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약하고 여린 소원의 몸이 남자의 무릎에 세게 눌리자 조금씩 무릎이 접히다 결국 그의 앞에 꿇고 말았다.육경한의 뼈마디가 두드러진 손이 벨트 버클에 닿더니 달칵 소리와 함께 열렸다.순식간에 소원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얗게 변했다.이 행동만으로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녀는 역겨운 마음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육경한, 진아연으로 만족할 수 없는 거야? 병이 낳자마자 달려들게?”육경한은 조롱 섞인 가벼운 웃음을 내뱉었다.“이런 건 네가 해야지, 아연이한테는 차마 손 못 대잖아.”노골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말이었다!대놓고 너처럼 천한 여자만 남자의 노리개가 된다는 뜻이었다...소원은 수치심에 입술이 검붉은 빛을 띨 정도로 깨물었다.육경한은 서두르지 않고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감싼 다음 눈을 내리깔고 쳐다보다가 이윽고 손에 힘을 주며 앞으로 당기더니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님이 언제 들어갈지는 내 기분에 달렸을걸?”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졌을 때 그를 더욱 수치스럽게 만든 것은 초조하고 걱정하던 마음이었다.이 여자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에는 독기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남에게 무릎을 꿇어도 남자는 결국 그녀가 이용하는 도구에 불과했고, 그는 자신이 그녀의 함정에 빠지기 직전이었다는 사실이 싫었다.위선적이고 속물적이며 속에는 온통 꿍꿍이뿐인 여자는 결코 입에 진실을 담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놓아주기 싫었다. 그 어떤 수단과 협박을 동원해서라도 그녀를 자신의 곁에 남겨둘 생각이었다.그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의 이유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모든 것을 증오 탓으로 돌렸다.자신의 진심을 가지고 놀았던 여자가 싫어서 곁에 두고 천천히 괴롭히고 싶었다.하는 동안 소원의 속눈썹이 파들거리며 온몸이 덜덜 떨렸다. 눈물을 흘리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눈을 질끈 감았다.그러나 육경한은 계속 그녀를 노려보더니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한 차가 자리에 멈췄다.남자는 느긋하게 창문을 내리고 천천히 담배를 집어 들었다.“눈치껏 알아서 가.”소원은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육경한, 당신은 이럴 자격 없어! 이건 내 아이야!”“네 아이?”육경한 눈빛은 서늘했다.“그럼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애새끼와 네 아버지, 둘 중 하나만 골라.”하나를 고르라고?소원의 얼굴은 온통 고통으로 가득했다.그녀는 누구도 포기할 수 없었다!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육경한, 그냥 아이 지키게 해줘. 부모님께 마지막 희망이라도 남겨드리고 싶어. 난 어차피 암에 걸려서 곧 죽을 거야. 제발 부탁할게. 나 데리고 병원 가서 검사하면 되잖아. 여러 병원에서 검사하면 답이 나오지 않아?”육경한은 콧방귀를 뀌었다. “애새끼한테 감정이 깊은가 보네. 지키겠다고 암에 걸렸다는 얄팍한 수작까지 부리고!”소원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진짜 아니야. 거짓말 아니라고!”“하나만 물어볼게, 김재성 알아 몰라?”“알아, 하지만...”육경한이 짜증스럽게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전 남자 친구야?”소원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그래.”육경한은 피식 웃으며 그녀와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내려!”그는 다시는 그녀의 거짓말에 속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소원은 육경한의 팔을 꽉 잡았다.“내 말 좀 들어봐. 그 사람하고 아무 일도 없었어. 절대 그 사람 아이일 리 없어!”육경한은 얇은 입술로 말을 차갑게 내뱉었다. “그놈이 아니면 다른 놈이겠지, 어차피 다른 새끼 애잖아!”그 애새끼가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내버려두는 건 그에게 큰 모욕이 될 것이었다!그리고 방금 전, 그는 비서 소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알아본 결과 모두 사실이라는 결론을 들었다.빚이 있었던 의사는 소원에게 수술하는 척 거액의 돈을 챙겼고, 그 돈은 한이 그룹 계좌에서 빠져나갔다.소원의 부모님도 정말 위궤양일 뿐이라고 말했다.김재성은 과거 소원의 남자 친구였고 그 사이 소원의
