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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망했다.’

어제 너무 급하게 나오다 보니 임테기 결과도 못 본 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뛰쳐나왔다.

유나은은 어떻게 주승아에게 합리한 설명을 할지 고민했다. 둘은 더없이 친한 사이지만 그녀와 이연준의 일은 아무한테도 알려선 안 되기에 주승아는 줄곧 그녀가 솔로인 줄 안다.

“승아야, 그 임테기는...”

유나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승아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두 줄이야.”

‘뭐? 두 줄이라니?!’

유나은은 충격에 휩싸였다. 머리가 백지장이 되었고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맴돌았다.

그녀가 정말 임신한 걸까?

아니, 어쩌면 주승아가 잘못 봤을지도 모른다.

유나은은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요행을 바라며 휴대폰을 꽉 쥔 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되물었다.

“승아야, 너 제대로 본 거 맞아? 두 줄 확실해?”

주승아는 가슴 찔린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니?”

유나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른 한 줄이 그다지 선명하지 않아서 그래?”

주승아가 해명했다.

“아까 화장실 들어왔다가 세면대에 임테기가 있는 줄 모르고 그만 세면대 안에 떨어트렸어. 이 안에 물이 그대로 있어서 임테기도 젖었거든.”

물에 젖었다는 말에 유나은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세면대에 담긴 물은 핸드워시가 섞여 있어 임테기의 두 줄이 임신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려워졌으니까.

똑똑.

이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유나은은 정신을 가다듬고 주승아에게 말했다.

“승아야, 임테기에 관한 일은 내가 나중에 다시 설명할게. 누가 왔어. 할아버지께서 찾으시는 것 같아.”

“그래, 일 봐.”

주승아도 그녀가 감히 이동건을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도곡 별장에서 나올 때 잊지 말고 전화해. 내가 데리러 갈게.”

“알았어.”

통화를 마친 후 유나은은 슬리퍼를 신고 외투를 걸치면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집사인 줄 알았는데 상대는 정작 김준희였다.

“엄마.”

유나은이 입을 열었다.

김준희는 안색이 어두웠지만 그녀를 질책하지 않고 되레 양해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도 어제 밤늦게 알았어. 네 할아버지가 또 원우를 부르셔서 어젠 허탕 쳤지?”

유나은은 흠칫 놀랐다. 알고 보니 이원우는 어제 방에 없었다.

그녀는 김준희를 안으로 들이며 말했다.

“오빠가 3년 만에 돌아와서 할아버지도 엄청 보고 싶으셨을 거예요. 서로 나눌 얘기가 많았겠죠.”

김준희는 방안으로 들어오며 안색이 조금 환해졌다.

“네 할아버지는 네가 올 줄 알고 일부러 집사한테 말해서 하룻밤 묵게 했어. 봐봐, 혈연관계가 없어도 할아버지는 손녀인 너를 엄청 아끼시잖아.”

유나은은 속으로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왜 날 남겨두셨는지 엄마가 알면 발칵 뒤집힐 텐데요? 아마 날 한바탕 욕하고 두들겨 팰 지도 몰라요!’

“아 참!”

이때 김준희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원우 어제 3층에 없었는데 넌 뭣 하러 올라가서 그렇게 오래 있었어?”

유나은은 가슴이 움찔거리고 눈가에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를 본 김준희가 코웃음을 쳤다.

“할아버지가 원우 부르신 거 내가 모를까 봐 오늘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어?”

유나은은 입꼬리를 올리며 들켰다는 듯이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에요.”

“아니길 바라.”

김준희는 더 머물지 않았다.

“네 할아버지 깨셨어. 이따가 바로 너 부를 테니까 얼른 씻고 예쁘게 치장해.”

“엄마.”

유나은이 뒤에서 질문을 건넸다.

“아저씨는 요즘 정신 상태가 안정적이에요?”

그녀가 말한 아저씨는 바로 현재 그녀의 새아빠이자 이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 이상윤이다. 그는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다.

김준희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꽤 안정적이야.”

유나은이 곧이어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수현이는요?”

이수현은 김준희와 이상윤의 아들이자 유나은의 남동생이다. 둘은 이부남매 사이이다.

김준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좀 있으면 수현이 보게 될 거야.”

유나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8시 30분, 집사가 유나은을 별채로 모셨다.

외출 전, 집사는 머리를 돌리고 복잡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유나은은 이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얌전히 집사를 따라 할아버지를 뵈러 별채로 갔다.

문 앞에 도착해서 이제 막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농구공이 그녀 앞에 날아왔다.

공이 너무 갑작스럽게 날아오다 보니 유나은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손으로 막으려 했다.

그녀는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너무 초라하게 맞지는 말자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예상했던 고통이 밀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방안에서 앳되고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 삼촌.”

줄곧 눈을 감고 있던 유나은은 삼촌이란 말에 번쩍 두 눈을 떴다. 그녀 옆에 커다란 실루엣이 나타났고 이에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이연준이었다니?!

그는 언제 나타난 건지 유나은을 대신해 그 공을 막아주었다.

“도련님, 손 괜찮으세요?”

집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연준은 집사를 힐긋 바라봤다. 그 눈빛에 집사는 식은땀이 쫙 흘러서 고개 돌려 유나은을 쳐다봤다.

유나은도 재빨리 눈치채고 말했다.

“고마워요, 삼촌. 덕분에 잘 피했어요.”

이연준은 입술을 앙다물고 별채를 쭉 둘러보더니 원목 의자 뒤에 숨어서 겁에 질린 표정을 지은 이수현을 발견했다.

이수현은 사색이 된 채 작은 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한창 차를 마시던 어르신이 이를 눈치채고 손잡이를 꼭 붙잡은 손을 내려다보더니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삼촌이 널 잡아먹기라도 한대?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내가 안 잡아먹는다고는 안 했어요.”

이연준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어르신 옆의 원목 의자에 앉았다.

어르신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시선을 올렸다.

“수현이가 안 그래도 겁이 많은데 넌 어른이 돼서 애를 놀려야 속이 시원하겠어?”

이연준은 아주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

“애들한테는 애들만의 룰이 있어야 해요.”

이동건은 찻잔을 내려놓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수현아, 이리 와서 사과해.”

이씨 일가에서 세대주 이동건을 제외하고 모든 이가 이연준을 조금 두려워하고 있다.

이씨 일가는 사업을 널리 확장하여 그룹 내의 산업이 거의 배현시 전체를 독점하고 있다. 겉으로는 이동건이 대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요한 특수 산업을 장악한 사람은 오직 이연준 뿐이다. 모두가 그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다.

이수현은 나이가 어리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지만 매번 이연준을 마주치면 고양이를 본 쥐처럼 불안에 떨고 있다.

이동건이 말을 꺼내자 이수현은 한 걸음씩 다가오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이연준의 앞에 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삼촌.”

이연준이 싸늘한 시선으로 아이에게 물었다.

“아까 누구한테 공 던지려 했어?”

이수현의 작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이연준은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댔다.

“그래?”

이수현은 곧 눈물을 터트릴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이동건이 보다 못해 입을 열었다.

“몇 살인데 한낱 어린애랑 따지고 들어? 설마 문밖에 있는 저 계집애를 편들어주는 거야?”

이 말을 들은 유나은은 문밖에서 줄곧 조용히 있다가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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