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목소리는 곁에 있던 장군들과 현갑군들에게 전해졌다.이방은 하고 싶은 말은 직설적으로 하는 사람이다.그녀의 발언으로 송석석을 무시하던 다른 사람들의 야유 소리가 더욱 높아졌다.수군거리던 목소리는 점점 욕설로 변했다.화가 난 시만자는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이곳에 규율이 없었다면 당장 올라가서 이방의 얼굴부터 날렸을 것이다.그러나 송석석은 전혀 화가 나보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그녀를 도발했지만 송석석은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차분한 얼굴로 이방을 바라보며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송석석은 무표정하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빛만 짙어졌을 뿐이다. “송 장군!” 사여묵은 장대성의 손에 든 긴 막대기를 그녀에게 던졌다. “도화창 대신 이것을 사용하시오.”송석석은 막대기를 잡은 뒤, 자신의 도화창을 사여묵에게 던졌다. “네!”그녀는 북명왕의 뜻을 알아차렸다. 만일의 유혈사태를 대비해 송석석이 참지 못하고 도화창으로 이방의 목을 베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이방은 굴욕을 느끼고 차갑게 웃었다. “막대기로 싸웁니까? 그렇게 자신 있어 하니 저도 봐 드리지 않겠습니다.”송석석이 병기를 사용하지 않으니 이방도 검 대신 막대기를 사용하는 게 공평하지만, 이방은 그러지 않았다. 실패할 시 그녀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그들 사이에는 계급의 불공평함이 존재한다.이방은 검을, 송석석은 나무 막대기를 사용해도 무방하다.모닥불이 점화되었다. 핏빛 자국들은 불길에 가려졌지만 가운데 서 있는 두 사람을 비추기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은 이번의 무술 대련을 기대하고 있다. 이방 장군이 송석석 장군의 갑옷을 벗기고 송석석의 무릎을 꿇린 다음 현갑군의 두 손을 들어주길 기대했다.전북망도 살짝 기대했다. 필명과 거짓된 대련을 했다고 여겼다.이방은 절대 지면 안 된다. 이방이 지면 그녀가 남강 전쟁터에서 세웠던 군공을 잃을 것이다.그는 이방을 향해 소리쳤다. “이 장군, 침착하게 응하시오!”시만자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발끝에 있
이방은 송석석의 짙은 눈동자를 보고 당황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막대기에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평범한 막대기가 아닌가? 그래, 북명왕이 저 여자를 지키려고 막대기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절대 평범한 막대기를 줬을 리 없어.’이방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손에 든 막대기 결코 평범한 막대기가 아니죠?” “보아하니 원수님께서 장군을 지키려고 견고한 무기를 줬나 봅니다.”나무 막대기와 도화창은 길이가 비슷했다. 원래는 영지의 지지대로 사용하는 막대기였다. ‘그러나 북명왕이 송석석에게 그 흔한 막대기를 줬을 리 없다.’옆에서 구경하던 병사들은 이방의 말에 수군 거리며 송석석의 무기를 의심했다.일부 병사는 불공평한 싸움이라며 반발했다. “비열한 수법으로 속일 거였으면 애초에 도화창을 내려놓지 말든가.”“그러니까, 공평하지 않아.”사람들의 분쟁 소리가 점점 커지자, 송석석은 작은 칼로 자신의 나무 막대기 한 부분을 비뚤비뚤하게 잘라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끝이 고르지 못하게 부러진 나무 막대기를 본 병사들도 조용해졌다. 이방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송석석의 손에 진짜 나무 막대기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이를 악문 이방은 다시 송석석에게 달려들었다. 신속하고 힘이 넘치게 달려들었지만 송석석이 나무 막대기를 세워서 막았다. 이방의 검이 한쪽으로 도는 틈에 한 손으로 막대기를 잡아 밀었고 막대기는 이방의 복부를 강타했다.바닥에 떨어진 막대기를 줍기 위해 송석석이 손을 뻗었고 막대기가 그녀의 손으로 날아갔다.“와!” 사람들은 놀란 듯 함성을 질렀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무슨 요법이지?”“바다게 있던 물건을 어떻게 공중에 띄울 수 있지?” “분명 요법이야.”시만자가 차갑게 대꾸했다. “내력으로 흡착하는 것이다. 뭘 안다고 함부로 떠들어? 내력이 뛰어난 무자만 할 수 있는 거다.”이방이 놀란 눈빛으로 뒷걸음질쳤다. 순간 목에서 울렁이는 이물감이 느껴졌고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이방이 피를 토해냈다. 송석석이 날린 발길질에 이방은 한참을 아파하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얼굴이 희끗희끗해진 그녀는 손을 뻗어 자신의 목을 만졌다. 손가락에 피가 묻어나왔다. 이방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방은 깜짝 놀란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공이다.