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씨 가문이 경성에서의 영향력은 해원에서보다는 못했지만 여전히 명문가는 명문가인 모양이다. 연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제국 호텔 주위의 교통이 마비됐으니 말이다.호텔 주위의 경비들도 질서 유지를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귀빈들에게 길을 터주고 있었다.권하윤은 자차를 끌고 호텔에 나타났다. 하지만 경비는 BMW mini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다.“고객님, 죄송하지만 주차 구역이 남지 않았으니 길 옆에 세워두세요.”“저런 차를 끌고 오다니.”하지만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마세라티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권하윤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힐끗 살폈다. 차 안에 앉은 여자는 화끈한 몸매에 달라붙는 V넥 드레스를 입은 채로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그리고 권하윤이 눈빛을 보내오자 불쾌했는지 째려보고 다시 립스틱을 발랐다.“여기요.”권하윤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초대장을 건넸다.초대장에 적힌 민씨 가문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경비의 태도는 바로 공손하게 바뀌었다.“이쪽으로 가시면 저희 직원이 주차를 도와줄 겁니다.”“고마워요.’권하윤이 들어가자 마세리티를 운전하던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녀도 방금 길가에 주차하라고 들었는데 저런 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 주차하는 게 못내 아니꼬웠다.“이봐요! 방금 주차 구역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죄송하지만 방금 들어가신 고객님은 민씨 가문 다섯째 작은 사모님이셔서 주차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허리 숙여 설명하는 경비의 말에 여자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순간 방금까지 보였던 행동이 후회됐다.한편 권하윤은 주차를 마친 뒤 민승현에게 전화했다.하지만 상대는 헐떡이는 소리로 혼자 들어가라는 말만 남겼다.권하윤의 눈살은 저도 모르게 찡그러졌다. 솔직히 민승현이 무슨 짓을 하든 관심이 없었지만 약혼을 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고 약혼 후 함께 바깥 행사에 나오는 것이기에 함께 동행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게 뻔했다.게다가
그리고 입구에 파티의 주인공이 나타났다.자기 구역이 아니지만 그녀는 당당하고 시원시원한 태도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바닥을 끄는 긴 드레스에는 보석이 수도 없이 달려 있었고 옆에 있는 남자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왕님이었다.여자의 눈에 띄는 행동에 권희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니꼬운 듯 고개를 돌려 권하윤과 뭔가를 얘기하려 할 때 옆에 있는 권하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걸 발견했다.“하윤아, 너 왜 그래?”“하윤아?”권하윤은 권희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몸이 저도 모르게 떨렸고 위경련이 일어나는 듯 헛구역질이 올라왔다.그녀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공씨 가문 셋째 아가씨 옆에 있는 남자는 문태훈이다.‘문태훈이 왔다는 건 설마 그 사람도 왔다는 뜻인가? 해원에서 항상 둘이 붙어 다녔으니까.’“하윤아?”권희연의 소리가 그녀를 다시 현실로 끌어냈다.“네?”“너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은데.”“저 속이 좀 안 좋아서요.”변명을 대며 자리를 떠나려 할 때 옆에서 다른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그런데 공씨 가문 가주는 안 왔대요?”“안 왔을걸요. 들리는 데 의하면 병 때문에 입원해 있대요. 그래서 딸을 문 씨 가문 도련님과 함께 보냈다 것 같더라고요.”“그래요?”두 사람의 무심한 대화에 권하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 사람이 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권하윤의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렸다.하지만 이대로 안심하기는 일렀다. 왜냐하면 문태훈은 그녀를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몇 번이나.권하윤이 온갖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권희연의 팔이 앞으로 쑥 나오더니 그녀의 팔을 둘렀다.“하윤아, 민도준 씨 왔어.”권희연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에는 아니나 다를까 민도준이 서 있었고 준비할 새도 없이 두 사람의 눈은 마주쳤다.그 순간 권하윤의 심장이 미세하게 떨렸다.