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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눈앞에 있는 여자는 예쁘장한 얼굴에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있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풀 세팅을 하고 있었다.

유나은은 이 여자를 알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양수경으로 근 2년간 이연준이 공식 석상에 무수히 많이 데리고 다녔던 여자다.

이연준에 관한 소문 중에 양수경의 지분은 컸다.

그녀는 얼굴이 예쁜 데다 능력까지 있었고 이연준의 곁에 제일 오래 머물고 있는 여자이기도 했다.

이연준이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면 그 옆에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연준의 미래 와이프가 그녀일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도 돌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 맞죠?”

양수경의 시선이 의사 가운을 다시 입은 유나은에게로 향했다. 병원에서 이렇게 예쁜 얼굴의 의사를 만날 줄은 몰랐는지 양수경은 반신반의한 표정이었다.

“네, 그런데요?”

유나은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러자 양수경은 그제야 이곳으로 온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 아빠 상황이 많이 좋아져서요. 지금 바로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중환자실에서 나오게 해주세요.”

유나은은 아무런 대답 없이 자리로 가 양진수의 차트를 한번 훑어보고는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양진수 씨에게 다른 지병은 없었나요?”

양수경은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다른 지병 같은 건 없고요. 그냥 빨리 중환자실에서 나오게 해주세요.”

“그건 안 됩니다. 병원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고 양진수 씨 이대로 보내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유나은은 차분하게 얘기했다.

“보호자인 제가 원하는 일이에요.”

“보호자분, 상식적으로 오늘 아침 중환자실에 들어간 사람을 하루도 안 돼 바로 집에 보내 달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양수경은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그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당신이 꼭 들어줘야 한다면요?”

“죄송하지만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유나은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거절했다.

그 모습에 더 열이 받은 양수경은 팔짱을 한번 끼더니 협박 조로 말했다.

“이봐요, 내가 누군지 알아요?”

유나은이 되물었다.

“그걸 제가 꼭 알아야 합니까?”

“하, 그래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세요.”

양수경은 화를 억누르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위가 조용했던 탓에 전화 연결음이 그대로 들려왔다.

그렇게 정확히 네 번 정도 들렸을 때 상대방 쪽에서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연준 씨. 나 지금 너무 짜증 나. 여기 의사 하나가 아주 꽉 막힌 게 융통성이 하나도 없어. 대체 누가 이런 사람을 뽑은 건지 모르겠어.”

양수경은 아까와는 달리 조금 간드러진 목소리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유나은은 순간 잠자리 중에 목소리가 듣기 좋다며 몇 번이나 귓가에 속삭이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여자들한테도 그런 말을 했을까?’

이연준은 그녀가 일부러 소리를 내지 않을 때면 갖갖은 방법으로 입을 열게 했고 결국 항복하고야 만 그녀가 소리를 내면 그제야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은 채 ‘목소리 듣기 좋으니까 다시는 참지 마.’라며 속삭였다.

유나은이 잠깐 다른 생각을 하던 사이 양수경은 벌써 다 일러바치고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곧 그쪽한테 전화 갈 거니까 받아보세요.”

이연준이 어떻게 달랬는지는 모르지만 불만 가득했던 양수경의 얼굴에 어느새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녀가 얘기하고 나서 30초도 채 안 된 타이밍에 유나은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발신자가 병원장인 임석우라는 걸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원장님.”

임석우는 다소 위엄있는 말투로 양진수 환자에 관해 몇 마디를 건넸다.

유나은은 그의 지시를 듣더니 한숨을 한번 쉬고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했다.

통화를 마친 뒤 그녀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양수경을 바라보았다.

“원장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양수경은 비웃음 가득한 웃음을 짓고는 다시 하이힐 소리를 내며 가버렸다.

옆에 있던 최미연은 유나은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원장님께서 직접 얘기하신 거니까 유 선생님도 괜히 스트레스받지 말아요. 책임을 우리가 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유나은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중환자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양진수의 상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그에게 정말 퇴원해도 괜찮겠냐고 세 번 정도 물었다.

그러자 몇 초간 침묵을 유지하던 양진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유나은은 몸을 일으켜 옆에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유 선생님, 장치 뗄까요?”

“그러세요.”

간호사의 재촉에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중환자실에서 나오자 바로 앞에 남녀 한 쌍이 있었다.

여자는 몇 분 전에 봤었던 양수경이였고 그 옆에 있는 남자는...

“연준 씨, 이 여자가 바로 아까 내가 말했던 융통성 없는 의사야.”

양수경은 이제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었다.

유나은은 이연준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도착할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그녀와 함께 이곳에 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여자가 뭘 어쨌는데?”

남자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살짝 묻어있었다.

양수경은 그에게 팔짱을 끼며 어린애가 일러바치듯이 말했다.

“이 여자가 규정이니 뭐니 얘기하면서 시간을 지체했잖아.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조금만 더 빨리했으면 좀 좋아?”

이연준은 옆에 찰싹 달라붙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규정을 지키는 게 틀린 건가?”

“아니, 그건...”

그 말에 양수경은 순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남자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몰라 몹시도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기분이 나빴으면 틀린 거지.”

그때 이연준이 병 주고 약 주듯 그녀를 달래자 당황했던 그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연준 씨도 참, 깜짝 놀랐잖아.”

그녀는 혹 자신이 틀린 얘기를 한 건 아닌가 싶어 정말 깜짝 놀랐다.

유나은은 애써 두 사람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멀리했다. 그러다 간신히 억누른 메슥거림이 또다시 발작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토가 나올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이제 막 두어 걸음 나아가려는데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서.”

유나은의 발걸음이 멈췄다.

양수경은 그가 멋모르고 까부는 의사를 불러세워 바로 해고할 거라고 생각했다.

‘병원에 들어온 것도 얼굴로 누구 하나 꼬셔서 들어온 게 분명해!’

“이리 와.”

그의 말에 못 들은 척 다시 발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또다시 이연준의 음성이 들려왔다.

“거기서 한 발짝 더 움직여 봐.”

유나은은 결국 다시 발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연준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배짱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그는 단순히 입으로만 협박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유나은은 깊게 숨을 한번 들이켜고 표정을 다잡은 뒤 발걸음을 돌려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이연준은 오늘 날씨가 조금 쌀쌀한 탓에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입었다. 평소보다 더 커진 몸 때문인 건지 원체 냉랭한 그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독 더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잔뜩 꾸민 양수경과 함께 있으니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따로 없었다.

이연준은 바로 앞에 멈춰선 채 가만히 있는 유나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집에서 나오더니 내가 누군지도 까먹었어?”

유나은은 허리를 꼿꼿이 한 채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삼촌.”

그 호칭에 옆에 있던 양수경이 화들짝 놀랐다.

“삼촌? 그럼 연준 씨 조카라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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