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륜 협회?서현우도 도륜 협회를 잘 알고 있다.도륜 협회는 여러 상인들이 모여 구성된 실력이 아주 강하고 방대한 상업 조직으로 적지 않은 지역의 경제 명맥을 장악하고 있다.남강 국경에서 전쟁이 10년간 지속되는 동안 도륜 협회에서 많은 자원을 제공했었다.그리고 그 곳엔 권세가 막강한 인물들이 아주 많았다.서남의 갑부 임원희가 바로 그중의 한 명이다.하지만 서현우가 제일 의외였던 건 킬러 세력 천책연맹도 이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그것도 그럴 것이 이익이 있으면 갈등도 있는 법이니."내 신분을 알아?"서현우가 물었다.이에 최윤정은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도련님께서 제가 알기를 원한다면 전 알고 있는 거고 모르길 원한다면 모르는 겁니다.”최윤정도 사회에 있을 만큼 있은 사람인 듯했다.능구렁이 같은 대답이었지만 듣기엔 그렇게 거북한 감은 들지 않았다. 특히 미녀가 한 말이라 그런지 한 여인을 정복한 것만 같은 쾌감을 주는 것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그러나 서현우는 여전히 개의치 않아했다.숨길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까.서 씨네 병신 도련님으로서의 과거든 남강 총사령관으로서의 과거든.이후 서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최윤정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차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어디론가로 향했다.그러던 중 서현우가 갑자기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멈춰!"끼익...천천히 달리던 고급차가 서현우의 말에 바로 멈추었다.후방의 세 번째 차도 2초 후에 멈췄다.앞에서 달리고 있던 첫 번째 차의 운전기사는 3초 후 백미러로부터 후방 차들이 따라오지 않는 모습을 보고 바로 멈추었다."현우 도련님?"최윤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서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서현우는 얼굴에 그늘이 진 채 차 문을 열고 내렸다.최윤정도 순간 얼굴색이 변해서는 자신의 말이 서현우의 심기를 건드린 줄 알고 급히 우산을 들고 따라 내려 서현우를 쫓아갔다.같은 시각.첫 번째 차의 검은 양복 두 명과 세 번째 차의 검은 양복 네 명도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
폭우가 미친 듯이 대지를 휩쓸고 있었다.마치 모든 어둠을 깨끗이 씻어내려는 것 마냥.하지만 어두운 건 세상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고막을 진동하는 빗소리 속에서 사람들의 신경은 모두 서현우의 손에 집중되었다.서현우의 침술을 보는 것은 일종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그 자연스럽고 거침없는 손길은 서현우가 자신의 의술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과 극도의 공제력에서 비롯된 것이다.또한 그것이 그가 사신의 손에서 목숨을 빼앗아 올수 있는 배짱이기도 하다.서현우의 침이 한참 노부인의 몸에서 오간 후 노부인은 차차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침을 회수한 후 서현우는 노부인을 들어 안았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솔이에게 물었다."솔이야.집이 어디야?""저기요."솔이는 부서진 나무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서현우는 노부인을 안고 그들의 집으로 향했다.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방안은 어두컴컴했다.전등은 있지만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전원을 끊어버린 게 분명했다.천장엔 몇 군데가 구멍이 났고 빗물이 그 구멍들을 타고 바닥에 놓인 대야에 떨어지고 있었다.서현우는 노부인을 구석진 침대에 눕히고 나서 집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집은 아주 허름했다.집안엔 침대 하나와 커버에 패치투성이지만 두부처럼 가지런하게 개여져 있는 이불 한 채.낡아 빠진 옷장 하나와 나무 탁자 하나.나무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부서진 나무문 옆에는 벽돌로 쌓은 흙아궁이이고 다른 한쪽에는 깨진 타일에 나무토막으로 만든 탁자가 있었다.그 위에는 깨끗한 그릇과 젓가락.그리고 아직 다 먹지 못한 남은 음식들이 있었다.다른 한 구석에는 물병.깡통.고철 등이 많이 쌓여 있었다.그 외엔 아무런 가구도 없었다.전기 제품은 말할 것도 없었고.이것이 바로 최하층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진실한 모습이다.하지만 이 중에서도 서현우가 가장 신경 쓰였던 건 문을 마주하고 있는 벽에 걸려 있는 흑백 액자 두 개였다.왼쪽 액자속에는 주름이 가득한 백발 노인이 남강군만이 입을 수 있는
