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잠들었던 강혜정이 눈을 떴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누가 있는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비명을 질렀다.신은지는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하고 다시 강혜정을 불렀다.“어머님.”다행히 그녀를 알아본 강혜정이 한숨을 쉬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미안하구나. 금방 눈을 떴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만… 많이 놀랐지?”신은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비명소리를 듣고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박용선이 안으로 들어왔다.“무슨 일이야?”강혜정은 긴 악몽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녀는 별장에 있었는데 봄 향기가 가득한 정원 흔들의자에 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주변에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중에 있는 별장이었는데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강혜정이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별장에서 밖으로 나왔다. 편안한 복장을 입은 사내는 흔들의자 옆으로 천천히 다가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혜정아.”분명 목소리는 자상하고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광기와 집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관자 시선으로 바라본 그는 완전히 미친 사람이었다.사내는 흔들의자에 누운 여자의 손을 잡고 천천히 그녀를 잡아당겼다. 여자는 힘없이 사내에게 이끌려 몸을 일으켰다.그 순간 방관자인 강혜정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그것은 그녀의 어릴 적 얼굴이었다.놀란 강혜정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분명히 꿈이고 방관자 시선이었는데 갑자기 사내가 고개를 들리더니 음침한 눈을 하고 그녀에게로 다가왔다.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놀란 강혜정은 그대로 눈을 떴다.잠에서 깬 강혜정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그녀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이었다. 강혜정이 꿈에서 본 사내는 기재욱, 기민욱의 아버지이자 회사 공금을 횡령하고 경쟁사와 결탁하여 재경그룹을 위기로 몰아넣은 인물이었다.박용선의 손에 충분한 증거가 있었기에 기재욱은 발뺌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 미친놈은 그때 강혜정을 납치하여 그
“대체 내가 박용선보다 못한 게 뭐야?”강혜정은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기에 절망적인 얼굴로 눈을 감았다.당장이라도 넌 미친놈이고 네 주제에 누구랑 비교하냐고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더 이상 이 미치광이를 자극할 수는 없었다.대답을 듣지 못한 기재욱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의 핸드폰을 집어들더니 말했다.“자, 박용선한테 전화해. 요 며칠 지방 출장 나갈 거고 5일 뒤에 돌아간다고 말이야.”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애처롭게 말했다.“혜정아, 나랑 5일만 같이 있자. 응?”애원에 가까운 말투였지만 모든 게 자신을 속이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기에 강혜정은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가서 자수해요. 자수하고 합의까지 하면 양형을 좋게 받을 수 있잖아요. 어린 아들까지 있는데 아들을 생각해야죠. 엄마까지 잃은 아이인데 아빠까지 잃으면 애는 어떡해요?”“그럼 죽으라지. 어차피 나중에 커도 큰일을 못할 놈이야. 난 자수 따위 안 해.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경찰에 잡히지 않을 거야.”그의 손길이 강혜정의 옷섶에 닿았다. 강혜정은 바짝 긴장하며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기재욱은 흥미롭다는 듯이 겁에 질린 그 모습을 감상하더니 말했다.“내 말을 안 들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내 말만 잘 들으면 5일 지나고 풀어줄게. 사실 나 정사에 딱히 관심이 없어. 사랑이 없는 정사는 재미가 없거든. 그러니까 내 신경만 자극하지 않으면 무사할 거라는 얘기야.”섬뜩한 협박이 담긴 말에 강혜정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박용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재욱이 바로 옆에 있었기에 그녀는 납치에 관한 그 어떤 얘기도 꺼낼 수 없었다.물론 이 미친놈이 하는 말을 믿는 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핸드폰에 대고 섣불리 구조요청을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 갇힌 건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박용선이 오기 전에 미친놈이 발작을 일으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일단은 지켜보며 기회를 기다리기로
