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심란해졌다.특히 지금 이동건이 날카로운 눈길로 자신을 훑어보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그녀와 이연준의 은밀한 관계를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문밖의 저 아이를요?”이연준이 문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유나은을 힐긋 쳐다봤다.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유나은의 심장이 2초 동안 멈췄다.이동건은 살짝 의외라는 듯이 그에게 되물었다.“못 알아보겠어?”이연준은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이름이 뭐였더라?”이동건이 담담하게 말했다.“유나은, 너희 상윤이 형 딸이잖아.”“아 네, 조카딸이었네요.”이연준은 느슨한 자세로 뒤로 기대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평상시에 도곡 별장에서 잘 안 보이더라니 대뜸 낯설더라고요.”그는 지금 둘 사이에 선을 긋고 있다. 유나은은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한 걸까?이동건이 불쑥 이상야릇한 웃음을 터트렸다.“낯설면서도 저 아이 대신 편들어주네?”유나은은 가슴이 움찔거렸다.이에 이연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아버지는 결국 요 녀석에게 핑곗거리를 찾아주시는 거잖아요. 얘가 방금 누굴 겨냥해서 공을 던졌는지 내가 모를 리 있겠어요?”이동건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수현이가 방금 널 맞히려고 그랬던 거야?”이연준은 이수현을 힐끔 째려보고서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직접 물어보세요.”한편 이동건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수현이 먼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이는 울먹이면서 사과했다.“흐엉... 내가 잘못했어요 삼촌, 절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난 아무것도 못 봤어요... 앞으로 다시는 함부로 뛰어다니지 않을게요. 엉엉...”이동건은 그제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채고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지난번에 네가 뒷마당에서 처리한 일을 수현이가 본 거야?”이연준은 눈썹을 치켰다.이동건의 눈가에 싸늘한 기운이 스치더니 손을 흔들며 집사를 불렀다.“이 녀석 데려가.”집사는 재빨리 다가와 이수현의 손을 잡고 나갔다.유나은의 옆을 지나
이동건은 모처럼 화를 내지 않았고 조금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그래? 어느 집 영식이지?”유나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답했다.“아직 만나고 있는 단계는 아니에요.”“집은 배현시에 있고? 직업은?”이동건은 계속해서 물었다.“네, 배현시 사람이에요. 그리고 직업은... 교수예요.”교수라는 건 어쩌다 떠오른 직업이었다.그리고 사실 다른 직업이라도 상관은 없었다. 인생 중대사를 이동건의 손에 쥐여 주어 그의 이익에 휘둘리고 싶지 않을 뿐이니까.“의사와 교수라... 잘 어울리긴 하네.”잘 어울린다고 얘기했지만 말투로 볼 때 인정하는 건지 아닌 건지는 알 수 없었다.그때 도우미가 다가와 비워진 찻잔에 차를 부었다. 곧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동건의 얼굴을 완전히 가려버려 유나은 쪽에서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도우미는 찻잔을 쥔 이동건의 손에 힘줄이 튀어나와 있는걸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 시선을 위로 올리는 그와 눈이 마주치더니 하마터면 손에 든 도자기 찻주전자를 떨어트릴 뻔했다.“쯧, 칠칠치 못하긴.”이동건이 언짢은 얼굴로 질책하자 도우미는 서둘러 뒤로 물러서며 손을 벌벌 떨었다.이에 이연준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아버지도 나이가 드시긴 드셨나 보네요. 이런 작은 일에도 성질을 다 내시고.”이동건은 혀를 한번 차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나가봐. 너도 나가고.”마지막 말은 유나은에게 한 것이다.유나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이연준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문이 닫힌 뒤 이동건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너는 나은이 쟤를 자주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저거 내가 오늘처럼 기를 눌러놓지 않으면 조만간 우리 집안에 악재를 불러올 거다.”이연준은 뜨거운 차를 후후 불며 말했다.“간이 콩알만 해 보이는 애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러세요.”“그거야 모를 일이지.”...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유나은은 메슥거림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참으려고 했지만 발걸음을 내딛는
