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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전북망은 그제야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 혼인은 내가 전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얻은 것이오. 폐하께서 교지를 철회하게 된다면 장병들도 사기가 꺾일 텐데, 섣불리 움직이기 전에 생각이라는 걸 먼저 하시오. 오늘 폐하께서 날 소환하시고도 만나주지 않았다는 건 아시오? 그대가 쓸데없이 가서 폐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오. 더 이상 이 일로 소란을 만들지 마시오. 난 할 만큼 했으니, 부디 조용히 지내시오. 이방과 결혼한다고 해도 그대와 자식은 볼 것이니, 그대도 의지할 곳이 생길 것이오.”

송석석이 냉담히 그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보주야, 손님 배웅주거라.”

보주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장군님, 이만 나가주시길 바랍니다!”

전북망이 소매를 휘날리며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보주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놀란 송석석이 보주에게 다가가며 달래듯 말했다.

“보주야, 왜 그래?”

“아가씨가 너무 불쌍해서요. 아가씨, 억울하지도 않으세요?”

보주가 코맹맹이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송석석이 웃으며 답했다.

“억울하지. 하지만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차라리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게 낫지. 나 송씨야, 왜 이래? 송씨는 절대로 꺾이지 않아”

보주가 손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왜들 아가씨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어요. 그동안 아가씨가 이 집 사람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그들의 마음엔 내가 없나 보지.”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이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지참금을 노리고 혼인을 허락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보주는 더 서글프게 울었다. 누가 뭐라해도 그녀에겐 송석석이 항상 우선이었다.

“자, 이제 그만 울고 일하자. 그대로 우린 살아있잖니.”

송석석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서!”

“네, 아가씨.”

보주가 눈을 벅벅 닦으며 말했다.

“처음 아가씨와 온 사람들도 모두 데려가실 건가요?”

“내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니, 여길 떠나게 된다면 좋은 취급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함께 데려가야지.”

처음 시집올 때, 그녀의 어머니는 경험이 풍부한 여 시종 두명과 함께 네 명의 하인 그리고 네 명의 여종도 함께 보냈다.

노부인이 병상에 눕게 되고, 그녀가 내실 관리를 맡게 되면서 자연스레 함께 온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지책들이 맡겨졌다. 전북망과 그의 아버지 모두 나라에서 봉록(俸祿: 관리들에게 지급되는 급여)을 받았으나, 많은 금액은 아니었기에 장군부는 처음부터 하인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송석석의 집안처럼 따로 운영하는 사업체도 없었으니, 늘 돈이 부족 했었다.

그녀가 이 집에 시집오면서 지참금을 많이 들고 온 덕에 근 일 년간은 부족함이 없이 지냈지만, 앞으로 일은 알 수 없었기에 송석석은 함부로 사람을 더 고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다달이 나가는 노부인의 약값까지, 그녀에겐 정말 힘든 일년이었다.

다음 날, 송석석은 평소처럼 노부인을 간호하러 갔다. 오늘은 단신의가 방문하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한 노부인이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좀 있으면 이방도 올 것이다. 서로 얼굴 익히고 자매처럼 잘 지내거라.”

송석석은 대꾸하지 않고 단신의의 진료가 끝나길 기다렸다. 잠시 뒤, 단신의가 처방을 완료한 것을 본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

“백부님, 제가 밖까지 모셔다드릴게요.”

“그래, 너에게 할말 있었는데, 잘 됐다.”

단신의는 조수에게 약상자를 가져오라고 명한 다음, 인사도 않고 송석석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그가 송석석과 걸음을 맞추며 말했다.

“이 녀석아, 이 집안 사람들에게 너무 잘해주려 하지 말 거라. 위기가 닥치면 너에게 등돌릴 사람투성이다. 그리고 더 이상 날 부르지 말거라. 다시는 이 집안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으니.”

송석석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백부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곧 이혼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단신의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네. 송씨 집안 여식이라면, 이 정도 결단력은 있어야지. 난 이 집에서 나온 돈 따위 필요 없다. 너만 아니었다면, 진료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경험이 풍부했던 단신의는 첫 만남부터 노부인의 탐욕스러운 성향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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