‘어떻게 이리 대단한 무공을 가질 수 있지?’ 예전에 송석석이 흩날리는 꽃잎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그때는 농담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직접 겪어보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신속하게 패배를 맛보았다. 이바은 낯이 뜨거웠다. 송석석이 인맥으로 지위를 상승했다고 비웃던 자기 자신이 떠올랐다.심지어 아까는 큰소리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송석석을 비웃었다.그러나 송석석은 실력으로 이방에게 반격했다.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한 말이라곤 패배를 인정하겠느냐는 말뿐이었다. 전북망이 황급히 앞으로 나와 이방을 부축했다. “다쳤소? 괜찮소?”이방은 전북망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통증을 애써 참았지만 눈 밑으로 고이는 눈물을 억누르지 못했다.그녀는 지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창피함을 느꼈다. 남강의 전장에서 최선을 다해 적을 처단하며 세웠던 군공이 사라진다.그러나 희끗희끗해진 더 한 처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국의 제일 여장의 자리를 송석석에게 건네야 한다.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환호성이 장내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방의 머릿속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감돌았다. ‘패배를 인정할 수 없어!’송석석보다 출신이 뛰어나지 못한 이방이다. 이방은 그녀처럼 잘난 아버지도 없었다. 송석석이 이토록 강한 무공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가문의 세력 때문이라고 믿었다. 무림의 고수가 송석석 아버지와 친분이 있기에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믿었다.이방은 자기가 송석석에게 패배한 게 아니라 송석석의 출신에 패배했다고 믿었다.자기
전북망의 본가, 문희거(文熙居). 창호지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아른거리며 그림자를 흔들어놓았다. 송석석(宋惜惜)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포갠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결혼 후 곧바로 전장으로 떠나 일 년이나 보지 못했던 남편이었다. 전북망(战北望)은 전장에서 돌아온 복장 그대로 당당히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폐하의 교지(旨意)까지 내려진 이상, 되돌릴 수 없소. 이방(易昉)은 이 집에 들어오게 될 것이오."송석석은 손깍지를 끼면서 어두운 눈빛으로 전북망에게 물었다."태후(太后)마마께서도 능력을 인정한, 그 이방 장군님이 첩이 되길 받아들이셨단 말씀입니까?"그 말을 들은 전북망의 눈빛에 살짝 노기가 서렸다."아니, 이방은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평처(平妻: 본처와 같은 지위를 가진 여인)라, 그대와 다를 것이 없소."송석석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장군님도 아시다시피 평처라는 명칭은 듣기 좋을 뿐, 실제로는 첩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전북망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첩이라니, 이방과 나는 전장에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소. 그리고 이건 나와 이방이 군공(军功: 군사적 공로)으로 받은 교지이니, 사실상 그대의 동의는 필요 없소."송석석은 억누를 수 없는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라, 그럼 출정 전에 저에게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일 년 전, 출정 명령이 떨어진 혼례 첫날밤에 전북망은 약속했었다. 평생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절대로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송석석이 언급하자 그제야 약속을 떠올린 전북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 약속은 잊어버리시오. 그때 나는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했소. 그저 그대를 아내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뿐. 하지만 이방을 만나고 마음이 달라졌소."이방을 떠올린 그의 표정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그가 숨길 수 없는 깊은 감정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이방은 내가 만난 그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소.
