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해요.”권하윤은 그러잖아도 옷차림 때문에 매우 수치스러웠는데, 민도준이 이렇게 도발 하듯 말하니 더욱 몸 둘 바를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그의 눈빛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곧 그의 강경한 말이 들려왔다. “말 안 해? 넌 오늘 이렇게 입고 남자한테 당하기를 기다리는 거잖아, 이미 했는데 말할 용기가 없는 건가?”그에게서 몇 번이나 굴욕을 당한 하윤은 화가 나서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이건 그냥 만화 캐릭터로 분장하고 즐기는 파티라고요. 어딜 봐서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추잡하게 해요?”“허.”민도준은 그녀의 꼬리를 들고는 ‘짝’ 하고 엉덩이를 후려쳤다.“최수인이 너를 이 모양으로 꾸미라고 한 이유가 단지 너와 함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해? 그놈은 암쥐로 분장한 너를 잡아서 먹으려고 하는 거야.”하윤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가 최수인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렀기 때문이었다.‘이 사람은 내가 최수인과 함께 온 것을 어떻게 알았지?’‘아니, 그보다는 이 사람이 최수인을 어떻게 알아?’‘설마 최수인이 나를 팔아먹은 건 아니겠지!’품속의 여자가 조용해지자 민도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는 꼬리털에 손바닥이 가려워지자 힘을 주어 잡고는 잡아당겼다.“왜 말이 없어?”권하윤은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넉넉하지 않은 자신의 삶이 더 나빠질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잠시 생각한 끝에, 그녀는 먼저 그를 안정시키기로 마음먹었다.그녀는 팔을 들어 민도준의 목을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키 차이로 인해 그녀가 마치 그의 몸에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권하윤은 턱을 그의 튼튼한 가슴에 얹고 고개를 들어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거짓말로 당신을 속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요.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해 여기까지 달려와서는 더 안 됐고요.”지난날 권하윤은 늘 우아한 숙녀 차림이었다. 검은 머리를 풀거나 뒤로 묶어 얌전하고 차분한 여인의 이미지를 최
“제수씨?”민도준의 웃음이 의미심장했다.“최수인이 나와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는지 아니?”“어디 한번 계산해볼까, 벌써 10년째인데.”권하윤의 몸이 뻣뻣해졌다. 그녀는 민도준과 최수인이 서로 그냥 알고 지내는 재벌 집안의 아들인 줄 알았지 이렇게 오래된 친구일 줄은 몰랐다.민도준은 한가로이 그녀 얼굴의 표정 변화를 보고 있었다.“그래서, 너는 수인이 너 때문에 나를 속일 것이라고 생각해?”하윤은 바람 빠진 고무공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댔다.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마음 내키는 대로 찾은 곳이 뜻밖에도 민도준과 이렇게 깊은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본 그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그녀의 작은 귀를 조몰락조몰락 만지작거렸다.“다시 한번 기회를 줄게. 최수인이 들어오기 전에 이 일에 대해 똑똑히 설명해. 만약 네가 말한 것이 이따가 최수인이 말한 것과 다르면…….”그는 말을 멈췄지만, 강렬한 카리스마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권하윤은 마음이 뒤숭숭했다.만약 그녀가 사실대로 고백한다면, 이후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만약 그녀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연 최수인이 자신을 도와 십년지기 친구에게 거짓말을 할지는 미지수였다. ……똑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다.“권하윤 씨? 옷 다 갈아입었어요?”문밖에서 최수인은 시계를 보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리 오래 걸린다고 해도 화장이 다 끝났을 시간이었다. 이런 곳이 처음인 그녀가 나오는 것이 쑥스러울까 봐 그는 문을 사이에 두고 권하윤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하윤 씨,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어요.”“일단 내가 먼저 들어갈 수 있게 해 줄래요? 나는 경험이 풍부하니, 당신을 도와 옷차림을 좀 바꿔 줄 수 있어요.”“꼬마 미니야! 얌전히 문 열어줘.”최수인이 문짝을 사이에 두고 그녀를 희롱하기 시작할 때 문이 갑자기 열렸다.문에 기대있던 그는 하마터면 허리를 삐끗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권하윤의 귀에 들어오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테이블 밑의 공간이 너무 좁아서 다리가 절여서 마비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었다.