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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얼마나 지났을까, 유나은은 매콤한 떡볶이 냄새를 맡으며 정신을 차렸다.

눈을 천천히 떠보니 주승아가 병상 옆에서 치즈가 듬뿍 들어간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승아야, 다음부터는 병실 안에서 먹지 마.”

그녀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에 주승아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빵빵한 볼에 묻은 소스를 티슈로 벅벅 닦고 말했다.

“나은아, 너 괜찮아?”

그녀는 입에 있는 것을 마저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몸은 좀 어때?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

“응, 괜찮아졌어.”

기절하기 전과 비교하면 안색은 확실히 좋아졌다.

“그런데 승아 네가 여기는 왜 있어?”

“아침 일찍 너한테 전화하니까 서민호라는 의사 선생님이 네 전화를 대신 받아서 네가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줬어. 그래서 바로 여기로 달려왔지.”

유나은이 계속해서 물었다.

“내 상황을 뭐라고 얘기했는데?”

그녀는 기절하기 전 속이 울렁거리고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심장 고동이 빨라졌던 것만 기억하고 있다.

주승아는 그녀에게 따뜻한 물을 따라주었다.

“급성 위염이래.”

유나은은 물을 건네받지 않고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되물었다.

“급성 위염이라고?”

“그래. 왜, 아닌 것 같아?”

주승아는 그녀가 편히 기댈 수 있게 옆에 있는 쿠션을 등 뒤에 받쳐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그녀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유나은은 물을 받아들고 한잔을 전부 비워냈다.

주승아는 그제야 다시 의자에 앉아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녀 앞에는 떡볶이 먹방 중인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유나은이 정신을 차리기 전, 그녀는 떡볶이 먹방을 보다 침이 고여 결국 똑같은 떡볶이를 주문하고야 말았다.

조금 뒤, 서민호가 그녀의 병실로 들어왔다. 그는 혈색이 제대로 돌아온 유나은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은 좀 어때?”

유나은은 그를 바라보았다.

“응, 이제 괜찮아졌어. 고마워.”

“고맙기는.”

서민호는 지금 마음이 불편했다.

유나은은 그 모습을 보고 그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도 있었어?”

그의 걱정에 유나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스트레스는 무슨. 그냥 내가 건강을 못 챙긴 거지.”

몇 시간 전, 그녀가 기절한 것을 전해 들은 서민호는 그녀를 계속 찾았던 간호사를 추궁했다. 그리고 그제야 윗선의 누군가가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유나은이 이씨 가문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모든 걸 알게 됐음에도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민호는 그녀가 솔직히 얘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당부만 전했다.

“건강이 최우선이야. 요즘 길거리 음식이랑 배달음식은 아예 먹지 말고 찬 음식도 금지야. 그리고 맵고 짠 칼로리 높은 음식도...”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옆에서 먹방을 틀어놓은 채 맛있게 떡볶이를 먹고 있는 주승아를 바라보았다.

주승아는 그의 시선을 느끼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거 나은이한테는 한 입도 안 줄 거예요.”

서민호는 그녀에게 물었다.

“요즘 2, 30대들 사이에서 위병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유를 아세요?”

주승아는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건데요?”

“지금 당신처럼 맵고 짜고 단 칼로리 높은 음식을 너무 자주 그리고 많이 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다이어트 하는 중에 대리만족감을 느끼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먹방 영상들을 찾아보고 있죠.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시각적인 자극만으로도 위산을 분비합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어도 위는 멋대로 일을 시작하죠. 위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점막이 약해지고 따라서 속이 쓰리거나 아프게 됩니다.”

“...”

주승아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서서히 내려놓고 입가를 닦았다.

옆에 있던 유나은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미칠 지경이었다.

서민호는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한 뒤 병실을 나가버렸다.

“저 선생님 여자친구 없지?”

주승아는 안보다도 비디오라는 얼굴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사람이 너무 딱딱하잖아. 누가 저런 사람을 좋아해. 표정 변화도 없고.”

