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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순간 뭇사람들은 문 앞에 서 있는 최서준에게 시선이 쏠렸다.

“뭐야 이 녀석은?”

손 신의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내가 누군지는 알 것 없어요.”

최서준이 한 걸음 나아가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이분은 적어도 2년은 더 살 수 있는데 왜 가망이 없다고 하는 거죠? 사람 목숨이 하찮아 보여요?”

낯선 이의 생사는 원래 그와 아무 연관이 없지만 상대가 의사라 납시고 영감탱이를 비하하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최서준의 사부님이 바로 한때 이름을 떨쳤던 ‘천재 의사’이고 지금은 그 명예를 최서준에게 물려주었으니 절대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

최서준이 사람 목숨을 왜 하찮게 여기냐고 반박하자 손 신의는 버럭 화냈다.

“새파랗게 어린 것이 지금 뭐라고 했어?”

뭇사람들도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손 신의의 본명은 손지명이고 백 년 된 의학 가문에서 태어나 의정의 명의라 일컫는다. 무수한 생명을 구했고 한때 국가의 지도자도 치료했다고 하는데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감히 그를 질의하다니.

“이봐요, 지금 우리 할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고 하셨나요?”

앞에 있던 젊은 여자가 눈물을 닦으며 희열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이죠.”

최서준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대답했다.

“제가 어르신을 구할 뿐만 아니라 2년은 더 연명하도록 치료할 수도 있어요.”

“뭐라고요?”

뭇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젊은 여자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저는 주하은이라고 해요. 할아버지의 병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우리 주씨 일가에서 반드시 제대로 보답해드릴 겁니다!”

“하하하.”

이때 손 신의가 불쑥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젊은이가 눈에 뵈는 게 없구먼. 한의학이 얼마나 심오한 의학인지 알기나 해? 배움의 경지가 끝도 없어. 나도 반평생을 배워서 지금의 실력을 얻었을 뿐이야.”

그는 앞으로 나서며 음침한 눈길로 최서준을 노려봤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배웠다고 해도 인제 고작 입문 단계일 텐데 어딜 감히 내 앞에서 허세를 부려?”

“지당한 말씀입니다, 손 신의님. 제 조카 녀석도 어릴 때부터 명의를 따라 의술을 배웠는데 지금 서른 살이 되어도 의사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는걸요. 걔도 그 정도인데 이 녀석은 오죽할까요. 뭐 설마 신동이라도 되겠어요?”

야윈 얼굴의 중년 남자가 경멸하듯 웃으며 말했다.

“한의학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간단한 양의학이라도 이 녀석 나이에 의사로 거듭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또 다른 검은 뿔테안경을 쓴 아름다운 중년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딸이 하버드에서 의학을 전공하는데 지금 28살이 돼도 여전히 지도교수의 조수로 일하고 있어요.”

다들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의논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손 신의의 말을 더 믿는 듯싶었다.

“들었죠 하은 씨?”

손 신의가 코웃음 치며 주하은을 쳐다봤다.

“이 녀석을 믿을 바엔 진 어르신의 후사나 준비하는 게 나을 겁니다.”

주하은도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너무 단순해서 하마터면 저 사람한테 속아 넘어갈 뻔했어요. 당장 저 녀석 끌어내. 여기서 헛소리 못 하게 말이야. 작정하고 소란 피우러 온 거네. 경호원 어디 있어?”

다들 사나운 기세로 돌변했다.

주하은은 또다시 최서준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했다.

“저기요, 당장 나가주세요. 안 그러면 경호원 부를 겁니다.”

최서준은 문득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누군가가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

“자식, 한숨을 왜 쉬어?”

최서준이 머리를 내저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이분은 나와 만난 것도 인연이니 어쩌면 내가 목숨을 구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워서 한숨만 나오네요. 다들 나를 제대로 대접하지도 못할망정 내쫓으려 하다니, 원래 성격상 진작 나갔을 테지만 가기 전에 한번 보여주고 싶네요. 다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세요, 내 실력이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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