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초가 눈이 보이지 않아 듣고 기억함으로써 사람을 식별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전이진이 그녀를 소개하면 모두 조용히 들얻고 소리를 내서 말해야 할 때에만 말을 해 여운초가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그녀는 다시 한번 전씨 일가의 자상함에 감동했다.전이진은 정말 그녀를 속이지 않았다.그의 가족들은 모두 매우 좋은 사람이었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그녀를 싫어하지 않았고 그녀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여운초는 여태 열등감 때문에 전이진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러다 지금에야 용감하게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다.작은고모가 A시의 예진 리조트에 갔다가 전이진이 이미 그녀를 위해 신의를 찾아간 것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녀도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할머니는 전씨 집안의 가장 웃어른이지만 제일 온화한 사람이었다. 웃어른으로서의 거스름은 한 끗조차도 없었다. 전이진의 어머니인 둘째 사모님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안부를 물었다.여운초는 사람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진심인지 거짓인지 느낄 수 있었다.전씨 일가는 하나같이 진심이었고 그녀가 장님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둘째 사모님이 햇던말 그대로 그녀는 시댁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이 돈을 쓸 줄만 알면 되었다.여운초가 전이진을 따라 서원 리조트로 가서 그의 가족들을 만난 후 두 사람은 감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작은고모와 한동호, 그리고 여천우는 친정 가족을 대표하여 전씨 일가의 어른들과 함께 두 사람의 결혼 날짜를 논의했다.여천우는 친부모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진상을 알게 된 후부터 친구 집에 빌려서 살았고 큰누나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사실 그는 여운초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볼 면목이 없었다.자기 친부모가 누나의 친아버지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둘째 삼촌이 누나에게 물려준 재산도 가로채 갔다고 한다. 또한 누나에게도 매우 나쁘게 대해 거의 죽일 뻔까지 했으니 아들로서 미안할 따름이었다.그러다 누나가 남자친구로 전이진을 찾
하예진은 엘리베이터로 위아래 층을 다니기 때문에 경호원들이 따라오지 않아도 스스로 노동명을 밀고 다닐 수 있었다.지금의 노동명은 아직 스스로 일어나서 걸을 수 없어 하예진이 주로 밀고 다니면서 산책하고 있다.매일 침대에 누워 짜증 내는 것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것이 더 나았다.병원에서 한 달 가까이 입원한 노동명은 자신이 일어서서 걷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점점 더 초조해졌다.회복되지 못할까 봐 두려운 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자신을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내쫓기도 했다.심지어 노동명은 하예진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매달 1억원을 지급하겠다고 심한 말까지 내뱉었다.하예진이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하예진이 노동명을 돌본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눈에 띄게 살이 빠졌다.몸이 언제 나아질지 모르는 노동명은 하예진이 계속 자신을 돌보게 된다면 뼈밖에 남지 않게 될 것이다.정말 그렇게 된다면 노동명은 살을 떼어내는 것보다 더 괴로워할 것이다.요 며칠 노동명은 휠체어에 앉아 하예진에게 밀려 밖에 나갔고 기분 전환 겸 산책한 덕에 정서가 안정될 수 있었고 마음도 더 편해졌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어 엘리베이터 입구로 향했다.엘리베이터 문 앞에 도착할 때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이때 윤미라 부부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고 하예진과 노동명을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예진 씨, 우리 동명을 데리고 검사받으러 가는 거예요?”윤미라 손에는 도시락 두 개를 들고 있었고 노진규의 양손에도 크고 작은 가방들로 가득했다.온 도시락 안에는 노동명과 하예진에게 줄 보신탕이 들어있었다.살이 많이 빠진 하예진을 보고 윤미라도 마음이 아팠고 또 미안했다.한 달이 지날 때쯤 윤미라는 하예진에게 6000만원을 지급했지만 하예진은 노동명에게서 진 빚을 갚고 있다며 그 돈을 받지 않았다.그런데 윤미라 부부는 또 연기를 통해 노동명으로 하여금 하예진이 확실히 돈 때문에 자신의 옆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게 해야 했다.하지만 노동