서현우는 부드럽게 솔이를 보며 말했다."솔이야.그럼 이 아줌마랑 집에 가서 옷 갈아입어.""네."솔이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고는 최윤정의 곁으로 다가갔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최윤정을 바라보며 귀엽게 웃었다."언니 너무 이뻐요."이에 최윤정은 이쁜 미소를 지었다.순수하고 귀여운 솔이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그는 솔이의 작은 손을 잡으며 말했다."솔이 너 참 귀엽구나.언니랑 옷 갈아입어러 가자.""네."최윤정은 솔이를 데리고 옆집으로 갔다.두 사람은 한참이 지나서도 돌아오지 않았다.하지만 서현우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그의 청력이 남달라서 옆집에서 울려 퍼지는 샤워 소리와 웃음 소리가 고스란히 귓속으로 들어왔으니까.문밖의가 비가 아무리 크다 해도.20분 후.두 사람 대신 우산을 쓴 남자가 급히 문밖으로부터 달려와서는 꽁꽁 싸맨 포장봉투를 서현우에게 건넸다."도련님.약을 사왔습니다.""고마워."서현우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봉투를 열어 약을 틀리게 사오지 않았는지 확인한 다음 약을 달이기 시작했다.한약 냄새가 곧 집 안에 가득 찼다.이때 최윤정과 솔이가 돌아왔다.두 사람은 이미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최윤정이 갈아입은 옷은 솔이 엄마의 것인 듯했다.두 사람은 몸매가 비슷했는지 옷이 딱 들어맞았다.하지만 소박한 검은색과 회색을 위주로 한 옷이었다.딱 봐도 2~3년은 입은 낡은 옷이었다.그러나 옷이 아무리 낡았어도 최윤정의 매혹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솔이가 갈아입은 옷도 엄청 수수했지만 앳 된 얼굴이 인형마냥 귀여워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아껴주고 싶어진다.서현우는 나쁜 놈들이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얼굴을 보고 주먹을 날릴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니들 대체 뭐야?우리 삼촌이 진짜 용귀라고!용 보스!너희들은..."큰비가 좀 작아지자 밖에서 미친 듯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솔이는 소리에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서현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용귀 보고 당장 기어 오라 그
청년은 용귀의 험상궂은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삼촌...""난 니 삼촌이 아니야!사람을 잘못 봤어!난 너 같은 개자식을 모른다고!"지금 이 순간 용귀는 눈앞의 청년을 물어 죽이고 싶었다.두 다리와 모든 것을 바쳐 간신히 목숨을 건졌는데!설마 이 나쁜 놈 때문에 목숨을 여기에 버려야 하는 건 아니겠지?최윤정이 느릿느릿 걸어와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진짜 몰라?""진짜에요!진짜 몰라요!난 이 사람을 몰라요!"용귀가 겁에 질려 말했다.청년은 어리둥절해졌다.최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난 이 아이의 몸에 있는 뼈들을 하나하나씩 아작 낼 건데.의견 없는 거지?"용귀는 바닥에 엎드려 병아리가 쌀을 쪼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없습니다!난 이 사람을 본 적도 없습니다!감히 현우 도련님의 미움을 사다니.죽어도 쌉니다!""삼촌!"청년은 온몸을 떨고 있었다.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보호해 주겠다던 삼촌이 어떻게..."전 분명 삼촌이 시켜서 온 거라구요!전..""꺼져!잡놈아!너 대체 누구야?왜 날 해치려는 건데?"용귀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그냥 목숨만 지키고 싶을 뿐.최윤정이 입을 열었다."끌고 가."검은 양복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청년의 멱살을 잡고 마치 짐승을 끌듯 끌고 갔다."용귀 이 개자식아!내가 네 조카잖아!우리 아빠가 네 친형제라고! 니가 어떻게...아!"너무 시끄러웠는지 검은 양복 남자가 한 방을 날렸다.청년은 아파서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그러고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검은 양복은 쓰레기를 버리듯 그를 바닥에 누워 있는 다른 네 남자 옆에 버렸다.최윤정은 용귀에게 말했다."돈 준비해 놓고 있어.”"이미...이미...준비해 놓았습니다."용귀는 자신이 지금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조금만 잘못되면 영원히 어둠 속에 갇혀있어야 된다는 것도.최윤정은 그에게 눈길 한 번 더 주지 않고 자리를 떴다.서현우만 아니었으면 그는