그녀는 꼼짝도 못 한 채 민도준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최수인의 말처럼 그녀의 분장한 모습은 확실히 사람을 홀리게 했다. 지금 그녀는 책상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핫팬츠 밑으로 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드러났다. 요염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의 매혹적인 요정 같았다. 공간이 제한되어 있던 까닭에 상체가 매우 낮게 눌려있어서 핑크색 튜브톱 사이로 가슴이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민도준은 욕망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여전히 투덜대고 있는 최수인의 말을 끊었다.“꾸물거리지 말고 나가.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오늘 여자 하나도 꼬실 수 없을 거니까.”그는 자신의 허벅지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말했다.“내 말이, 빨리 나가야겠어. 아까 본 헬로키티가 괜찮았는데. 뺏앗기면 안 돼!”문 앞에 다다른 그가 갑자기 멈춰 섰다.“민 사장님? 나에게서 뺏어간 여자, 시간 되면 돌려줘.”그는 민도준에게 윙크하고 방을 나갔다.“최 사장님이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이에요? 설마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권하윤은 최수인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나와.”목소리만으로는 민도준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네.”그녀는 짧게 대답하고 테이블 밑에서 빠져나왔다. 너무 오래 쭈그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상체가 빠져나오자마자 다리가 절여서 넘어지고 말았다.그녀의 머리가 민도준의 다리에 부딪혔다.“아얏! 미안해요.”민도준은 다리에 붙어있는 작은 머리를 보고 씩 웃었다.“너는 좀 더 미안해도 된다.”권하윤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그가 아이를 드는 것처럼 그녀를 들어 올렸다.그는 권하윤을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그 앞에 섰다.그녀는 이런 자세가 왠지 당황스러워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었다.“도준 씨, 당신은…….”민도준은 그녀의 손에 있는 흰 장갑을 보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고개
민도준은 그런 권하윤의 모습을 보면서 우스웠다.“스스로 고개를 돌릴래, 아니면 내가 도와줄까?”그녀는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강한 힘으로 그녀의 고집스러운 얼굴을 돌려놓았다.“그만해, 응?”그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고개를 휙 돌려 창밖만 바라보았다. 민도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래, 그럼 네가 거짓말한 일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아까 문자메시지에서 네가…….”그러자 그녀는 화를 내며 말했다.“말하지 말아요. 내가 방금 다 갚았잖아요!”민도준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너는 나에게 딱 한 번 갚은 거고, 네가 오늘 한 거짓말이 한 개는 아닌 거로 아는데.”이 말을 들은 권하윤은 순식간에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문자메시지에서 딱 한 번 속였잖아요. 다른 거짓말이 뭐가 있죠?”민도준은 웃으며 그녀의 이마를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톡 찌르더니 더 이상 말이 없었다.차를 몰고 한참이나 달렸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결국, 그녀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민도준을 몰래 쳐다봤다.‘내가 오늘 그를 한 번 이상 속였다고 말하는 걸 보면, 혹시 최수인에 관한 일을 가리키는 것인가?’‘설마, 그가 최수인의 말을 믿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약 믿지 않는다면 왜 나에게 더는 묻지 않지?’민도준은 별장에 가려다가 중간에 전화를 받고 길을 바꾸어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차가 멈추자 하윤은 아주 빠르게 말했다.“민 사장님께서 친히 저를 데려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제가 먼저 가보겠습니다.”그녀가 막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민도준에게 다시 잡혔다.뜨거운 키스가 머리 위에서 내려왔고 그녀는 호흡곤란으로 얼굴이 붉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풀려났다.“잘 들어가.”그의 허락을 받은 하윤은 빠르게 달려갔다.그 모습을 민도준은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어린 애가. 겁도 많은 게 꾀도 많아.’차에 시동을 걸며 그는 전화를 걸었다.상대방이 받지 않자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일고여덟 번
