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혁은 경멸적인 미소를 지었다.“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건 내 알 바 아니고, 뭐가 됐든 한번 내뱉은 말은 끝까지 지켜야지. 그러니까 이 돈은 무조건 빌려야 하는 거야. 단골인 걸 봐서 어르신께서 특별히 배려해 주셨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거야? 원금을 안 넣어도 되니까 이자율로 이자만 갚으면 돼.”누가 봐도 알츠하이머를 바보로 생각하고 사람을 괴롭히는 거나 다름없다.옆에 있던 부하가 계산기를 꺼내 두드리더니 곧바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다.“1,400만 원을 3년 동안 빌린다고 치면 이자는 총 1,650만원이 되겠네. 매달 50만 원씩 갚으면 돼. 오늘 마침 돈 갚을 날이네. 물론 한꺼번에 갚을 의향이 있다면 말리지는 않을 텐데 한 푼도 적어서는 안 돼. 우리 얄짤없는 거 알지?”우현민은 어안이 벙벙했다. 전화 한 통을 했을 뿐인데 1,600만 원이 넘는 이자를 물어야 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겨우 50만 원 받는 거야? X발, 밥값도 안 되겠네.”서운혁은 마치 손해를 본 것처럼 경멸적인 표정을 지으며 코웃음쳤다.“우리니까 이렇게 배려해 주는 거야.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고.”염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계산해 보니 이 자식들은 60%의 이자율을 받고 있었다.게다가 원금도 안 내고 뻔뻔하게 이자를 요구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삼촌, 이 사채업자들한테서 대출 받으셨어요?”염무현이 묻자 우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4,000만 원 빌렸는데 3년 동안 8,600만 원 갚았어. 매달 240만 원씩. 나중에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서 몇십만 원이 남았으니까 여섯 번 더 갚으라고 강요해서 넉 달 전에야 다 갚을 수 있었어.”“쓸데없는 말이 참 많네.”부하 중 한 명이 막대기를 휘두르며 벽 구석에 가지런히 놓은 병들을 깨뜨렸다.“돈 안 갚으면 당신들도 저 병처럼 되는 거야. 그때 가서 다리가 부러졌네 팔이 부러졌네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없으니까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좋게 좋게 가자. 다쳐도
“야, 넌 뭐냐? 살고 싶으면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고 꺼져.”서운혁은 코앞까지 다가온 500만 원이 물거품 될 위기에 처하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 사채업자들은 우현민과 정은선의 소심함을 이용하여 일부러 협박하려고 접근한 게 틀림없다. 얼굴만 내밀어도 1,600만 원의 빚을 떠안게 됐는데 뭐가됐든 그들은 무조건 이익을 받는 입장이다.우현민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무현아, 서 사장 무서운 사람이야. 그러니까 넌 이 일에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계산기를 두드리던 사채업자는 기고만장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우리 형님 무서운 사람인 걸 아는 거 보니까 눈치는 빠르네. 다른 사람처럼 목숨을 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야. 서해에 안씨 가문이라고 있었는데 우리 형님에 핍박에 못 이겨서 건물에서 뛰어내렸잖아. 죽으면 빚이 청산된다고 착각한 모양인데 현명한 우리 형님이 그 사람 와이프랑 딸을 잡아 왔어. 와이프는 지금 유흥업소에서 청소일하고 딸은 프런트 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니까 직장 동료가 된 거지 뭐. 같이 벌면서 돈 갚는 거야. 그 꼴이 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돈 내놓는 게 좋아. 솔직히 우리가 이 정도 배려해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돼.”우현민은 겁에 질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서 사장, 지금 바로 보낼게. 우리 조카가 아직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런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말을 마친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500만 원은 두 사람이 몇 달 동안 아껴쓰며 모은 돈이다.비록 빚은 다 갚았지만, 염무현이 감옥에서 나올 때 무일푼인 걸 고려하여 모아뒀던 돈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염무현이 처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처음부터 그에게 쓰려던 돈이기에 서아란 부부가 사기 치러 왔을 때 우현민은 주저하지 않고 동의했다.염무현은 손을 들어 우현민을 가로막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삼촌, 주지 말라고 했잖아요.”얼굴에 걸려있던 미소가 점점 얼어붙은 서운혁은 버럭 화를 냈다.“야, 상황 파악 못
