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78화

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강이한과 그의 품에 안긴 한지음을 바라보았다. 한지음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품에 깊숙이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강이한도 당황했는지 자신의 손과 유영을 번갈아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유영이 실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남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점점 막나가는구나.”

“하!”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내를 막대하던 그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강씨 가문에서 여자의 지위란 가장 하찮은 것이었다.

남자 앞에서 여자는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강이한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둘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강이한도 가장 권위적인 위치에서 모든 걸 그녀의 탓으로 돌렸다.

”강이한, 당신 정말 역겨워.”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병원을 나섰다.

이게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남자가 한지음 때문에 그녀에게 손찌검한 횟수.

실망?

아마 이 관계에서 가장 큰 실망감을 느낀 사람은 유영 본인이었다.

“거기 서!”

강이한이 뒤에서 그녀를 부르며 쫓아가려고 할 때, 한지음이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유영은 무슨 정신으로 병원을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찬 밤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얇은 옷깃을 파고들었다.

뼛속까지 시린 이 느낌보다 마음이 더 추웠다.

추위는 그에게 느낀 배신감과 실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은지야.”

언제 전화를 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핸드폰은 소은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유영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수화기 너머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어디야?”

“나 지금 병원.”

“다쳤어?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갈게!”

말을 마친 소은지는 어디 병원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어진 순간 유영은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그녀는 억지로 참았다.

하늘도 그녀의 조우에 슬픔을 느낀 건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