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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더 이상 단신의의 진료를 받을 수 없다니, 노부인은 믿을 수 없었다. 엊그저께만 해도 건강을 걱정하며 약을 잘 복용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약왕당(藥王堂)으로 보내 즉시 사실을 확인시키게 했다. 그리고 돌아온 결과, 단신의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볼 수 없었으며, 약방에 앉아 있던 다른 의원이 대신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노부인은 이 소식에 충격 받아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의원이 단신의를 대신해 전달한 말은 이러했다.

“앞으로 다시는 진료를 청하지 마시오. 장군부의 사람들만 봐도 소름이 끼치니, 더 이상 진료를 진행하다 가는 내 수명이 줄 것 같소. 나는 일찍 죽고 싶지 않소이다.”

노부인이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분명 송석석의 짓이다! 사람이 이렇게 독할 줄이야! 그동안 보여준 모습도 있었기에, 현명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졌을 거라 생각했거만, 참으로 잔인하도다! 지금 이 행위는 나를 죽이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단신의의 약이 없이, 앞으로 나보고 어떻게 버티란 말이냐!”

전기 또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엔 며느리에 다한 불만이 서서히 쌓이고 있었다. 처음엔 전북망이 갑자기 동의도 없이 첩을 데리고 왔으니, 충분히 투정 부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 시어머니의 약까지 끊어버리다니, 이건 지나쳤다.

그가 작은 아들 전북삼에게 명령했다.

“가서 네 형을 불러오거라. 어떻게든 네 형수를 달래 이 소란을 멈추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어머니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예!”

전북삼은 곧바로 뛰쳐나갔다. 오늘 일도 그 또한 송석석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송석석은 정말 지독한 여자였다.

전소환 또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문희거로 달려갔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송석석, 당장 나와! 이제야 알겠어, 둘째 오라버니가 이방 장군한테 마음 뺏긴 이유가 있었네! 이방 장군은 너처럼 비겁하지 않으니까! 넌 둘째 오라버니한테 미움 받아도 싸! 송석석, 여기 장군부야! 평생 나올 생각 아니라면 당장 나와! 시어머니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고도 네가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때, 문희거 안에서 보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째 아가씨, 저번에 분명 가져가신 물건들 돌려주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큰소리 칠 거면 자기가 한 말이나 지키고 하시죠.”

전소환이 차갑게 대꾸했다.

“무슨 소리야? 이건 저 여자가 나한테 먼저 준 거야. 줬다 뺏는 법이 어디 있어?”

전소환은 원래 모두 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가보니 송석석한테 받은 물건을 모두 빼면 쓸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라해지기 싫었던 전소환은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킬 수 가 없었다.

보주가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적어도 선물 받은 사람한테 욕하지는 말아야죠.”

전소환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다시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기다려 봐! 둘째 오라버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너희 다 쫓겨나게 될 거야!”

곧 이어 씩씩 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전소환이 떠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보주는 그제야 코웃음 치며 송석석이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정말 탐욕스러운 인간들이네요. 아가씨의 말 대로, 어디든 여기보단 나을 것 같네요. 그런데 교지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요?”

송석석은 말없이 웃으며 서랍장을 열어 안에 담겨 있는 한 상자를 꺼냈다. 이 상자 안엔 그녀가 하산할 때 스승이 준 빨간 채찍이 들어 있었다.

채찍은 그녀가 사용하는 주 무기였다. 하지만 장군부로 시집온 뒤로는 굳이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아가씨, 그건 왜요? 누구랑 싸우시려고요?”

보주는 함께 매산까지 올라갔던 사람으로서, 송석석이 얼마나 대단한 무공 경지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냥 좀 꺼내 봤어.”

송석석이 붉은 책찍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지금 복장으로는 싸우게 되더라도 채찍을 사용하기엔 불편했다.

“여기를 떠나게 되면, 집을 사람사는 곳 답게 가꾼 다음에 바로 스승님을 뵈러 가자구나.”

“네, 아가씨.”

보주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매산으로 돌아가는 건, 그녀도 찬성이었다. 거긴 온통 송석석을 아끼는 사람들뿐이었으니까.

송석석은 빨간 채찍을 다시 상자 안으로 넣었다. 하지만 서랍장엔 다시 걷어 넣지 않았다. 어차피 곧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날 잘했다고 하실 거야. 먼저 약속을 어기고 배신한 건 전북망이니까.”

송석석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말에 보주는 결국 눈가가 빨개지고 말았다.

“그럼요. 부인께서는 장군부 사람들을 원망하면 했지, 아가씨보고는 잘했다고 칭찬하실 거예요.”

송석석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혼인하고 자식을 낳는 것만이 내 운명은 아니지.”

보주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이 집 사람들이 멍청한 거예요. 전략 지식이나, 무예 부분만 따져도 아가씨가 훨씬 더 뛰어난데, 정말 보는 눈이 없어요. 이방처럼 아가씨도 전장에 나간다면, 훨씬 더 큰 공을 세웠을 거예요. 그동안 집에 있었던 건, 대장군님과 부인께서 아가씨를 아껴서 그런데, 이 집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구나, 그렇게 말해줘서.”

“별 말씀은요. 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요!”

보주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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