솔이가 그린 그림에는 엄마.솔이.그리고 노부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서현우는 모든 그림을 보고나서 칭찬도 해주었다.이에 솔이는 활짝 웃었다."솔이 아빠는?"서현우가 물었다.이 물음을 물었을 때 서현우의 기분이 그닥 좋지는 않았다.아버지와 남편이라는 두 배역은 남자들의 평생의 책임이자 영광이다.서태훈은 비록 아직 살아 있지만 서현우는 한 번도 부성애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솔이의 그림 속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못 봤을 때 같은 처지에 처해 있는 친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따라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이 남자에 대해 다소 분노를 느꼈다.물론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연이 있을 수도 있으니 서현우가 솔이에게 물어본 것이었다.하지만 서현우의 물음에 솔이의 웃음이 처음으로 입가에 굳어 버렸다.그러고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림들 속에서 적지 않은 그림들을 뽑아 서현우의 앞에 놓았다.스파이더맨.슈퍼맨.거인...모두 세계를 구했던 조작된 영웅들이다.솔이의 눈가엔 눈물이 맺힌 듯했다.하지만 그는 울지 않고 꿋꿋하게 대답했다."이 사람들이 바로 솔이의 아빠예요."서현우는 가슴 한편이 찔린 듯 아파났다.솔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철이 들었다.“아빠가 영웅이야?”"네."솔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아빠는 영웅이에요!""엄마가 그랬어?"솔이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는 아빠가 나쁜 사람을 잡으러 가서 솔이를 보러 올 시간이 없는 거라고 했어요.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거예요."서현우는 솔이의 머리를 애틋하게 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맞아.삼촌도 솔이의 아빠가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라고 믿어.솔이의 아빠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러 간 거니까 솔이가 이제 어른이 되면 꼭 솔이 보러 돌아올 거야."솔이는 활짝 웃었다.눈가의 눈물이 빛났다.얼마 안 지나 솔이는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비도 맞고 통곡까지 했으니 피곤할 법도 했다.그러고는 얼마 안 돼서 서현우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서현우는 솔
방안엔 촛불이 켜져 있었다.끝까지 버티고 이사를 가려 하지 않는 자들은 물과 전기를 쓸 자격이 없다.그래서 최윤정은 흙아궁이로 나뭇조각들을 태워 저녁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색이 빠져 누렇게 된 탁자 위에는 반찬 네 종과 국 한 그릇이 놓여져 있었다.고기는 없지만 색깔과 향기가 모두 갖추어져 있어 충분히 침을 꼴깍하게 만들었다.제한된 조건으로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니.최윤정의 요리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잠자고 있던 솔이가 코를 찡긋거리며 일어났다.향기로운 반찬 냄새에 깬 듯했다.서현우는 솔이를 안아서 식탁 앞에 앉혔다.최윤정이 깨끗한 그릇과 젓가락을 가져다주었다.하지만 솔이는 젓가락을 받지 않고 먼저 서태훈을 향해 인사를 했다."할아버지 안녕하세요.저는 솔이라고 해요."마음이 아플 정도로 철이 들었다."솔이 참 착하네."서태훈은 솔이를 보자마자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그를 바라보노라니 상처가 가져다주는 아픔도 많이 줄어드는 듯했다.서현우가 입을 열었다."솔이야.밥 먹어.""할머니는?""할머니는 아직 안정이 필요하셔.하지만 아저씨가 약속할게.내일 아침이면 할머니께서 깨여나실 거야."솔이는 그제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어둠 속에서 피곤함이 고스란히 묻은 그림자 하나가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그러다 집안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재빨리 달려갔다."솔이야!"여자의 목소리는 매우 듣기 좋았다.목소리의 주인이 얼마나 예쁠지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빛이 여인의 얼굴에 비추는 순간 솔이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다 멍해졌다.여자는 하나도 이쁘지 않았다.심지어 험상궂었다.그녀의 얼굴에는 여러 개의 흉터가 나있었다."엄마."솔이는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여인을 향해 달려갔다.여인은 솔이를 품에 안고 고개를 들고 경계하는 듯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그러다 눈빛이 서현우를 향한 순간 온 몸이 떨렸다.그 순간.서현