하지만 곧바로 시선이 흔들거리더니 누군가 그녀 앞을 막아섰다.방금 전 마세라티를 타고 문 앞에서 만났던 여자였다.여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처음에는 가볍게 무시한 채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익속한 목소리는 뇌리에서 재생되는 흐느낌 섞인 여자의 목소리와 정확하게 들어맞아 민도준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 섰다.그리고 그가 멈춰 선 사이 화면 속 주인공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높게 얹은 머리와 목을 반쯤 가린 하얀 드레스, 청초하고 단아한 모습이었지만 그만 볼 수 있는 야릇함도 묻어 있었다.하지만 그런 권하윤을 본 한민혁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전에 매우 이성적으로 보였는데 왜 또 아는척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민도준도 그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입술을 씩 올리며 나지막하게 물었다.“또 나한테 뭐 부탁할 일이라도 있나?”분명 아무 뜻 없는 한 마디였지만 남자의 눈빛에 권하윤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하지만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입꼬리를 올리며 인사했다.“오늘 제 언니도 함께 와서 인사드리려고요.”“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그녀의 눈짓에 권희연이 우아한 걸음을 내디디며 민도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힐끗 눈을 들어 민도준을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살짝 숙였다.그 모습에 민도준은 재밌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눈웃음을 쳤다.“아, 우리 제수씨 언니분이시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죠?”방금 전과는 대조되는 말투에 권희연이 싱긋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런 태도면 아까와 같은 대접은 받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용기가 생긴 모양이었다.“민 사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 혹시 따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조심스럽게 민도준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그때.“그래요. 올라가서 얘기하죠.”민도준의 긍정적인 답변이 들려왔다. 하지만 뭔가 재밌다는 듯 호를 그린 눈은 오롯이 권하윤을 향해 있었다.그 대답에 권하윤은 오히려 놀랐다. 그런데 곧바로 스스로를 한심하게 비웃었다.‘이게 뭐가 의외라고. 날 받아들이면 권희연도 당연히 받아들이겠지.’그리고 민도준의 반응에 놀란 사람은 또 있었다. 두 사람이 휴게실 쪽으로 사라지
“방금 공아름 씨와 함께 나타날 때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 들었어요.”권하윤의 자연스러운 대답에 그녀를 한참 동안 훑어보던 문태성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죄송해요. 제가 사람을 착각했어요.”권하윤은 괜찮다는 듯 싱긋 웃었다.“그러시다면 전 먼저…….”“하윤 씨는 경성에서 나고 자랐죠?”권하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태훈이 먼저 그녀의 말을 잘랐다.“저는 해원 사람인데 이번에 경성에는 처음 왔거든요. 혹시 재미있는 여행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그래요.”권하윤의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솔직히 누구보다도 긴장했다. 이게 모두 문태훈이 저를 의심해서 일초라도 더 옆에 붙잡아 두려는 꼼수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오히려 더 의심을 살 수 있었다.한참 동안 대화를 이어가며 문태훈이 묻는 말에 대답했지만 그의 물음은 끊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다는 마치 심문하는 듯했다.그렇게 몇십 분을 붙잡혀 질문을 받던 그때 호텔 직원이 다급하게 다가오며 권하윤에게 인사했다.“권하윤 씨, 언니분이 지금 휴게실로 잠시 와달라고 하십니다.”권하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미안한 듯 문태훈을 향해 미소 지었다.“죄송해요. 언니가 저 찾아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당연히 가보셔야죠.”…….한참을 걸어 거리를 넓히고 나서야 감시를 받는 듯한 감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권하윤은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동시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혹시 언니가 무슨 일로 절 찾는다고 했나요?겨우 진정한 권하윤은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직원에게 물었다.“아무 말도 없으셨습니다. 그저 빨리 오라고만 하셨습니다.”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은 휴게실 문 앞에 도착했다.호텔 직원이 안내를 마치고 이내 사라지는 바람에 권하윤은 멍하니 문 앞을 서성거렸다.‘권희연이 민도준과 함께 있는 거 아니었나? 왜 갑자기 날 불러내지? 설마 들어갔다가 이상한 장면 목격하는 건 아닌가?’한참 동안 고민
