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4화

배경원은 다리를 툭 치며 그제야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알아챘다.

“찬... 찬혁아, 제발 나 좀 도와줘!”

배경원이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난 연준 형 여자를 뺏을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게다가 강서연 같은 앳된 여자는 내 스타일도 아니라고! 연준 형 진짜 머리가 잘못된 거 아니야? 어떻게 그런 스타일을 좋아할 수 있지?”

유찬혁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늘 차갑고 단호하던 최씨 일가 셋째 도련님께서 어느덧 구현수로 변신해 강서연 같은 어린 여자에게 이토록 신경 쓰다니, 실로 의아할 따름이었다.

“연준 형이 말했잖아. 이 결혼을 신경 쓰는 게 아니라 결혼을 빌미로 잠시 은신하는 것뿐이라고 말이야...”

“넌 그 말 믿어?”

유찬혁이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두고 봐. 강서연 절대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야. 어쩌면 그때 가서 연준 형이 오성에 돌아가지 않으려 할지도 몰라!”

...

점심을 먹고 난 후 구현수는 강서연에게 인사하고 바로 외출했다.

이 마을은 그다지 크지 않다. 강서연이 시집오기 전에 구현수는 마을 오솔길을 따라 자주 산으로 갔었다. 그곳엔 인적도 드물고 공기가 신선하여 혼자 있기 참 좋은 장소였다.

구현수는 본인만의 시간을 가지며 앞으로의 일을 세심하게 계획하곤 했다.

다만 오늘은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강유빈이 전화로 내뱉었던 험한 말들이 줄곧 귓가에 맴돌았다.

구현수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계속 산 정상으로 올라가려 했는데 불쑥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현수 씨!”

한 젊은 남자가 팔을 휘두르며 아래에서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구현수는 흠칫 놀라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

“아까 산기슭에서부터 현수 씨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 올라왔어요? 저 겨우 쫓아왔잖아요! 아 참, 몸의 상처는 거의 다 나았어요? 제가 가서 약을 더 구해드릴까요?”

구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다 나았어요. 그땐 제가 너무 번거롭게 굴었네요.”

“친구끼리 뭘 새삼스럽게 그래요?”

남자는 구현수의 어깨를 톡톡 치고는 나란히 산정상으로 올라갔다.

솔직히 구현수는 그에게 매우 감격스러웠다. 그의 이름은 신석훈이고 나름대로 있는 집안 출신이라 이 마을에서 몇 안 되는 부유층 사람이다.

신석훈도 마을의 유일한 대학생이고 심지어 의대 출신이다.

졸업하고 돌아온 그해 마침 집에서 요양하고 있던 구현수를 만났다. 신석훈은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구현수가 성격이 괴팍하고 다가가기 어렵다고 했는데 유독 신석훈만이 그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상처를 검진하고 가끔 특효약도 보내왔었다.

환난 속에서 뜻밖에 피어난 이 우정에 구현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만 그 뒤론 또다시 부담이 돼버렸다.

신석훈은 구씨 일가와 강씨 일가의 스토리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두 집안의 혼약을 모두에게 널리 알렸다. 강주 전체가 강씨 일가의 재미난 구경거리를 지켜보았다. 만약 구씨 일가가 몰락했다고 딸아이를 시집보내지 않으면 앞으로 비즈니스 업계에 또 하나의 가십거리가 생겨날 것이다. 강씨 일가는 곧 신용을 잃은 자의 본보기가 될 테니까.

궁지에 몰린 강씨 일가는 강서연을 강유빈으로 대체하여 구씨 일가에 시집보냈다.

“아참, 신혼생활은 어떠신지 미처 묻지도 못했네요!”

신석훈이 흥미진진하게 웃으며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안색이 밝은 걸 보니 아내분과 잘 지내는 모양이에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저도 나름 두 분을 이어준 장본인이에요. 언제 한번 아내분을 모시고 나와서 식사라도 한 끼 해야죠?”

구현수는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애초에 이 마을에 요양하러 왔을 때 마침 구씨 일가의 사람들이 없다는 걸 알게 됐고 신분증의 구현승의 외모가 그와 매우 닮아있어 아예 그의 신분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그는 단지 이름과 신분을 숨기고 이곳에서 조용히 숨어지낼 뿐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신석훈이 들뜨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린다...

“듣기로 강서연 씨가 성격이 아주 세다고 하던데 맞아요?”

신석훈이 관심 조로 물었다.

“어쨌거나 금지옥엽으로 커온 부잣집 딸이니 이기적일 수도 있죠 뭐. 참을 만큼 참아요, 아내한테 져주는 게 상책이에요!”

“그래요, 나도 알아요.”

구현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비록 이 결혼은 그의 생각 밖이지만 강씨 일가의 큰 따님과 결혼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진짜 강유빈과 결혼했다면 그는 아마 신석훈을 목 졸라 죽였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난 지라 신석훈은 그를 집에 초대하여 차 한 잔 대접해드리려고 했다. 구현수가 어떻게 거절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일 때 갑자기 할머니 몇 분이 산길을 따라 달려왔다.

“이봐, 구현수, 아직도 집에 안 가고 뭐 해?”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 집사람 큰일 날지도 몰라!”

마을의 중장년층 여자들은 남 얘기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이게 다 현수 씨 아내가 너무 예뻐서 그렇지 뭐. 남자들이 한 번만 쳐다봐도 혼이 쏙 빠지는데 지금 여기서 여유 부릴 때가 아니야! 빨리 안 돌아가면 진짜 큰일 나!”

구현수는 낯빛이 돌변하더니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