“나 누군지 몰라? 둘째 삼촌이 서경천이고, 사촌 동생이 서운범이야. 너희들 이제 끝장이라고.”서운혁은 큰소리로 위협했다.“그래?”염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힘을 주었다.우두둑.순간 팔이 부러지며 단검이 바닥에 떨어졌고 하얀 뼈가 살을 뚫고 나오며 피가 뚝뚝 떨어졌다.“악!”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던 서운혁은 염무현에게 뺨을 맞고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되었다.“그동안 우리 삼촌한테서 얼마나 사기 쳤냐? 말해!”염무현이 손에 힘을 가하자, 서운혁은 너무 아픈 나머지 무릎을 털썩 꿇었다.“뭘 멍하니 있어, 빨리 말해.”서운혁이 계산을 담당하던 부하를 바라보면서 소리치자 그는 전전긍긍하며 말했다.“총 1억이 조금 넘습니다. 본금 4,000만 원, 이자 6,000만 원.”“계산 아주 잘하네. 6,000만 원은 우리 삼촌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남은 돈은 너희가 가져.”염무현이 명령적인 어조로 말하자 서운혁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전혀 굽히지 않았다.“꿈 깨! 한번 삼킨 돈은 절대 내놓지 않는 게 우리 서씨 가문의 규칙이야.”“내놓지 않는다고?”염무현은 그를 세게 짓밟았다.우두둑.서운혁은 왼쪽 다리가 부러진 채 뒤로 꺾였고 그 모습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죽는 한이 있어도 그 돈은 절대 못 돌려줘.”우두둑.염무현은 서운혁의 오른쪽 다리마저 부러뜨렸고 그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또다시 발을 들어 그의 중심부를 겨냥했다.“빨리 돈 보내! 나 잘못되면 너희들도 죽을 줄 알아.”버럭 화를 내며 부하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계좌이체 했다.띵!우현민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은행에서 보낸 문자였는데 정확히 6,000만 원이 입금되었다.“정말이네.”우현민은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봤다.염무현이 발을 들자 서운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꺼져.”부하들은 부랴부랴 서운혁을 부축하며 황급히 도망갔다.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굽힐 생각이 없었던 서운혁은 현관에 도착하자마자 욕설을 퍼부
서해시, 서씨 가문.거실 안은 긴장감이 감돌았다.큰 키에 네모난 얼굴을 가진 남자가 차마 쳐다볼 수 없을 만큼 강한 포스를 풍기며 앉아있었다.“운혁의 상황은 어때?”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이 사람은 다름 아닌 지하 세계의 일인자이자 공규석만큼 명성이 자자한 또 다른 거물, 서경철이다.공규석이 영역을 바꾼 틈을 타 서씨 가문이 많은 걸 차지했고 그 덕분에 서경철의 지위도 덩달아 높아졌다.서경철의 맞은편에 서 있는 그와 매우 닮은 젊은이는 아들인 서운범이다.청출어람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잔인함을 놓고 봤을 땐 서운범이 한 수 위다. 서경철은 적어도 세상의 윤리를 지키는 사람이지만 서인범은 모든 일을 자신의 기분대로 처리하는 꼴통이다.“두 다리와 팔 하나가 부러져서 지금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최고의 정형외과 전문의를 모셔 왔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서운범이 답했다.서경천은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누가 한 짓인지 알아봤어?”서운범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이상하게도 그 사람에 대한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흔적을 남기기 마련인데 마치 증발한 것처럼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우현민 부부도 갑자기 자취를 감춰 지금 대대적으로 수색하고 있습니다.“이 도시에서 염무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감옥에서 4년을 지낸 데다가 특별한 신분 때문에 그의 개인정보는 일급 기밀에 속했기에 그들뿐만 아니라 제원시의 그 누구도 열람할 권한이 없었다.서경철은 화를 냈다.“쓸모없는 것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찾아내. 서씨 가문을 건드린 자는 무조건 목숨으로 갚아야지. 처리안하고 넘어갔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우릴 얕볼 수도 있어. 그리고 공씨 가문도 계속해서 주시해. 