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는 사람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 싫어하는 박태준은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공예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사생활을 알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검사 과정일 뿐입니다. 긴장해서 검사 결과가 부정확하게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벼운 대화나 환자의 관심사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긴장을 풀어드리는 것입니다.”“네.”남자는 나지막이 대답했지만 여전히 말을 이어갈 의향이 없었다.그가 거부하자 공예지는 화제를 돌렸다.“지난번에 저를 구해주셨는데, 정식으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제가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박태준이 눈을 뜨더니 거리감이 느껴지는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아니요. 우연히 마주쳐서 도와준 것뿐이에요. 누구라도 마찬가지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알아요.”공예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박태준 씨에게는 쉬운 일이었겠지만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박태준 씨가 따지지 않는다고 제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박태준은 은혜를 갚겠다고 고집부리는 여인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신은지가 이렇게 고집스럽게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면 귀엽다고 생각하며 어지간히 괴롭혔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이러는 건 짜증 나고, 말귀를 못 알아듣냐고 묻고 싶을 뿐이다.“이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 은혜를 갚는 거예요.”박태준은 이 말을 내뱉은 후 다시 눈을 감았다.“그리고 저는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 과정은 생략해도 되니까, 그쪽은 자기 본업에 충실하세요.”“...”이 말은 직접 닥치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공예지는 졸업도 안 한 인턴인지라 이런 무안을 당하니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죄송합니다.”“네.”아무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검사실에는 최면 음악만 남았다. 박태준은 사실 매우 졸렸다. 그는 요즘 두통이 점점 잦
밖에 서 있는 사람은 공예지였다. 모니터 곡선을 지켜보던 그녀는 나유성의 시선을 눈치채고 그를 향해 미소를 짓더니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다시 긴장이 풀린 나유성이 소파에 기대어 시간을 보니 이미 6시가 넘었다. 박태준이 아직 깨지 않았고 의사도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휴대폰을 꺼내 신은지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하지만 반쯤 입력했을 때 문득 이 상황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회사가 제휴 관련 회의를 한다고 하면 그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데 왜 박태준의 휴대폰은 꺼져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신은지에게 이 말을 전할 사람은 아무리 어째도 그가 될 수 없다.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은 비서가 알리는 것이 가장 적절했다.그는 박태준처럼 인색하고 질투심 많은 사람이 왜 제 입으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라고 하는가 했더니 다 꼼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그가 신은지와 말 한마디 해도 경계하질 않는가.나유성은 비서에게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신은지한테 연락하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버려두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고연우는 출장 일자를 너무 잘 잡은 것 같다.박태준이 검사를 마쳤을 때는 이미 9시가 넘었다. 중간에 잠을 잔 시간은 2시간도 안 됐고 나머지 시간은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다.공예지가 검사 결과를 프린트해 그에게 건넸다.“방 박사님이 퇴근하셔서 내일 확인해야 합니다. 인터넷 접수는 이미 끝났는데, 제가 내일 아침 접수 창구에서 예약해 드릴까요?”“그럴 필요 없어요.”나유성은 그의 손에 있는 두툼한 검사 결과를 보더니 물었다.“도대체 무슨 병이야?”“말했잖아? 치매라고. 모르겠으면 검색해봐.”“...”나유성은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느물느물 물었다.“유서는 작성했어? 돈이 그렇게 많은데 잊어버리면 아깝잖아.”“...”병으로 죽지 않고 화가 나서 죽겠다.“아무리 많아도 너와 상관없으니 신경 꺼.”나유성이 의미심장하게 ‘헉’ 소리를 냈다....신은지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나유성의 비서한테