눈앞에 있는 여자는 예쁘장한 얼굴에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있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풀 세팅을 하고 있었다.유나은은 이 여자를 알고 있다.그녀의 이름은 양수경으로 근 2년간 이연준이 공식 석상에 무수히 많이 데리고 다녔던 여자다.이연준에 관한 소문 중에 양수경의 지분은 컸다.그녀는 얼굴이 예쁜 데다 능력까지 있었고 이연준의 곁에 제일 오래 머물고 있는 여자이기도 했다.이연준이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면 그 옆에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연준의 미래 와이프가 그녀일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도 돌고 있었다.“의사 선생님 맞죠?”양수경의 시선이 의사 가운을 다시 입은 유나은에게로 향했다. 병원에서 이렇게 예쁜 얼굴의 의사를 만날 줄은 몰랐는지 양수경은 반신반의한 표정이었다.“네, 그런데요?”유나은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그러자 양수경은 그제야 이곳으로 온 이유를 설명했다.“우리 아빠 상황이 많이 좋아져서요. 지금 바로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중환자실에서 나오게 해주세요.”유나은은 아무런 대답 없이 자리로 가 양진수의 차트를 한번 훑어보고는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양진수 씨에게 다른 지병은 없었나요?”양수경은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다른 지병 같은 건 없고요. 그냥 빨리 중환자실에서 나오게 해주세요.”“그건 안 됩니다. 병원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고 양진수 씨 이대로 보내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유나은은 차분하게 얘기했다.“보호자인 제가 원하는 일이에요.”“보호자분, 상식적으로 오늘 아침 중환자실에 들어간 사람을 하루도 안 돼 바로 집에 보내 달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양수경은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그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당신이 꼭 들어줘야 한다면요?”“죄송하지만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유나은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거절했다.그 모습에 더 열이 받은 양수경은 팔짱을 한번 끼더니 협박 조로 말했다.“이봐요, 내가 누군지 알아요?”유나은이 되물었다.“그걸 제가 꼭
“응, 우리 가문 사람이야.”이연준의 말에 유나은은 조금 놀라버렸다.설마 그가 직접 그녀가 누군지 밝힐 줄은 몰랐으니까.하지만 다시 자세히 곱씹어보면 그는 그녀가 조카라는 사실을 인정한 건 아니었다.윤수경은 유나은의 가운에 적혀진 이름을 보고는 당황함이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로 얘기했다.“나, 나는... 유 선생님이 이씨 집안 사람인 줄은 몰랐어...”‘이 여자’라고 부르던 호칭은 어느새 ‘유 선생님’으로 바뀌어 있었다.유나은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리고는 살짝 웃었다.“성이 달라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양수경은 좀처럼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성이 다른 걸 보면 핏줄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이씨 가문 사람들을 건드려서 좋을 건 없기에 지금 그녀는 상당히 당황한 얼굴이었다.게다가 아직 이연준과 결혼한 것도 아니니 더욱더 무서웠다.그렇게 혼자 초조해하고 있을 때 유나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양수경 씨 맞으시죠? 항상 삼촌 곁에서 같이 사진 찍히는 거 봤어요. 삼촌이 양수경 씨를 매우 좋아하나 봐요.”그 말에 양수경은 어깨가 으쓱해지며 기분이 들떴다.이씨 가문 사람에게 이연준의 여자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연준 씨가 어디 갈 때면 항상 저만 부르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불편하다나 뭐라나.”윤수경은 행복한 얼굴로 얘기했다.유나은은 여전히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미세하게 경직되어 있었다.“그러면 곧 좋은 소식 들을 수 있는 거예요?”윤수경은 볼을 예쁜 핑크빛으로 물들이며 이연준을 바라보았다.“연준 씨가 대답해줘.”하지만 이연준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몸을 옆으로 틀어 코트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이 각도에서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터에 파란색 불꽃이 일었다.담배에 불을 붙이기 전 유나은이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삼촌, 여기 병원이에요. 담배 피울 거면 나가서 피우세요.”그 말에 이연준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
