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이제 끝났어.”중앙에 자리 잡고 앉아있던 남자가 말했다.“용국은 서현우의 공로를 잊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라엔 지엄한 국법이 있어. 낭연을 피운 건 서현우가 자체적으로 남강 총사령관의 자리를 내려놓았다는 걸 의미해. 이제 더이상 거론할 필요 없어. 감찰사는 수고했어. 이제 돌아가서 쉬어.”이천용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났다.그 시각 남경에 있는 남경 무생군 십이장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서현우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성과는 절대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평소 침착함을 잃지 않던 남강 책사도 울음을 터뜨렸다. 서현우가 없었다면 그는 이미 전장에서 가루가 되어 죽었을 것이다.남강은 조용히 가라앉았고 더는 환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그 이유는 남강 군사들이 이번 전쟁으로 인해 비록 용국은 승리했지만 그들은 가장 존경하는 총사령관님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사자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공을 세운 군사들에게 훈장을 내리러 남강의 모든 장군들을 소집시켰다.홍성이 돌연 자리에서 한 발자국 나서며 입을 열었다.“상은 필요 없습니다. 총사령관님을 불러주십시오!”“상은 필요 없습니다. 총사령관님을 불러주십시오!”십이장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쳤다.사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때 누군가 돌연 회의실 문을 열었다. 남강의 병사 몇 명이었다.그들은 퉁퉁 부은 얼굴로 씩씩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백 미터나 되는 천을 펼쳤다.그 위엔 군사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피로 적혀있었다.“보고드립니다! 남강 무생군 12단, 전략지휘부, 보급부, 척후군단... 도합 122만 3963명의 병사들이 피로 간청드립니다. 저희들은 상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총사령관님께서 남강에 돌아오게 해주십시오!”사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군사들의 기대감과 비통함이 가득 담긴 두 눈이 그를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가무잡잡한 남강의 사내들이다. 그들은 무식하거나 또는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객기
“제가... 더 도와줄 건 없을까요?”이천용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서현우는 용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쳤다. 적국을 때려잡아 항복시키는 것으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지켰다.이러한 호국 공신은 그에 걸맞은 상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자리에서까지 물러나게 되었다.“네가 날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건 바로...”서현우가 덤덤히 말했다.“지금 이 순간부터 나와 연락을 끊는 거야. 아니면 네 금용 감찰사의 위치도 위험해 질 거야. 그건 날 절벽 끝으로 미는 것이나 다름없어. 나 서현우는 이미 용국에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했어. 남은 여생은 중연시에서 평안하게 머물 수 있게 해줘. 내 가족의 곁을 지키면서 말이야. 이건 내 여동생과의 약속이기도 해.”그 말을 한순간 서현우의 머릿속에 또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침대 커버를 가슴에 껴안고 자신을 쳐다보던 그 아이 말이다.서현우의 가슴이 저릿해 왔다.“몸조심해요.”무거운 몇 글자를 내뱉은 후 이천용은 전화를 끊었다. 서현우의 말이 정확하다는 걸 그는 똑똑히 알 수 있었기에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병실 안, 서현우는 전화를 끊은 후 십몇 초짜리 영상을 다시 한번 재생시켰다.남강 군사들이 천지가 떠나갈 듯 목놓아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치열했던 6년 총사령관으로서의 시간이 이 순간 종지부를 찍었다.서현우는 선봉에 서서 누비던 피와 불이 어우러져 기승을 부리던 전장이, 결연한 의지로 목숨을 걸고 싸우던 군사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안녕, 전우여. 안녕, 남강이여.서나영은 여전히 기약 없이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병실은 침 하나 떨어지면 그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서현우는 과거의 기억 속에 빠져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돌연 들려온 초인종 소리가 그를 현실로 복귀시켰다.간호사가 서나영의 약병을 바꿔주러 온 것이었다.서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에서 나설 때 텅 비어있는 옆방 병실에 시선을 돌렸다. 얼마
