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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녀가 나가고 나자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송석석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노부인의 말조차 무시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내버려둬. 지까짓게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쩔 테야?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어.”

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의지할 친정도 없었으며 장군부 외에 머물 곳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송석석을 억압하지도 않았다. 이방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정실 부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송석석은 보주를 데리고 진북후부로 돌아갔다. 진북후부는 반년이나 방치되어 있어 곳곳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심지어 정원은 낙엽이 쌓이다 못해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그런 진북후부를 바라보며 송석석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차갑게 식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신, 사방에 뿌려진 피, 도륙된 하인들, 모든 것이 그저 악몽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이곳에 돌아와도 그 누구도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다.

송석석은 보주와 함께 제사 음식을 준비해 가족들의 위패가 놓여 있는 사당(祠堂)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고 고인들을 향해 절을 올렸다. 다시 몸을 일으킨 그녀의 눈빛엔 결연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만약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면, 부디 앞으로 제가 내리게 될 결정을 용서해 주세요. 두 분의 소원대로 시집가 자식도 낳으면서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전북망은 좋은 지아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보주도 옆에 있고, 꼭 행복하게 살아 갈게요.”

옆에 있던 보주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그녀들은 다시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향했다.

정오(正午: 낮 12시), 가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송석석과 보주는 궁문 앞에서 미동도 없이 황제의 허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두 사람을 불러주지 않았다.

보주가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아가씨의 의도를 알아차리셔서 만나주지 않으시려나 봐요. 어젯밤 저녁도 안 하셨는데, 오늘 조반도 안 드시고, 정말 괜찮으세요? 뭐라도 드실 거 좀 가지고 올까요?”

“아니, 괜찮아. 안 배고파.”

송석석은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은 오직 하나, 한시라도 빨리 전북망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아가씨, 너무 자기 자신한테 모질게 굴지 마세요. 몸이 상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차라리 그냥 넘어가 주는 건 어때요? 어차피 이방 장군님이 들어오신다고 해도, 정실 부인의 자리는 아가씨 거잖아요. 평처라고 해도, 결국 첩일 뿐, 조금만 참으시면 안 돼요?”

송석석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보주, 너까지 그런 나약한 소리 하지 마.”

보주는 한숨이 나왔다. 장군이 돌아오면 아가씨도 좀 편한 날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더 큰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녀는 송석석을 지지해야 할지, 아니면 말리고 나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소방(御書房: 왕이 책을 읽거나 집무를 보는 방), 오 대반이(大伴: 황실 고위 관리직) 벌써 세 번이나 황제에게 보고를 올렸다.

“폐하, 전 장군 부인이 아직도 궁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숙청제(肅清帝: 황제의 이름 또는 호칭)가 상소문을 내려놓고 미간을 문질렀다.

“가서 만날 수 없다고 전해라. 교지가 내려진 이상, 철회는 있을 수 없다. 어서 돌려보내거라.”

“금군(禁军: 황제 직속 군대)들이 말렸지만, 말을 듣지 않습니다. 벌써 한 시진째 폐하를 아뢰옵기를 청하고 있나이다.”

숙청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군공의 명목으로 혼인 교지를 내려달라는데, 아무리 짐이라도 어찌 거절할 명목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나라에 큰 공로를 세운 장군들인데, 들어주지 않으면 안 좋은 본보기가 될 게 뻔하지.”

오 대반이 답했다.

“폐하, 군공으로 따지면 진북후부와 소(蕭) 대장군의 공로가 더 큽니다.”

숙청제는 이제는 고인이 된 송석석의 아버지, 송회안을 떠올렸다. 송회안은 그가 아직 태자였던 시절, 처음 군에 들어갔을 때 이끌어준 사람이었다. 황제는 송석석하고도 인연이 있었다. 그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난세를 딛고 황제가 된 인물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전쟁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전북망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지금 조정에는 황제의 동생 북명왕(北冥王) 말고는 든든한 무장이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서경과의 전쟁에서 소 대장군의 셋째 아들은 팔을 잃었고 일곱째는 전사했다. 그래서 황제는 더욱 인재를 아꼈다.

하지만 오 대반의 말대로, 전북망과 이방보다는 진북후부의 군공이 훨씬 더 컸다.

“들여보내거라. 그녀가 이 혼인을 받아들인다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들어줄테니.”

오 대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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