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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노부인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 빌리다니? 그런데 자신이 직접 한 말이라, 차마 무를 수가 없었다. 다만 속으로 철없는 송석석의 모습에 원망을 쏟아낼 뿐이었다. 온 집안에 자기 혼자밖에 안 남았는데, 남편한테 돈을 쓰지 않으면 어디에다가 쓰겠단 말인가?

전북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해결하겠소. 당신 돈 따위 필요 없소.”

이 말을 끝으로 그는 방을 나가버렸다.

그러자 또다시 시선이 모두 송석석에게 쏟아졌다. 송석석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말했다.

“그럼 다른 일 없으면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석석아, 넌 남거라!”

노부인이 분노한 목소리로 나가려던 송석석을 불러 세웠다. 아직 단신의가 남겨둔 약이 있었기에, 잔기침 하나 없이 매우 기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송석석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더 하실 말씀 남았어요?”

노부인이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가 궁에 가서 폐하를 만났다는 걸 알고 있다. 참 지혜롭지 못했구나. 이방이 북망에게 시집오게 되면 공을 세울 때마다 우리 가문도 같이 올라가지 않겠느냐? 그럼 너도 덕을 쌓고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야. 안 그러니?”

송석석은 반박하지 않았다.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그녀가 다시 수그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노부인은 다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요구했다.

“만 냥, 너한텐 그리 많은 금액도 아니잖아. 거기에 머리 장식과 장신구를 더하면 대략 2, 3천 냥만 더하면 될 텐데, 대신 내주는 게 어떠냐?”

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될 건 없죠.”

노부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송석석이 홧김에 그런 황당한 말을 내뱉은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석석아, 넌 참 마음이 넓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앞으로 북망이 너를 속상하게 하면 내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야.”

오직 둘째 노부인만이 안절부절 송석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송석석이 결정을 철회하길 바랐다. 자신의 혼인 지참금을 다시 남편의 첩을 들여오는 데다가 쓰는 걸 허락하다니, 둘째 노부인은 송석석도 이 집안 사람도 이해되지 않았다.

송석석이 둘째 노부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예금과 예물, 총 합치면 만 삼천 냥 정도 들겠네요. 그런데 연회 비용도 있지 않나요? 얼마 들까요?”

그러자 둘째 노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연회를 비롯해 이것저것 다 하면 한 천 냥은 들겠다. 설마 그것도 내주려고?”

그녀는 오늘따라 송석석이 참 어리석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뜯어말릴 명분이 없었기에, 내버려두기로 했다.

송석석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도 되죠. 장군님이 차용증을 써준다면, 그 돈, 제가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둘째 노부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노부인이 분노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 아내가 돼서 남편한테 돈을 빌려주고 차용증까지 받겠다니!”

그러자 송석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차용증을 써야 빌린 게 증명이 되죠. 어머니, 아까 직접 본인 입으로 빌리겠다고 하셨잖아요. 빌린 돈의 차용증을 요구하는 게 잘못된 건가요? 차용증을 쓰지 않는 게 오히려 어리석은 짓이죠. 그리고....”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세상 어디에 본처의 지참금을 써서 첩을 들이는 남편이 있나요? 그게 더 황당하네요. 이 일이 밖에 알려지면, 사람들이 얼마나 장군부를 우습게 보겠어요? 저도 다 장군을 위해 이 말을 하는 거예요. 제 말이 틀렸나요, 어머니?”

노부인은 화나다 못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음이 넓다고 칭찬했더니….”

“장군부의 명예를 생각해서 드린 말씀인데, 제가 뭐 잘못했나요?”

송석석이 웃으며 가볍게 노부인의 등을 쓰다듬었다.

“어머니, 그렇게 화를 내시면 몸에 안 좋아요. 어제 막 약을 복용하셨으니, 약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5일 밖에 남지 않았네요? 몸 좀 사리세요. 앞으로 단 백부님도 더 오지 않으실 텐데.”

“뭐라고?”

노부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설마 네가 단신의에게 오지 말라고 했느냐? 이런 악독한!”

옆에 있던 전소환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송석석을 밀치려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단신의가 못 오게 하는 건 어머니보고 죽으라는 거야?”

하지만 뜻밖에도 밀려 밀쳐진 것은 송석석이 아닌 전소환이었다. 전소환이 손을 뻗은 순간, 그 보다 더 빨린 반응한 송석석이 먼저 팔을 휘두른 것이다. 전소환은 그 힘에 못 이겨 뒤로 여러 걸음 밀려나다 못해 겨우 의자를 붙잡고 몸을 지탱했다.

송석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가씨, 말 조심하시죠. 단 백부님은 스스로 오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제가 못 오게 한 게 아니라.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

그 말을 끝으로 송석석은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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