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또한 인내심 있게 말을 들어주며 가끔 미소를 짓기도 하고 동기에게 전문 간호사를 찾아주었다. 그리고 3000만원의 병원비를 전부 대주고, 최고의 VIP 병실에 입원시켜주기도 했다.그러면서도 조은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연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그는 동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박연희가 그것을 알아채고는 다소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러면서도 남들이 눈치챌까 봐 애써 평소의 모습을 유지했다.그런데 스물한 살의 순수한 박연희가 어떻게 겪을 것 다 겪은 조은혁의 눈을 피해 갈수 있었을까. 그의 눈에는 그녀가 도마 위의 작은 물고기처럼 보였고 언제든지 구워 삶을 수 있는 쉬운 먹잇감이었다.그는 대략 30분 정도 있다가 떠났고 동기가 그 모습을 아쉽게 바라보았다. 조은혁이 떠나자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약간 기대를 품은 말투로 박연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조 대표님, 나에게 호감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아?”"진짜 잘생긴 것 같아.”"지금 당장 그와 결혼하고 싶어. 연희야, 너 봤어? 그 사람 다리가 너무 길어. 두 눈을 마주칠 때면 심장이 정신없이 두근거려. 나 이렇게 완벽한 남자는 본 적이 없어!”……박연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녀는 마지못해 웃으며 말했다.“응, 그럴수도 있겠다."그녀는 며칠 동안 조은혁에 대한 호감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그가 정말로 동기 같은 타입의 여자를 좋아할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함께 한다면 그녀도 축복할 것이다.그녀의 설렘은 단지 한때의 설렘일 뿐이다.이후 박연희는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조은혁을 만났다. 그는 가끔 동기에게 말을 걸었고, 그러면 동기는 항상 얼굴이 붉어졌다.그래서 점점 박연희는 병실에 발길을 끊었다.그녀는 동기에게 오해를 살까 봐 조은혁의 양복을 직접 돌려주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신분을 알아냈고, 그가 JH그룹의 대표라는 소식을 알고 나서 택배로 보냈다.……JH그룹, 대표사무실.조은혁은 사무용 의자에 기대어 턱을 괴고 양복이 들어 있
B시 미대.저녁 하늘에 구름이 떠다녔고 노을 빛이 눈부셨다.박연희는 흰 블라우스에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본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아래의 하얀 다리가 눈길을 끌었다.미대 입구에 버스 승강장이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2번 버스가 천천히 오자 박연희는 차를 타기 위해 한 걸음 다가섰다.그때 한쪽에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멈춰섰고, 차창이 반쯤 내려가자 낯익은 근사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조은혁이었다.박연희는 얼떨떨해져서 한 걸음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남자는 몸을 기울여 한쪽 문을 열었고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보았다.”타.”뒤에 선 버스가 경적을 울리고 있었고, 주위 친구들도 다 보고 있었다.박연희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허리를 굽혀 차에 들어갔고, 그녀가 들어가자 튼튼한 팔이 그녀의 몸을 가로질러 차 문을 살짝 닫았다.그는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몸이 왔다갔다 하면서 그의 팔이 닿을듯 말듯 소녀의 예민한 곳을 문질렀다.박연희의 작은 얼굴이 불에 탄 것처럼 빨개졌다.차가 천천히 움직이자 앞좌석 운전기사가 자연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어디로 갑니까?”조은혁이 고개를 숙이고 박연희를 바라보았다.소녀의 속마음은 거의 투명해서 남자를 속일 수 없었다. 그녀는 약간 억울해서 눈을 붉혔다.“집으로 갈래요.”말이 끝나자 조은혁이 가볍게 웃었으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박연희 씨 집으로 가.”박연희가 잠시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물었다."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있죠? 제가 어디에 사는지는 또 어떻게 알고요?”조은혁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느 젊은 여자가 이런 어른스럽고 근사한 남자의 시선을 견뎌낼 수 있을까. 게다가 그는 굉장히 잘 생겼다. 박연희는 작은 얼굴이 빨개진 채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눈이 빨갛게 달아올라 더 이상 말을 걸려고 하지 않았다.