육경한은 소원이 자신의 아이를 낳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몇 년 전, 두 사람이 한창 사랑에 빠졌을 때 소원은 종종 그의 귀에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육경한, 나 당신 아이 낳고 싶어!”당연히 곧바로 그의 품에 갇혀 제대로 혼쭐이 났지만.다만 당시 두 사람 모두 대학생이었고, 아이를 갖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여의찮아서 피임을 했었다.두 사람은 졸업하자마자 아기를 갖기로 합의했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몇 년이 지난 지금, 이 말을 다시 들은 육경한의 마음에는 더 이상 처음의 희열이 아닌 조롱과 증오만이 가득했다.그녀가 애새끼를 이토록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냥 둘 수 없었다.그는 여자의 턱을 세게 그러잡고 차갑게 말했다.“소원, 내가 매번 끝나고 피임약을 먹였는데 그게 어떻게 내 아이야?”소원은 턱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에 눈물이 차오르며 설명했다.“약 다 토했어.”관계가 끝나고 약을 뱉어내는 일이 몇 번 있었다.당시 위가 아파 항상 구토를 하곤 했는데 그때는 자신이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단지 소화 불량이라고 생각했다.“소원, 고작 애새끼 때문에 별 수작을 다 부리네.”육경한은 차갑게 웃었다.“왜 토했어? 설마 내 아이를 갖고 싶었어?”소원이 입술을 달싹이며 말하려는 순간, 남자가 턱을 세게 잡은 채 쾅 소리와 함께 얼굴이 반쯤 시트에 눌렸다.남자의 표정은 차갑고 매정했다.“내 애가 맞다고 해도 난 지울 거야! 네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내 아이를 낳아? 넌 그럴 자격 없어!”육경한은 자신의 아이라는 말에 또다시 가슴이 설레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그는 절대 여자에게 속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여자가 자신을 속일 모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자신의 아이라니, 이 여자가 거짓말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었다면 또 속을 뻔했다.악독한 여자는 지난번 그를 사랑한다던 말처럼 늘 그를 휘어잡는 방법이 있었다.아직도 자신을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절대 안 돼! 절대로!육경한의 눈가
육경한은 광기에 휩싸여 당장이라도 이 망할 여자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고 싶었다!이윽고 소원은 남자의 피 묻은 손이 칼날을 따라 손잡이를 잡고 있던 자신의 손목을 잡는 게 보였다.두둑-소원의 손목이 그대로 무표정한 악귀 같은 남자의 손에 부러졌다!챙그랑-칼도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아...” 소원은 고통을 호소하며 오른손을 맥없이 떨구었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비명으로도 사그라지지 않았다.그 고통이 가슴까지 뻗쳤다.육경한의 손바닥은 칼날에 베여 피가 멈추지 않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소원의 턱을 잡고 들어 올리며 뼛속까지 서늘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수술을 원하지 않으면 방법을 바꾸면 되지.”소원은 이 미친놈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제 팔이 부러져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곧바로 그의 손에 안전벨트를 채워지며 차는 그렇게 병원을 떠났다.곧이어 클럽에 들른 육경한은 소원을 차에서 끌어 내려 밀실로 들어갔다.안에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며 살집이 두둑한 남자 몇 명이 있었다.육경한은 시체처럼 소원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소파 털썩 앉더니 테이블 위에 다리를 올리고 수표 더미를 던지며 느릿하게 말했다.“이 아가씨 제대로 모셔. 이 여자 기분 좋게 만들어주면 이 돈은 알아서 나눠 가져.”경호원들은 몇십 년 동안 이렇듯 좋은 일은 처음 겪는다.돈도 챙기고 데리고 놀 여자도 있다니!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순식간에 소원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미쳤어!이 남자는 완전히 미쳤다!소원은 그가 얼마나 무자비한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짓밟기 위해 남자 몇 명을 데려올 줄은 몰랐다…굶주린 늑대처럼 생긴 남자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소원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지만, 그녀의 뒤에는 벽이었고 도망갈 방법은 없었다!그녀는 더듬더듬 술병 하나를 잡고 미친 듯이 휘둘렀다. “저리 가! 나한테 손대지 마! 다 꺼져!”