡을 수 없이 미쳐가는 법이다. 송재이는 설도영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어린놈의 자식이 뭘 이렇게 기고만장해? 우리 아들 털끝 하나 건드린 것까지 싹 다 돌려받을 거야!”

상대가 펄쩍 뛰며 쏘아붙였다.

“너 딱 기다려. 반드시 고소한다 내가!”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복도의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됐네요. 우리도 마침 법적 절차를 밟을 생각이었는데, 하실 말씀 있으시면 여기 있는 박 변호사님께 직접 얘기하세요.”

순간 송재이는 심장이 철렁거렸다.

설도영도 고개 돌려 큰소리로 외쳤다.

“형!”

송재이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문 쪽을 바라봤다.

슈트 차림의 설영준은 창밖의 은은한 햇빛이 쏟아지자 조각 같은 얼굴이 유난히 더 빛났다.

그의 준수한 외모는 뭇사람들 중에서 확연히 돋보이는 외모이고 송재이가 수년간 봐온 젊은 남자 중에 금욕의 매력을 내뿜는 아찔한 남자였다.

고작 며칠을 못 봤을 뿐인데 지금 또다시 한없이 낯선 느낌이 든다.

친형이 오자 설도영도 좀 전보다 목소리에 힘이 났다.

설영준은 그를 힐긋 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설도영, 넌 돌아가서 얘기해!”

이 한마디에 아이는 또다시 주눅이 들었다.

설영준의 뒤에는 정장 차림의 키 큰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박윤찬은 여기서 송재이를 보니 살짝 의외라는 듯 그녀를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 급선무는 설도영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

박윤찬은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한 후 상대방 부모님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설도영 씨 대리변호사 박윤찬입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저한테 직접 하시면 됩니다. 그럼 저쪽 가서 얘기하실까요?”

...

보호자가 왔으니 송재이도 더는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방금까지 그녀에게 미친 듯이 욕설을 퍼붓던 학생 부모는 설영준과 박윤찬이 등장한 이후로 훨씬 진정됐고 박윤찬과 함께 옆 사무실로 들어갔다.

복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송재이는 치맛자락을 만지작대며 설영준과 멀뚱멀뚱 눈을 마주쳤다.

“나 필요 없지? 이만 갈게.”

병원 소독수 냄새가 역겨워 입덧 반응이 심하지 않음에도 구역질이 나서 너무 불편했다.

“잠깐 기다려. 이따가 같이 가.”

설영준이 불쑥 말을 꺼냈다.

담담한 그의 말투는 마치 오늘 아침에 금방 만났다가 지금 다시 만난 듯 너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송재이는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둘은 이미 아무런 사이가 아니니까.

앞서 방금 그런 사진 스캔들에 휘말렸는데 만에 하나 또 누군가에게 몰래 사진 찍히면 사람들이 그녀에게만 삿대질할 게 뻔하다. 약혼녀가 있는 남자를 유혹해 너무 가깝게 지낸다고 말이다.

“나 택시 타고 갈게.”

송재이는 그를 등진 채 고개도 안 돌리고 담담하게 이 한마디만 내뱉고는 걸음을 옮겼다.

“형, 안 쫓아가고 뭐 해요?”

설도영은 설영준보다 더 안달이 났다.

설영준은 그런 동생을 힐긋 째려봤다.

“이번 일로 1년 동안 네 카드 끊을 거야. 1년 안에 수업 땡땡이치지 말고 집, 학교 이외엔 어디도 못 가.”

설도영은 천둥이 내리치는 기분이었다!

“그치만 여름 방학에 친구들이랑 여행 가기로 했다고요...”

“집에 있어.”

설영준이 단호한 어투로 쐐기를 박았다.

“안 그러면 엄마한테 알린다? 엄마가 해결하길 바라는 건 아니지?”

오서희가 얼마나 매정하고 엄한 사람인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설영준은 기껏해야 카드를 끊고 외출 금지 명령을 내리겠지만 이 사건을 오서희가 알게 된다면 꼬박 3일 동안 설도영을 무릎 꿇고 빌게 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또한 매번 생각날 때마다 머리가 터질 지경으로 잔소리를 퍼부을 것이다!

설도영은 가슴이 답답하여 나지막이 구시렁댔다.

“어쩐지, 선생님 말이 딱 맞아...”

“뭐라고 했는데?”

설영준이 미간을 구겼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설도영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일부러 설영준을 안달 나게 했다.

설영준은 더 이상 그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