서현우는 감격에 겨워 말했다."당신이 살아만 있으면 된 거야.내가 사죄할게.내가...""꺼져!당장 꺼지라고!꺼져!"진아람은 솔이가 울고 있는 것도 눈치 못 채고 회한이 가득 담긴 눈으로 서현우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그러다 너무 흥분했는지 그만 눈을 뒤집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엄마! 엄마!"이에 솔이가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서현우는 얼른 다가가 손을 뻗어 진아람의 맥을 짚었다.그러고나서는 한숨을 돌렸다.그냥 갑자기 흥분해서 기절한 듯했다.진아람을 침대에 눕힌 서현우의 마음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그러다 웃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비록 진아람은 기절했지만 그에 대한 원망은 그대로 얼굴에 남겨져 있었다.찌푸린 눈썹이 서현우의 마음을 깊이 찔렀다."엄마... 엄마... 엄마..."솔이는 아직도 울부짖고 있었다.가슴이 찢어지게.이에 서현우는 솔이를 위로했다."솔이야.울지 마.엄마 괜찮아.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야.한잠 자고 나면 괜찮아.”솔이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아저씨 나쁜 사람 맞죠?"서현우의 가슴이 순간 조이는 듯했다."엄마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쁜 사람이에요.그러니 아저씨도 나쁜 사람이에요.솔이는 아저씨를 좋아하지 않을래요!"서현우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옆에 서있던 최윤정과 서태훈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그들도 얼굴에 흉이 진 여인이 진아람이라고 믿고 있었다.아니면 저렇게 큰 반응을 보였을 리가 없었으니까."정말로 죄를 짓는구나!"서태훈은 마음이 씁쓸해져서 중얼거렸다."에헴..."문 밖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노부인이었다.계획대로면 내일에야 깨어났을 것인데 아마도 진아람의 비명에 놀라 깨어난 듯했다."할머니."서현우는 얼른 일어나 노부인을 부축했다.노부인은 서현우를 자세히 살펴보며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은 누구시죠?""저는..."서현우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쪽이 솔이의 아빠인 듯하네요."노부인의 목소리는 허약하고 무기력했다.솔이는 아직도 슬프게 울고
노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현우는 사색에 빠졌다.진아람은 진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경제적인 방면에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었다.그래서 진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눈부신 보석마냥 중연 시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계획대로면 진아름은 진 씨 가문 미래의 가주였다.하지만 6년 전 그날 밤.보석이 빛을 잃었다.진아람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그냥 깨어났을 땐 입고 있던 옷이 없어졌고 옆엔 한 청년이 멍을 때리고 있었다.그 후 기자들이 갑자기 방으로 몰려 들어왔고 플래시 속에서 진아람의 인생은 빛을 잃었다.서현우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계속 남아있다간 목숨도 건지기 힘들었으니.그 뒤로 진아람의 하늘은 무너졌고 옛 사진 마냥 삶은 광채를 잃었다.중연 시의 곳곳에서 그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서 씨 가문의 그 병신 도련님도 가리지 않으면서 웬 고상한 척을 다 떨었냐며.서태훈의 죄행에 분노하는 자들도 있었고 오히려 기뻐하는 자들도 있었다.진아람은 수모를 당한 세상에서 인생의 여러 면을 보았다.그 일로 진 씨 가문은 명예가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업에서도 큰 타격을 입었다.진 할머니는 하마터면 화병 때문에 병원에 들어갈 뻔했고 그후로 부터 진아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다 된 밥상을 오염시킨 쥐를 보는 것 마냥 증오와 징그러움이 가득 차 있었다.한 여자아이가 수모를 겪고 온 세상이 그녀에 대해 악의로 가득차있을 때 유일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집이었는데.그의가족들은 추호의 따뜻함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여 극히 가혹한 질책과 욕설을 퍼부었다.당시 진아람의 마음은 얼음장마냥 굳어버렸고 정신 상태도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설상가상으로 한때 그녀가 모독할 수조차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남자들이 몰려들어 경멸과 모욕으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다.탐욕이 담긴 시선과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더러운 말들이 그의 연약한 마음을 아프게 긁어댔다.그렇게 혼이 없는 시체마냥 두 달 동안을 보낸 진아람은 절망을 안고 차가운 집을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