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크게 비웃는 웃음소리뿐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그들은 단지 미인을 보기만 해도 돈을 챙길 수 있으니 실감 나게 연기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겼다.소원의 유리구슬처럼 예쁜 눈동자엔 아무런 빛도 없었다.그녀는 차갑고 매정한 남자를 바라보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한, 육씨 집안에 일이 생겼을 때 우리 아빠가 유일하게 잘못한 거라면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 혼사를 취소한 이기적인 결정밖에 없어. 아빠는 내가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고생할까 봐 걱정했던 거야. 그땐 나도 아빠가 미웠고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다투고 단식 투쟁까지 했어. 근데 자기 딸을 아낀 게 죄야? 우리 집에서 당신 부모님 죽였어? 왜 이렇게까지 우리한테 모질게 구는 건데! 내가 당신을 갖고 놀고 속였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억지 때문에? 그래, 그게 진짜라고 쳐. 내가 정말 그랬다고 쳐. 오늘 죽음으로 갚을게, 됐지?”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온 힘을 모아 손에 들고 있던 유리병을 목에 밀어붙였다.탁! 술병이 발에 차여 벽에 부딪혔다.쓰지 않는 왼손은 결국 육경한의 발만큼 빠르지 않았다.그가 발로 걷어차자 소원은 손목에 날카로운 통증만 느꼈다.결국 죽으려는 바람조차 빼앗기고 말았다.“모두 나가!”육경한은 거세게 포효했다.몇 안 되는 덩치 큰 남자들은 감히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정중하게 물러갔다.육경한은 연약한 그녀의 몸을 벽에 밀착시키며 윽박질렀다.“소원, 죽어도 내 말은 안 듣겠다는 거지? 내가 말했지, 죽는 것도 내 허락받아야 한다고.”소원은 화난 표정도 없이 두 손을 힘없이 들어 축 늘어뜨렸다.그래, 허락을 받아야만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또 잊었다.자신의 생사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조차 없었다.소원은 웃었다. 아름답고도 괴이한 미소였다.“육경한, 당신이 동의하든 안 하든 어차피 내 이 몸은 오래 못 버텨. 얼마나 화가 났든 빨리 푸는 게 좋을 거야, 나 정말 곧 죽을 거거든.”소원은 이 순간 죽음을 그토록 갈망했다. 죽으면 모든
“스읍…”소원은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며 고통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조금만 더 힘을 주면 죽을 수도 있는 동맥이었다.순간 악귀처럼 보였던 육경한이 그녀에게 엎드린 채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 다시는 다른 남자 생각도 못 하게 해줄게.”남자의 손이 밑을 파고들며 그녀의 온기를 느꼈다. 이럴 때만 그녀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불같이 뜨거운 그녀의 몸이 그의 자제력을 잃게 했다.소원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검은 깃털 같은 속눈썹에 젖은 눈물방울이 맺혔으며, 온몸의 비늘이 벗겨져 도마 위에 올려진 물고기가 된 듯 몸부림치는 것조차 부질없어 보였다.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육경한이 차갑게 쏘아붙였다.“꺼져!”문밖에는 소종이 있었고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고했다.“도련님, 진아연 양이 몸이 안 좋아서 와달라고 합니다.”소원은 처음으로 진아연의 이름이 거룩하게 들렸다. 그녀를 구해주었다.육경한은 그래도 계속하고 싶었지만 휴대폰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진동했다.그는 주먹으로 테이블 유리를 내리치며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하지만 소원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육경한은 옷을 입은 뒤 아무렇게나 그녀에게 옷을 던져주고 함께 데려갔다.차는 육경한이 진아연을 위해 사둔 저택 마당에 멈춰 섰다.그런데 뜻밖에도 진아연은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열이 난 듯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육경한을 보자 그녀는 단숨에 남자의 품에 뛰어들었다.“내 곁에 있어 주지도 않고.”육경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래서 왔잖아.”진아연은 매서운 눈빛으로 한눈에 차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저 망할 여자는 멀쩡했고 아이도 지우지 않았다!그녀는 불쾌한 듯 말했다.“경한 씨, 소원 씨도 같이 왔어요?”육경한은 무슨 생각인지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진아연이 물었다.“왜 데려왔어요?”“너 몸 안 좋다며. 너 돌보라고 데려왔지.