윤미라는 남편과 아들이 다툴까 봐 서둘러 아들을 오른쪽으로 밀었다.오른쪽은 휠체어 환자를 위한 전용도로가 있었다.하진윤은 윤미라와 함께 노동명을 밀고 내려갔다.일 층으로 내려갔더니 의료진이 환자를 밀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하예진은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전 형님의 남편, 임씨 가문의 형부였다.전 형부도 하예진을 보고 멈칫했다.“예진 씨.”임씨 가문의 형부가 하예진을 보며 불렀다.하예진은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려는데 상대방이 자신을 부르니 어쩔 수 없이 멈추며 인사했다.윤미라는 하예진이게 물었다.“아시는 분이에요?”“저의 전남편의 형부예요.”윤미라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들을 밀며 하예진에게 말했다.“밖에서 기다릴게요.”이수찬은 하예진에게 할 말이 있는 것으로 보여서 더 이상 참견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윤미라가 노동명을 밀고 간 뒤 하예진은 임수찬에게 물었다.“수찬 씨, 병원에는 웬일이세요? 누가 입원했어요?”이수찬은 답했다.“형인 씨 누나가...”“언니가 왜요?”주서인처럼 생명력이 강한 사람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예진은 놀랐다.하예진 인상 속에서 주서인은 종일 활기가 넘치는 분이었다.심지어 평소 감기나 열도 적게 하는 편이었는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수찬은 답했다.“아픈 게 아니라 많이 다쳐서 입원했어요. 그 독한 서현주에게 칼로 찍혔거든요. 다행히 중요 부위를 찌르지 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요. 금방 응급실에서 나와 입원부에 옮기면 돼요.”“형인 씨는 아직도 응급실에서 구급하는 중이에요 .형인 씨가 가장 많이 다쳤어요. 여러 번 찔려 구할 수 있을지 누구도 몰라요. 부모님은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시고 저는 서인 씨를 돌보러 왔어요.”이 소식을 듣자 하예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바로 물었다.“수찬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언니가 어떻게 칼에 찔려 다치게 된 거죠?”서현주가 김은희, 주서인, 하예진을 찌르는 것은 놀랍지도 않았다.하지만 주형인을 여러 번
임수찬의 서현주에 대한 욕을 들으면서 하예진은 마음속으로 만약 주씨 가문이 서현주를 너무 심하게 괴롭히지 않았다면 서현주처럼 힘없는 여자가 칼로 찌를 생각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개도 급하면 담을 뛰어넘고 토끼도 급하면 사람을 물어뜯기 마련이다.정말 사람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는다면 누구나 반항할 것이고 심지어 살인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서현주가 주서인을 찌른 것은 놀랍지도 않았다.주서인 그 이간질하기를 좋아하고 친정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은 제수씨한테 미움 사기 십상이었다.하예진이 주형인과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 하예진은 이미 주서인을 무척 미워했다. 하지만 그때 주서인은 매일 동생 집에 붙어살았기 때문에 하예진이 숨 쉴 틈이 있었고 이 정도로 미친 듯 사람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주서인은 서현주가 무척 싫었다.예전에 서현주는 외부 사람과 연합해 인정한을 빼앗을 뻔한 일이 있었다.그 뒤로 주서인은 사사건건 서현주의 일에 개입해 괴롭혔고 서현주가 친정에 머무를 때면 동생 부부의 감정을 이간질하고 부모님과 서현주의 갈등을 부추겨 주씨 집안이 조용할 날 없게 만들었다.누구나 과하게 괴롭힘당하면 날뛰기 마련이다.서현주는 주서인의 이런 일들을 참지 못했고 결국 주서인을 칼로 찍어 병원으로 입원하게 해버렸을지도 모른다.하예진은 시집간 딸이 친정에 자주 오면 친정 식구들이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친정 식구의 형수나 제수 사이의 일에 자꾸 끼어들거나 부모님 앞에서 형수나 제수 시비를 거는 것은 몹시 가증스러운 일이다.언젠간 주서인 이 일처럼 사건이 터질 것이다.하예진은 서현주가 주형인을 칼로 죽도록 찌른 일이 너무 의외였다.주형인과 서현주는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금슬이 너무 좋아 부모와 누나가 주형인 앞에서 서현주를 욕하면서 이혼하라고 하면 그는 항상 흔들림 없이 서현주 편이었다.주형인은 양쪽의 갈등을 조정하려고 줄곧 노력했다.그러나 부모님과 누나는 고지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을 뿐이다