창문을 두드린 자는 키 큰 남자였다. 그의 굴곡진 몸 선으로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는데 모자로 윗머리를 가렸고 검은색 마스크로 아래 얼굴까지 가렸다.신은지의 차는 가로등 바로 옆에 주차되어 있었는데 그 사람이 허리 숙여 차 안을 들여다보는 바람에 불빛을 등지고 있어 그의 얼굴이 더욱 검게 보였다.정말... 귀신같았다.신은지는 손을 뻗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를 더듬거렸다. 그녀는 한 손으로 사물함에 넣어둔 망치를 꺼내 날이 선 쪽을 위로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재빨리 라이터 키를 눌렀다.“작은 사모님, 접니다. 겁먹지 마세요.”남자는 서둘러 마스크를 벗었다. 그는 신은지가 얼굴을 더 똑똑히 확인할 수 있도록 심지어 유리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먼저 가지 마세요. 보스께서 보내셨습니다.”“...”저번 주차장에서 그녀의 입을 막았었던 남자였다. 박태준의 사람이었지만 정확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지인인 것을 발견한 신은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창문을 내렸지만 여전히 망치를 꼭 움켜잡고 있었다.“사장님은요?”그녀가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박태준은 아직 그녀의 문자에 답장하지 않은 상태였다.남자가 대답했다.“보스께서 저더러 이사를 도우라고 분부하셨습니다.”“어디로요?”그녀는 박태준이 이 일에 대해 언급한 적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남자의 어깨를 넘어 뒤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옆에 주차된 차에 시야가 완벽히 차단되었다.“혼자 왔어요?”“신당동이요. 보스는 급한 일이 있으셔서 미처 오지 못했고 저 혼자 왔습니다.”신은지는 차에서 내리더니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주위를 둘러보더니 옷깃을 여미며 물었다.“차는 어디에 있어요?”“네? 저... 저 운전하지 않고 택시로...”신은지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그녀는 휴대폰 플래시를 켠 채 차의 뒷좌석을 꼼꼼히 체크했다.남자는 그녀의 뒤를 꼭 붙어 다녔지만 한참 지나도 이상한 점을 눈
신은지와 어렵게 단둘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박태준은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민우더러 이삿짐 옮기라고 하자.”그는 사실 그녀에게 중요한 물건만 챙기고 나머지 물건들은 죄다 버리고 새로 사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혹여나 여지라도 남겼다가 후에 그녀가 이 핑계로 다시 집을 나오려고 할까 걱정되었던 것이다.신은지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입을 열었다.“응.”어차피 그녀는 현재 휴가를 신청한 상태라 재경그룹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 비좁아 죽을 지경인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고, 운수 좋게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쇼핑센터를 드나들지 않아도 되며 박태준이 그녀 때문에 가슴을 썩히지 않아도 된다.아내를 달랬다는 건 재혼에 관한 희망도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기민욱이란 변태만 해결하면 곧바로 그녀를 데라고 구청으로 가 재혼 증명을 뗄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뒤로 또 다른 요소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참에 아이도 다시 돌려받을 계획이었다.그러나 임신 중이라 또 한동안 참아야 한다.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 그보다 더 처참한 유부남은 없을 것이다. 알고 지낸 지 10여 년, 결혼한 지 3년, 이혼한 지 1년이 되면서 정작 행복한 식사 자리를 가진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하지만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신은지가 어느날 갑자기 후회하여 도망치면 어떡하나.만약 고연우의 그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분명 대놓고 그를 놀렸겠지? 그녀는 남편을 버린 채 아이만 데리고 도망칠 수도 있고 임신한 채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수도 있다. 심하면 아이에게 남편을 아저씨라 각인시키고 세 가족끼리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데 슬픔에 잠긴 그에게 아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아저씨, 왜 울어요?”박태준은 이토록 다채로운 인생을 경험한 적이 없었고 더우기는 이런 추잡한 상상마저 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는 현재 기분이 아주 좋았고 기운이 넘쳤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거라면 먼저 고개를 먹을 것인지 먼