구양이 알아낸 정보를 모두 읊어낸 뒤에야 서현우는 손의 힘을 풀었다. 의자에 달려있던 철제 손잡이는 이미 변형되어 찌그러졌고 명확한 손자국이 남아있었다.“어르신, 주지현 이 여자 정말 지독합니다! 명령 한 마디만 내려주시면 당장 그 모자의 목을 잘라 바치겠습니다!"“아니야. 내가 직접 할 거야.”서현우의 목소리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주지현!이 여자가 바로 서씨 집안을 불구덩이에 집어넣은 진정한 범인이다!이천용은 그쪽으로 조사하지 않았나? 아니면 조사해냈음에도 감히 말하지 않은 건가?그의 몸속에서 살기가 미친 듯이 피어올랐다.복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 순간 뼈를 파고드는 차가운 한기에 저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심지어 누군가는 충격에 바닥으로 넘어져 비명을 지르기까지 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서현우가 살기를 거두어들였다.그는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분노는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대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극악무도할 수 있단 말인가!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불사하는 사림이다!구양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어르신! 제가 사람을 보낼 테니 쓰세요. 천책 연맹의 사람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요.”서현우는 본래 필요 없다고 하려 했으나 다시 고민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들에게 직접 날 찾아오라고 해.”“네.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어르신의 신분을 알려주지 않을게요.”구양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서현우는 이제 남강의 총사령관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적국 9대 군신을 죽인 무시무시한 전투력과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의술을 갖고 있다. 때문에 여전히 천책 연맹이 모든 대가를 지급해서라도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기에 충분했다.많은 사람들은 서현우와 연을 맺거나 그의 도움을 얻고 싶어 하지만 그 연결 방식조차 찾기 힘들어한다!구양은 서현우와 연락할 수 있고, 서현우를 도울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건 천책 연맹에겐 더없는 영광이라고 생각했다.주지현을 떠올리자 만족
서태훈은 마음속의 고통을 철저히 숨겼다.그는 이미 모든 굴욕을 습관처럼 받아들였다."용 보스, 몇 년 전에 내게서 빌린 돈을 돌려줄 수 있나요?"서태훈의 눈에는 애원하는 빛이 보였다.예전의 용귀는 서 씨 가문 밑에서 일했고 서태훈은 그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태훈은 흔쾌히 그에게 돈 까지 빌려주었다.심지어 빌려준 돈은 모두 합산하면 거의 몇 억에 달했다.그러나 농부와 뱀의 이야기에서 처럼.서태훈이 쫓겨나자 용귀의 태도는 금시 바뀌었고 예전에 서태훈 앞에서 비천한 만큼 날뛰었다.만약 이전의 서 씨 가문이라면 1억은 그다지 큰 돈이 아니었고, 서태훈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복수를 원하고, 주지현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며, 다시 재기해야 한다. 한 푼이라도 소중히 여겨여 할 마당에, 하물며 몇 억이라는 거금을?그래서 서태훈이 여기로 온 거였다.분명히 모욕을 당할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반드시 와야 했다."오오, 맞아요, 생각났어요!"용귀는 문득 깨달았다."맞아요, 내가 몇 년 전에 서 씨네 집에서 돈을 좀 빌렸는데, 얼마나 되죠?""1억 정도. 이자는 필요 없구요. 원금만 갚아주시면 되어요." 서태훈은 말했다."1억? 이렇게 적은 돈이었어요?"용귀가 눈살을 찌푸리며 "아니에요! 내가 10억 넘게 빌린 걸로 알고 있는데 잘못 기억하신 거죠? 에이, 서가주님, 왜 그러세요?"라고 말했다.용귀는 얼굴에 불만의 기색을 띄고, 말을 이었다."서가주님, 10억은 당신에게 아주 적은 돈이죠. 당신 손가락 틈새에서 새어나온 것도 이 정도보다 많아요. 천하의 서가주님께서 왜 이러십니까? 10억이 뭔데요? 그렇죠?"서태훈은 이를 악물며."용 보스, 1억만 빌렸으니 1억만 갚으시면 돼요."라고 답했다."차용증은요?" 용귀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그 말을 듣고 서태훈은 고개를 숙였다.차용증?당시의 서가주는 그것이 필요했을까?1억, 확실히 손가락 틈새에서 새어나온 적은 돈이다. 그 당시의 서태훈