그녀는 마음속으로 그와 선을 긋기로 마음먹었다.그는 너무 어려운 사람이었다.박연희가 아무리 단순하다 해도 곁의 남자가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시간이 지나자 박연희의 손바닥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차에서 내린 후, 그녀는 매우 빨리 달렸다.집에 돌아온 뒤, 도우미 김향희가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았다. 거기에는 굉장히 잘생긴 남자가 차 옆에 서 있었는데, 차는 비싸고 남자도 훤칠하니 매우 근사했다.남자는 어른스럽고, 잘생겼고, 딱 봐도 부자였고, 서른 살 정도 된 것 같았다.주인 아가씨의 일에 김향희가 참견하는 건 안 될 일이었지만 그녀는 걱정되는 마음에 넌지시 말했다."아가씨 오빠 분께서 저번에 말씀하시길 아가씨는 나이가 어려서 아직 연애하지 적당하지 않다고 하던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요즘 남자들은 너무 나빠요, 특히 돈 많은 남자들은 예쁜 여자들만 골라 연애하고, 1년 반 정도 사귀다가 신선함이 없어지면 또 바꾸죠.”박연희는 김향희의 뜻을 알아챘다."남자친구 아니야, 저번에 사랑이를 구해줬던 사람이야!”김향희가 잠깐 멈칫하더니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럼 더 조심해야죠. 그 사람이 구해준 사람이 아가씨 동기라면서요? 그러면 무슨 일이 생겨도 그 동기 분이랑 생겨야지... 아가씨랑은 왜 또 엮이는 건데요?”박연희가 얼음 물을 마시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날부터, 매일 하교하면 조은혁이 집까지 바래다줬다.처음에는 집에만 데려다주었다.그러다가 일주일 뒤에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서 같이 식사를 했다. 레스토랑의 통창 밖으로는 도시 전경이 보였는데 멀리 있는 관람차의 불빛이 찬란하게 빛났다.외로움에 익숙했던 박연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남자는 깔끔한 옷차림으로 머그잔을 손에 쥔 채 그녀 곁에서 함께 도시의 불꽃놀이를 지켜보았다.밤 10시, 아래층에서 환호성이 간간이 들려왔다.그리고 그때 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조은혁이 멍하니 있는 박연희의 손을 한 손으로 잡았다.그는 옆으로 돌아앉아 손에 든 머그잔을 내려놓고 금테 안경을 벗고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첫 키스를 가져갔다. 은은한
그러나 그녀의 생각이 얼굴에 버젓이 쓰여 있는데 그가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조은혁은 여전히 박연희를 건드리지 않고 계속 그녀와 데이트했다.그는 반년도 채 걸리지 않아 그녀가 자신에게 깊이 빠져들게 한 후 그녀를 데리고 하와이로 놀러갔다.그날 그는 폭우가 내릴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박연희를 데리고 골프를 치러 갔다.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산 중턱에 갇혔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급 민박집에 묵게 되었다. 조은혁은 스위트룸만 하나를 예약했다.그가 방 카드를 받았을 때 박연희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그녀는 간절히 그를 바라보았다.조은혁은 그녀가 그와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이제 그만절제해도 된다고 느꼈다. 그는 그녀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그가 밀어붙이면 그녀는 받아줄 것이라고 믿었다.그녀는 얌전하게 말을 잘 들으니까.조은혁이 깊은 눈동자로 박연희를 보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스위트룸으로 끌고 들어갔다.방은 약 80평이고, 통나무로 인테리어를 했다.그리고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조은혁이 전화를 받았다. 5분 정도 통화를 하던 그가 몸을 기울여 박연희를 바라보며 턱을 가볍게 들었다."옷이 다 젖었으니 먼저 샤워하고 나와. 내가 머리 말려줄게.”박연희는 맨발로 양털 담요를 밟았다.그녀는 약간 긴장했다.하지만 그녀는 방금 조은혁이 업무에만 신경을 쓰는 금욕적인 모습을 보았기에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여겼다. ‘박연희,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저 사람은 그런 뜻이 없어!’그녀는 긴장을 풀고 욕실로 가서 목욕을 했다.잠시 후, 욕실 안의 물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소녀의 몸이 보일락말락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목욕을 즐겼다.그때, 욕실 문이 살며시 열리자 그녀는 즉시 몸을 숨기고 구석에 웅크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매우 애처롭고 가련했다.조은혁의 검은 눈동자가 약간 어두워지며 유리문을 닫아 두 사람을 한 공간에 가뒀다. 이어서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갔고,