최수인은 권하윤이 그 자리에서 죽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물어봤다.“그때 내가 도준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당신도 거기 있었죠?”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얼굴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도 무시한 채 태연한 척 말했다. “최 사장님께서 비밀을 지켜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전에 말했듯이, 나는 직업윤리를 잘 지키는 사람이니까.”최수인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돈이 필요하면 도준한테 주라고 하면 되지 않나? 이백억은 그에게 전혀 큰돈이 아니에요.”“설마 도준이 안 주는 건 아니겠죠?”하윤은 미소를 지었다.“민 사장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서요.”최수인이 입을 삐죽거리는 것은 분명히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그는 하윤을 쳐다보더니 두 눈이 점점 커졌다.“그럼, 당신이 나한테 와요. 나는 도준보다 대범하니까!”“확실해요?”민도준의 여자를 뺏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최수인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둘은 어차피 길게 만날 수 없으니까 어쨌든 내가 먼저 줄을 설게요.”하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귀에 거슬렸다.그녀는 남은 차를 다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만 가볼게요.”최수인은 흔들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접시를 받치고 한 손으로는 찻주전자를 들고 책상에 놓인 족자 상자를 훑었다.“당신도 참 신중하네요.”“연기하려면 반드시 진짜처럼 해야 해요.”하품을 하자 최수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그래요. 소식이 있으면 다시 연락할게요.”하윤이 일어나자마자 그가 한마디 더 했다.“만약 생각이 바뀌어 나한테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그녀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감사합니다. 생각해 볼게요.”그녀가 너무 자연스럽게 대답해서 최수인은 오히려 어리둥절했다.그녀가 떠난 뒤, 그는 감탄했다.“어쩐지 도준이 흥미를 느끼더라니, 확실히 재미있긴 해.
강수연의 비난 섞인 말을 권하윤은 변명 하나 없이 다 받아들였다.“어머님 말씀이 다 맞아요. 제가 요 며칠 승현 씨를 보살피는 것이 확실히 부족했어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머님께서 괜찮으시면 승현 씨에게 전화해서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해 주세요. 그러면 저도 그를 잘 돌볼 수 있을 것 같아요.”강수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소리야, 승현이 여기서 안 살면 어디서 살아?”하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어머님 아직도 모르고 계세요? 며칠 동안 승현 씨는 민정 씨 집에서 잤어요.”“뭐야?”순간, 강민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러나 그녀는 곧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왜 헛소리를 하세요. 오빠가 언제 우리 집에서 잤어요?”“권하윤! 너 무슨 의도로 그런 소리를 한 거야?”“이모, 화내지 마세요. 새언니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강민정은 마치 정말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것처럼 훌쩍거리며 말했다.하윤은 꿈쩍도 하지 않고 바로 휴대전화에서 사진 몇 장을 찾아냈다.“아가씨, 기억력이 별로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이건 아가씨가 직접 SNS에 올린 거잖아요.”[오늘 오빠한테 저녁을 해줬는데 오빠가 손재주가 좋다고 칭찬해 줬어요.][천둥 칠까 봐 무서워요. 오빠가 있어서 다행이에요.]강민정의 SNS에는 둘의 다정한 모습이 거의 매일 올라와 있었다. 일부 사진은 둘이 지나치게 친밀해 보였다. 이를 보고 있던 강수연은 눈살을 찌푸렸다.하윤이 한 장 한 장 사진을 내밀자 강민정의 얼굴빛이 갈수록 하얗게 변했다.이 사진들은 모두 그녀가 일부러 하윤에게 보낸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강수연은 일그러진 얼굴로 분노했다.“민정아, 너와 승현은 비록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지만 이제 둘 다 어린아이가 아니야. 마땅히 거리를 두어야지. 이렇게 늘 오빠에게 달라붙어 있으면 되겠니?”“네? 저는…… 네…….”“잘못했어요, 이모.”강민정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에 잘못