“네?”권하윤은 놀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참하고 우아하던 권희연과 민도준이 묘사한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매치가 되지 않았다.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권하윤의 표정에도 민도준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입에 담배 하나를 물더니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를 테이블 위에 던지며 그녀를 바라봤다.“와서 불 붙여.”권하윤은 몇 초 침묵하더니 앞으로 다가가 금색 라이터를 주워들었다.하지만 라이터의 생김새는 지금껏 그녀가 봐왔던 것과는 달랐다. 뚜껑도 없는 데다가 구멍이 옆으로 나있었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불은 여전히 붙지 않았다.짧은 순간 모든 정신이 라이터에 빠져 민도준이 자신을 훑어본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이리 와. 가르쳐 줄 테게.”일인용 소파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민도준을 보니 어디에 앉아야 할지 답은 정해진 듯싶었다.더한 짓도 했기에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모든 잡생각을 버리고 다가가 남자의 한쪽 다리 위에 앉았다.하지만 민도준은 웬일로 정말 라이터를 켜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권하윤의 등 뒤에서 그녀를 안은 자세로 손에 있는 라이터를 켜며 인내심 많은 선생님인 양 입을 열었다.“이건 빈티지 디자인이라 이쪽을 당기고 이렇게 밀어야 돼…….”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며 고막을 뚫고 들어왔다.남자의 품에 안긴 채 몸을 붙이고 있어 한껏 좁아진 공간 때문인지 권하윤은 산소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해 봐.”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 라이터는 다시 그녀의 손에 놓여졌다.금속 라이터는 남자의 손에 한참 쥐어 있었던 탓인지 처음처럼 차갑지 않았고 오히려 따뜻한 온기를 띠고 있었다.권하윤은 모든 신경을 라이터에 쏟았다.전에 라이터를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데다가 이상한 디자인 때문에 아무리 애써봐도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몇 번의 시도에도 미약한 불꽃이 튀었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두 사람의 맞닿은 피부에서부터 미세한 열기가 점점 피어올랐고 방 안의 온도는 점차 높아졌다. 하
양 끝을 잡아당기지도 않았는데 권하윤은 벌써 등골이 오싹했다.“제 얘기 먼저 들어보세요. 우리 사이에 벌어졌던 일은 우연이었어요.”조금만 늦으면 넥타이가 자기 목을 조여올 것만 같은 두려움에 권하윤은 다급히 설명했다.띄엄띄엄 많은 것을 설명했지만 가짜 신분이라는 말은 결국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그저 민승현을 사랑하는데 배신감에 눈이 뒤집혀 복수하려던 것뿐이었다는 말만 몇 번 반복했다.그 사실은 민도준이 조사할까 두렵지 않았다. 진짜 권하윤이 예전에 충분히 보여줬으니까.같은 자세로 권하윤의 설명을 한참 동안 듣고 있던 민도준은 눈썹을 치켜뜨며 입을 열었다.“배신감에 눈이 뒤집혀 복수하고 싶었다고?”“네.”권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대답에 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일찍 말하지. 복수는 내가 전문인데.”그리고 끝내 권하윤 목에 둘렀던 넥타이를 벗기더니 어딘가로 전화했다.“응. 승현아, 지금 시간 돼?”“당연하죠. 혹시 무슨 시키실 일 있어요?”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부와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그때, 민도준은 온몸이 굳어 있는 권하윤을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씩 말아올렸다.“그러면 지금 당장 휴게실로 좀 와.”남자의 말에 권하윤은 옆에 놓여있는 주먹을 그러쥐었다.그리고 상대가 전화를 끊은 걸 확인하고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설마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폭로하려는 건 아니죠?”“에이, 그러면 재미없지.:”민도준은 권하윤을 소파에 눌러 앉히고는 허리를 숙여 여자의 가는 목을 살짝 그러쥐었다.“직접 보게 하는 게 아무래도 더 재밌지 않겠어?”말이 끝나기 바쁘게 권하윤의 가슴 쪽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옷은 어느새 찢어져 양옆으로 흘러내렸다.순간 민도준의 뜻을 눈치챈 권하윤은 속살이 드러난 것도 상관할 겨를이 없이 민도준의 팔을 잡았다.“제발 이러지 마세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 민승현 약혼녀예요. 권씨 가문과 민씨 가문의 체면도 생각해야 하잖아요.”하지만 민도준은 고개를