신은지가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받쳤다.“할 말이 있어.”박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눈도 빨갛게 충혈됐다. 자제하기 어려운 남성 호르몬이 어떤 충동과 함께 위로 솟구쳤고, 혈관은 마치 불꽃이 튀면서 번지는 것처럼 톡톡 뛰었다.신은지가 받치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해도 박태준이 강제로 한다면 그를 막을 수 없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는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꼭 이럴 때 얘기해야겠어?”박태준은 신은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복부 아래 위치로 옮겼다.“참가자 명단이 나왔는데 내 이름도 포함됐어.”“안 가면 안 돼?”박태준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도 신은지가 자기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녀를 곁에 두기 위해 날개를 꺾어버리고 조롱에 갇힌 카나리아가 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 그냥 해본 말이다.신은지는 잠깐 망설였다.“아직 생각 중이야.”이 대답은 박태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는 신은지가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왜?”‘설마 나를 혼자 두기 싫어서?’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만 해도 박태준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이유가 1%만 차지한대도 그는 매우 행복했다.신은지는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그의 가슴에 파묻었다. 남자의 빠른 심장박동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당신 때문인 것 같아요.”이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가고 싶었지만 임 관장님이 정말 물어보자 그녀는 왠지 망설였다.그 시각 그녀 자신도 뭘 망설이는지 몰랐다. 여자의 직감이라고나 할까.“정말?”이 말을 들은 박태준은 가슴이 찌릿했다. 이 순간 모든 아쉬움과 서러움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전류가 흐르는 듯한 저릿저릿한 느낌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솟구쳐 올라왔고 머릿속에서 수많은 기쁨의 불꽃으로 흩어지면서 온몸이 말할 수 없이 후련해졌다.이 말 한마디로 그는 신은지가 정말 외국에 한두 달 머문다 해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박태준은 그녀를 와락
“놀라서.”박태준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당연히 자중자애해야지. 네가 이렇게 엉망인 모습을 보고 나랑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떡해?”“...”그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박태준은 특별히 다른 점이 없어 보였고 이마의 땀도 다 말랐다.그녀는 무심결에 박태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남자는 피했다.“...”두 사람이 마음을 터놓고 사귀기로 한 후 박태준이 그녀의 터치를 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신은지가 의아해하자 박태준은 손을 펴 보이며 설명했다.“기름이 있어. 더러워.”박태준은 손 씻으러 가면서 들어오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손을 깨끗이 씻은 후 그는 또 바닥에 널린 유리 조각과 국물을 쓰레기통에 담고 대걸레로 깨끗이 닦았다.이 모든 것을 끝낸 후에야 그는 신은지의 손을 잡았다.“미안해. 놀랐지?”“응, 불러도 대답이 없었어.”그녀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정말 놀랐다.“못 들었어. 다음엔 안 그럴게.”옷이 더러워진 그는 방에 돌아온 후 먼저 샤워하러 갔다. 신은지는 소파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그녀가 문이 열리던 찰나의 박태준의 표정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머리를 한 대 쳤다. 아프지 않았지만 그녀를 얼빠진 상태에서 끌어오기에는 충분했다.신은지는 고개를 들고 박태준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는 짙은 회색 실내복을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물이 떨어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에 띄게 젖어 있었다.“멍해서 뭐 해? 몇 번이나 불렀어. 씻으러 가. 졸린다고 하지 않았어?”“어, 알았어.”