"하하하!"용귀는 웃긴 농담을 들은 듯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병신.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6년 전 낭패를 보고 도망쳐놓고 이제 와서 군복을 입었다고 내 앞에서 잘난 척하는 거야? 너 설마 아직도 내가 네 앞에서 비굴하게 비위나 맞추며 사는 똘마니 용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이에 서현우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의 넌 얼마나 잘났는데?"“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잖아.한동안 그 명망이 높던 서씨 가문.지금은 어떻게 됐는데?하지만 나를 봐!”용귀는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치며 말을 이어갔다.“지금 내가 명령만 내리면 병신이 된 너랑 아무런 쓸모없는 니아비는 절대 이 중연시에서 살아남지 못할거야.”"무서워 죽겠네."서현우는 말로는 무섭다고 하지만 표정엔 전혀 놀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그럼 유상혁과 비교하면?”"유..."득의양양해서 말을 이어가려던 용귀는 하마터면 침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그는 의아해하며 서현우를 바라보았다.삼중문이 갑자기 사라지고 나서 많은 소문들이 돌았었다.그들이 건들지 말았어야 할 인물을 건드려서 그렇게 된 거라고.설마 그 일이 서현우랑 연관이 있는 건가?아니야.그럴 리가 없어.용귀는 고개를 저으며 황당한 가능성을 털어버렸다.말도 안돼.중연시에서 신분과 지위가 있는 분들이라면 모두 다 예전의 서씨 가문 큰 도련님이 쓸모없는 병신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게다가 서태훈조차도 그를 무시하고 밖에서 괴롭힘을 당해도 내버려 두는데.그런 병신이 6년은 커녕 60년이라는 시간을 줘도 아무것도 못해낼 것이 뻔한데 뭘 해내겠어?용귀는 서현우의 어깨에 시선을 옮겼다.군 복무 중인 친척이 예전에 자신의 계급을 자랑하며 말한 적이 있는데 군복을 입으려면 무조건이 견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었다.용귀가 갑자기 웃음을 드러냈다.견장이 없어!견장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하찮은 병사에 지나지 않는다.남강 싸움터에 널리고 널린 게 바로 그런 병사들의 시체다.그들은 이름조차도 못 남기는 법이지.용귀는
슉!서현우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들은 앞으로 쏘아나가는 순간 품속으로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 흔들었다.몽둥이었다.보지 않아도 이 사람들이 무조건 전문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강자들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각자 격투 기술을 가지고 있고 또한 모든 기술마다 아이들의 놀음이 아니라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기술들이이었으니까.남강 국경에 두면 모두 대장직을 맡을 수 있는 일급 고수들이었다."아..."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서태훈은 자신을 잡고 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쓰러진 두 남자를 보며 충격에 빠졌다.두 사람은 모두 다리를 싸안고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질렀다.용귀를 포함 한 다른 사람들도 다.12초!이 많은 사람들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데 1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용귀의 아픔때문에 일그러진 얼굴은 왠지 험상궂었다.서태훈은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움직일 담조차도 없었다.온몸에 소름이 끼쳐 등골이 으쓱한 게 많이 놀란 것 같았다."시끄럽네."다리가 부러진 채 땅에 드러누운 십여 명의 남자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 방 안은 유난히 시끄러웠다.서현우가 비명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다시 움직였다.그러고는 한 방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들을 기절시켰다.빨간 치마 여인은 앵두 같은 입술에 매혹적인 윤기를 띠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어때요?맘에 드세요?""그냥 그래."서현우는 덤덤하게 대답을 하고는 기절한 용귀쪽으로 다가갔다.서현우의 대답에 여인은 눈썹을 찡그렸지만 곧 공손한 자세를 되찾았다.구양 장로께서 무조건 이 남자의 분부에 따라야 한다고 직접 명을 내렸으니까.설사 몸을 깨끗이 씻고 순순히 그의 침대에 누워야 되는 상황이 와도 반항해서는 안 된다고.장로의 이런 태도에서 여인은 이 남자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 지를 알수가 있었다.그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정도로.한편 서현우는 여인이 무슨 생각을 하건 상대할 마음도 없는 듯그냥 말없이