그녀의 눈물 한 방울이 그의 가슴에 깊게 박혔다.조은혁이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며 박연희의 이름을 불렀다.“연희야!”박연희는 오히려 담담했다.그녀는 몸을 반듯하게 눕히려고 침대를 더듬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피곤하고 힘이 없었다."갑자기 안 보여요. 하지만 이것도 언젠간 있을 일이었고, 저는 이미 준비를 다 했어요.”"조은혁 씨, 이제 좀 그만 해요.”"전 지쳤어요."...박연희는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녀는 눈가에 눈물을 매단 채 방금 떠올렸던 옛날을, 그리고 그의 첫인상을 다시 회상했다.그때 그는 매력이 넘쳤다.지금도 그는 여전히 잘생기고 부유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 또한 비굴하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눈물이 그녀의 눈을 적셨다. 그들의 사랑은 예전에 두 사람이 함께 봤던 도시 밤하늘의 불꽃처럼 아름다웠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가짜다.박연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조은혁은 갑자기 닥친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가 회복된 후 간 이식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의 눈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그가 그녀 앞에 반쯤 무릎을 꿇었다.조은혁은 그녀를 대신해서 눈물을 가볍게 닦으며 말했다."아프고 나서 후회한 적 있어? 이런 결정을 후회한 적이 있냐고. 내 마음 속에 정말 네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왜 한번 시도해 보지 않았어.”박연희는 대답하지 않았다.이제 그가 있든 없든,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옆 병실에 있는 진범은 계속 울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를 원하고 있다.장숙자가 그런 조진범을 끌어안고 달래고 있었다.그때 조은혁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김 비서가 전화를 걸어왔다.“대표님, 닥터 앨런이 사모님의 치료에 동의했지만 대신 3억 달러를 요구했습니다.”"동의해."조은혁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지금 당장 민국 병원으로 와서 여기 의사들이랑 만나서 회의하라고 해. 그리고... 연희 눈이 보이지 않
저녁 무렵, 노을이 하늘을 물들였지만 박연희의 세계는 여전히 어두웠다. 그녀는 아침 햇살도, 노을도, 그녀의 아이도 볼 수 없었다.조은혁이 자리를 비우자 장숙자가 조진범을 안고 왔고, 장숙자는 조진범의 작은 손을 이끌며 엄마 손을 잡으라고 했다.장숙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진범 도련님, 빨리 엄마라고 불러봐요.”박연희는 차가운 손바닥으로 조진범을 안고 작고 따뜻한 손을 잡았다. 그러다가 조진범이 추울까봐 미련을 버리고 아이를 다시 놓았다.그녀의 몸이 옅게 떨렸다.엄마가 불편한 걸 아는지 조진범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어마... 어마 어마.”장숙자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사모님, 진범 도련님이 부르십니다. 얼마나 철이 들었는가 좀 보세요. 진범 도련님을 봐서라도 기운을 내셔야 합니다. 대표님께서 가장 좋은 의사와 의료 장비를 찾아주셨으니 병세가 호전될 수 있을 겁니다. 기적이 있을 겁니다!”장숙자가 말을 마치자 박연희가 웃더니 말했다."그 사람은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지금은 저를 잃을 것 같으니까 갑자기 잘해주고 마음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제 병세가 좋아지면 또 다시 반복할 거예요. 그처럼 모진 사람이 어떻게 저를, 그리고 제 오빠을 놓아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이미 너무 늦었어요.”그녀는 말하면서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다시 한번 애틋하게 조진범을 어루만지더니 말을 이었다. "진범이를 데려가세요. 병 기운이라도 옮을 까봐 걱정되네요.”장숙자는 마음이 괴로워져서 낮게 말했다.”좀 더 같이 계시지 않고요.”박연희는 반대하지 않았다.초점 없는 검은 눈동자를 창밖을 향해 돌린 그녀가 중얼거렸다."밖에 노을 너무 예쁘겠네요. 사람한테 비치면 그건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장숙자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사모님, 생각하지 마세요!”박연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 사람 생각한 적 없어요. 그냥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된 제가 너무 한심해요...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말았네요.”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녀