신은지는 일어나서 욕실로 갔고, 씻고 나서야 옷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목욕 수건을 놓는 선반을 보니 샤워 가운이 없었다.설마 목욕 수건을 두르고 나가야 하나?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결혼할 사이인데, 뭐가 부끄러울 게 있겠는가? 그녀는 무서웠다. 매번 잠자리를 가진 후 박태준은 은근슬쩍 그녀에게 뭔가 증명하려는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던 진유라는 그녀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보고 물었다.“왜 그래?”신은지가 미간을 찌푸린 채 정색하며 말했다.“임 관장님이 이탈리아행 티켓을 내 것도 예매했어. 착각하셨나 봐. 전화해 볼게.”“은지야.”진유라가 눈치 빠르게 그녀의 손을 눌렀다.“하늘의 뜻인지도 몰라. 아니면 그냥 가지 그래? 어차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잖아. 박태준 쪽은 내가 너 대신...”그녀는 원래 대신 지키고 있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아무리 절친이라도 남자를 지키는 일은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바꿨다.“곽동건한테 대신 지키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즉시 너한테 전화하라고 할게.”신은지가 정말 연애밖에 모르는 바보라면 그냥 내버려뒀을 것이다. 기분 좋게 살면 되지, 대회에 참가하든 안 하든 무슨 상관인가?하지만 신은지는 연애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 직업을 매우 사랑한다.진유라는 그녀가 나중에 후회할까 봐 걱정했다. 어쨌든 대회에 참가하는 것뿐이고 다 합해서 한두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게다가 그녀는 은지가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다.진유라의 손에 눌려 벗어날 수 없는 신은지는 어이없어하며 웃었다.“참가자 명단은 이미 올라갔어. 내가 지금 간다고 해도 소용없잖아.”말하는 와중에 신은지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박태준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은지야, 항공사 문자 받았어?”“네가 임 관장님께 예매를 부탁했어?”“응, 며칠 전 접대 자리에 나갔다가 마침 임 관장님을 만나서 대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어. 네가 거절했다고 하더구나. 이런 기회는 많지 않고, 너에게도 좋은 경험과 단련이 될 것 같아서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지원했어.”박태준은 거짓말을 했다. 사실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신은지가 출전을 거절한 후 이를 안타깝게 여긴 임 관장이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어 거절 이유를 물었던 것이다.그는 지금 신은지 얼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반응인지 모른다
중년 남자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아래위로 훑었다.“누구세요? 만져서 망가지면 어떡할 거예요? 배상할 수 있어요?”진유라는 이렇게 건방 떠는 사람을 본 지 오래됐다.“한 번 만져서 망가지는 옷이라면 가게에서도 못 받겠죠.”그녀는 로고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보지 못한 브랜드였다.“무명 상표 옷을 여기 가져다 팔아요? 여기는 입다가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명품 브랜드 옷을 받는 곳이에요.”제 딴에는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진유라지만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이 사람을 까내리지 않고 지나갈 그녀가 아니었다.“수제 남성 수트를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 브랜드인데,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대답한 것은 신은지였다.“그걸 다 알아?”“응, 태준이 이 브랜드 옷을 많이 입어.”“...”진유라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옷을 힐끗 보더니 다시 신은지를 쳐다보았다.“이 옷이?”‘박태준 거? 은지가 왜 중고, 그것도 남성 수트에 관심을 보이는가 했더니.’‘박태준이 아직 파산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몰락하지는 않았단 말이지.’“태준에게 같은 옷이 있긴 하지만 남자 옷은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라 아마 그냥 비슷한 디자인일 거야.”진유라가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 없어. 개인 맞춤 제작이라면 같을 수 없어. 대체로 비슷하다 해도 디테일은 똑같을 수 없지. 아니면 너 한번 볼래?”두 사람의 대화는 모두 중년 남자의 귀에 들어갔다.“뭐 하는 거예요? 공공연히 빼앗는 건가요? 말 한마디로 이 옷이 당신 것이 돼요? 그럼 은행 가서 돈이 다 내 거라고 말하면 X발 부자가 되겠네.”그는 몸으로 두 사람의 시선을 가린 채 짜증 내며 손을 저었다.“사지 않겠으면 쓸데없이 끼어들지 말아요.”말하고 나서 그는 눈에 쌍불을 켜고 점원을 바라보았다.“가격이 얼마나 나갈까요? 개인 맞춤 제작이라니 비싸겠죠?”‘이걸 팔면 도박을 몇 번 더 할 수 있는 거야?’‘그 망할 계집애는 이렇게 비싼 옷이 있으