이때 빨간 치마 여인이 다가와 작고 아담한 휴대폰을 용귀에게 건네주었다.용귀는 의아한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이에 여인은 서현우 쪽을 한번 힐끗하고는 말을 이었다."영훈 도련님이야.도련님께서 바꾸래."용귀의 이마에 순간 식은 땀이 흘렀다.이 여자.직접 주영훈과 통화할 자격이 있다니!핸드폰을 건너 받은 용귀는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영...영훈 도련님...”핸드폰 건너편으로부터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용귀야.감히 내 친구를 건드려?간땡이가 부었나?""아닙니다.영훈 도련님..."용귀는 온몸이 나른해지는 듯했다.주영훈이 물었다."빚이 얼마지?"용귀는 표정 하나 없는 서현우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2십...2백만이요.""갚아.갚을 수 없으면 목숨을 내놔.알았어?""예.예.예.걱정 마세요 도련님.꼭 갚을게요!""핸드폰 내 친구한테 돌려줘."용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빨간 치마 여인에게 돌려주었다.용귀의 눈앞엔 바로 붉은 치마 여인의 희고 매끄러운 두 다리였다.예전 같았으면 그는 분명 흥분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힐끔거릴 엄두도 못 내고 그냥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핸드폰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그러고는 1분도 안 돼서 돌아와서는 서현우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며 말했다."현우 도련님.용귀가 빚 진 2백만 외 주영훈이 개인 명의로 이자 2백을 더 지불해 드리겠답니다."서현우는 의아한 눈길로 여인을 보며 물었다."주영훈과는 친구?"이에 여인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니요.저랑 친구할 자격이 없는 놈이에요."여인의 말에 용귀는 충격에 빠졌다!주씨 가문의 제일 후계자.주씨 가문 미래의 가주가 이 여인과 친구할 자격이 없다니!그리고 더 이상한 건 이 여인이 지금 자신이 주영훈한테 대하는 것 처럼 서 씨 가문 쓸모없는 도련님한테 공손한 태도로 대한다는 것이다!서현우...용귀는 순간 눈앞이 흐리멍덩해지는 것 같았다.쓸모없는 놈.병신.쓰레기.찌질이...예전에 서현우한테 씌워진 부
도륜 협회?서현우도 도륜 협회를 잘 알고 있다.도륜 협회는 여러 상인들이 모여 구성된 실력이 아주 강하고 방대한 상업 조직으로 적지 않은 지역의 경제 명맥을 장악하고 있다.남강 국경에서 전쟁이 10년간 지속되는 동안 도륜 협회에서 많은 자원을 제공했었다.그리고 그 곳엔 권세가 막강한 인물들이 아주 많았다.서남의 갑부 임원희가 바로 그중의 한 명이다.하지만 서현우가 제일 의외였던 건 킬러 세력 천책연맹도 이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그것도 그럴 것이 이익이 있으면 갈등도 있는 법이니."내 신분을 알아?"서현우가 물었다.이에 최윤정은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도련님께서 제가 알기를 원한다면 전 알고 있는 거고 모르길 원한다면 모르는 겁니다.”최윤정도 사회에 있을 만큼 있은 사람인 듯했다.능구렁이 같은 대답이었지만 듣기엔 그렇게 거북한 감은 들지 않았다. 특히 미녀가 한 말이라 그런지 한 여인을 정복한 것만 같은 쾌감을 주는 것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그러나 서현우는 여전히 개의치 않아했다.숨길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까.서 씨네 병신 도련님으로서의 과거든 남강 총사령관으로서의 과거든.이후 서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최윤정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차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어디론가로 향했다.그러던 중 서현우가 갑자기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멈춰!"끼익...천천히 달리던 고급차가 서현우의 말에 바로 멈추었다.후방의 세 번째 차도 2초 후에 멈췄다.앞에서 달리고 있던 첫 번째 차의 운전기사는 3초 후 백미러로부터 후방 차들이 따라오지 않는 모습을 보고 바로 멈추었다."현우 도련님?"최윤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서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서현우는 얼굴에 그늘이 진 채 차 문을 열고 내렸다.최윤정도 순간 얼굴색이 변해서는 자신의 말이 서현우의 심기를 건드린 줄 알고 급히 우산을 들고 따라 내려 서현우를 쫓아갔다.같은 시각.첫 번째 차의 검은 양복 두 명과 세 번째 차의 검은 양복 네 명도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