전북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어려운 길을 자처하시오? 이 혼인은 폐하의 어명이오. 더군다나 이방이 들어온다고 한들, 서로 다른 별채에 머물 텐데, 뭐가 걱정이오? 이방은 안살림에 관심이 없소. 또한 그대의 권한을 빼앗는 일도 없을 것이오. 그대가 중요시 여기는 것들, 이방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걸 모르겠소?”“권한이요? 제가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이러시는 줄 아십니까?”송석석이 반문했다. 장군부(將軍府: 장군의 집) 살림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노부인한테 들어가는 약값만 해도 매달 수십 냥(两: 화폐 단위)이었고, 그 외 사람들한테 들어가는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그녀가 들고 온 지참금이 아니었다면, 이 집안은 진작에 파산했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헌신한 대가가 겨우 이거라니, 정말 황당했다.반면, 전북망도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됐소. 더 말하지 않겠소. 본래 통보만 하면 되는 일이었고, 그대가 허락하든 하지 않든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오.”그 말을 끝으로 전북망은 소매를 털며 자리를 떠났다. 송석석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아가씨.”보주(寶珠)가 옆에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장군님도 참 너무하세요.”“됐어, 이렇게 된 이상 움직이자.”송석석이 차갑게 눈빛을 굳히며 보주를 쳐다보았다.“첫날밤도 치르지 못했는데,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고 볼 수도 없지. 일단 가서 내가 이 집안에 들어올 때 들고 온 지참금 목록을 가지고 와 봐.”“지참금 목록은 왜요?”보주가 물었다. 그러자 송석석이 그녀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툭 치며 답했다.“바보야. 계속 이 집에 머물 거야?”그러자 보주가 이마를 감싸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이 혼사는 부인께서 아가씨를 위해 직접 예비하신 거잖아요. 어르신도 살아계실 때, 얼마나 아가씨가 잘 살길 바라셨는데요.”부모님의 얘기가 나오자 송석석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송석석의 부모님은 참 금슬이 좋았다. 그녀를 포함해 자식이 여섯이나 됐지
보주가 지참금 목록을 가져오며 말했다.“근 1년 동안, 아가씨께서 이 집안 살림에 보탠다고 사용한 화폐만 해도 6천 냥이 넘어요. 그래도 다행히 상점과 주택, 장원은 그대로예요. 또한 부인께서 남겨주신 예금 증서와 집문서, 땅문서도 그대로 상자에 담겨 있어요.”“알겠어.”송석석은 목록을 보며 전에 어머니가 준 지참금을 떠올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딸이 시집에서 고생할까 봐 참 많은 지참금을 챙겨줬었다. 정말 그리움이 사무쳤다. 옆에 있던 보주도 그녀의 기분에 공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이곳을 나간다면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진북후부, 아니면 매산입니까?”송석석은 아직도 그 처참했던 진북후부의 현장이 생생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가슴속에서 밀려 나왔다.“어디로 가든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아가씨, 이대로 떠나면 진짜 후회 안 하시겠어요?”송석석이 담담히 답했다.“후회할 게 뭐 있어. 내가 떠나지 않으면 평생 이들 사이에 괴롭게 살아야 할 텐데. 보주, 우리 집엔 이제 나밖에 없어.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 가족들도 저승에서 마음 편히 쉬지.”“아가씨!”보주가 기어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는 송석석과 마찬가지로 진북후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송석석의 가족들이 몰살당할 때, 보주의 가족들도 함께 희생되었다.장군부를 떠나게 되더라도, 진북후부로 돌아가는 건 편치 않았다. 그곳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아픔이었다.“아가씨,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송석석이 한층 깊어진 눈동자로 답했다.“있기는 하지. 폐하께 아뢰어 그동안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이룬 공로를 명목으로 교지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해 봐야지. 통하지 않는다면, 금란전(金鑾殿: 황제의 궁) 벽에 확 머리 박고 죽어버리겠다고 협박도 해보고.”보주가 놀라 송석석의 다리를 부여잡았다.“아가씨, 그건 절대로 아니될 말입니다!”송석석이 냉철히 눈을 빛내며 나지막이 웃었다.“농담이야. 설마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까? 교지를 철회해주지 않는