권하윤은 민승현의 소리를 듣자마자 입술을 깨문 채 목소리를 참았다. 소리가 새어나가 상대에게 들킬까 계속 마음을 졸인 상태였다.‘그런데 힘들게 참고 있는 사람한테 인사를 하라니? 아예 마이크에 대고 생방송 하라는 소리는 왜 안 한 대?’권하윤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속이 뒤틀렸지만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민도준은 애초부터 상대의 사정을 봐주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을 벌려 상대에게 들어오라고 말하려던 그때, 권하윤의 입술이 그의 입을 막았다.가는 팔은 넝쿨처럼 그의 목을 휘감았고 손톱으로 어깨를 간지럽히며 그의 환심을 얻으려 애썼다.민도준은 눈썹을 치켜뜨면서 귀엽다는 듯 권하윤의 동작을 받아들였다.하지만 권하윤이 이를 악물며 속으로 이대로만 넘어가라고 기도하고 있을 때 민도준은 그녀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귓게에 대고 나지막하게 웃더니 고개를 들었다.“문 열렸어.”순간 권하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게다가 민승현은 민도준의 말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다시 한번 노크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들어가요?”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에 권하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습.”그런데 그때 민도준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힘 빼.”“도준 씨.”권하윤은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채 애원하는 듯 민도준을 바라봤다.순간 민도준은 몸이 찌릿했다. 낮게 자기 이름을 중얼거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마치 독약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퍼졌다.더 어두워진 낯빛과 흥분한 눈빛에 권하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민승현이 들어오는 게 싫어?”권하윤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그러면 소리 내 봐.”그와 동시 민승현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형, 안에 있어요?”“…….”문을 비스듬히 여는 순간 안에서 밭은 숨소리와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민승현은 2초간 자리에 굳어있다가 곧바로 민도준이 뭘 하고 있는지 눈치채고는 헐레벌떡 밖으로 도망쳤다.“미안해요, 저 바로 나갈게
연회의 주인공인 공씨 집안 셋째 아가씨는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하지만 그녀는 자기한테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미소 한 번 보이지 않은 채 오만한 태도를 취했다.다행히 그녀 곁에 있는 문태훈이 분위기를 푼 덕에 어색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손님이 떠나간 뒤 문태훈은 끝내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공아름 씨, 아무리 그래도 저 사람들 모두 경성에서 잘 나가는 가문인데 체면 좀 봐주지 그래요.”“경성 가문이 뭐라고 내가 잘 보여야 하지?”문태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름은 그의 말을 먼저 잘랐다.“그만해. 그런데 민도준은 어디 있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안 보여?”공아름이 연회에 참석한 이유가 민도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문태훈은 일찍부터 대신 살펴봤다.“민도준 씨도 아까 왔던데 다시 돌아갔는지 한참 동안 보이지 않네요.”“돌아갔다고?”공아름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나한테 한 마디도 없이 먼저 갔단 말이야! 설마 불여우한테 붙잡힌 거 아니야?”“아.”“뭐야? 당장 말해! 어떤 년이야?”문태훈은 결국 공아름의 등쌀에 못 이겨 사실을 털어놓았다.“아까 모델 하나가 민도준 씨한테 접근했고 얼마 뒤 권씨 집안 둘째 권희연 씨와 얘기하더니 사라졌어요.”“감히 민도준 씨한테 꼬리를 쳐? 그년들 제대로 족쳐야겠어! 권희연이라는 그년도 가만두지 못해…….”“공아름 씨. 권희연 씨는 아무리 그래도 부짓집 규수인데다 여기는 해원이 아니라 경성이에요. 아무래도 몸을 사리는 게 좋아요.”문태훈의 경고에도 공아름은 들은체 만 체 하더니 이윽고 예쁜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해원에 있었더라면 당장 죽여저릴 거야! 먼저 그 모델 년부터 혼내줘야겠어. 권희연인지 뭔지는 천천히 두고 보자고.”“알았어요.”문태훈은 마지못해 몸을 돌려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익숙한 이름을 듣게 되었다.…….“혹시 권하윤 봤어요?”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민승현은 의심을 떨쳐내지 못했다.하지만 다시 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