이연준과 이런 사이가 된 지 어언 3년, 그녀는 여자친구라는 타이틀도 받지 못했고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 항상 이렇게 숨어서 만나야 했다.사실 이런 떳떳하지 못한 관계는 진작에 끊어냈어야 했다.하지만 함께하는 3년 동안 이연준은 그녀의 몸에 중독이라도 된 양 처음에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만 부르다가 그 뒤로는 일주일에 세 번, 심지어는 보름 내내 그녀를 놓아주지 않기도 했다.“애기야...”남자의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를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두 사람은 해암 별장에 도착한 뒤 바로 침실로 향했고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침대 위였다.목에 아릿한 고통이 일어 그녀는 낮게 신음했다.“살살, 제발 살살...”“살살 못 해.”침대 위에서의 그는 한 마리의 흉포한 짐승이 따로 없었다. 열에 일곱 번은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애걸복걸을 하고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세 번의 격렬한 사랑을 나눈 뒤 유나은은 침대에 완전히 쓰러져버렸다. 몸은 땀범벅이었고 두 눈은 뜰 힘조차 없었다.그녀의 귓가에 또다시 뜨거운 입술이 내려앉았다.이에 그녀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그를 밀어냈다.“안돼. 나 더 이상은 무리야.”이연준은 그녀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있는 힘껏 자신의 것을 밀어 넣었다.유나은은 침대 시트를 꽉 쥐고 또다시 그를 받아냈다.“착하네.”이연준은 땀으로 가득한 그녀의 쇄골과 목을 부드럽게 매만졌다.열기로 인해 핑크빛으로 물든 피부가 무척이나 탐스러웠다.“내 옆에 있는 게 싫어?”유나은은 거의 실신한 상태로 은은한 불빛이 감도는 천장을 바라보았다.만약 이연준의 옆에 있는 게 좋으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그는 체력도 좋고 몸매도 좋으며 관계 뒤의 매너 또한 완벽했다. 잠자리 파트너로서는 가히 최고였다.하지만 그는 이연준이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말하자면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와 같았다.“다른 생각할 여유가 있나 봐?”그는 그녀의 턱을 잡아 시선을 마주치게 했다.유나은은 그의 오뚝 솟은 큰 코를 바라보
얼마나 지났을까, 유나은은 매콤한 떡볶이 냄새를 맡으며 정신을 차렸다.눈을 천천히 떠보니 주승아가 병상 옆에서 치즈가 듬뿍 들어간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승아야, 다음부터는 병실 안에서 먹지 마.”그녀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에 주승아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빵빵한 볼에 묻은 소스를 티슈로 벅벅 닦고 말했다.“나은아, 너 괜찮아?”그녀는 입에 있는 것을 마저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몸은 좀 어때?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응, 괜찮아졌어.”기절하기 전과 비교하면 안색은 확실히 좋아졌다.“그런데 승아 네가 여기는 왜 있어?”“아침 일찍 너한테 전화하니까 서민호라는 의사 선생님이 네 전화를 대신 받아서 네가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줬어. 그래서 바로 여기로 달려왔지.”유나은이 계속해서 물었다.“내 상황을 뭐라고 얘기했는데?”그녀는 기절하기 전 속이 울렁거리고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심장 고동이 빨라졌던 것만 기억하고 있다.주승아는 그녀에게 따뜻한 물을 따라주었다.“급성 위염이래.”유나은은 물을 건네받지 않고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되물었다.“급성 위염이라고?”“그래. 왜, 아닌 것 같아?”주승아는 그녀가 편히 기댈 수 있게 옆에 있는 쿠션을 등 뒤에 받쳐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그녀에게 물을 건네주었다.유나은은 물을 받아들고 한잔을 전부 비워냈다.주승아는 그제야 다시 의자에 앉아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녀 앞에는 떡볶이 먹방 중인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유나은이 정신을 차리기 전, 그녀는 떡볶이 먹방을 보다 침이 고여 결국 똑같은 떡볶이를 주문하고야 말았다.조금 뒤, 서민호가 그녀의 병실로 들어왔다. 그는 혈색이 제대로 돌아온 유나은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몸은 좀 어때?”유나은은 그를 바라보았다.“응, 이제 괜찮아졌어. 고마워.”“고맙기는.”서민호는 지금 마음이 불편했다.유나은은 그 모습을 보고 그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도 있었어?”그의 걱정에