한나절이나 신은지를 보지 못한 박태준은 지금 그녀를 품에 안고 뽀뽀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는데, 무슨 옷을 볼 정신이 있겠는가.하지만 신은지는 그림을 그의 눈앞에 들이댔고, 안 보면 그를 찢어버릴 기세였다.박태준은 고개를 숙여 대충 훑어보았다. 남자 옷은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지만 아내가 디자인한 것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한 것보다 보기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보기 좋아. 곧바로 제작 의뢰할게.”그는 기뻐하며 신은지를 안으려 했다.“앞으로 내 옷은 모두 네가 디자인하는 게 어때? 우리 마누라는 진짜 대단해. 문화재 복원뿐 아니라 옷도 디자인할 줄 알아.”기분 좋은 박태준과 달리 신은지는 지금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자기 옷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옷을 디자인해달라고? 무슨 옷? 꿈도 꾸지 마.’신은지는 손을 내리고 자기가 그린 옷을 보았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배운 데다 예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그림 솜씨가 좋아서 몇 번 훑어본 옷을 실물과 똑같이 그렸다.“보기 좋아? 근데 내 기억엔 너한테 똑같은 옷이 한 벌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드레스룸에 가서 찾았더니 없었어. 다른 곳에 뒀어?”그제야 눈여겨본 박태준은 이전에 공예지를 구할 때 입었던 옷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당시 그녀의 옷이 찢어진 것을 보고, 그녀에게 던져주면서 입었다가 버리라고 했었다.그래서 그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잃어버렸어.”자세히 설명하자면 말이 길어지는데, 신은지가 다음 주 월요일에 이탈리아로 떠나면 두 사람은 한 달 넘게 떨어져 있게 된다. 그래서 박태준은 남은 시간을 상관없는 사람 얘기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 시간을 이용해 그녀와 더 친밀해지고 싶을 뿐이다.신은지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이렇게 보기 좋은 옷을 잃어버리면 아까운데, 다시 찾을 수 있어?”그녀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박태준은 심지어 좀 질투가 났다.‘나한테는 이렇게 관심을 보인 적이 없잖아. 이제는 옷 한 벌보다도 못한 건가?’“찾지 못해. 네가 좋다면 다시 제
박태준이 말했다."아니, 의사라는 사람이 마음을 나쁘게 먹었네. 할 수 있는 검사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넣었잖아."검사를 빠짐없이 넣은 것을 넘어서 이 정도면 과잉 검사였다. 에이즈, 매독과 같은 전염병 검사까지 다 포함됐다."..."'그런 말은 좀 내가 없는 곳에서 하면 안 되나?'의사가 막 변명하려고 하는데 문이 닫혔다.사립병원이라서 검사를 하는데 줄을 설 필요가 없었고 다 끝냈는데도 11시밖에 되지 않았다. 초음파를 제외한 다른 검사 결과는 오후가 되어서야 받을 수 있었고 어떤 검사 결과는 2, 3일 정도 기다려야 했다.그는 신은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문질렀다."우리 먼저 갈까? 이따가 진 비서를 시켜서 검사 결과를 가져오라고 하면 돼.""주말인데도 사람 부려 먹을 거야? 여자 친구랑 데이트하고 있으면 어쩌려고. 게다가 오후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의사 선생님께 가봐야 해. 그러니까 우리가 가자""…"문을 열자 차가운 칼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신은지는 목을 움츠리고 얼굴을 두꺼운 목수건 속에 묻었다.박태준이 외투를 벗어 그녀를 감쌌다. 그러고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로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서서 거센 칼바람을 막아주었다.신은지는 손을 뻗어 외투를 벗으려고 했다."벗어주지 않아도 괜찮아."그는 안에 얇은 니트만 입고 있었다. 박태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차를 주차해 둔 곳까지 거의 다 왔어."차에 탄 그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먼저 밥 먹고 영화 보러 갈래?"그녀는 힘들었는지 차에 타자마자 좌석 등받이와 한 몸이 되었다. 신은지는 좌석에 기대어 하품을 했다."밥 먹고 호텔 잡아서 좀 자자, 나 너무 졸려."오늘 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던 건 모두 끈기로 버텼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졸려서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만약 차 안이 춥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냥 잠들었을 것이었다.박태준의 눈은 맨눈으로도 보아낼 수 있을 만큼 반짝였다."좋아."신은 지는 손가락을 그의 어깨를 툭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