신은지가 신당동으로 이사왔을 때 거실에 있던 꽃은 이미 진영웅에 의해 영생화로 뒤바뀌었다. 혹여나 그녀의 심기를 자극할까 봐 걱정되어 2층 손님방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그녀가 올 거란 소식에 가사 도우미들은 서둘러 집안 곳곳을 청소했고 심지어 침대 시트까지 바꾸었다.너무 늦은 탓에 신은지는 아파트에서 가지고 온 트렁크를 정리할 힘도 없었다. 원래는 신당동에 옷도 있기 때문에 간단히 일상용품만 챙기려고 했으나 민우는 한사코 짐을 몽땅 옮기자며 우겼다.멀쩡한 아파트는 마치 메뚜기 떼가 지나간 것처럼 원래 있던 가구들을 제외하고 죄다 신당동으로 옮겨졌다. 심지어 쓰레기까지 알뜰히 챙겨서 집 밖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렸다.신은지는 대충 샤워를 마친 뒤 곧바로 취침했다.이튿날.그녀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저녁에 너무 늦게 잠든 탓에 눈이 제대로 떠지지도 않았고 의식도 엉망진창이었다.“여보세요, 누구시죠?”“아직 안 일어났어?”익숙한 목소리에 그녀는 잠깐 곰곰히 생각해 보더니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챘다...“아빠.”신은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시간을 확인했다. 때마침 9시였다.강태민이 입을 열었다.“강이연 출소했어.”“네? 강이연... 2년 선고받지 않았어요?”바다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이연은 경찰에게 연행되었다. 예전에 괴롭혔던 친구가 법원에 기소하는 바람에 각종 죄목까지 추가되어 2년 형을 선고받은 것이었다.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재판도 급급히 마쳤다. 그 과정이 강태민의 손을 거쳤는지 아닌지는 그녀도 몰랐고 그리고 묻지도 않았다.“출소했단 소식은 나도 오늘에 알았어. 정상 절차를 밟고 감형으로 출소한 게 아니야. 아무래도 뒷문을 쓴 게 분명해. 파출소장 말로는 출소한 강이연을 데리러 온 게 강태석의 비서래. 그자도 배에 있었던 것 같아.”“...”신은지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강태석이 죽었는데 그가 아직 살아있다니, 게다가 이젠 감옥에서 강이연을 석방시켜 데려갈 수도 있다니.강태민은 표정
그러나 고연우는 매우 바쁜 탓에 전화를 받고 끊기까지 채 2초도 걸리지 않았다.“태준이가 그냥 신당동에 머물라고 했어요.”이러한 상황에 신은지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계속 머물더라도 먼저 박태준이 안전한지 확실히 해야 했다.이제 뉴스에는 온통 그의 실종 소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그녀는 이것이 그의 계획인지 아니면 기민욱의 계획인지 확인되기 전에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었다,마침 옷을 갈아입고 문을 나서는 순간 신은지는 나유성과 마주쳤고, 나유성은 자신의 눈앞에 멀쩡히 서 있는 여자를 보고 살짝 안도했다.육영 그룹의 사고 소식을 듣고 그는 즉시 신은지의 아파트를 찾아서 내내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그는 전화도 걸어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아직 뉴스를 접하지 못한 상황에서 괜히 그의 전화로 그녀가 소식을 알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결국 아파트에서 그녀를 찾을 수 없으니, 나유성은 그녀가 혹시 신당동에 있지 않을까, 신당동에 가보기로 했다.하필이면 마침 외출하려던 신은지와 마주치게 되었다.만약 그가 한 발 더 늦었더라면 그녀와 마주칠 수 없었다는 생각에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곽동성 변호사님을 만나러 갈 거야.”그녀는 숨기지 않았다.“태준이가 이제 육영 그룹의 총책임자야, 만약 정말로 불법 자금 조달로 규정된다면 태준이도 연루될 거란 말이야!”“넌 가도 별로 도움이 안 돼, 가도 소용없다고!”나유성이 그녀를 좋아한다고 해서 무모하게 신은지를 편애하지는 않았다.“기민욱이 정말 태준이를 상대로 움직였다면 분명 그의 정체가 드러났기 때문일 거야. 기민욱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행실을 볼 때 절대 태준이를 가만히 놔둘 사람이 아니야. 기민욱도 태준이가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너를 절대 가만히 놔두지 않아. 너도 지금 태준이만큼 위험하다고!”그녀를 개처럼 고문하고 그것을 박태준에게 보여주는 것, 기민욱에게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는 충분히 그런 변태적인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답은 기민욱,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 더 견딜 수 없었다.