그러지 않아도 주승아와의 대화를 그가 들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보다시피 그는 다른 의미로 그녀의 초조한 마음을 잠재워주었다.이연준은 전부 다 들어버렸다.“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 평소에는 잘만 떠들더니?”이연준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얼굴이 닿기도 전에 유나은은 몸을 뒤로해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러고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나랑 승아는 둘만 있을 때 원래 아무 말이나 막 해. 방금 그건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고. 삼촌한테 한 얘기 아니야.”이연준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내 손 피하지 마.”유나은은 손을 말아쥐고 이번에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내가 그때 들어오지 않았으면 솔직히 얘기할 생각이었어, 아니면 거짓말을 지어낼 생각이었어?”이연준은 그녀의 턱을 잡고 물었다.유나은은 그와 눈을 마주칠 배짱은 없었지만 말은 단호하게 뱉어냈다.“아무한테도 말 안 해. 그게 승아라도 얘기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내가 걱정된다면?”턱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맑고 흰 피부가 그의 힘 때문에 턱 부분이 빨갛게 변해버렸다.유나은은 조금 아픈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물었다.“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내 옆에 있어. 널 계속 지켜볼 거야.”그 말에 유나은은 순간 흥분하며 그의 손을 치워버렸다.“그날 분명 약속했잖아. 날 놓아...”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이연준은 손을 거두어들이더니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로 얘기했다.“계속 얘기해 봐. 내가 그날 뭐라고 약속했는지.”유나은은 속으로 그에게 욕을 퍼부었다.그 시각, 병실 밖.유나은이 걱정 됐던 주승아는 두 사람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듣기 위해 진명수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틈을 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두 걸음도 채 가지 못하고 바로 그에게 제지당했다.“주승아 씨.”주상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병실 문을 가리켰다.“들어가려던 게 아니라 그냥 문밖에서 지켜보기만 하려고요.”“안
유나은의 동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넘어가야 하지?“너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왜 그래?”주승아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말을 이었다.“솔직하게 불어. 너랑 네 삼촌 사이에 뭔가 비밀이 있는 거지?”유나은은 침을 꼴깍 삼켰다.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 사이이기에 주승아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평소에는 덤벙거리며 믿음직한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녀지만 중요한 일에서는 수사관보다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 원하는 것을 꼭 알아내고야 마는 그녀였다.어쩌면 이연준과의 사이를 알아채는 것도 시간문제일지 모른다.유나은은 아주 잠깐 차라리 이대로 다 털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연준에게 했던 약속했던 말이 떠올라 결국 거짓말을 택했다.“비밀은 무슨.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하지만 주승아는 절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그럼 이연준이 왜 너를 보러 여기까지 왔는지 납득이 가게 설명해 봐. 나는 네가 그 집안에서 어떤 처지인지 다 알고 있는 거 알지? 잘 생각하고 대답해야 할 거야.”“근처에 볼일 보러 왔다가 들렸대.”유나은은 그새 핑계를 생각해두었다.“그게 이씨 집안의 다른 사람이었다면 백 보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방금 여기로 온 건 이연준이야. 그 이연준이라고!”그렇다.그는 이연준이었다.이름만 들어도 절로 뒷걸음질 치게 된다는 그 이연준이었다.주승아는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유나은이 말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더 추궁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그 비서 말이야. 나를 병실 쪽으로는 한 걸음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어.”주승아는 화제를 돌렸다.“그래서 얘기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지. 그러다 문이 열리고 네 삼촌이 나오는데 내가 그 얼굴을 보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나는 너희 삼촌이 널 죽이기라도 한 줄 알았어.”“...”주승아는 말을 하다가 유나은의 턱에 남겨진 빨간색 자국을 발견하더니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