공규석 그 자식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딸이 자선 파티를 여는 게 이상하지 않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어. 이틀 뒤에 자선 파티 열린다고 하던데 네가 직접 가서 알아봐.”서운범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동료는 매우 못마땅했다.“뭐가 됐든 사람을 때린 건 잘못된 행동이에요. 감옥살이를 한 거면 상황이 심각했다는 뜻인데, 인성이 글러 먹은 사람인 게 분명해요.”우예원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았다.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저도 모르게 염무현의 명성을 신경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다. 감옥살이를 하게 된 건 자업자득이고, 솔직히 그에게 빚진 건 아무것도 없다.매니저는 눈을 반짝이더니 웃으며 말했다.“우리 여신 예원 씨의 심기를 건드린 자식은 절대 회사에 들어오면 안 되죠. 이름이 뭐예요? 제가 지금 바로 인사팀에 가서 얘기해 볼게요.”우예원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제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죠? 역시 도 매니저님은 아주 현명하시네요.”매니저의 이름은 도명철, 재벌가의 금수저로 자산만 수백억이 넘는다고 한다.경험을 쌓기 위해 입사했다는 건 핑계에 불과할 뿐 그저 심심해서 회사에 나온 거나 다름없다.도명철은 우예원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고 반드시 여자 친구로 만드리라 다짐했으나 우예원은 그의 재력 공세에 쉽게 넘어온 평범한 여자들과 달랐다.배운 집에서 자란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빠에게 사람 됨됨이에 관한 교육을 받았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하여 도명철의 공세에도 질질 끌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다.어쩌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승부욕일지도 모르지만, 도명철은 거절당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용기를 냈다.특히나 지금처럼 우예원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그녀의 칭찬에 입이 귀에 걸린 도명철은 겸손함을 보였다.“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죠. 예원 씨는 좋은 소식만 기다리고 있으면 돼요. 아참, 저녁에 같이 식사할래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새로 생겼는데 같이 가볼래요?”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그는 바로 데이트 신청을 했다.도움 주고 밥까지 산다는 사람을 매정하게 거절할 리가 있겠는가?우예원이 난처함에 몸 둘 바 모르던 그때 타이밍 좋게 핸드폰이 울렸다.“죄송해요, 아빠한테
연남의 어느 한 호텔.이 호텔에 우현민 부부를 머물게 한 이유는 이곳이 공씨 가문의 영역이라 감히 그 누구도 소란을 피우지 못하기 때문이다.공혜리는 호텔 전체를 대여했고 우현민 부부를 제외한 다른 손님은 전부 공씨 가문의 경호원으로 그들의 안전을 책임졌다.우예원은 의심을 잔뜩 품은 채로 방으로 걸어가 노크했다.“예원아, 얼른 들어와.”문을 연 사람이 정은선인 걸 보고서야 경계심을 풀었다.방안에는 우현민 외에 염무현도 있었다. 그녀는 염무현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왜 불렀어요? 전 싫어하는 사람이랑 같이 밥 먹고 싶지 않아요.”우현민은 호통치며 말했다.“말 함부로 하지 마. 오후에 무현이 덕분에 나랑 네 엄마가 살았다. 그리고 사채업자들한테서 6,000만 원 돌려받을 수 있게 도와줬어.”“네? 거짓말하지 마요. 저 인간이 무슨 능력으로 그걸 해결해요.”기억 속의 염무현은 아버지인 우현민과 마찬가지로 공부밖에 모르는 범생이였다. 그런 사람이 악랄하기로 소문난 양아치 사채업자한테서 돈을 받아냈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우현민과 정은선은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며 계좌이체 문자를 우예원에게 보여줬고 증거를 보자 그녀도 할말이 없었다.“6,000만 원이야.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야.”우현민은 웃으며 말했다.그는 늘 딸에게 빚졌다고 생각했기에 돈이 생긴 지금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다.그리고 염무현이 없었다면 돌려받기는커녕 사채업자들에게 돈을 더 내어줬을 수도 있다.하여 우현민은 이 돈을 두 사람에게 쓰기로 결심했다. 일단 출퇴근 편의를 위해 차부터 살 계획이었다.우예원은 믿기지 않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염무현에 대한 증오감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처음부터 너 때문에 생긴 빚이니까 돌려받는 게 당연한 거야. 고마워할 마음 따윈 없으니까 착각하지 마.”염무현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우예원은 말을 이었다.“6,000만 원 말고도 우리 아빠가 너 때문에 2억 썼으니까 갚아