박연희가 옅게 웃으며 축하했다.그녀는 그를 볼 수 없어서 손가락으로 그의 옷소매를 살짝 건드릴 수 밖에 없었다.박연희에게 있어 하인우는 한 시절을 가리키는 사람이었다. 그리 힘들지 않았던, 버틸만 했던 시절. 하지만 하인우가 부상을 당한 뒤 그녀의 인생은 지옥으로 추락했다.하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시간 동안 그녀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으니까.그때야말로 그녀는 사람답게 살고 있었다.단지 그 때문에 하인우가 피해를 입었을 뿐.하인우는 그녀의 수척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서 박연희의 예전의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었지만, 그는 그 청춘의 푸릇함과 그녀에 대한 설렘을 기억하고 있었다.하인우는 천천히 주저앉았다.그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귓속말로 말했다."잘 살아, 응? 연희야... 넌 아이도 있고, 아직 젊으니까 나중에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어. 지금 의학기술이 그렇게 발전했으니 너는 다시 앞을 볼 수 있을 거야.”박연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사실, 그가 그녀를 보러 올 수 있어서 그녀는 이미 매우 기뻤다.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서로에게 등을 돌린 적이 없었다.하인우에게 딸이 생겼기에 그녀는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어했고, 장숙자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는 서둘러 짐을 뒤져서 옥 목걸이를 찾았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박연희에게 말했다."사모님이 친정에서 가져온 물건입니다.”박연희가 옥을 받아서 천천히 하인우의 손에 쥐어주었다.“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랄게요.”하인우은 옥 목걸이를 손에 쥐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그는 이미 결혼했고, 박연희는 그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물어보고 싶었다. 만약 그녀의 삶에 조은혁이 없었다면... 그녀가 그에게 약간의 설렘을 가졌을지.하지만 그는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아래층에서 자동차 소리가 났다.장숙자가 긴장해서 하인우의 손을 잡고 목소리를 약간 떨었다."대표님이 곧 돌아오실 것 같아요
그의 딸은 그를 닮아 피부가 희고 예뻤다.마음이 약간 풀어진 하인우는 그 옥 목걸이를 딸의 목에 가볍게 매어주고는 길이를 조절해줬다.전소미 또한 집안이 가난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이 물건의 가치를 알아채고 말했다."인우야, 이거 누가 준 물건이야?”하인우는 아내의 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옛날 동창인데 마침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에 가봤더니 이걸 줬어.”전소미가 남편에게 일러 주었다."이건 꽤 값이 나가는 물건인 것 같아. 병이 나으면 나중에 제대로 된 물건을 사서 보내줘, 받지만 말고.”하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았다. 사실 그는 마음속으로 한평생을 그냥 이렇게 눈과 귀를 막고 보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단지 조은혁이 용서한 불쌍한 벌레일 뿐이고, 늘 함께 지내며 매일 밤 같이 잠드는 아내는 조은혁이 그에게 보내준 여자일 뿐이다.이런 ‘행복’을 그는 항상 꿈꿔왔다.생각할수록 얼마나 우스운지.그는 딸의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민희라고 하자. 이 아이 이름은 하민희야.”전소미도 그 이름을 매우 좋아했다.그녀는 딸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아빠가 너한테 지어준 이름은 하민희야. 어때? 이 이름 맘에 들어? 아빠가 지어준 이름인데.”전소미가 남편을 바라보며 웃었다.이 결혼은 비록 조은혁이 주선한 것이지만, 하인우는 온화하고 자상하며 또한 점잖고 잘생겨서 평소 같이 살며 그들은 말다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결혼생활이 퍽 행복하게 느껴졌다.전소미의 눈에는 하인우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조은혁은 VIP병동 입구에 서서 손을 살짝 들었다.김 비서는 눈치가 빨라서 밖을 지키고 서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조은혁이 문고리를 잡고 문을 밀고 들어가며 낯선 냄새를 맡았다.피에 익숙했던 그는 낯선 냄새를 기민하게 알아 챌 수 있었다.어둠이 내렸고, 박연희는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