하예진이 처음 노동명을 밀고 내려가서 산책할 때 노동명은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가 걸을 수 있는지 없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병원은 죽음에 익숙한 곳이다.죽음과 비교하면 휠체어를 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예진 씨, 여기요.”윤미라는 하예진이 병원에서 나오는 걸 보고 멈춰서서 하예진을 향해 손을 저었다.노동명은 몇백억을 빚지고도 갚지 않은 것처럼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조금 전 하예진이 임수찬과 얘기할 때 노동명은 서로 인사하는 호칭을 듣고 하예진 전남편의 식구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주씨 가문의 사람은 정말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하예진은 밖에서도 자주 주씨 집안 식구들을 만나게 되거나 그들이 하루 토스트 가게까지 가서 치근거렸다.결혼한 지 반년이나 넘었는데 주씨 가문은 정말이지 사람을 참 귀찮게 했했다..하예진은 주형인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지 주씨 집안은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 같았다.하예진이 아직 살이 빠지지 않았을 때도 노동명은 하예진을 싫어한 적이 없었다.다만 하예진을 보며 건강을 위해 살은 좀 빼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예진이 노씨 그룹에 출근했을 때 노동명은 오지랖 넓게 하예진에게 매일 몇 바퀴씩 회사에서 뛰도록 요구했다.절대 하예진을 싫어서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살을 뺀 하예진은 더 이뻐졌고 그런 그녀를 노동명이 더욱 싫어 할 리가 없었다.노동명은 자신이 언제 하예진을 좋아했는지도 몰랐다노동명은 하예진이 뚱뚱하든 말랐든 간에 줄곧 그녀를 좋아했다.하예진이 걸어왔다.“전 남편의 형부가 예진 씨한테 뭐라고 하던가요?”노동명은 굳은 얼굴로 입술을 오므릴 뿐 먼저 물어볼 리가 없었다.대신 윤미라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주씨 집안 일이 생겼대요.”하예진이 답했다.“서현주가 주형인 남매를 찔렀는데 주형인은 부상 상태가 너무 엄중해 응급실에서 구급하는
하예진은 이내 대답했다.“사모님, 저도 가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모님 말처럼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우빈의 친아빠인데 만약 형인 씨가 깨어나지 못하면 마지막 길이라도 같이 있게 해주고 싶어요. 사모님, 동명 씨 부탁드릴게요.”“얼른 가봐요. 동명은 내가 돌볼게요.”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 떠났다.하예진이 떠나자 윤미라는 아들을 천천히 아들을 밀며 말했다.“주형인을 봐봐. 이게 바로 바람 피운 대가야. 동명아, 이후에 네가 결혼해서 얘기도 낳게 된다면 꼭 너의 혼인과 가정에 충실해야 해.”“혼인과 가정에 충실할 자신이 없다면 엄마는 네가 평생 혼자 살아도 지지해줄 거야. 네가 다른 집안의 딸을 불행하게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엄마는 딸이 없지만 나도 여자이기 때문에 그 마음 잘 알고 있어. 누구도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사랑하지 않게 되면 이혼하게 되고 또 싱글로 돌아오게 된다면 두 사람 사이 모든 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게 되지. 자유를 얻었지만 과거 제일 사랑했던 부부는 제일 먼 사이로 되는 거지.”노동명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엄마, 난 평생 혼자 살 거야. 엄마 아들이 주형인처럼 그런 꼴 당할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넌 회복 될 거야. 다리가 나아지면 하예진과 결혼도 하고 우빈의 새아빠도 되어야지. 엄마는 이제 반대 안 할 거야.”“전에 네가 말했던 것처럼 네가 행복하다면 엄마는 간섭 안 할 거야. 하예진이랑 결혼하고 평범한 생활을 보내는 것이 네가 원하는 거잖아.”“우빈는 너무 귀여운 아이야. 엄마도 이젠 우빈의 할머니가 되는 것이 너무 좋아.”노동명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이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멀쩡할 때 엄마는 저와 연 끊고 살겠다고 하시면서 우리 둘의 혼인을 반대하셨어요.”“하지만 제가 지금 혼자 서 있기도 힘든 폐인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하예진을 좋아해도 된다고 결혼해라 고요?”“예진