유나은은 그녀에게 이연준의 얼굴은 저것보다 더 차갑고 싸늘하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때 주승아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나은이 너, 나한테 얘기해야 할 거 있지 않아?”

눈이 마주치자 찔리는 게 있었던 유나은은 금세 시선을 피해버렸다.

“왜 시선을 왜 피하지? 나 똑바로 봐.”

“자, 똑바로 봤어. 됐지?”

유나은은 최대한 침착한 척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뭐, 뭘?”

주승아는 드디어 이 질문을 할 수 있게 됐다.

“화장실에 있었던 임신 테스트기, 어떻게 된 거야?”

유나은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러자 주승아는 그녀의 볼을 감싼 손에 힘을 줘 입술을 깨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얼버무릴 생각하지마. 그리고 괜히 머리 굴릴 생각도 하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해.”

유나은은 주승아의 손을 내리고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자 답답한 마음에 주승아가 먼저 물었다.

“너, 네가 임신한 줄 알았지?”

유나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에 주승아는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확신했다.

“너 설마 쓰레기 자식한테 걸린 거야? 그 자식이 몸도 빼앗아 가고 맘도 빼앗아 가놓고서는 책임지기 싫대?”

“...”

주승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를 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은아. 그렇게 큰일이 있었으면 나한테 먼저 상담을 하든 했어야지. 왜 계속 숨겨? 너 설마 내가 그 쓰레기 자식 욕이라도 할까 봐 그런 거야?”

유나은은 고개를 들고 해명했다.

“사실은 그런 게 아니...”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승아가 손을 휘휘 저었다.

“됐고, 딱 얘기해. 네 몸도 뺏어가고 맘도 뺏어간 그 쓰레기 자식, 누구야?!”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실 문이 열렸다.

주승아는 잔뜩 심기가 뒤틀린 얼굴로 돌아보았다.

“누구야 이 중요한 순간에. 노크할 줄 몰...”

그녀는 마지막 한 글자를 도로 삼켰다.

주승아의 시선 끝에 이연준이 서 있었다.

유나은의 삼촌인 이연준 말이다.

주승아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 차마 말을 내뱉지 못했다.

물론 깜짝 놀란 건 유나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를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침 병원에 볼일이 있던 찰나에 얘기를 듣고 온 건가?

아니면 일부러 그녀를 보러?

이연준이 걸어오자 주승아는 황급히 그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의 시선이 유나은의 얼굴에 떨어졌다.

“많이 아파?”

분명 걱정하는 말이었지만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주승아는 혹시 몰라 유나은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세게 놀라거나 하지는 않고 꽤 담담했다.

“급성 위엄이래요. 링거 맞고 나니 괜찮아졌어요.”

유나은은 최대한 침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삼촌이 여기는 웬일이에요?”

이연준은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너 보러.”

그는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옆에서 주 사람을 계속 바라보던 주승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나은아, 너희 삼촌 엄청 다정하시다.”

“...”

“진 비서.”

그의 부름에 진명수가 병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주승아 씨 데리고 나가세요.”

진명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승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에 그녀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를 왜 내보내는 거야?’

“주승아 씨, 저와 함께 나가시죠.”

진명수는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닌 매너있게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

주승아는 유나은 쪽을 바라보고 그녀에게서 괜찮다는 눈빛을 받고서야 찝찝한 얼굴로 병실을 나갔다.

‘그래. 이따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면 되지 뭐.’

문이 닫히고 병실에는 유나은과 이연준만 남게 되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관계 정리를 마쳤다. 더 이상 그와 만나는 건 힘들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그와 재회하고 말았다.

“할 말 있어, 삼촌?”

유나은은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이연준은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대고 앉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몸도 뺏어가고 마음도 뺏어간 쓰레기 자식.”

유나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연준은 웃는 듯 마는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자식에 관해 얘기 좀 나눠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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