잘생긴 육경한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손목까지 부러진 소원이 인질을 잡고 협박할 줄이야.역시나 이 교활한 여자를 간과했다. 그녀를 두고 방심하는 게 아닌데.“소원, 두 번 말 안 할 테니까 당장 아연이 놔줘!”그의 한없이 깊은 눈동자가 소원의 얼굴을 노려보며 맹독을 묻힌 화살처럼 그녀의 심장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그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을 떨게 만들었고, 소원도 예외는 아니었다.육경한이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오늘은 금방이라도 누군가를 짓밟을 것만 같은 분노가 유난히 강렬했다.그건 다름 아닌 소원이 그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진아연을 건드렸기에 이 지경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그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방법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더 이상 아빠라는 약점을 육경한 저 미친놈에게 계속 쥐어 줄 수는 없었다.혹시나 기분이 안 좋거나 자신이 말을 안 들으면 아빠는 당장이라도 감옥에 들어갈 테니까.아버지처럼 신체 기능이 저하된 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멀쩡한 사람이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목숨을 반쯤 잃을 수도 있었다.한 번 들어가면 이번 생에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그리하여 그녀는 도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소원은 포크를 진아연의 목에 겨눈 채 겁 없이 육경한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육경한, 20분만 줄 테니까 계약서랑 자료 가져와. 안 가져오면 이 여자 죽여버릴 거야.”이건 그녀의 한계였다. 지금 다친 그녀는 몸도 허약해 시간을 오래 끌 수 없었기에 빨리 끝내야 했다. 육경한의 눈동자에 거센 폭풍이 몰아쳤고 그는 가늘어진 눈매로 분명하게 말했다.“소원, 죽고 싶어!”지옥보다 더 서늘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소름 끼치게 했다.소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벽에 걸린 시계추를 쳐다보며 침착하게 말했다.“도련님, 이제 19분 30초 남았네요.”퍽-살기 어린 남자의 주먹에 수억 가치
말을 마친 남자의 짙고 검은 눈동자가 소원을 노려보며 비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유언은 미리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거야.”소원은 뜻밖에도 전례 없는 평온함을 보였다.곧 죽게 될 사람이 뭐가 두렵겠나.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결국 죽으면 끝이 아닌가.곧이어 소종이 자료 더미를 들고 나타나 소원의 요청에 따라 하나하나 보여주며 모두 원본임을 확인시켰다.확인을 마친 소원이 매섭게 말했다.“여기서 태워버려!”소종은 육경한을 돌아보았고 그는 잘생긴 얼굴에 어둠이 드리운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태워!”타오르는 불길이 순식간에 종이와 디스크를 집어삼켰다.소원의 표정은 더 이상 침착하지 않았고 다소 흥분한 기색도 보였다.숨겨진 위험은 제거되었고 아빠는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그릇에 검은 재만 남았을 때 육경한은 이미 검은 상의와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신비로운 검은색이 살기 어린 그의 잘생긴 모습을 덮고 있었다.육경한은 곧 죽일 듯한 무서운 표정으로 소원을 노려보더니 잇새로 한 마디를 뱉었다.“이제 놔!”소원은 여전히 진아연의 목을 조른 채 육경한과 신경전을 벌였다.“한 가지 더 약속해 줘.”“소원!” 남자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지금 당장 네 부모님을 잡아서 산골에 데려가 늑대 먹이로 던져 줘야겠어?”육경한의 얼굴에는 눈앞의 여자를 정말 짓밟고 싶다는 살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이렇듯 누군가에게 놀아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그럼 도련님이 더 빨리 움직이는지, 내 손이 더 빠른지 한번 볼까요?”소원은 침착하게 말을 뱉어냈지만 곧 손에 힘이 풀릴 거라는 걸 본인만이 알고 있었다. 오른손이 부러진 후 그녀는 팔의 힘으로 진아연을 포박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통은 무시할 수 없었다.손에 쥔 포크도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닿을 듯 위협적이었다.협상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그녀는 분노에 찬 남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다시는 우리 부모님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내가 한 일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