르네시떼.“판매자는 뭐라 그래요?”최수인이 전화를 하고 오기 바쁘게 마스크를 쓰고 있던 강민정이 다급하게 캐물었다.그녀가 이렇게 다급한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권하윤이 그녀와 민승현 사이를 꼰지르는 바람에 강수연의 꾸지람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지람보다 더 두려운 건 강수연이 강씨 가문을 들먹인 거다.오랫동안 본가로 돌아가지 않았으니 다시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는 뉘앙스의 말.몇 년 동안 남에게 얹혀살던 강민정은 본가를 입에 올리는 걸 매우 꺼려 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강수연 곁에서 자랐는데 이제 와서 다시 본가로 돌아간다는 건 추방이나 다름없었다.더욱이 강민정은 불임이었던 그녀의 어머니가 혼인을 유지하기 위해 임신한 척 입양했던 아이였으니 따지고 보면 진짜 강씨 집안 사람도 아니었다.그 때문에 그녀는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민승현과 잠자리를 가졌다.그리고 순진하게도 민승현과는 피도 섞이지 않은 남남이니 그가 자기를 좋아하면 결혼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렇다면 영원히 민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그런데 점차 자기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는 걸 알아차렸다.체면을 가장 중요시하는 강수연은 강민정이 본인의 여동생이 가짜 임신으로 데려온 아이라는 걸 다른 사람이 알게 할 일은 없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민승현이라는 동아줄을 꼭 붙잡고 있는 거다.혹은 민도준이라는 동아줄을 잡거나.하지만 이 모든 건 지금의 일을 해결한 뒤에 생각할 것들이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민씨 집안에서 본인의 입지를 다지는 거였다.때문에 그 그림을 “찾아오는 것”은 그녀에게 가장 좋은 기회였다.…….강민정이 다그치는 듯 쳐다보자 최수인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판매자는 직접 나타나는 걸 원치 않아요. 물건은 저한테 있으니 돈만 가져오면 바로 내어드리죠.”‘나타나지 않으려 한다니…….’그렇다는 건 강민정이 200억이라는 큰돈을 무조건 내놓아야 한다는 소리였다.르네시떼를 빠져나온
민승현이 떠나간 뒤 민도준은 또다시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창가에 서있는 그의 눈에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는 민승현의 모습이 보였다.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민승현의 뒷모습을 보자 불현듯 예전에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권하윤이 자기와 관계를 가진 뒤로 민승현과 관계를 맺은 적 있는가라는 생각.그리고 언뜻 전에 민승현을 너무 사랑해서 지금 더 밉다고 하던 권하윤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권하윤은 그를 건드리면서까지 민승현한테 복수하려 했고.‘그러니까 나랑 바람피우면서 한편으로는 민승현과도 지지고 볶고 한다 이건가? 내가 조연이 된 거네.’민도준은 혀로 볼을 꾹 밀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는 광기가 언뜻 지나갔다.그리고 더 이상 고민도 하지 않고 차 키를 집어들더니 곧바로 아래층으로 나려 갔다.초인종이 울릴 때 권하윤은 와인을 마시며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그녀는 이 순간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솔직히 강민정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 본색을 드러내게 하고 싶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제 발로 함정에 빠질 줄은 몰랐다.따뜻한 물속에서 기분 좋은 생각을 하니 권하윤의 마음은 여느 때보다도 더 편안했다.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다급한 초인종 소리에 깨져버렸다.민승현이 따지러 돌아왔나 하는 생각에 기쁜 심정이 모두 사라진 권하윤은 대충 가운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민승현, 너…….”하지만 문 앞에 있는 사람을 보는 순간 그녀는 경악했다.“도, 도준 씨가 여기엔 왜 왔어요?”할 말을 제대로 정리하기도 전에 그녀는 민도준의 손에 이끌린 채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집안으로 들어온 순간 뜨거운 열기로 벌겋게 달아오른 권하윤의 얼굴과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쇄골이 민도준의 눈에 들어왔다.민승현을 반기기 위해 권하윤이 일부러 이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의 미소는 더욱 섬뜩해졌다.권하윤의 손목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은 순간 어깨로 옮겨지더니 엄지로 그녀의 쇄골을 느긋하게 만져댔다.“나는 오면 안 되나?”권하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