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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녀는 예뻤다

계속 비꼬려고 했지만 그녀의 빨개진 눈시울을 본 순간 목이 메었다.

설영준은 여자를 다그치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 설도영의 일로 짜증이 확 밀려온 듯싶다.

그는 차 키를 만지작거리며 기분을 한결 가라앉힌 후 담담하게 말했다.

“됐다.”

곧이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바래다줄게.”

무슨 남자가 기분 전환이 이렇게 빠르지?

그래도 그 문제를 물고 늘어지지 않으니 한편으론 숨이 트였다.

설영준과 함께한 3년 동안 사실 그녀는 이 차에 타본 적이 별로 없다. 둘의 데이트 장소는 설영준의 집이거나 그의 장하 별장 침대 위였다.

잠자리를 가졌던 남녀는 그래도 어딘가 다르겠지.

설영준에게 자신이 몇 번째 여자인지는 몰라도 그녀에게 설영준은 첫 남자였다.

남자의 생리적 인식과 그런 방면의 체험은 전부 설영준한테서 얻었다.

지금 그리 넓지 않은 차 안에 단둘이 있으니 송재이는 썩 편하지만은 않아 창밖으로 머리를 기울였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는데 설도영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송재이는 옆에서 운전하는 설영준을 힐긋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말씀이 딱 맞아요. 우리 형이 모질게 굴 때면 진짜 소름이 끼친다니까요...”

설도영은 생각할수록 울분이 차올라 끝내 송재이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

아이는 맨 마지막에 애원 조로 말했다.

“쌤이 우리 형한테 사정하면 안 돼요? 나 진짜 사고 안 치고 열심히 학교 다닐게요. 그러니까 여름 방학에 여행 가게 해줘요, 네?”

송재이가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설영준은 동생의 말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 들었다.

그녀가 내뱉었던 ‘모질게 군다’는 그 말까지...

“너희 형이 어떤 사람인데 내 말을 들을 리가 있겠어?”

송재이는 눈 딱 감고 용기 내어 반박했다.

자신이 설영준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란 걸 이 아이에게 알려야 한다. 설영준이 그녀를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는 건 설도영의 착각일 뿐이니까.

또한 송재이는 옆에 있는 설영준에게도 알려야 한다. 자신은 본분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절대 불합리한 망상 따위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도영이 너 깜빡했나 본데, 너희 형 약혼녀는 따로 있어.”

아무리 부탁을 한다고 해도 그녀를 찾아오진 말았어야 했다!

설도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송재이가 전화를 껐다.

방금 설영준에게 약혼녀가 있다고 말할 때 본인조차 모를 정도로 감정이 살짝 격해졌다.

송재이는 티 내고 싶지 않았다.

매우 신경 쓰인다고, 엄청 질투 난다고 티 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모질어?”

설영준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기억한 말은 딱 이 한 마디였다.

송재이는 입술을 앙다물고 말을 잇지 않았는데 이는 묵인에 가까웠다.

한참 침묵이 흐른 후 송재이가 심사숙고를 마치고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영준 씨, 도영이는 아직 애라 철없어서 그래. 앞으로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당신이 대신 전해줘. 난 하찮은 인간이라 도영의 일은 딱히 도와주지 못해.”

설도영이 귀찮게 구는 게 싫어서일까 아니면 설도영의 뒤에 있는 설영준과 뭐라도 엮이는 게 싫어서일까?

진짜 원인은 그들 모두가 알고 있다.

“미안한데 그 부탁 들어줄 수 없어.”

설영준은 앞만 보며 운전했다.

“뭐?”

송재이는 당황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난 다른 사람 말을 전하지 않아. 할 말 있으면 네가 직접 해.”

원래 싸했던 분위기가 설영준이 말을 내뱉은 이후로 살얼음판이 될 것만 같았다.

송재이는 말문이 막혔다.

이 남자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은 상대의 체면을 절대 안 봐준다. 지금처럼 그녀를 옆에 내버려 둘 뿐이다.

송재이는 머리를 살짝 숙이고 흘러내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설영준은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

검은 머릿결 속에 드리운 그녀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두 볼도 덩달아 빨개졌다.

그의 인상 속 송재이는 쉽게 수줍어하는 스타일이다.

침대에서 유난히 더 수줍어하는 편이다.

매번 잠자리를 가질 때 쑥스러워서 불을 끄라고 했는데 만약 안 끄면 울 듯 말 듯 두 눈이 빨개진다.

그녀가 한사코 고집을 피우면 설영준도 마지못해 불을 끈다.

그런 상황에서는 여자의 뜻을 최대한 따라줘야 하니까.

가장 화끈했던 밤은 아마도 두 사람의 마지막 밤이었을 듯싶다.

송재이는 마치 남자의 피를 빨아먹는 요정처럼 예쁘고 정열적이었다.

문득 설영준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 송재이는 시선을 올리며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살짝 불안하고 긴장했지만 결국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머리를 돌리자마자 설영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익숙한 체취가 코를 찌르자 송재이는 무심코 뒤로 물러섰다.

이때 설영준이 그녀의 머리를 확 감쌌다!

그의 손끝과 질식할 것만 같은 눈빛, 몸에서 배어나는 향기까지 더하니 송재이는 저도 몰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너! 이 손 놔...”

그녀는 곧 울 것만 같았다.

“움직이지 마.”

중저음의 목소리가 고혹적으로 다가왔고 강렬한 남자의 기운을 내뿜었다.

설영준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며 그녀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했다. 둘 사이의 거리가 한 뼘씩 가까워지자 송재이는 놀라서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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