염무현은 전화를 끊고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이때, 아래층에서 검은색 벤츠 한 대가 다가왔다. 벨보이가 문을 열어주려는 데 누군가 먼저 앞으로 돌진했다.“내가 할게.”값비싼 맞춤 양복을 입고, 머리를 반듯하게 빗은 이 남자는 바로 남도훈으로, 양희지에게 목매고 있는 사람이었다.4년 전, 남도훈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 병상에 누워있을 때, 사과하러 온 양희지를 보고는 첫눈에 반했다.남도훈은 즉시 양희지 일가를 용서했지만, 염무현은 그대로 지나칠 생각이 없었다.지난 4년 동안, 남도훈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애정 공세를 펼쳤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바로 지금처럼.“어떻게 도련님이 문을 열어줘요?”양희지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남자는 멋진 척하며 공손하게 말했다.“여신님의 문을 열어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양희지는 검은 스타킹을 신은 예쁜 다리를 내디디며 빙그레 웃었다.“감사해요. 도련님도 오늘 자선 파티에 관심 있으신 거예요?”양희지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늘씬한 기럭지, 드레스로 더욱 돋보이는 완벽한 S라인 몸매, 또렷한 이목구비와 범상치 않은 분위기로 단연 시선을 압도했다.남도훈의 눈에서 연신 이상한 빛이 번뜩이더니 웃으며 말했다.“자선 파티에는 관심 없어요. 공씨 가문에서 개최한다고 해도요. 전 오늘 희지 씨 도우러 온 거예요.”양희지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비쳤다.“저를 돕는다고요?”“아저씨가 저한테 전화하셨어요. 양씨 가문이 골드 파트너가 되려 하는데, 서해에서 저희 가문의 위치와, 공씨 가문과 오랜 관계를 감안하면, 제가 희지 씨를 도와 계약을 따내는 건 문제가 없다고 하던데요?”남도훈은 자신만만해서 말했다.다른 쪽 차 문에서 내리던 조윤미가 이 말을 듣고 화색이 돌았다.“너무 잘됐네요! 감사드려요. 만약 일이 성사된다면, 도훈 도련님은 저희 YH 그룹의 큰 은인이세요.”만약 YH그룹이 성공한다면, 대표 비서인 그녀도 당연히 덕을 볼 것이다.“별말씀을
“안 돼요!”양희지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거절했다.남도훈과 조윤미의 이상한 표정을 보고는 서둘러 설명했다.“오늘은 공씨 가문이 준비한 행사예요. 전부 귀한 분들이 오신 자리에서 소란을 피우면 저희 이미지만 손상 받죠.”“제 말은 저런 사람 때문에 도련님의 명성과 미래를 망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남도훈은 빙긋 웃더니, 눈에서는 음흉한 기색이 계속 흘렀다.“그래요. 그럼 아주머니와 준우의 원한을 풀어주는 셈으로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이나 주죠.”양희지가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묵인한 셈이다.“두고 봐요!”남도훈은 저벅저벅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염무현, 거기 서!”염무현은 뒤를 돌아보았지만,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었다.“누구시죠?”당시 염무현은, 남도훈이 붕대를 감고 얼굴이 돼지머리로 부은 사진을 보았으니, 지금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남도훈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고는 눈동자를 희번덕이며 말했다.“4년 전, 네가 술병으로 내 머리를 때려 입원하게 했잖아. 벌써 잊었어?”“아니면 감방에서 호의호식하느라 건망증까지 생겼나?”염무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남도훈?”“맞아, 내가 바로 남도훈이다! 여기는 뭐하러 왔어? 경고하는데, 환상 같은 건 품지 말고, 파티에 끼어들 생각도 하지 마. 그럴 시간에 거울로 네 얼굴이나 좀 쳐다봐. 어디 길바닥에서 노점상 하다 왔어? 창피하지도 않아?”남도훈은 조롱하며 말했다.하지만 염무현은 멀지 않은 곳에서 수상쩍은 두 여자를 노려보며 오히려 되물었다.“양희지가 널 부른 거야?”“맞아. 여긴 왜 왔냐고 묻잖아!”남도훈은 목을 빳빳이 쳐들고 의기양양해서 말했다.‘내가 널 감옥에 보냈을 뿐만 아니라, 이젠 네 여자도 얻을 생각이야.’곧 양희지를 품에 안고, 그녀가 자기 앞에서 아양을 떠는 모습을 생각하면, 남도훈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염무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맞받아쳤다.“그게 너랑 뭔 상관이야?”말을 마치고는 곧바로 자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