하예진은 위로의 말도 내뱉지 못했다.하예진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김은희를 부축해 의자에 앉히고 작은 티슈 한 봉지를 꺼내 김은희에게 건네는 일뿐이었다.주경진의 눈도 빨갛게 달아올라 시도 때도 없이 등을 돌려 눈물을 몰래 닦았다.주경진 부부에게는 아들 주형인 하나뿐일 텐데 만약 아들에게 뜻밖의 변고가 생긴다면 그들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김은희는 울음을 그쳤다.그러나 김은희는 감정에 북받쳐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하예진은 걱정하는 눈빛으로 주경진에게 말했다“형인 씨 어떻게 됐어요?”주경진은 목이 메어 겨우겨우 대답했다.“아직도 응급실에서 구조하고 있어. 다른 의사들만 계속 수술실로 드나들 뿐 주치의는 나오지 않으셨어. 피를 많이 흘려 혈낭도 한 봉지씩 들어가고 있는데 너무 걱정돼...”아들의 참혹한 과거를 되돌아보더니 주경진은 또 눈물을 흘렸다.주경진은 서현주가 자기 아들을 죽도록 찔러 놓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들이 인기척을 듣고 급히 여분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주형인은 그 자리에서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주서인도 동생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서현주에게 칼에 찔렸던 것이다.“참 독한 년이다. 너무 지독해!”주형인이 서현주한테 무척 잘해 주었는데도 그녀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이해가 안 갔다.그 당시 서현주가 화장실에서 한참 동안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나올 때 생긴 일이다.서현주는 다리가 저려서 조심하지 않아 넘어졌는데 아이가 뱃속에서 떠난 것이다.주형인은 모두가 서현주를 욕해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고 심지어 나서서 편들어 주면서 절대 이혼하지 않았다.주경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주경진의 생각은 하예진과 같았다.서현주가 사람을 죽이려면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은 서주인 그들일 텐데 왜 그녀가 주형인을 칼로 찌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덩치 큰 남자가 어떻게 서현주에게 역살당할 수 있을지도 이해하지 못했다.비극이 발생했을 때 주형인 부부는 방에서
주경진에게 욕설의 퍼부은 뒤 김은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하예진에게 말했다.“예진아, 우리 우빈을 데리고 와줘. 우빈이는 우리 형인의 유일한 핏줄이잖아. 자기 아들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면 우리 형인이가 더 잘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몰라.”하예진은 또 김은희를 위로했다.“우빈이가 예정이과 소현이 따라 고향 집으로 돌아가 채소 사고 있을 거예요. 제가 예정이에게 전화해서 언제 돌아오는지 물어볼게요.”하예진은 전 시부모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주형인이 버텨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우빈은 분명 그의 아들이고 병문안 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하예진과 주형인은 비록 이혼했지만 하예진은 아들 앞에서 주형인을 나쁘게 말한 적 없었고 주형인더러 아빠를 원망하라고 가르치는 일은 더욱 없었다.주형인도 우빈의 양육비를 책임졌기에 아빠 노릇을 어느 정도 한 셈이다.김은희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김은희는 자꾸 아들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아들이 이겨내기를 기도했다.하예진은 이내 자리를 떠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바로 언니의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언니, 무슨 일이야?”이쯤 때면 언니가 병원에서 못된 노 대표를 돌보고 있을 시간인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하예정도 걱정스레 물었다. “우리 우빈이 너와 같이 있어?”“나는 소현 언니와 같이 고향으로 왔어. 여정이 너무 길어 우빈이는 태윤 씨 따라 회사에 갔어.”“알았어. 내가 제부에게 전화해볼게.”“언니, 노 대표가 우빈이를 보고 싶어 해서 그러는 거야?”하혜정은 노동명이 어린 녀석을 보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주우빈은 며칠에 한 번씩 하예진을 따라 병원에 있는 노동명을 찾아가곤 했다.노동명은 어른들에게는 무뚝뚝하지만 주빈에게는 아주 마음이 약했다.주우빈이 울음만 터지면 노동명은 마음이 약해져서 주우빈의 요구라면 뭐든지 다 들어줬다.하예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답했다.“예정아, 주형인 씨 남매가 사고를 당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