노부인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이제 겨우 한 번 만나봤을 뿐인데,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리고 어차피 폐하께서 정하신 혼사, 무를 수는 없잖니. 앞으로 두 사람은 밖에서 나랏일을 하고, 너는 내실 관리하면서 함께 영광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잖니.”“나쁘지 않죠.”송석석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만 명색이 장군님이신데,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옵니다.”노부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그게 무슨 말이니? 폐하께서 하사하신 혼인인데, 어떻게 첩으로 들어오게 할 수가 있겠어. 게다가 그녀는 조정(朝廷)의 대신, 나랏일 하는 관리(官員)다. 그런 분을 어떻게 첩으로 앉힐 수가 있겠니? 당연히 평처로, 본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대우를 받아야지.”송석석이 대답했다.“당연히 본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요? 조정에 그런 규칙도 있었습니까?”노부인이 다소 냉담해진 표정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석석아, 너 마음이 넓은 아이였잖아. 장군부에 시집왔으면, 장군부의 며느리 답게 굴어야지. 병부(兵部: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나라 부서) 심사에서도 이방 장군이 북망보다 더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 발표됐어. 너는 그들 부부와 한 마음이 되어 앞으로도 쭉 내실 관리를 해주면 돼. 그럼 언젠가 너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게 될 거야.”송석석이 냉담하게 말했다.“그들 부부와 한 마음이 되라고요? 전 사양하겠습니다.”노부인이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사양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부터 내실 담당은 너였잖니?”송석석이 말했다.“아니죠. 내실 담당은 원래 큰형수님의 소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큰형수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제가 잠시 돌봤지만, 이젠 괜찮아졌으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맞죠. 내일 장부 맞춰서 인수인계 하도록 하겠습니다.”그러자 큰형수라 불린 여인, 민씨가 다급히 끼어들었다.“나 아직 다 회복 못 했어. 지난 일 년 동안 네가 잘해왔으니, 앞으로 내실 관리는 네가
그녀가 나가고 나자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송석석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노부인의 말조차 무시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내버려둬. 지까짓게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쩔 테야?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어.”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의지할 친정도 없었으며 장군부 외에 머물 곳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송석석을 억압하지도 않았다. 이방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정실 부인이었다.다음 날 아침, 송석석은 보주를 데리고 진북후부로 돌아갔다. 진북후부는 반년이나 방치되어 있어 곳곳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심지어 정원은 낙엽이 쌓이다 못해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그런 진북후부를 바라보며 송석석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차갑게 식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신, 사방에 뿌려진 피, 도륙된 하인들, 모든 것이 그저 악몽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이곳에 돌아와도 그 누구도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다. 송석석은 보주와 함께 제사 음식을 준비해 가족들의 위패가 놓여 있는 사당(祠堂)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고 고인들을 향해 절을 올렸다. 다시 몸을 일으킨 그녀의 눈빛엔 결연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만약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면, 부디 앞으로 제가 내리게 될 결정을 용서해 주세요. 두 분의 소원대로 시집가 자식도 낳으면서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전북망은 좋은 지아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보주도 옆에 있고, 꼭 행복하게 살아 갈게요.”옆에 있던 보주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인사를 마치고, 그녀들은 다시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향했다.정오(正午: 낮 12시), 가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송석석과 보주는 궁문 앞에서 미동도 없이 황제의 허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두 사람을 불러주지 않았다.보주가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폐하께서 아가씨의 의도를 알아차리셔서 만나주지 않으시려나 봐요. 어젯밤 저녁도 안 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