그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작품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속이고 자신을 바보취급 하며 농락한 것 같았다.그는 숨이 끊어질 것 같이 말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서 장기간의 수면 부족까지 겹쳐 정신이 고갈되기 직전이었다.오 박사가 당시 박태준의 정신 상태는 최면에 걸리기 최적의 상태라고 했다. 감히 반항한다면 몇 천 배의 고통을 견뎌야 하고 일반적으로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망치를 들고 뇌를 내리치는 고통과도 같다고 했다.그래서 오 박사가 그에게 성공했다고 호언장담했을 때 그는 그 말을 너무 쉽게 믿었다.나중에 박태준이 그런 명백한 허점을 드러냈음에도 그는 자기 공략으로 그를 되찾았다.“그녀가 울까 봐 두려웠어.”당시만 해도 신은지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알면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차마 잊을 수 없었다.“형님이 은지 누나를 신당동으로 데려왔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형님, 은지 누나는 형님 생각만큼 순종적이지 않아요. 말을 듣지 않는 아이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법이죠.”기민욱은 휴대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켰는데 작은 빨간 점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이 말은 보육원 원장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죠. 은지 누나도 말을 안 듣는 아이니까 마땅히 벌을 받아야겠죠?”박태준이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 기민욱은 손에 손수건을 들고 그의 뒤로 슬며시 손을 뻗었다.“형님도 알다시피 저는 형님에게 아무 짓도 안 해요. 저는 형님이 곧 나이고 우리는 항상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어떻게 다른 나 자신에게, 그것도 가장 만족하는 나에게 함부로 대하겠어요, 하지만 은지 누나는 달라요. 저는…”박태준은 휴대폰 화면의 빨간 점을 본 순간, 즉시 얼굴이 굳어졌다.마치 그의 예상을 빗나간 듯 그의 머릿속은 대혼란에 빠졌다.“뭘 하려고?”그가 한눈을 판 틈을 타 기민욱은 손을 번쩍 들어 손수건으로 그의 입과 코
신은지가 메시지를 받은 건 곽동건의 로펌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사진을 보자마자 그녀는 기민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원이 꺼져있다는 신호음이 들릴 뿐이었다.옆에 앉은 나유성도 그 사진들을 보고 말했다."은지야, 태준이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다른 계획이 있을지도 몰라.”그는 신은지가 쉽게 행동을 취했다가 상대의 함정에 빠질까 봐 걱정했다. 기민욱이 이 사진들을 보낸 건 분명 음모가 있을 것이었다.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기 위해서 일 것이 분명했다.신경 쓰이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니. 아무리 단단한 사람이더라도 심리적으로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무너지면 다른 생각을 할 마음이 없어지게 되고 다른 사람의 함정에 빠지기 쉬웠다."알고 있어."그녀는 억지로 사진에서 눈을 떼었다. 휴대폰을 끄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거야. 바보처럼 이용당하지 않을 거거든. 기민욱은 분명 나를 이용해서 뭔가를 하려고 했을 거야. 나에게는 힘이 없어. 내가 혼자서 칼을 들고 돌진한다고 해도 태준이를 데리고 나올 수는 없어.”매일 괴롭힘을 당하던 사람이 갑자기 고수로 변하는 건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신은지는 무술 실력이 풋내기인 데다가 연기도 박태준보다 못했으니 상업 전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가 간다면 그건 기민욱에게 볼거리를 더 많이 만들어 줄 뿐이었다.그녀도 자신이 만약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그것은 단지 발목을 잡을 뿐, 아무 도움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태준이의 정체가 분명 드러났을 거야. 오랫동안 놀아났으니 기민욱의 그 성격으로 태준이를 가만두지 않을 거고. 태준이는 그렇게 맞아도 굴복하지 않았어. 기민욱은 태준이를 자극하기 위해서 날 이용하는 거야. 태준이를 더 고통스럽게 해서 자기의 욕구를 채우는 거라고. 내가 나타나지 않는 한 태준이에게 손을 대지 않을 거야. 그러면 연우 씨에게 더 많은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거고.”논리 정연하고 냉정하게 말했지만 휴대폰을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